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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김 부장 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2월
평점 :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은 각자 다른 직업과 직위를 가진 6명의 여성 회사원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고충이나 소회를 풀어낸 책입니다. 아무래도 여성 조직원들은 남성 조직원들은 받지 않는 여러 압박을 받는 데다 롤모델도 별로 없다 보니 막막할 때가 있잖아요? 거기에 '너 혼자가 아니다! 우리도 여기 있어! 다함께 버텨보자!' 하고 으쌰으쌰 하는 기운이 물씬 풍기는 일종의 처세물입니다. 대기업 부장부터 프리랜서 작가까지 다양한 직종의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총 6장, 각자 다른 소주제로 묶여있고 각자 한 꼭지씩 맡아서 이야기한다는 느낌이라 약간 수다 떠는 느낌의 구성이에요. 특히 각 장의 마지막은 사연을 받고 거기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같이 토의하는 방식인데 여기가 특히 좋습니다. 왜냐면 그 전까지는 부장은 부장대로, 과장은 과장대로, 대리는 대리대로, 사원은 사원대로, 프리랜서는 프리랜서대로.. 각자의 입장을 하나씩 이야기했다면 여기서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식으로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거든요. 예를 들어 부장이 A라는 해결책을 권유하면 듣고 있던 대리나 차장이 그건 아닌 것 같다며 B는 어떻겠냐고 제안합니다. 회사생활에는 어차피 정답이 없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고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사연의 주인공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연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말이죠!
4장 그 많던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같은 경우는 사실 정부나 기업,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이상 별다른 대책이 없는 이야기들이라서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남자들이 아이를 키우는 세상이라면 어떨까?」 이런 상상 사실 사회생활 하는 여자들이라면 전부 한번씩은 다 해봤을 거고, 차별적인 현실 인식은 우리에게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는지라, 별 실효가 없게 느껴졌어요. 반대로 3장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같은 경우는 아주 구체적인 상황+아주 구체적인 조언을 해줘서 읽는 내내 도움이 엄청 많이 되더라고요. 골프나 술자리 없이도 사내 네트워킹을 하는 방법이라든지, 책임이 애매한 상황에서 타 부서와의 갈등을 조율하는 방법이라든지, 일을 잘하는 것만이 꼭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 아니라든지.
3장 중에서도 「너무 안 맞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이라는 꼭지에 정말 공감됐어요. 내용인 즉슨, 정말 너무너무 안 맞고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있을 때, 사실 그 사람은 정말 '호의'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프리랜서인 본인은 자신이 필요하지도 않는 미팅도 꼬박꼬박 불러내고, 항상 진척을 체크하고, 개인 일정을 공유하고.. 이런 동료가 너무 스트레스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동료는 자신은 그걸 좋아하기 때문에, 상대도 그렇겠거니 생각해서 일부러 그랬던 것이라는 일화를 얘기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래요. 동료의 무능이나 이간질 같은 부분이 아니라 사소한 부분들, 예를 들어 연락이나 일정공유, 공사구분 같은 것들은 대개 성향 차이가 날 뿐인데 상대는 자신을 기준으로 두고 호의를 보인 경우가 많다는 걸 갈수록 깨닫게 됩니다. 내게 해줬으면 하는 걸 상대에게 해주는 거죠! '여우와 두루미의 식사' 정말 딱 들어맞는 비유입니다.
사회 생활이라는 게 그렇듯 항상 비슷해 보이지만 또 각자가 놓인 처지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 책 하나로 모든 고민을 다 해결할 수는 없어요. 독자들도 그걸 기대하지는 않을 거구요. 이 책 역시 6명의 저자들이 각자 고군분투하며 살아남은 뒤 '내가 해보니까 이렇게 하는 게 나을 것 같더라' 하는 대안 제시 정도입니다. 하지만 여자들에게는 현실에서 그런 대안을 제시할 롤모델이 너무나 적은 게 또 사실 아닙니까! 주변에 어느 순간 보면 터놓고 의논할 사람도 사라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니까요. 때로는 조언해준 그 길을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을 제시해주는 것만으로도 조언은 큰 도움이 되기 마련이니.. 언슬조의 의의는 바로 그것 아닐까요?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수많은 여성 동지(?)들에게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버텨봅시다. 나도 당신도 언니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