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반전 장치를 잘 설정했다.강압적인 엄마 밑에서 자라 혼전임신으로 결혼한 나쓰코와 난임의 스트레스에 더해 남편의 불륜을 알게된 사에의 일상이 보여진다. 서스펜스 장르답게 초반부터 묘하게 불편한 분위기가 신경 쓰였다. 사에의 남편이 살해되기까지의 시간과 두 여성의 일상과 심리가 소설의 주 골자다. 읽는 내내 긴장감이 느껴졌다. 두 여성의 관계가 반전이다. 읽는 동안 전혀 알아채지 못했지만 알고 나서는 그럴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집착과 잘못된 애정이 부른 비극이다. 소설이기 때문에 이런 반전을 설정할 수 있었겠다. 오로지 글로써만 독자에게 정보를 줄 수 있으니 작가는 숨기고자하는 것을 굳이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꽤 영리한 테크닉이다.
기후위기를 소재로 한 착한 SF다.'착하다'는 표현이 알맞을지 모르지만 기대했던 것 보다 결말이 훈훈해서 떠오른 말이다. 기후위기라는 현재 진행형 재난이 근미래에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초반부터 이런 묘사나 설정이 실감나서 재미있게 읽었다.다만 보다 정교한 반전 장치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디스토피아적 설정에 비해 이야기가 쉽게 풀리는 느낌이 있었다.주인공 미아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추억하며 '노 휴먼스 랜드'가 되어버린 서울을 탐험하는 부분이 좋았다. 기후위기와 식량난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이런 사랑과 인류애가 구원할 것이라는 메시지도 뭉클했다.
친구를 딸로 입양하게 된 삶의 기록.예전에 트위터에서 이 분의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무척 기발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법적인 가족을 만들 수 있다니 놀라웠다.저자는 오랫동안 도시보다는 시골에서의 삶을 희망했다. 그래서 귀촌을 위한 교육과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비혼 여성이 혼자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편견과 무례함에 맞서야만 하는 일이다. 저자가 겪은 사례들을 읽으며 분노했다.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저자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대한 것이다. 가장 궁금한 친구를 입양하는 부분은 거의 책의 마지막에서야 나온다. 좀 의아했는데 저자의 삶과 생각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니 동거하는 친구를 입양하게 된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마음이 맞고 케미가 좋은 두 성인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들이 좋았다. 특히 '여성 2인조 출장 수리단' 부분이 재미있었다. 동거 5년차에 저자는 50개월 어린 동거인을 입양하게 된다. 우리 나라는 생활동반자법이 아직은 없고 따라서 동거인의 법정대리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병원에 입원하거나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동거인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동성부부나 사실혼 관계인 커플들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런데 성인이 성인을 자녀로 입양하는 것은 '허무할 만큼 간단하다'고. 저자 역시 이 방법이 건강한 사회의 모습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들끼리 계속 입양하여 결혼과 혈연 중심의 가족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상상도 한다.갈수록 '정상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희미해질 것이다. 대안적인 가족을 시작한 저자와 같은 분들을 응원해야겠다.
피해자의 아픈 서사가 기억에 남는 범죄 소설이다.이 책은 마사키 도시카의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의 후속작이다. 전작을 읽지 않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크게 상관없었다.크리스마스 이브에 노숙인으로 추정되는 한 중년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누구이며 누구에게 살해되었는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팀이 된 미쓰야와 다도코로 형사. 전형적인 '홈즈와 왓슨' 같은 조합이다. 기억력이 비상하고 관찰력이 뛰어난 미쓰야 형사는 어린 시절 엄마가 살해된 상처를 지니고 있다. 다도코로는 미쓰야의 능력에는 감탄하지만 그의 비사교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에 서운함을 느낀다.1년 반 전에 발생한 미제 살인 사건과 노숙인의 관계성이 생기면서 점점 실마리가 풀린다.노숙인의 이름은 '마쓰나미 이쿠코'. 평범한 생활을 하던 주부가 노숙인이 될 수밖에 없던 과정이 나온다. 그 과정은 이쿠코가 게을렀다거나 엄살을 부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회의 구조와 무관심, 그리고 불운 때문이었다. 읽으면서 씁쓸하고 아팠다. 노숙인이 된 후에도 잃지 않은 인간성과 자비 덕분에 이쿠코가 눈을 감는 순간이 감동적이었다. 범죄와 추리의 과정보다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추리의 과정에서 미쓰야 형사가 인스타그램을 분석하는 부분이 있다. 허영과 과시의 장이 된 SNS를 소재로 한 스토리를 최근에 여러 개 봤는데 그만큼 현실이 그렇다는 의미겠지.재미있게 읽었다.
발레를 이보다 더 재미있게 알려주는 책이 있을까.책을 받고 서문만 읽어 본다는 게 어쩌다 보니 마지막 장까지 읽고 말았다. 저자는 오랫동안 취미로 발레를 했고 문화예술 프로그램 방송 작가, 공연 창작 등의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래서인지 소소한 발레에 대한 지식부터 발레의 역사, 발전, 주요 작품, 주요 무용수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의 글이 한데 묶여있다.대개의 예술 입문서들이 너무 전문적이거나 에세이 류처럼 가벼운 내용인데 이 책은 지식을 체계적으로 서술하면서도 재미있다. 문장이 친근하면서도 가독성이 좋아서 내용이 더 잘 이해되었다. 대중적인 글을 써온 작가의 이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발레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앟나 싶다.발레리나들이 발등의 곡선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든가 발레 클래스가 발레단마다 다르다는 등 처음 알게 된 내용들이 기억에 남는다. 또 최근에 본 고전 발레들에 대한 내용과 유명한 안무가, 무용수, 작곡가들에 대한 일화가 아주 재미있었다.책의 만듦새도 아름답다. 표지부터 내지의 일러스트가 멋졌고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다.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현대무용과 컨템퍼러리 댄스를 다룬 마지막 챕터도 흥미로웠다. 작년부터 <백조의 호수>나 <지젤> 같은 고전 발레를 봤으니 이젠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유익하고 재미있는 발레 입문서다. 발레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