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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치는 강가에서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굽이치는 강가에서.. 지극히 전원적이고 자연적인 제목이었다.
표지에 언뜻 보이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며 낭만적인 소녀들의 여름밤 조잘거리는 합숙을 기대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예상과는 전혀 달리, 총 천연색의 청춘이나 낭만과는 꽤나 거리가 멀었고 책장을 덮고나서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내가 뭔가 크게 오해하고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아마도, 이 작가의 전작 밤의 피크닉을 떠올리며 너무 흥분한 나머지 리뷰나 서평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채
장바구니에 덥썩 담아버린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뭐 그렇다고 내내 진창처럼 끈적대거나 노골적으로 기분나쁜 잿빛인건 아니다.
다만. 눈부신 햇살에 눈을 감았을 때 불현듯 느껴지는 한기와 섬뜩함.
오히려 더할나위없이 평온함 속에 까닭모를 아슬아슬함이 더욱 긴장을 고조시킨다.
마리코는 여름방학이 시작할 무렵, 평소 동경하던 선배 가즈미와 요시노로부터 연극에 쓰일 배경그림
작업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뛸 듯이 기뻐한다. 그림같기만한 두 사람 사이에 자신이 들어갈
자리가 생겼다는 자체만으로도 신나는데 가즈미의 집에서 9일간의 합숙이라니.
들뜬기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마리코에게 친구 마오코는 그녀들이 이제와서 누군가를 끌어들이는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거라며 조심하라는 경고를 한다.
그런 불안감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채로 서서히 서서히 죄어온다.
완만하게 구부러져 흐르는 강가, 하얀그네가 조금씩 흔들리는 숲,
어린시절의 악몽같은 사건 그리고 여섯조각의 기억.
가스미, 요시노, 마리코, 아키오미, 쓰키히코, 마오코..
선착장이 있는 집, 가스미의 어머니, 탑이 있는 집, 켄타우로스, 쇼코..
총 4장으로 이루어진 얘기는 각 장마다 화자가 다르다. 자연히 얘기의 흐름이나 분위기도 조금씩 다르다.
진실이 모두 밝혀졌다고 모두가 안도하는 순간이 지나고나면 그것또한 진실은 아니었음을 알게된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기만 한 그런 순간이 청춘과 묘하게 닮아있음을 작가는 잘 어우러지게 그려냈다.
누구에게나 소녀였고 소년이었던 시절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찬란하면서도 아스라질 것 처럼 슬픈이유는
그것또한 지나고 나면 그뿐인, 끝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모두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 문턱을 넘어선 주인공들의 나머지 이야기가 끝끝내 궁금한 아침이다.
한 가지 이야기를 하겠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그 풍경이 떠오른다.
완만하게 구부러져 흐르는 강가에는 언제나 그 그네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는 늘 그곳에 있었다.
옛날 이야기 하나를 하겠다.
이미 잊혀진 이야기, 빛바랜 과거의 이갸기.
평범하고 지루한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
우리의 사랑, 우리가 저지른 죄, 우리의 죽음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