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주년 기념판 100만 부 출간 에디션'이 발행되고서야 읽어 본 이유는 워낙 '과알못'이기 때문인데 좋은 기회로 드디어 읽어보았다. 어떤 부분은 매우 더디게 읽혔는데, 그렇다고 공부하는 자세로 정독하기엔 과학적 지식이 얕아서 큰 맥락을 놓고 읽어 내려갔다. 일단 이 책의 ‘이기적’이라는 단어는 도덕적 판단이나 인간적인 욕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복제 성공에 유리한 유전자를 ‘이기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책은 다양한 생물들의 사례를 통해 유전자의 복제 성공이라는 관점에서 경쟁뿐 아니라 이타적 행동과 협력까지 설명한다.전체 13개의 챕터 중 역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 유명한 '밈: 새로운 복제자(MEMES: the new replicators)'다. 문화적 자기복제를 의미하는 밈의 개념이 이 책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밈을 설명하기 까지의 빌드업을 보니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유전자라는 필터로 생명체를 바라보면, 우리가 이타적이라고 생각해온 행동조차 유전자의 복제라는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서늘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출간 이후 이 책의 주장에 대한 논쟁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이타적이고 협력적인 행동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지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괜히 명저로 회자되는 책이 아니다.*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이기적유전자 #이기적유전자50주년기념판 #을유문화사 #과학 #리처드도킨스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중 하나.놀랍게도 이 책이 나에게는 첫 카뮈다.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페스트>는 한창 코로나 시기에 읽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과 몇 년전인데도 이제는 까마득한 과거 같긴 하지만 돌이켜 보면 말도 안되는 시기였다. 전염병이 전세계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하면서 일상이 바뀌고 산업과 문화, 사회가 바뀌는 것을 체험했다. 소설은 1940년대의 프랑스령 알제리의 오랑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대략 여섯 명의 인물들이 도시를 덮친 전염병에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보여준다. 큰 사건이나 드라마가 강하지는 않다. 하지만 전염병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고립되는 과정이 섬칫할 만큼 현실적이다. 코로나 때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연상될 정도로.특히 의사인 베르나르 리유를 보며 코로나 당시 헌신적이었던 의료진들을 떠올렸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은 이기심만 작동시키는 존재들이 아님을 말해준다. 또 고립이 얼마나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지도 묘사되었는데 당시로서는 통신 수단이나 기술이 제한되어 있어서 더 힘들었겠다. 소설을 읽다보니 코로나 시기는 한편으로 버틸만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쉽게 읽히지 않고 문체도 건조하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괜히 카뮈가 칭송 받는 것이 아니었다.열린책들 모노에디션 뒷표지의 이미지가 눈에 띈다. 진짜 1940년대의 방역복 같다. 다시금 느끼지만 책의 본질에 충실한 디자인과 재질의 시리즈다. *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페스트 #알베르카뮈 #열린책들세계문학 #모노에디션시즌5 #열린책들모노에디션
이렇게 건조하고 절제된 사랑 이야기라니. 제목만 숱하게 들어온 고전을 좋은 기회로 읽게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세계 1차 대전의 이탈리아. 자원 입대한 미국인 헨리는 의무대에서 복역 중 스코틀랜드 출신의 간호사 캐서린을 만난다. 그러던 중 헨리는 부상을 당하고 그런 그를 캐서린이 간호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된다. 전쟁의 처참함 속에서 헨리는 임신한 캐서린을 데리고 탈영하여 스위스로 도망치지만, 캐서린은 아이를 낳다 죽고 만다. 신파적 요소가 다분한데도 전혀 그런 분위기가 없는 소설이다. 전쟁이 얼마나 부조리한지가 절로 느껴질 정도였다. 헨리와 캐서린의 러브스토리도 아름답다기 보다는 불안정하고 답답했다. 헤밍웨이의 삶을 평가한 글에서 그가 '마초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보았는데 소설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드러났다. 솔직히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결코 좋아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를 작가의 개성과 세계관이라고 평가한다면 인정해야겠다. 열린책들 세계 문학 모노 에디션. 역시나 책의 본질에 충실하다.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작품을 핵심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무엇보다 가볍다. 값도 싸다.
향후 100년 넘게 이어지는 흡혈귀 장르의 근본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뱀파이어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고전이다.‘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라는 말이 익숙한 이유는 1992년도에 제작된 코폴라 감독의 영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창백했던 ’미나’ 역할의 위노나 라이더와 아직도 애니 레녹스의 음산한 노래가 기억난다. 소설은 편지글와 일기와 같이 등장 인물들이 작성하거나 안내문과 같은 글로 구성되었다. 초반 조너선이 트랜실베니아의 드라큘라 백작을 방문하고 겪은 챕터가 가장 강렬하다. 백작의 성을 방문하는 젊은 영국남자를 이웃들이 다 불쌍히 여기는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성에 거의 감금되다시피 한 조너선이 시간이 지날수록 기이한 일들을 경험하는데 여기서 서스펜스가 치닫는다. 조너선의 일기 뒤에는 영국에서 그를 기다리는 약혼녀 미나와 친구 루시의 이야기다. 이 부분이 장황해서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꾹 참고 넘어갔다. 그런 뒤 되짚어 보니 흡혈귀가 어떻게 공격을 하는지 피해자는 어떻게 점점 변해가는지 등을 매우 자세히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뱀파이어의 흡혈 행위에 성적인 은유를 포함한다는 개념도 소설을 읽으니 이해되었다. 드라큘라의 타겟이 되는 루시와 미나는 모두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또 루시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반 헬싱과 수어드 등이 수혈을 하는데 이를 결혼에 비유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근데 루시에게 수혈한 네 남자들의 혈액형은 확인한 것인가? 당시에는 혈액형 개념이 없었는지 궁금하다.)마늘, 마늘꽃, 십자가, 말뚝박기, 들장미 가시, 성체, 박쥐 등 흡혈귀를 퇴치하는 다양한 장치들도 기억에 남는다. 각각의 작용을 잘 풀어놓은 덕분에 이후 등장한 뱀파이어 장르의 컨텐츠들이 이를 잘 써먹었다. 이 책은 열린책들의 ‘호러 시리즈‘인데 디자인이 독보적이다. 소장 욕구는 물론 독서 욕구를 제대로 증폭시키는 디자인이다. 어떤 방식으로 촬영해도 실물 책의 아름다움을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아쉽게도 책에는 정보가 없었다. 같은 시리즈의 <프랑켄슈타인>과 <포우 단편선>도 함께 소장하면 책장이 빛날 것 같다.*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드라큘라 #브램스토커 #열린책들 #열린책들호러시리즈 #셔평
얼마 전 영화로도 제작된 팔레스타인의 끔찍한 비극이 있다. ‘힌드 라잡’이라는 여섯 살 소녀는 친척들과 자동차로 피난을 가던 중 이스라엘 군의 포격을 받는다. 차량에 함께 탄 친척들은 모두 죽고 어린 힌드만 살아 남았다. 힌드는 죽은 사촌 언니의 휴대폰을 꺼내 적십자에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건다. 장장 3시간이나 통화하며 구조대원들은 소녀를 구하려고 했지만 이스라엘 군은 통행을 허가하지 않았다. 결국 힌트는 300발이 넘는 총상을 입고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책은 팔레스타인의 비극과 관련된 10개의 인물들을 소개한다. 그 중 힌드의 이야기가 가장 처음 나온다. 고작 여섯 살인 아이가 총알을 300발이나 맞고 죽어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저자는 직접 현지에 거주하면서 겪은 다양한 비극을 소개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하루 아침에 쫓겨나 좁고 열악한 난민촌으로 오게 된다. 수십 년이 흐르면서 통제와 억압은 더 심해진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역시 아이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난민인 아이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너무 일찍 경험한다. 국제적 권력의 헤게모니를 이스라엘이 장악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문제가 무시되는 것이 안타깝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비판하거나 공론화하는 것만으로도 위협을 당한다고 한다. 실제 저자도 유럽에서 강연을 할 때 어려움이 있다고. 이스라엘이 자본과 권력, 유대인 피해 서사를 명목으로 이렇게까지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에 분노한다. 표지의 그림을 그린 ‘말락 마타르‘의 사연도 기억에 남는다.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 팔레스타인을 떠날 수 있었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남은 가족들과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타국에서의 궁핍한 삶이 그의 또 다른 아픔이 되고 있다고.헐리우드에서 유대인 자본으로 만들어진 홀로코스트 소재의 영화들로 그 동안 이스라엘은 동정표를 얻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곳에서는 무차별적인 아동 학살이 벌어지고 있고 우리는 인권과 존엄의 이름으로 이를 규탄해야 마땅하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봐야할 책.#세상이잠들때 #프란체스카알바네세 #어크로스 #팔레스타인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