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허밍버드 클래식 M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한에스더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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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다른 장르로 옮겨져 엄청나게 성공한 작품을 원작으로 만나보는 건 무척 즐거운 일입니다. 도대체 원작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을 주의깊게 보다보면 어느새 책 한 권 뚝딱이라니까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어마어마하게 성공했으니 아마 저처럼 뮤지컬로 먼저 접하신 분들도 많지 않을까요?


 뮤지컬과 원작 소설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우선 뮤지컬에서는 지킬 박사의 서사를 따라가잖아요. 지킬이 왜 실험에 집착하는지, 왜 실험이 좌절되는지, 왜 자기 자신의 몸에다 실험을 하게 되는지, 왜 권력자들에게 복수를 하는지.. 뮤지컬에서는 거의 모든 장면이 지킬을 위해 사용되고 있어요. 하지만 원작은 뮤지컬에서는 조연에 가까운 지킬의 친구이자 조력자 '어터슨 변호사'를 화자로 내세웁니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소설을 처음 만났다면, 아마 미스터리 추리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무대 위에서 똑같은 배우가 1인2역을 하는 뮤지컬과 다르게, 소설 속에서는 지킬과 하이드는 얼굴이나 키, 몸매나 걸음걸이 같은 모든 부분이 전부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지킬=하이드라고 연결 짓지 못하는 거구요.


 뮤지컬에서는 하이드가 지킬 실험에 반대했던 상류층 인사들 찾아다니면서 위선자라고 죽이고 다니는데, 정작 소설에서는 아주 교양있고 매너있고 친절한 신사를 그냥 냅다 후드려 패서 죽여버립니다. 왜냐면 그때 하이드는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 중이었거든요. 이걸 저택의 하녀가 창문으로 목격하게 되는데, 그 하녀가 이 소설에 나름 비중있게 나오는 유일한 여성 캐릭터에요. 그러니까, 뮤지컬의 엠마/루시 같은 여주인공 위치의 인물은 소설에서는 아예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책 실물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당히 얇아요.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이 모두 있다- 는 아이디어 자체에만 충실한 느낌입니다.


 저는 뮤지컬을 보면서도 '결국 지킬 내면의 악을 분리해낸 게 하이드니까, 하이드가 저지르는 악행들은 사실 지킬이 내심 원했던 거 아닌가? 그렇다면 지킬은 별로 좋은 사람 같지 않은데..'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원작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해졌어요! 심지어 소설은 지킬이 스스로 자기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극단적인 이중 생활을 하는 인물로 나와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둘로 쪼개서 악(惡)은 양심의 가책 없이 자유롭게 나쁜 짓을 하니 좋고, 선(善)은 양심의 가책을 안 느껴서 좋고, 윈윈이네? 같은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해내는 거예요!! 게다가 두 가지 본성 모두 자기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하이드가 저지른 악행들은 내가 저지른 죄가 아니니까~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별로 느끼지 않는 듯한 묘사도 있어서 헨리 지킬이란 인간이 너무 싫어져 버렸습니다-_- 


 결국 죄를 저지른 건 하이드였으니 지킬의 선한 면은 손상되지 않았고, 때로는 하이드가 저지른 악행을 보상하기도 했네. 따라서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지.

 내가 모른 척 했던 하이드의 악행에 관해서 구구절절 열거할 생각은 없다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저지른 죄라고 인정할 수 없거든. (p.110) 

  저기서 말하는 지킬이 보상한 하이드의 악행은, 길가던 어린 여자아이를 밟아서 비명을 지르게 하고 뭐 그런 일이었단 말이에요;;; 그런 짓을 해놓고 '그건 내가 아니라 하이드가 한 거야! 나는 잘못이 없어! 물론 하이드 역시 진정한 나의 한 조각이지만! 그래도 난 양심의 가책 안 느껴! 그건 하이드가 한 거니까!'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요? 지킬인 순간에도 솔직히 영 별로인 인간 아닙니까? 그 어린 소녀에게 너무 미안하네- 이 정도는 지킬로 돌아왔을 때는 느껴야 될 텐데.. 이건 뭐 뮤지컬 속에서 하이드가 때려죽이던 위선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뭣 같은 상류층 인간 수준..^^ㅗ 소설 보고 나니 역시 하이드를 만들어낸 건 지킬이다 싶어져요.


 허밍버드 클래식 시리즈가 손바닥만한 크기에 가벼운 종이를 사용해서 가지고 다니기 편하기도 하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분량이 짧기도 해서 굉장히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어요. 6장 창가에서 있었던 일 같은 경우는 페이지 수가 3페이지가 전부입니다. 그냥 잠깐 한 5분 안에 한 장 전체를 다 읽을 수 있는 거예요ㅋㅋㅋ 뮤지컬 좋아하셨던 관객이라면, 원작 소설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고전인데 딱딱하지 않고 꽤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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