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장을 덮고난 뒤, 이렇게까지 고민하도록 만든 책은 참 오랜만이다. 가벼운 문체와 서술임에도 불구하고 작가 「이사카 코타로」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갈팡질팡, 아니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솔직하겠다. "마왕"이란 제목과 함께 파시즘이라니 전혀 기대하거나 상상하지 않은만큼 엉뚱하지만 꽤나 심도깊은 이야기였다.

30보, 15m 정도의 범위안에서 타인의 입을 통해 "복화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형 안도와 10분의 1의 확률안에서 미치도록 운이 좋은 동생 준야. 이렇게 정확히 한정 된 능력을 가진 형제와 파시즘의 대립이라고 봐야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무심코 돌린 TV 속에서 일본의 아베장관이 '헌법 9조'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그순간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필력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말았다.

주인공 안도와 같은 공포감을 나도 느낀적이 있다. 자각없이 흘러버리는 군중심리. 그것만큼 무모하고 폭력적인 집단이 또 있을까. 군중심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비록 시작은 자의에 의한 것이었다 해도 본인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응축된 감정들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고 마는 무시무시한 힘.

이야기중에, 혈통이 미국인이지만 일본인으로 귀화해 동네에서 영어강사를 하며 살아가는 유쾌한 앤더슨이 등장한다. 반미 감정이 최고조로 달한 어느 날 '누구'라고 특정지을 수 없는 사람들의 광끼에 의해 표적이 되어버린 그가 어찌 허구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일까. 얼마전 중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일이 있었다. 반일시위를 하던 군중들 틈을 지나가던 차 한대가 일본제 승용차라는 이유만으로 차안에  타고있던 자국민을 애워싸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던 끔찍한 일을 우리는 중계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조금 놀래버렸다.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대한민국의 회의적인 부분들이 고스란히 작가가 말하는 일본과 꼭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게 어찌 일본만의 문제겠는가.

파시즘이란 단어는 우리세대에게 굉장히 낯설기만한 소재였지만, 그렇다해도 지독하다고 느껴질만큼 이야기가 무겁지 않은 것 또한 작가의 능력이랄 수 밖에. 때때로 가볍게 툭- 던지듯 등장하는 매끄러운 대화는 시종 꽤나 날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치바"씨의 비중이 기대했던 만큼 크지 않아 '과장광고에 나 당한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웃음) 그래도 다시 만난 치바는 분명 반가웠다. (그의 직업이 사신인 만큼 100% 온전히 반가워만 할 수는 없었지만-)

이사카 코타로의 많은 이야기 중 이제 겨우 두 가지만 보았을 뿐이다. 그저 지극히 주관적인 내 기준으로만 보자면 마왕은 사신치바만큼 맘에 쏙 들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나머지 작품들도 속속 골라 읽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강하게 든다. 어떤 의미로든 생생한 놀라움을 준다는 것만은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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