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면 왜 개, 고양이를 버릴까?
권지형.김보경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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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년차가 되어 가는 요즘, 친정 엄마는 우리 부부가 키우는 12살 반려견 짜르를 다른 집에 보내든지, 버리든지 어떻게 좀 하라고 성화다. 나는 어떻게 12년을 함께 산 동물가족을 포기하라고 할 수 있느냐고 성토해보지만, 이제 곧 아이도 낳아야 하니 당연히 집안에 개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게 엄마의 주장이다. 이렇게 아이와 개가 한 집안에서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정말 많다. 반려동물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만큼 여러 이유로 수많은 반려동물이 버려져 유기동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동물 유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다.

 

아기와 반려동물이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편견과 싸워 이겨내야 하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힘들고 고단하다. 반려동물이 있으면 반려동물이 여성의 모성호르몬을 증가시키고 여성호르몬을 억제해 임신이 안 된다는 주장부터 개털이 나팔관을 막아 불임이 된다, 고양이를 키우면 기형아가 태어난다, 개나 고양이의 털 때문에 아기가 숨이 막혀 죽을 수 있다, 개회충이 아이 눈을 실명시킨다, 사람에게 피부병을 옮는다, 아토피가 심해진다, 개는 물고 고양이는 할퀴어서 위험하다 등 온갖 편견과 오해들이 반려동물 가족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때론 수많은 유기 동물을 양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마구잡이로 퍼져나가는 이런 주장들은 과연 사실일까.

 

이 책은 온갖 ‘카더라’ 통신으로 퍼져나가는 반려동물에 관한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쓰였다. 저자는 두 딸과 두 마리의 반려동물과 함께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경험한 반려인이고 의과대학을 졸업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로서 아이와 반려동물을 함께 키우는 것이 위험하다는 편견을 깨는 도구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간 반려동물 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 이런 잘못된 상식을 바로 잡으려 많은 노력을 했으나 뿌리 깊은 오해와 편견이 꾸준히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지켜보며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사실 반려인이기 이전에 과학적 근거와 통계적 수치를 바탕으로 건강을 연구하는 의사로서 객관적인 정보 전달에 더 노력한 흔적이 돋보이는 책이다.

 

가령 반려동물이 모성호르몬을 증가시켜 임신이 되지 않는다는 설에 대해 저자는 의학적으로 모성호르몬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고 일갈한다. 설사 그런 것이 존재한다 해도 모성호르몬이 불임의 원인이 된다면 둘째는 어떻게 낳을 수 있단 말인가. 또한 나팔관이 개털로 막힌다는 설에 대해서도 자궁 경부는 평상시에 바늘구멍보다 작게 꼭 닫혀 있어 개털이 자궁 경부를 지나 나팔관에 도달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아기가 털 때문에 숨이 막혀 죽을 수 있다는 설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동물의 털은 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의 코털조차 통과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간의 몸은 철저한 방어체계를 갖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면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되어 기형아를 낳는다는 오해도 짚고 넘어간다. 실제로 톡소플라스마에 사람이 감염된다는 것은 고양이가 먼저 이 기생충에 감염된 뒤 알을 포함한 대변을 보고 그것을 사람이 ‘섭취’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피부병이나 외부 기생충을 옮는다는 주장도 동물과 인간의 신체 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오해인 경우가 많다. 동물과 인간은 피부 구조와 감염될 수 있는 피부병, 기생충의 종류 자체가 다르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감염이나 위험이란 우리가 평소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안전사고나 환경에서 오는 위험의 확률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예방과 훈련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수준이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아기와 반려동물이 함께하는 행복한 임신, 출산, 육아’란 가족들이 조금만 더 노력하는 선에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의학적 근거를 무시한 잘못된 상식과 편견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버려진 동물들이 거리를 배회하며 위생 문제와 안전 문제를 낳고, 때론 동물들이 무작위로 죽임을 당하고,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사회는 결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가 아닐 것이다. 부디 이 책이 저자의 바람대로 주변의 수많은 압박 속에 고통받는 반려동물 가족들에게 이론적 근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더 이상 동물가족을 포기하지 말자.

 

내가 이 책을 준비하면서 놀란 것 가운데 하나는 반려동물이 사람의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의학적 자료가 희귀하다는 것이었다. (…) 국내에서 연구 발표된 논문은 전무하다시피 하며, 선진국에서도 최근에야 연구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반려동물을 키우면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거나 아기가 생기면 반려동물을 버려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길가의 돌멩이가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필요가 없듯이, 반려동물도 별 영향이 없기 때문에 자료가 그만큼 적은 것이다.

-저자 서문, p5

연구에 따르면 톡소플라스마 감염률은 오직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타났다. 즉, 그 지역의 흙이나 물이 톡소플라스마에 어느 정도 오염되어 있는지, 지역민들이 익히지 않은 음식을 어느 정도 먹는지 등에 따라 감염률이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톡소플라스마 감염이 반려동물이 아니라 지역의 토양이나 물 상태 등과 연관되었음을 증명하는 연구결과이다. 결국 톡소플라스마 감염은 고양이를 키우느냐, 안 키우느냐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 지역의 흙이나 물 등 환경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 고양이를 키우면 기형아를 낳는다?, p41

사실 동물로부터 옮는 기생충이 두렵다면 개, 고양이 기생충보다 더 위험한 것이 해산물을 생식하며 얻는 기생충 감염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먹는 오징어, 낙지, 명태, 넙치(광어) 등을 회로 먹었을 때 감염될 수 있는 고래회충은 구충제로도 예방이 잘 안 되고 심한 경우 위나 장을 뚫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러니 기생충 감염이 두렵다면 반려동물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식생활에 신경을 써야 한다.

- 개회충이 아이 눈을 실명시켰다?, p84

개와 고양이의 피부는 털이 많은 대신에 각질층이 거의 없고 땀샘도 없다. 반면에 사람은 동물의 비늘, 털, 가시 대신에 매우 두꺼운 각질층이 피부표면을 보호하고 있다. 마치 벽돌과 회반죽이 결합하듯이 단단하게 엮인 단백질 구조로 되어 있는 사람의 피부는 세균과 온갖 오염물질로부터 인체를 보호하고 더불어 수분 등의 필요물질이 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 이런 이유로 동물의 피부병은 대부분 사람에게 옮지 않는다. 개나 고양이에게 피부병을 일으키는 원인 미생물이 사람의 두꺼운 각질층에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반려동물한테서 피부병이 옮았다?, p92

반려동물을 무조건 더럽고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균 덩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가 마당에 묶여 평생 예방접종이나 구충도 하지 않고, 목욕 한 번 하지 않고 살던 시대도 아닌데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미 반려동물은 실내로 들어와 사람만큼 청결한 생활을 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생활환경이 바뀐 만큼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하는데 아직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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