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요, 투우사여>를 쓴 페드로 레메벨은 칠레의 작가이자 예술가다. 동성애자이기도 했던 그는 평생 성소수자와 빈민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의 유일한 장편 소설이다.‘미친X‘으로 불리는 ‘로카‘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중년의 성소수자다. 천에 자수를 놓아 부자들에게 판매하고 집을 화려하게 꾸미는 재주가 있다. 풍부한 감성과 낭만으로 넘치는 그는 20대의 젊은 대학생 ‘카를로스‘에게 반하고 만다.로카는 카를로스의 부탁으로 뭔지 모를 박스와 물품을 집에 대신 보관해 준다. 이를 계기로 카를로스는 로카의 집에 친구들을 데려와 모임을 갖기도 하는데 알고보니 카를로스는 반체제 단체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정치나 사상같은 것은 모르는 로카. 그는 오직 카를로스를 위해 아무리 어려운 부탁이라도 들어준다. 실제 칠레를 수십년 간 독재하며 국민들을 탄압했던 ‘피노체트‘와 그의 아내 ‘루시‘도 등장한다. 로카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독재자 부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번갈아 이어진다. 소수자인 로카의 진심과 독재자 부부의 위선이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피노체트 정권에서 탄압 받았을 작가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독재자를 조롱했다. 피노체트와 루시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천박하며 동시에 잔악무도하다. 피노체트가 예술인들을 언급하며 비꼬는 내용은 특히 뼈가 있다. 권력으로 예술을 탄압힐 수 있다는 독재자의 오만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로카가 가족처럼 여기는 성소수자 친구들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들의 역사가 짧게 나오는데, 싸웠다가도 화해하는 과정에서 치는 대사들이 찰지다. 서로 연대하는 모습도 훈훈했다.소설의 구성이나 표현이 돋보였다. 작품의 소재가 주는 무거움 속에 로카라는 캐릭터가 주는 유머가 좋았다. 번역문 특유의 느낌도 없이 매끄러웠고 주석도 칠레 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몇년 전, 영화 <나의 사랑스러운 혁명가>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고. 재미있게 읽었다.*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두려워요투우사여 #페드로레메벨 #을유출판사 #서평 #책추천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자란 저자는 오랜 기간 시인을 연구하고 시인의 자취를 찾아다녔다. 이 책은 저자가 거의 평생에 걸쳐 시인 윤동주를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덕질‘한 결과물이다.윤동주의 생애, 자필 원고의 분석, 시어에 대한 해석, 역사, 추모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관점에서 시인을 조명했다. 윤동주의 대표적인 시들을 언급하며 하나 하나 풀어낸다. 한때 좋아했던 시, ‘자화상’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새삼스럽게 정말 좋다.전에 영화 <동주>를 보고 배우들이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것에 놀랐다. 막연하게 윤동주가 서울에서 활동하지 않았을까 생각했기 때문인데(윤동주 문학관도 청운동에 있으니까) 책을 통해 그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저자는 그를 ‘경계인’으로 규정한다. 시인의 가족은 일찌감치 만주로 이주했고 윤동주는 엄밀히 말해 중국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와 가족은 철저히 우리말을 모어로 사용했지만 당시 조선 본토와 더불어 만주도 일제 치하가 되어 일본어를 사용해야만 했다. 저자는 이런 점을 짚어 윤동주의 시가 더 순수한 우리말 시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윤동주의 시는 단순히 쉬운 우리말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모어를 지키려한 시인의 노력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이라 무척 흥미로웠다. 책은 딱딱한 학술적 문체가 아니라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윤동주와 얽힌 저자 개인의 경험과 시인이 남긴 자료를 연구자의 관점에서 친절히 해석했다. 가장 마지막 장에서는 윤동주를 기리는 이들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소개된 인물들이 모두 대단하다. 그중 윤동주의 교토 유학 시절을 소재로 만들었다는 영화 <타카하라>가 궁금하다. 젊은 시인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끼는 일본인들, 그의 시를 읽고 번역하는 사람들,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 윤동주의 짧은 생애가 남긴 시들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책의 구성과 내용이 무척 좋다. 시인 윤동주를 이보다 더 잘 알릴 수 있을까. 유익하고 알찬 독서였다.*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윤동주의오래된노트 #김신정 #윤동주 #사계절 #서평
놀랍다. 대만 사람이 이태원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안될 법은 없지만 신기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저자는 이태원에서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는 한국인 친구와 집을 쉐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방이 하나 남게 되자 두 사람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게 되었는데 그게 2호, 3호점으로 늘어났고 그렇게 7년간 운영하고 있다.게스트하우스가 위치한 곳이 이태원이다 보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투숙한다. 또 이태원은 구옥이 밀집한 서민 동네라, 원주민인 이웃들과 소통하며 사는 일상도 겪는다. 초반에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게 된 계기와 이웃들 이야기로 훈훈하게 시작된다.게스트하우스 운영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각 나라별로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진상 투숙객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기만 하다. 기물 파손에 투숙비를 떼이기도 하고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무례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경험을 유쾌하고 훈훈하게 마무리하는 저자의 마음이 따뜻하다.이태원이라는 동네가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글 곳곳에 묻어난다.(해방촌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서 잘 안다.) 또 저자는 정말 넉살이 끝내준다. 외국 생활을 이렇게 잘 해도 되나 궁금해지면서 부러운 마음도 든다. 시종일관 유쾌하면서 뭉클하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이런 재미난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언젠가 썸머 님의 게스트하우스에 한 번 묵어보고 싶다.*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썸머의게스트하우스일기 #썸머 #인플루엔셜 #이태원 #에세이
작가란 뛰어난 관찰자이면서 누구보다 깊은 공감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박민경 작가의 소설집 <랠리>에 실린 아홉 편의 삶들을 읽는 동안 다시금 느꼈다. 소설의 화자들은 저마다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절대 놓지 않으려는 생의 의지가 엿보이는 인물이다. 그래서 모두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로 다가왔다. 덩치 큰 여성이 주인공인 '즐거운 나라', 루게릭 병으로 세상을 떠난 연인의 자취를 찾는 여성을 다룬 '살아 있는 당신의 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살아 있는 당신의 밤'은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기도 하다.)'사실주의'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지금, 이 시점에 우리들이 겪는 문제들을 고루 다루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그런 의미에서 노년 여성 '애영'의 일상을 그린 '수색기'도 인상적이었다. 애영은 커피숍의 키오스크 조작에는 서툴지만 대신 뜨개 기술을 친절히 가르쳐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노 시니어 존'이라는 무례함에 대하는 꿋꿋함으로 오히려 위로를 주는 캐릭터다.위트도 있고 예리한 시선도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그린 작품들이라 좋았다.#랠리 #박민경소설집 #문학동네 #소설추천 #서평 #단편소설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책추천
이용재 작가님의 팬이다. 오랜기간 트위터에서 팔로우 해왔고 <한식의 품격>과 <냉면의 품격> 등 그의 저서를 재미있게 읽었다. 언제부터인가 작가님이 뜨개를 시작하셨는데 나날이 실력이 일취월장하더라. 나 또한 뜨개를 좋아하는지라 흥미롭게 그의 뜨개일지도 염탐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연희동의 뜨개 카페에서 작가님을 본 적도 있다. 나도 그때 카페에서 뜨개를 하고 있었는데 소스라치게 놀랐다.)그런데 음식과 영화라니. 이거 반칙이지 않나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 대상으로 풀어낸 에세이다. 조선일보에 연재된 글을 엮은데에 작가님의 추가적인 식문화에 대한 소개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졌다. 총 네 개의 챕터로 구분된 영화와 음식 이야기는 그저 황홀하다. 비록 스스로 ‘시네필이 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수년 간 다량의 영화를 보고 얻어진 감상의 깊이에 음식에 대한 해박함이 더해졌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재미있는 글이 많지만 ’마운틴 듀’를 논한 영화 <미나리>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아이 엠 러브>, 깻잎 논쟁을 다룬 <모가디슈>가 기억에 남는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보고는 영화 제목이기도 한 토마토 구이 요리가 궁금했는데, 요리법이 자세히 나와있어 한 번 시도해 볼까도 싶다.책의 내용 중 보지 않은 영화가 등장하면 꼭 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미국의 대표적인 가공식품인 ‘트윙키’가 나오는 <좀비랜드>가 그렇다. 트윙키에 대한 다양한 썰들이 재미있었다. 작가님의 깊이와 그것을 오랜시간 꾸준히 기록한 성실함도 돋보였던 책. 재미있게 읽었다.*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필름위의만찬 #이용재 #에세이 #푸르숲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