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쇼크 - 엄마의 행복한 자아를 찾기 위한 모성의 대반전
EBS <마더쇼크> 제작팀 엮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아이를 싫어한다. 조카들을 봐도 그나마 ‘상대적으로 싫지 않은’ 수준이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좋다는 마음이 들진 않는다. 이런 나를 보고 수많은 지인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한다. “네 아이가 생기면 달라져.” 내 아이가 생겨도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대답하면, 여성은 누구나 모성 본능을 타고나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잘 키울 수 있게 된다는 말도 늘 따라붙었다. 과연 내가 아이를 낳으면 달라질지는 그때가 되어봐야 알겠지만 사람들은 너무나 단호하고 확정적으로 ‘모성은 본능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연히 TV 다큐멘터리에서 나에겐 모성이 없는 것 같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엄마를 봤다. 갓난아이가 거실에 혼자 누워 빽빽 울고 있는데도 엄마는 아이를 달래지 않고 묵묵히 밥을 먹었고 인터뷰 도중 가끔은 우는 아이의 입을 틀어막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이런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낀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등장한 한 무리의 애기 엄마들도 겉보기엔 너무나 평범하고 씩씩한 엄마들이었지만 한결같이 비슷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혼자서 살림과 육아를 다 해야 하는데 너무 우울하고 힘들어요.” “다른 엄마들은 다 잘 키우는 것 같은데 나만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아이를 보면 화가 나요.”

 

이것은 단순한 육아의 어려움이기 이전에 여성이라면 누구나 타고난다는 모성 본능이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근본적인 두려움이었다. 제작진은 ‘나쁜 엄마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많은 엄마들이 건강한 모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모성 회복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러 실험과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한 개인으로서의 자존감과 엄마로서의 양육효능감을 모두 회복할 수 있도록 긴 여정을 떠난 것이다.

 

육아에 지친 엄마가 우울감에 빠져 있는 것도, 엄마의 트라우마와 콤플렉스가 은연중에 드러나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이의 미래에 ‘성공’이라는 결과를 안겨주지 못한 것도 엄마로서의 자격 부족이나 모성의 결핍 때문이 아니었다. 호르몬에 의한 생물학적 모성은 겨우 50%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나머지 50%의 모성은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과정의 경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성은 여자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보편타당한 감정이 아니라 개인의 과거 경험이나 정서 상태, 생활환경, 주변인에 따라 충분히 변화하고 생성될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한국에서 강요되는 모성은 아이의 ‘생존’뿐 아니라 아이의 ‘성공’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모성을 아이와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사랑으로 키우는 경험과 과정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성공할 수 있도록 무엇이든 다 해야 하는’ 의무로 착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질 높은 모성은 엄마가 편안한 상태에서 발휘되는 편안한 모성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편안한 엄마가 되려면 자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선 엄마의 감성이 편해져야 하고 과도한 스트레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100명의 ‘현역 엄마’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진행한 모성 회복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풀어쓴 이 책은, 더 이상 엄마들이 근거 없는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편안한 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에도 출산과 육아라는 사건이 내게 닥치면 나 역시 분명 당황하고 불안해하고 갈팡질팡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적어도 ‘나는 모성이 없는 엄마인가?’라는 의문 앞에 절망하지 않고 건강한 모성을 이끌어내면서 편안한 엄마가 되고자 노력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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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김진송

 

 

목수라고 해서 항상 가구를 만들거나 한옥 따위를 짓는 일만 생각했는데 '아, 나무로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 '목수'였구나'를 느끼게 해준 사람이 김진송이다. '움직인형'이라는 낯설지만 독특한 주연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디스 이즈 아프리카>, 정해종

 

 

처음엔 '디스 이즈 아메리카'로 읽었다. 왜 나는 너무 당연하게 '아메리카'라고 생각해버린 걸까. 세상에 나와 있는 여행기 가운데, 이제 더 이상 다루지 않은 나라나 대륙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행지로서의 아프리카는 낯선 레어템이다. 그래서 언제나 끌린다.

 

 



 

 

 

 <파리, 날다>, 설정환, 매그너스 무어

 

파리가 주인공인 책이라니. 보통 사람보다 더 심각한 벌레 공포(!)를 갖고 있는 나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다리가 여럿 달렸거나, 더럽거나, 떼로 모여 있는 벌레들을 끔찍히도 싫어하는데 이상하게 그것들을 구체화시키거나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대상을 바라보면 또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파티장에서 죽은 파리의 사진에 덧입혀진 텍스트와 그림들이 기대 된다.

 

 



 

 

 

 

  <엄마의 블로그를 훔치다>,

 

엄마를 다루려면 이렇게 접근해야 옳다고 본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마땅히 책 한 권에 담을 만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이 다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언가 특별하고 위대한 업적이나 흔적을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상 속의 엄마를 자식의 입장에서 새롭게 재발견하려면 분명 특별한 프레임을 들이대야 하는 게 옳다. 엄마의 속내를 훔쳐보는 것만큼 굉장한 프레임이 어디 또 있을까.

 

 

 

 



 

  <피와 뼈 그리고 버터>, 개브리엘 해밀턴

 

우리는 왜 그토록 음식에 관해,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 관해, 음식이 만들어지는 공간에 관해 궁금해하는 것일까. 이제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나올 때마다 읽고 싶어진다. 소재는 같지만 화자에 따라, 공간에 따라, 그 문화적 공기에 따라 너무나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속는셈치고, 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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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옷의 세계>, 김소연

 

<극에 달하다>라는 시집으로 처음 알게 된 김소연 시인. 전작 <마음사전>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최근 출간된 <시옷의 세계>는 그 컨셉도 특이하고 주변의 평이 워낙 좋아서 꼭 읽어보고 싶다.

그런데 왜 하필 '시옷(ㅅ)'이었을까. '시'와 '시인'에서 출발한 시옷이었을까, 아님 '사랑'에서 출발한 시옷이었을까. 궁금하다.

 

 

 

 

 

 

 

 

  <엄마, 사라지지 마>, 한설희

 

60대의 딸이 90대 노모의 고요한 적막에 휩싸인 일상과 주름을 하나하나 담아낸 사진집.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엄마도 그렇게 내 앞에서 사라질까봐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는 딸의 마음이 표지 사진에서도 섬세하게 느껴진다.

 

 

 

 

 

 

 

 

 <스칸딕 베케이션>, 김진진+이홍안

 

스칸디나비아 스타일, 혹은 북유럽 스타일의 매력은 여전히 질리지 않는다. 패브릭 브랜드의 마케터와 디자이너가 북유럽을 여행했다면 당연히 보통의 여행기와는 다를 것이다. 아무래도 디자인적인 시각, 마켓적인 시각이 미묘하게 교차되지 않을까. 서늘하고도 따뜻한 북유럽 특유의 정취와 세련되고 소박한 그들의 미감이 서울에도 그대로 전해질 것만 같다.

 

 

 

 

 

 

 

 

  <카페 윤건>, 윤건

 

세상에나. 윤건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집에서 아주 가까운 통의동이라니. 어쩐지 윤건의 손이 닿은 공간은 절대적으로 윤건스러울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낡아 보이지만 사람의 냄새가 베어 있을 것이고, 무심해보이지만 섬세한 손길이 닿아 있을 것이고, 따뜻한 온기만이 가득할 것 같지만 유쾌한 웃음소리가 겹겹이 쌓여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그렇겠지?

 

 

 

 

 

 

 

 

  <쫄깃>, 메가쇼킹 만화가

 

어찌어찌하다가 제주도로 흘러 들어가 게스트하우스를 차렸다는 얘기는 들었다. 트위터를 통해 틈틈이 제주 생활을 엿보기도 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메가쇼킹이 제주도에 정착한 이후 너도나도 삶의 터전을 제주도로 옮기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메가쇼킹의 제주도 정착은 어쩐지 성공적으로 보였다. 그가 어떻게 제주도로 흘러들어갔고, 어떻게 정착을 시작했고, 어떻게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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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PD의 미식기행, 목포 - 역사와 추억이 깃든 우리 맛 체험기
손현철.홍경수.서용하 지음 / 부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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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목포에서 전복 양식업을 하신다. 그덕에 나는 늘 '목포 유지'라는 농담같은 별명을 달고 다녔다. 전복은 비싼 식재료니까 그렇게 비싼 녀석을 키워서 내다 판다면 꽤나 부유하지 않겠냐는 논리인데, 그렇게 따지면 억대의 대지와 건물을 중개하는 대한민국 부동산 중개업자는 모두 재벌들인가. 여튼 전복은 비싸지만 유통 과정의 차액은 상식적인 수준인지라 지역의 유지라는 건 망상에 불과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전복만큼은 질리도록 많이 먹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전복 양식을 하기 전에 우리집은 원래 20년 넘게 김 양식업을 했다. 굴 껍데기에 구멍을 뚫어 포자를 심으면 길죽길죽한 김이 쑹쑹 자랐는데, 그 덕에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집에서 가장 흔한 음식은 바로 김이었다. 지역 유지는 커녕 일곱 식구가 근근이 먹고 사는 수준의 평범한 집안이었지만 부엌에는 늘 김이 넘쳤고, 밥상에는 조기나 갈치, 고등어 같은 생선이 빠지는 법이 없었다. 중요한 일이 있는 날에는 홍어와 묵은지가 상에 올랐고, 나는 일곱 살에 이미 산낙지를 질근질근 씹어넘겼다. 가끔 낙지의 빨판이 입천장에 들러붙어 으앙으앙 울곤 했지만 그래도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주는 산낙지를 꿀떡꿀떡 잘도 먹었다. 할아버지가 막걸리에 콜라를 부어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내게 건네면 한방에 쭈욱 들이키고 캬아- 하는 감탄사까지 흉내내며 '할부지 한 잔 더!'를 외쳤다.

 

여름이면 엄마표 콩국수를 목을 빼고 기다렸다. 불린 콩을 믹서에 갈아 콩물을 만들어서 국수가락보다는 굵고 우동 면발보다는 얇은 면을 투척하면 콩국수가 완성됐다. 콩국수에 얼음을 넣고 오이를 채썰어 올려 한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면 그해 여름은 그것으로 족했다. 겨울에는 콩국수의 콩이 팥으로 바꼈다. 고소한 콩국물 대신 달짝지근한 팥국물이 만들어지고,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어 샥샥 채를 썰면 칼국수 면발이 척척 쌓였다. 아랫목에 모여 앉아 무릎까지 담요를 덮고 사방에 팥국물을 튀기며 팥칼국수를 후루룹후루룹 먹고 나면 뱃속까지 뜨뜻해졌다.

 

돌이켜보면 우리 집의 경제력과 상관없이 목포는 먹을 것이 참으로 두둑한 지역이었다. 동네 어디를 가도 집집마다 널려 있는 무화과 나무에서 잘 익은 무화과를 아무때고 따 먹었고, 시장에 다녀오는 엄마의 장바구니에도 자주 무화과가 담겨 있었는데 이 과일을 남도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스무 살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어쩐지 서울에 오니 생무화과는 없고 온통 말린 무화과 투성이더라니.

 

초등학교 안에는 석류나무가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과 우르르 몰려나가 가지를 흔들어 석류를 따먹었다. 그런데 세상에나, 석류가 그렇게 비싼 과일이었다니...! 집에서 조금 걸어 나가면 항구가 나왔는데, 골목마다 오징어와 쥐포를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항동시장에 가면 대야에 담긴 낙지와 해삼, 멍게 같은 것들을 구경하기에 바빴다. 아빠는 횟집의 회는 비싸다며 종종 수산시장에서 거대한 민어 한 마리를 사다가 날렵한 손놀림으로 회를 떠줬다. 그때 나는 어른이 되면 모두가 그렇게 회칼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게 되는 줄 알았다.

 

세 명의 베테랑 다큐 PD가 목포 지역 음식의 맛과 시간을 더듬어가는 미식기행기, <세 PD의 미식기행, 목포>에는 내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접했던 그 풍요로운 맛에 대한 이야기가 그득하다.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수탈 1번지로 일제의 잔재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쇠락한 항구 도시 목포가 어떻게 미식가들의 기행지가 되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이 곁들여지기도 하고, 지리적 조건이 식재료 생산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단순히 맛있는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지방 소도시의 맛집 기행이 아니라 민어, 홍어, 낙지, 콩물, 꽃게장, 팥죽 등 목포에서 맛볼 수 있는 그 맛의 정체과 고유성을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가령 조선시대에는 그토록 전국적으로 풍요로웠던 민어가 이제는 남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생선이 되었는지, 어쩌다 홍어를 삭혀 먹게 되었는지, 왜 세발낙지는 다른 낙지에 비해 그토록 연하고 맛이 좋은지에 대한 속시원한 설명과 목포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특유의 요리법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렇게 음식의 맛을 쫒다보면 목포 사람들의 삶과 일상이 보인다. 어릴 때는 모든 게 너무나 당연하고 흔하게 닿아 있던 식재료들이 목포라는 지역색으로 세심하게 설명되니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새삼 그 맛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책을 보자마자 단숨에 읽어내리다가 책 속의 알록달록 식감 돋는 사진들에 심호흡을 하기도 하고, 흐르는 침을 닦아내기도 하면서, 밤에는 되도록 펼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나의 유년과 그곳의 시간을 함께 여행했다.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엄마가 해준 음식들이 먹고 싶어졌다. 엄마 냄새와 목포라는 공간, 그리고 유년의 시간들이 뒤섞여 공감각적인 식욕이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 물론 목포에 간다면 꼭 가봐야 할 식당들도 깐깐하게 선별해 소개하고 있다.

자랑을 한마디 곁들이자면, 이 책에 소개된 맛집들은 대부분 나의 고향집 반경 2km 이내에 있다.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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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하면 왜 개, 고양이를 버릴까?
권지형.김보경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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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년차가 되어 가는 요즘, 친정 엄마는 우리 부부가 키우는 12살 반려견 짜르를 다른 집에 보내든지, 버리든지 어떻게 좀 하라고 성화다. 나는 어떻게 12년을 함께 산 동물가족을 포기하라고 할 수 있느냐고 성토해보지만, 이제 곧 아이도 낳아야 하니 당연히 집안에 개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게 엄마의 주장이다. 이렇게 아이와 개가 한 집안에서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정말 많다. 반려동물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만큼 여러 이유로 수많은 반려동물이 버려져 유기동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동물 유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다.

 

아기와 반려동물이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편견과 싸워 이겨내야 하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힘들고 고단하다. 반려동물이 있으면 반려동물이 여성의 모성호르몬을 증가시키고 여성호르몬을 억제해 임신이 안 된다는 주장부터 개털이 나팔관을 막아 불임이 된다, 고양이를 키우면 기형아가 태어난다, 개나 고양이의 털 때문에 아기가 숨이 막혀 죽을 수 있다, 개회충이 아이 눈을 실명시킨다, 사람에게 피부병을 옮는다, 아토피가 심해진다, 개는 물고 고양이는 할퀴어서 위험하다 등 온갖 편견과 오해들이 반려동물 가족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때론 수많은 유기 동물을 양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마구잡이로 퍼져나가는 이런 주장들은 과연 사실일까.

 

이 책은 온갖 ‘카더라’ 통신으로 퍼져나가는 반려동물에 관한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쓰였다. 저자는 두 딸과 두 마리의 반려동물과 함께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경험한 반려인이고 의과대학을 졸업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로서 아이와 반려동물을 함께 키우는 것이 위험하다는 편견을 깨는 도구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간 반려동물 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 이런 잘못된 상식을 바로 잡으려 많은 노력을 했으나 뿌리 깊은 오해와 편견이 꾸준히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지켜보며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사실 반려인이기 이전에 과학적 근거와 통계적 수치를 바탕으로 건강을 연구하는 의사로서 객관적인 정보 전달에 더 노력한 흔적이 돋보이는 책이다.

 

가령 반려동물이 모성호르몬을 증가시켜 임신이 되지 않는다는 설에 대해 저자는 의학적으로 모성호르몬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고 일갈한다. 설사 그런 것이 존재한다 해도 모성호르몬이 불임의 원인이 된다면 둘째는 어떻게 낳을 수 있단 말인가. 또한 나팔관이 개털로 막힌다는 설에 대해서도 자궁 경부는 평상시에 바늘구멍보다 작게 꼭 닫혀 있어 개털이 자궁 경부를 지나 나팔관에 도달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아기가 털 때문에 숨이 막혀 죽을 수 있다는 설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동물의 털은 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의 코털조차 통과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간의 몸은 철저한 방어체계를 갖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면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되어 기형아를 낳는다는 오해도 짚고 넘어간다. 실제로 톡소플라스마에 사람이 감염된다는 것은 고양이가 먼저 이 기생충에 감염된 뒤 알을 포함한 대변을 보고 그것을 사람이 ‘섭취’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피부병이나 외부 기생충을 옮는다는 주장도 동물과 인간의 신체 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오해인 경우가 많다. 동물과 인간은 피부 구조와 감염될 수 있는 피부병, 기생충의 종류 자체가 다르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감염이나 위험이란 우리가 평소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안전사고나 환경에서 오는 위험의 확률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예방과 훈련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수준이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아기와 반려동물이 함께하는 행복한 임신, 출산, 육아’란 가족들이 조금만 더 노력하는 선에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의학적 근거를 무시한 잘못된 상식과 편견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버려진 동물들이 거리를 배회하며 위생 문제와 안전 문제를 낳고, 때론 동물들이 무작위로 죽임을 당하고,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사회는 결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가 아닐 것이다. 부디 이 책이 저자의 바람대로 주변의 수많은 압박 속에 고통받는 반려동물 가족들에게 이론적 근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더 이상 동물가족을 포기하지 말자.

 

내가 이 책을 준비하면서 놀란 것 가운데 하나는 반려동물이 사람의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의학적 자료가 희귀하다는 것이었다. (…) 국내에서 연구 발표된 논문은 전무하다시피 하며, 선진국에서도 최근에야 연구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반려동물을 키우면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거나 아기가 생기면 반려동물을 버려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길가의 돌멩이가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필요가 없듯이, 반려동물도 별 영향이 없기 때문에 자료가 그만큼 적은 것이다.

-저자 서문, p5

연구에 따르면 톡소플라스마 감염률은 오직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타났다. 즉, 그 지역의 흙이나 물이 톡소플라스마에 어느 정도 오염되어 있는지, 지역민들이 익히지 않은 음식을 어느 정도 먹는지 등에 따라 감염률이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톡소플라스마 감염이 반려동물이 아니라 지역의 토양이나 물 상태 등과 연관되었음을 증명하는 연구결과이다. 결국 톡소플라스마 감염은 고양이를 키우느냐, 안 키우느냐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 지역의 흙이나 물 등 환경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 고양이를 키우면 기형아를 낳는다?, p41

사실 동물로부터 옮는 기생충이 두렵다면 개, 고양이 기생충보다 더 위험한 것이 해산물을 생식하며 얻는 기생충 감염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먹는 오징어, 낙지, 명태, 넙치(광어) 등을 회로 먹었을 때 감염될 수 있는 고래회충은 구충제로도 예방이 잘 안 되고 심한 경우 위나 장을 뚫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러니 기생충 감염이 두렵다면 반려동물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식생활에 신경을 써야 한다.

- 개회충이 아이 눈을 실명시켰다?, p84

개와 고양이의 피부는 털이 많은 대신에 각질층이 거의 없고 땀샘도 없다. 반면에 사람은 동물의 비늘, 털, 가시 대신에 매우 두꺼운 각질층이 피부표면을 보호하고 있다. 마치 벽돌과 회반죽이 결합하듯이 단단하게 엮인 단백질 구조로 되어 있는 사람의 피부는 세균과 온갖 오염물질로부터 인체를 보호하고 더불어 수분 등의 필요물질이 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 이런 이유로 동물의 피부병은 대부분 사람에게 옮지 않는다. 개나 고양이에게 피부병을 일으키는 원인 미생물이 사람의 두꺼운 각질층에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반려동물한테서 피부병이 옮았다?, p92

반려동물을 무조건 더럽고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균 덩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가 마당에 묶여 평생 예방접종이나 구충도 하지 않고, 목욕 한 번 하지 않고 살던 시대도 아닌데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미 반려동물은 실내로 들어와 사람만큼 청결한 생활을 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생활환경이 바뀐 만큼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하는데 아직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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