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은 <개미>, <타나토노트>, <아버지들의 아버지> 등 초창기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챙겨 읽지 못했는데 이번 신간은 궁금했다.세계 3차 대전으로 인류는 거의 사라지고 핵폭탄으로 인해 지구는 방사능으로 오염된다. 마침 우주선에서 인간과 동물의 혼종을 만들어 온 과학자 알리스는 이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 지구로 귀환한 알리스는 박쥐. 두더쥐, 돌고래와 사피엔스를 결합시킨 세 종류의 혼종, '키메라'들을 탄생시킨다. 키메라들은 방사능이나 오염 물질에 강하고 각기 특화된 신체적 기능이 있다. 또 사피엔스보다 임신 기간이나 성장기가 빨라 금세 번식하여 개체 수를 늘린다. 그리고 급기야 사피엔스를 위협하기도 한다.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펼쳐낸 흥미로운 가정이다. 이야기는 계속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지루할 틈없이 진행된다. 세계 3차 대전은 어어 없게 발발해서 다소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 씁쓸하기도 했다.알리스가 키메라들을 창조한 의도와 그들을 향해 느끼는 애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 후기를 보니 현실에서도 인간과 동물의 혼종을 연구하는 사례가 많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시도들이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만약 소설과 같은 상황이 온다면 모두 다 멸종하는 수밖에.베르베르는 혼종을 옹호한다기보다 현재를 경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환경, 혐오, 정치 등 현실이 가져올 위험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어쩌면 작가의 경고대로 5년 뒤 일어날지도 모른다.#키메라의땅 #베르나르베르베르 #열린책들 #김희진옮김 #소설 #과학소설 #장르소설 #프랑스소설 #서평 #책추천 #미래소설 #sf
피아니스트이자 클래식 유튜버로 활동 중인 안인모 님의 저서. 유튜브에 올라오는 컨텐츠가 쉽고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의 책도 같은 느낌이다. 솔직히 처음에 이런 클래식 입문서를 꽤 많이 읽어 온 까닭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왠걸.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이 책은 시리즈 중 세번째로 출간된 '인상 카페'편으로 일곱 명의 작곡가를 소개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말러, 드보르자크, 드뷔시, 라벨, 사티. 각 인물들의 삶과 대표곡들을 알 수 있다.제법 방대한 작곡가들의 일생을 키워드별로 짚으며 핵심적으로 정리했다. 내용 중간 중간에는 큐알코드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래알꼭알'이라는 꼭지는 참고할 만한 것들이 있는데 피아니스트로서의 조언이나, 작품번호의 의미, 악보 상의 특징, 곡과 연관된 상식 등 그 내용이 다양했다. 아마도 작가가 음악가면서 콘텐츠 제작자라서 가능한 풍부한 내용이지 않을까. 그중 '드뷔시의 피아노곡 연주 포인트'가 기억에 남는다. (내가 연주한 드뷔시 곡이 어째서 별로인지 바로 납득이 되었다.)표지와 내지를 가득 채운 일러스트도 훌륭하다. '최광렬'이라는 분의 작품인데 현실 작곡가들의 모습을 살렸으면서 개성있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책의 삽화로만 머물기에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굿즈로 활용되면 어떨까?)시리즈의 '낭만살롱 편'과 '고전의 전당 편'도 찾아봐야겠다.#클래식이알고싶다 #안인모작가 #위즈덤하우스 #인문 #클래식 #서평 #클래식이알고싶다인상카페편 #안인모피아니스트
올해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다. 김홍 작가님의 작품은 처음이었는데 초반부터 몰입되었다. 주인공 '장'은 은행에서 대출심사를 담당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10년 사귄 여자친구와는 결혼을 약속했지만 파혼했고 친한 친구와 손절했으며 아파트 15층에 살지만 하필이면 엘리베이터가 며칠째 고장이다. 직장에서는 상사의 노골적인 압박이 그를 억누른다. 그밖에도 장을 옭아매는 빡침의 포인트가 줄줄이 드러난다.장은 어느날 괴한에게 납치를 당한다. 꼬박 하루 동안 자신의 차 트렁크 안에 갇혀 고난을 겪지만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풀려난다. 과연 누가 그를 납치했는지 의문을 갖고 스토리를 따르게 된다. 단순히 납치 미스터리로만 소설이 진행되었다면 평범했을 텐데 갑자기 여기저기 출몰한 말뚝들로 인해 독특한 분위기가 펼처진다. 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정리될까 싶은 궁금증이 커지는 작품이다. 한국 사회가 겪은 다양한 트라우마가 등장하고 결국 호의와 진심이 이긴다는 훈훈한 메시지도 있다.장이 트렁크에 갇혀 듣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그널 음악을 묘사한 글이 정말 웃겼다. 그밖에도 웃으며 읽은 문장이 많았지만 장을 찾아온 말뚝의 정체를 알게되는 순간과 엔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오히려 좋았다.뜻밖의 전개가 주는 재미가 있던 작품.#말뚝들 #김홍 #한겨레문학상 #한겨레출판 #한국소설 #소설 #문학 #작가
신간 소개를 봤을 때 작가의 프로필이 독특했다. 직업이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니. 비유적인 표현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정말이었다.원소윤 작가의 데뷔 작품인 이 소설은 자전적 이야기인 듯 하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소윤'의 가족, 어린 시절, 현재의 삶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시종일관 냉소적이면서 어떻게 보면 구질구질한데 읽으면서 파안대소하는 부분이 꽤 있었다. 활자로 읽는 스탠드업 코미디 같았다.낄낄거리며 페이지를 넘기는데 가족이 겪은 슬픔과 상실은 온전히 전해지니 묘한 체험이었다. 다만 스토리의 구조를 추앙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각 챕터별, 혹은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사건이나 줄거리가 약한 것이 아쉬웠다.문장이 독특해서 특히 기억에 남는다. 외할아버지 치릴로의 에피소드가 가장 좋았다.#꽤낙천적인아이 #원소윤 #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한국소설 #소설 #스탠드업코미디
오키나와를 일본의 제주도쯤 되는 휴양지로만 생각하곤 하지만 실은 최근 백년 사이에 엄청난 고난과 아픔이 있던 곳이다. 원래는 '류큐'라는 독립국가였지만 일본에 의해 점령되고 세계 2차 대전 때는 일본과 미국의 전투로 온 지역이 초토화되었다. 강제로 일본군에 동원되거나 자결 강요로 인해 숨진 민간인만 10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히가 스스무의 <오키나와>는 1995년 출간된 <모래의 검>과 2010년 출간된 <마부이>를 모은 책이다. <모래의 검>은 2차 대전 당시 오키나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있고 <마부이>는 전후 세대들의 삶을 다룬다.<모래의 검>의 일곱 에피소드는 오키나와 민간인들이 겪은 전쟁을 보여준다. 만화적 생략이 있어서 잔인한 장면은 없지만 숨어있는 의미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역사적 진실을 전달하는 강력한 만화의 힘이다.저자의 어머니를 소재로 한 '어머니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또 민간인으로 끌려가 탈출했지만 결국 미군의 포로가 된 아버지의 이야기도 있다. 아버지가 하와이 수용소 시절을 좋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상대적으로 미군에 대한 묘사가 일본군에 비해 호의적인 부분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열세에 몰린 일본군이 오키나와 주민을 인질로 항전을 하고 절벽에 뛰어내리게 하는 등 자결을 강요한 일화는 유명하다. 만화로 접하는 이 내용도 매우 가슴 아프고 처참했다. 그 속에서도 용기있게 행동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다.<마부이>는 미국 점령 이후 오키나와를 보여준다. 미군 기지 건설을 위해 토지를 강탈한다든지, 주민들끼리 대립하거나 연대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재의 오키나와가 지닌 문제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오키나와 출신인 작가의 애정이 만들어 낸 역작이다. 모든 에피소드가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1990년대 탑 가수인 아무로 나미에. 대표적인 오키나와 출신 스타가 공식 석상에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오키나와 #히가스스무 #서해문집 #만화 #만화책 #그래픽노블 #식민주의 #역사 #일본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