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을유세계문학전집 145
윌리엄 포크너 지음, 윤교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윌리엄 포크너의 대표작이다. 난해하다는 얘기를 들어서 나름의 각오도 했는데, 의외로 몰입하며 읽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는 얼얼한 충격도 느꼈다.

미국 남부의 한 빈곤한 백인 가족 이야기다. 가족의 어머니인 '애디'는 죽어가고 있다. 그의 남편인 '앤스'를 비롯한 다섯 명의 자녀들은 저마다 다른 시선으로 애디의 죽음을 지켜본다.

가족 구성원과 그들의 이웃, 의사 등이 번갈아가면서 화자가 된다. 화자마다 다른 어투, 심리 등을 파악하면서 상황과 전개를 짜맞춰야 하는 구조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갈수록 오히려 흥미로웠다.

결국 애디는 숨을 거두고, 가족은 그가 생전에 남긴 유언대로 '제퍼슨'이라는 도시에 시신을 묻어주기 위해 떠난다. 하지만 강물에 모두 넘어지고 관은 뒤집히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여정이 이어지지만 각자 다른 생각을 갖고 있고 사고가 계속된다. 그리고 시신에서는 끔찍한 냄새가 난다.

죽음의 당사자인 '애디'가 화자인 챕터가 딱 하나있다. 이 지점이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말해주면서 숨이 멎을 정도의 충격을 준 부분이다. 말과 행위에 대한 비유, 애디가 숨겨 온 비밀이 너무나 강렬했다.

결말도 서늘하기 그지없다. 결국 앤스만이 원하는 것을 얻은 셈인데, 삶이라는 것이 이토록 비정하고 잔인한 것인가 싶었다. 죽은 이는 뒷전이고 결국 각자의 욕망과 입장만이 있을 뿐이다. 놀랍도록 매력적인 소설이다.

역자 후기를 보니 번역의 어려움에 대한 내용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총 열 다섯 명이나 되는 화자에 따라 다른 말투와 성격을 담아내야 했으니. 하지만 번역이 어색하다거나 방해된다는 느낌은 없었다. 또 을유세계문학 시리즈답게 가독성이 좋은 편집과 하드커버가 마음에 든다.

- 말은 정말 빠르고 악의 없이 한 줄기 선으로 곧장 하늘로 올라가고, 행위는 끔찍할 정도로 대지를 따라 바닥에 붙어간다. 얼마 안 가 둘은 너무 멀어져 두 다리를 벌려 올라탈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진다. (187 페이지)

#내가죽어누워있을때 #윌리엄포크너 #윤교찬옮김 #을유문화사 #을유세계문학전집 #미국소설 #노벨문학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임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침표가 전혀 없다. 그저 쉼표로 이어지는 문장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있을 뿐이다. 페이지를 펼치고 읽는데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쉽지 않은 독서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세 인물이 각자 화자가 되어 들려주는 세 개의 이야기로 된 소설이다. 마치 각자의 속마음을 여과없이 들려주는 듯한 미묘한 감정까지 나타낸다. 그 마음들을 따라가다 보면 의외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는 소설이다. 그래서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배에 '엘리너'라는 이름을 붙인 '야트게이르'. 젊은 시절 이웃의 소녀 엘리너를 짝사랑했지만 고백조차 못하고 결국 혼자 어부로 살아간다. 그의 어리숙함을 보여주는 검정 실타래와 바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떨어진 단추를 달기위해 실과 바늘을 사려하지만 쉽게 구할 수 없고 어렵게 찾아내지만 바가지를 쓰고 만다. 그것도 두 번이나.

속이 상해있던 차에 그는 우연히 엘리너를 만나고. 남편을 벗어나려는 엘리너는 야트게이르에게 자신을 고향인 '바임'으로 데려달라고 한다.

이 부분이 세 이야기 중 첫번째인데, 가장 좋았다. 바늘과 실이라는 하찮은 물건에 사기를 당한 스스로에게 좌절하다 첫사랑 여자를 운명적으로 만나며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나머지 두 파트는 일종의 에필로그 같은 느낌이었다.

노르웨이 해안 도시의 차가운 풍경이 주는 쓸쓸함도 있었다. 그 속의 고독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흥미로웠던 것은 역자인 손화수 님의 이력이다. 영어와 피아노를 전공하고 어떻게 노르웨이 문학 번역가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욘 포세를 더 알고 싶어졌다.


#바임 #욘포세 #손화수옮김 #문학동네 #해문클럽 #노벨문학상 #노르웨이 #소설 #세계문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38 타이완 여행기 -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
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생 영화 중 하나인 허우샤오시엔의 영화 <비정성시>를 보고나서 든 의문이 있다. 일본의 패망으로 대만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제 식민지배가 끝난다. 하지만 대만사람들이 본국으로 떠나는 일본인들을 그리워하거나 아쉬워하는데, 이런 정서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후 대만 관련 책도 보고 대만 사람들과 같이 일할 기회도 생겨서 의문은 다소 풀리게 되었다. 이미 일제 식민지 전에 중국 본토로부터 더 가혹한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어서 대만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일제에 대한 저항감이 덜하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1938 타이완 여행기>와 같은 소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소설가인 일본 여성 아오야마는 타이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는 조건으로 일년간 일본을 떠나게 된다. 워낙 호기심이 많고 명랑한 그는 특히 맛있는 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다. 자신의 통역을 담당하며 대만 미식의 세계로 인도하는 샤오첸과의 우정과 밀당 이야기도 있다.

이 작품은 일종의 트릭이 있는데 저자인 양솽쯔가 일본 여행 중 아오야마의 원고를 발견하여 번역했다는 설정이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온전히 저자가 창작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럴싸하게 느껴지는 것은 정말 1930년대 일본 여성의 시선으로 쓰여진 글 같기 때문이다. 저자가 실제로 식민시대 일본에 대한 자료를 많이 수집하고 연구한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소설의 킥은 단연 음식이다. 묘사를 무척 잘 해서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음식 중 '동과차'는 나도 여름에 종종 캔음료로 된 것을 사먹는데 그래서인지 소설에서 묘사된 내용이 더 와닿았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정서가 있다. 아오야마와 샤오첸을 퀴어로도 해석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930년대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소설이다. 대만 작품 중 최초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고.

번역한 김이삭 작가님의 후기에 소설을 읽고 대만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렇다면 제대로 성공한 것 같다. 초반을 읽으면서 바로 타이중 항공권 가격을 검색했으니까.



#1938타이완여행기 #대만소설 #양솽쯔 #김이삭 #여성서사 #역사소설 #전미도서상 #책추천 #서평 #마티스블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언 매큐언의 <레슨>은 '롤런드 베인스'라는 남자의 칠십 평생을 통해 인생의 근원적인 물음에 차분히 답하는 소설이다.

<레슨>은 거대한 역사 속의 한낱 비루한 개인일 뿐인 인물들의 삶을 통해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자연스럽게 논한다. 인생의 순간마다 치고 들어오는 변수와 위기들. 그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해야했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며 살아남은 대부분의 우리들을 위로하는 작품이다.

작가의 명성답게 깊이있으면서 가슴에 박히는 문장이 돋보였다. 뿐만 아니라 700 페이지의 분량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스토리 구성을 갖추었다. 짜임새가 좋고 에피소드들이 완결성을 갖춘 것도 마음에 든다. 체르노빌 폭발, 쿠바 미사일, 베를린 장벽 붕괴 그리고 코로나19까지 작가가 직접 경험한 역사의 흐름도 나온다.

7개월 짜리 아들을 남기고 갑자기 사라진 아내 앨리사를 찾는 롤런드의 이야기부터 어린 시절,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한 피아노 선생 미리엄과의 이야기가 흡인력 있다. 묘사의 디테일과 전개, 그 밖의 캐릭터들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롤런드라는 인물이 느끼는 상실감과 복잡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앨리사'라는 인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얻게되는 성공과 명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다른 것은 버려야 하는 것이 삶의 규칙일지도 모르겠다.

롤런드와 미리엄이 포핸즈로 치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판타지가 나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슈베르트 판타지가 주는 묘한 분위기가 떠올랐다.

좋은 문장이 너무나 많다. 인덱스로 표시한 곳이 너무 많아 옮길 엄두가 안날 정도다.

이언 매큐언에게 빠져들었다.






#레슨 #이언매큐언 #문학동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선 책의 디자인이 미쳤다. 양장본으로 된 표지에 박힌 금빛 글씨부터 고급스럽다. 내지의 디자인이나 편집도 나무랄데 없는데 책을 읽어가며 디자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암전들>은 실제로 1941년 발행된 연구서 '성적 변종들: 동성애 패턴 연구'를 토대로 쓰인 소설이다. 불과 백년도 채 안된 과거에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인식했고 퀴어 연구를 병리학적 자료로 폄하했다. 책 중간에 등장하는 보고서 이미지 속의 텍스트는 군데군데 삭제되어 있다. 마치 검열당한 신문 기사처럼.

소설의 화자는 '네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게이 청년으로, 그가 '팰리스'라는 시설에서 임종을 앞둔 '후안 게이'와 나누는 긴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각자의 퀴어적 경험을 밝히기도 하고 후안이 겪은 옛 퀴어 세대 이야기를 증언하기도 한다.

후안이 증언하는 인물 중 '잰 게이'가 있다. 그는 실존 인물로 레즈비언인 자신의 정체성을 토대로 다양한 연구와 활동을 한 업적을 남겼다. 그 중 하나가 후안이 네네에게 건넨 '성적 변종들'인데 이는 당대의 300여 명의 동성애자들을 인터뷰한 연구 보고서다. 하지만 이 급진적인 자료는 왜곡되고 폄하되었고 후안은 이를 네네에게 증언한다.

책 속의 텍스트 뿐만 아니라 수록된 이미지와 형식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일관된 스토리나 익숙한 구성이 없어서 처음에는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다. 또한 퀴어와 관련된 역사, 문화적 코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어렵게 느낀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네네와 후안의 대화가 이어지고 책의 끝을 향할수록 강렬하게 다가오는 감정들이 있었다. 결국 <암전들>은 연대와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암전들 #저스틴토레스 #열린책들 #미국소설 #퀴어문학 #퀴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