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쇼크 - 엄마의 행복한 자아를 찾기 위한 모성의 대반전
EBS <마더쇼크> 제작팀 엮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아이를 싫어한다. 조카들을 봐도 그나마 ‘상대적으로 싫지 않은’ 수준이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좋다는 마음이 들진 않는다. 이런 나를 보고 수많은 지인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한다. “네 아이가 생기면 달라져.” 내 아이가 생겨도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대답하면, 여성은 누구나 모성 본능을 타고나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잘 키울 수 있게 된다는 말도 늘 따라붙었다. 과연 내가 아이를 낳으면 달라질지는 그때가 되어봐야 알겠지만 사람들은 너무나 단호하고 확정적으로 ‘모성은 본능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연히 TV 다큐멘터리에서 나에겐 모성이 없는 것 같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엄마를 봤다. 갓난아이가 거실에 혼자 누워 빽빽 울고 있는데도 엄마는 아이를 달래지 않고 묵묵히 밥을 먹었고 인터뷰 도중 가끔은 우는 아이의 입을 틀어막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이런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낀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등장한 한 무리의 애기 엄마들도 겉보기엔 너무나 평범하고 씩씩한 엄마들이었지만 한결같이 비슷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혼자서 살림과 육아를 다 해야 하는데 너무 우울하고 힘들어요.” “다른 엄마들은 다 잘 키우는 것 같은데 나만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아이를 보면 화가 나요.”

 

이것은 단순한 육아의 어려움이기 이전에 여성이라면 누구나 타고난다는 모성 본능이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근본적인 두려움이었다. 제작진은 ‘나쁜 엄마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많은 엄마들이 건강한 모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모성 회복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러 실험과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한 개인으로서의 자존감과 엄마로서의 양육효능감을 모두 회복할 수 있도록 긴 여정을 떠난 것이다.

 

육아에 지친 엄마가 우울감에 빠져 있는 것도, 엄마의 트라우마와 콤플렉스가 은연중에 드러나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이의 미래에 ‘성공’이라는 결과를 안겨주지 못한 것도 엄마로서의 자격 부족이나 모성의 결핍 때문이 아니었다. 호르몬에 의한 생물학적 모성은 겨우 50%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나머지 50%의 모성은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과정의 경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성은 여자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보편타당한 감정이 아니라 개인의 과거 경험이나 정서 상태, 생활환경, 주변인에 따라 충분히 변화하고 생성될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한국에서 강요되는 모성은 아이의 ‘생존’뿐 아니라 아이의 ‘성공’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모성을 아이와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사랑으로 키우는 경험과 과정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성공할 수 있도록 무엇이든 다 해야 하는’ 의무로 착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질 높은 모성은 엄마가 편안한 상태에서 발휘되는 편안한 모성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편안한 엄마가 되려면 자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선 엄마의 감성이 편해져야 하고 과도한 스트레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100명의 ‘현역 엄마’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진행한 모성 회복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풀어쓴 이 책은, 더 이상 엄마들이 근거 없는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편안한 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에도 출산과 육아라는 사건이 내게 닥치면 나 역시 분명 당황하고 불안해하고 갈팡질팡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적어도 ‘나는 모성이 없는 엄마인가?’라는 의문 앞에 절망하지 않고 건강한 모성을 이끌어내면서 편안한 엄마가 되고자 노력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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