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 예술의 탄생 - 인구 소멸의 섬에서 피어난 현대미술의 도전과 기록
아키모토 유지 지음, 지소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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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호박>이 수평선을 배경으로 전시된 바닷가 이미지를 기억한다. 무척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지만 그 장소를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그곳이 바로 ‘나오시마’였다.

나오시마는 일본 오카야마현과 가가와현 사이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20세기 초에는 구리 제련 산업으로 꽤 번영하던 곳이었지만 산업의 쇠퇴와 함께 인구 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1990년대에 들어 나오시마는 본격적인 재생 사업을 맞이한다.

저자는 도쿄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인물로 1991년부터 나오시마 재생 사업에 참여했다. 나오시마는 ‘베네세’라는 기업과 ‘후쿠다케 재단’의 주도로 재생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예술작품 전시와 숙박업이 토대였다.

책은 나오시마의 발전과정을 담은 동시에 저자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경영이나 사업과는 거리가 멀던 예술대학 출신의 저자가 현대미술 전시 기획을 통해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가 기획한 ’아웃 오브 바운즈’, 낡은 민가를 예술 작품으로 개조하는 ‘집 프로젝트‘ , 현대미술이 아닌 인상파 화가 모네의 <수련>을 전시하기 위한 ’지추미술관’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가 지닌 탁월한 기획력과 판단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단순히 개인이 이룬 업적이 아니라 경영자, 섬 주민들, 그리고 작업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협업이 이룬 성과임을 알 수 있었다. 성공하는 기획이 어떤 가치관과 상호작용을 거쳐야하는지 알게 해준다.

읽으면서 언급되는 작품이나 건축 등이 궁금해져서 나오시마에 가보고 싶은 욕구가 점점 커진다. 책 말미에 나오는 특별 기고문이 저자 안도 다다오의 건축들을 실제로 방문해 보고 싶다. 우리나라 작가인 이우환 미술관도 있다고 한다.

나오시마 여행 전이나 여행 동안에 읽기 좋을 듯 하다. 문장이나 톤이 어렵지 않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비슷하게 지방 소멸이나 재생 산업을 필요성을 겪고 있는 우리 나라의 현실도 대입해 보게 된다. 유익하고 흥미로운 도전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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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시마예술의탄생 #아키모토유지 #알에이치코리아 #현대미술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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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장의 고백
조승리 지음 / 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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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의 작가 조승리의 소설. 이제부터 조승리는 더이상 나에게 에세이 작가가 아니다. 이렇게 놀랍고 독창적인 스토리텔러였다니. 띠지에 적힌 장강명 작가의 표현처럼 '머리에 불도저가 쳐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신도시에 소위 '알박기'를 하고 있는 건물이 있다. 과거에는 모텔이었지만 지금은 흉물인 '용궁장'이다.

어느밤, 용궁장에는 대형 화재가 발생하고 그 안에 거주하고 있던 이들이 모두 사망했다. 하지만 살아남은 모두는 행복해졌다. 대체 왜일까?

다섯 개의 챕터로 구분되어 있고 각 챕터마다 화자가 다르다.

70대 맹인 여성이 화자인 첫번째 챕터부터 감탄이 나왔다. 시각장애인인 화자는 안마사를 하며 혼자 살아가지만 90대 치매 노모의 부양을 짊어지고 있다. 이기적인 형제들은 장애인인 그에게 노모를 떠맡겼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명의로 된 집까지 빼앗으려 한다. 더이상 버틸 수 없던 안마사는 교회의 도움을 받아 노모를 용궁장에 데려다 놓고 사라진다.

화자가 바뀔수록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는 구조의 소설인데, 하나같이 인간 내면의 추악함과 저열한 욕망을 나타내고 있다. 다소 극단적인 설정이더라도 전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파헤쳐 보면 누구에게라도 있을 법한 추악함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장애인, 노인 부양, 대형 교회의 위선, 재개발 산업의 추악함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순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빨려들도록 몰입했다.

소설 속에 시각적인 묘사를 나타낸 문장을 읽을 때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조승리 작가가 중도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아마도 기억 속의 시각적 장면을 묘사했을 글이라 더 강렬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또 누구보다 인간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파악하려 했을 작가의 노고가 숨어 있음을 느꼈다.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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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장의고백 #조승리 #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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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의 진화 - 진화가 알려 주는 암 극복의 새로운 아이디어
아테나 액티피스 지음, 김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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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라는 병명이 주는 무게감은 엄청나다. 비록 의학이 발달하면서 암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졌더라도 암세포가 파괴력은 치명적이다.

몇 년전, 희귀암 판정을 받았다. 조기 발견했기 때문에 치료받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대체 왜, 하필이면 내 몸에 암세포가 자라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유전적 요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나 면역 저하, 운동부족, 잘못된 식습관 등을 나열하면서 괴로워했는데 결국 '운이 나빴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름도 근사한 '아테나 액티피스'는 그리스 출신의 암 생물학자다. 그는 암세포를 모든 다세포 생물이 지닌 진화의 과정으로 규정한다. 결국 다세포 생물인 나의 몸도 암세포의 진화를 겪은 것이다.

- 암이 우리 몸이라는 생태계 속에서 빠르게 진화하는,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암은 모든 진화 체계와 생태계가 따르고 있는 규칙을 똑같이 따르고 있다. (18 페이지)

암세포를 '공짜로 얹혀 사는 룸메이트' 같은 얌체로 비유한 것이 재미있다. 이렇게 되면 암을 반드시 파괴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더 효과적으로 공생하며 관리하기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새로운 관점은 암 치료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기도 한다. 철저하게 암세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조절을 통해 완화시킨다는 개념이다. 계속해서 진화하는 암을 예측하고 전략적으로 계획하는 것의 중요성을 논하기도 했다.

내용 중 '세포가 많을수록 암이 많다'는 부분에서 같은 종 내에서 몸집이 큰 개체일수록 암에 걸릴 위험이 더 크다는 내용이 있다. 즉 대형 견종이 소형 견종보다, 키가 큰 사람은 키가 작은 사람보다 암에 걸릴 위험이 더 크다고. (키가 크다고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많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생물학적, 과학적 지식이 부족해서 일부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암이라는 질병이 개인이나 환경의 잘못도 있지만 더 거시적인 진화의 관점에서 살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암세포의진화 #아테나액티피스 #열린책들 #진화생물학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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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기쁨에 대하여
한은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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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을 좋아한다. 직접 요리를 한 기간도 적지 않다보니 맛에 대한 주관도 뚜렷하고 이렇게 정리된 음식에 대한 생각을 남에게 나누는 것도 즐긴다. 내가 딱 여기까지였다면, 소설가는 이를 기막힌 문장으로 표현했다.

한은형 작가님은 전작 <밤은 부드러워, 마셔>에서 이미 그 진가를 알아봤다. 술에 대한 그의 글을 읽으며 냉장고에 묵혀둔 캔맥주라도 꺼내게 만드는 문장들. 그런데 이번에는 음식 전반을 다룬 에세이다.

책은 네 가지 챕터로 구분되어 있다. 제철음식(시즌 푸드), 소울푸드, 슬로푸드 그리고 푸드 스토리.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마침 지금이 봄나물이 한창이라 '봄나물의 공격' 편이 기억에 남는다.

- 봄나물을 외면하고 싶지만 잘 안 된다. 나는 먹는 걸 좋아하고, 야채를 좋아하고, 야채 중에서도 향이 있는 걸 좋아하고, 새봄에 난 거라면 거의 미치니까. (20 페이지)

'나의 김밥론'에 소개된 '씀바귀 김밥'은 무척 새로웠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김밥 레시피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나도 생각해 보았다. (내 경우는 '묵은지 유부 김밥'이다.)

읽어 내려가다 보니 작가님의 음식 취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튀김이나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다거나 낯선 음식에 대한 막연한 기피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도전을 통해 자신의 음식 취향을 넓혀가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추어탕' 편이 대표적이다.) 주위에 보면 의외로 낯선 음식에 대한 도전을 꺼리는 이들이 많은데 작가님의 이런 도전 덕분에 독자는 즐겁다.

'감자칩 연구원이라면' 편을 읽고는 바로 감자칩을 사왔다. 글만으로 음식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가.

간략한 레시피도 있고 삽화도 무척 귀엽다. 즐겁고 훈훈한 에세이다.


#먹는기쁨에대하여 #한은형 #인플루엔셜 #에세이 #음식에세이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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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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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라는 나라는 생소하다. 고작 연상되는 것은 유산균 발효유 정도. 그러니 불가리아의 대표적인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라는 이름도 그만큼 낯설었다. 그는 불가리아의 대표적인 작가다.

형식과 구성이 독특하다. 소설 속 화자는 타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스 신화의 ’미노타우르스‘, 초파리 등의 기억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에는 서사 중심이 아닌 소설이라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불가리아의 현대사 속 인물들로 이해하니 흥미로웠다.

몇년 전, 내 또래의 체코 사람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린시절 사회주의가 한순간에 붕괴된 경험이 꽤 강렬하게 남아있다고 했다. 그 시절의 혼란이 준 미묘한 상처와 갈등, 심지어는 향수도 있다고 했다. 이 소설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불가리아도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개인들은 혼란과 슬픔을 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차 대전 때 참전한 할아버지가 헝가리의 한 시골 과부집에 숨어 살다 서로 사랑하게 된 이야기가 기억난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사이지만 둘은 사랑하게 되고 과부는 남자를 너무 사랑해서 전쟁이 끝난 것도 숨긴채 그를 붙잡는다. 하지만 결국 고향의 아내와 아들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이렇듯 소설은 슬픔을 간직한 이들의 기억을 풀어내는 동시에 다독이고 있다. 신화 속 괴물 미노타우르스나, 타임캡슐, 물리학, 그림이나 소설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이를 전달한다. (소설 ‘대부’까지 나온다.) 마치 설치 미술이나 실험 예술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작가의 표현력과 감성, 그리고 풍부한 지식이 돋보이는 소설.

#슬픔의물리학 #게오르기고스포디노프 #문학동네 #불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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