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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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보면 작가는 어린 시절 친구와 함께 시내의 총독부 부설 어린이 도서관에 가서 함께 일본어로 된 그림책을 보았다는 내용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도 어린이는 존재했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책의 제목을 보니 그 기억이 떠올라서 큰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많은 책이다. 1940년대의 일제는 '내선일체'의 명목으로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조선어 사용을 금지했다. 총독부 주최로 매해 열린 어린이 글짓기 행사도 그 일환이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부터 흥미롭다. 일본에서 영화와 예술학을 공부한 저자는 우연히 1940년대 제작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아동 영화 <수업료>를 보게된다. 영화의 원작은 총독부 주최의 글짓기에서 입상한 작문이었고 이를 계기로 일본에 남아있는 자료들을 분석하게 된 것이다.

책의 내용도 흥미롭지만 구성이며 분석이 탁월하다. 수록된 글들이 쓰여진 1940년 이전까지의 역사와 사회 변화가 쉽지만 핵심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모두 일본어로 쓰여졌을 글들. 글쓴 어린이의 이름으로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데 소속이나 내용으로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점들이 많았다. 1940년대에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70만 명이나 되었다는데 경성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 어린이들도 많았고 글에 등장하는 지명 등에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특히 일본인 가족이 고용한 가정부를 '오모니'로, 젊은 하녀를 '키치베(계집애)'로 부르는 내용이 묘했다. 당연히 그랬을 테지만 해방 이후 이런 흔적들은 애써 외면했고 제거했으니 직접 텍스트로 읽는 감정이 남달랐다. 서양 문학에 등장하는 제국주의 묘사에서는 느끼지 못한 감정이다.

일본 아이들과 조선 아이들의 글을 비교 분석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결국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일 수밖에 없는 관계가 아이들의 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지막 전쟁 챕터에서는 일본, 조선 구분없이 가슴 아팠다. '황국신민맹세' 부분에서는 자연스럽게 '국민교육헌장'이 떠올랐는데 일제 시스템에서 따온 것임이 너무 명백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징병과 죽음, 천황에 대한 충성 등을 글로 써야했던 시대. 이 때를 살아낸 이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의 맺음말도 좋았다. 저자의 통찰과 진심을 읽었다.

- 식민지 교육 제도 바깥에 있던 아이들은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아이들이 남기지 못한 기억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일본어도 조선어도 쓸 줄 모르던 아이들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중략) 아이들 본인을 포함해 그 누구도 기록하지 못했던 이 아이들의 삶은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가 다루지 못했던, 혹은 의도적으로 회피했던 현실이었다. (314 페이지)

#제국의어린이들 #이영은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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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려줘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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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려줘요>에는 그동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이 총집합했다. 전작들을 읽어보지 못해서 조금은 걱정했지만 별문제 없이 읽었다.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미국 메인주의 크로스비 타운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편안한 문장들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공감되는 상황이 많다.

작품 속에는 여러 대화가 등장한다. 올리브와 루시의 대화는 기록되지 않은 삶의 의미에 생각하게 하고 밥은 대화를 통해 매트를 구하고 변화시킨다.

매주 산책하며 진심을 나누는 밥과 루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밥은 아내보다도 말이 잘 통하는 루시를 어느덧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두 사람의 결말을 읽으면서 이들의 사랑이야 말로 성숙된 어른들의 사랑이 아닌가도 싶었다.

주된 캐릭터들이 60대라서 - 올리브의 경우는 90대, 이제는 더이상 젊지 않은 인생의 고민과 감성이 있어서 좋았다. 행복은 돈이나 명예보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가 곁에 있는 것이다.

올리브, 루시, 밥의 인생을 더 알고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데, 다행이다. 아직 안 읽은 스트라우트의 책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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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을유사상고전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사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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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책. 수많은 이들이 인용하고 있는 현대인의 대표적인 아포리즘 출처 책. 하지만 역시 만만치 않았다.

초반에는 설화나 우화같은 문장이라 쉽게 읽힐 줄 알았는데 내용이 갈수록 심오해졌다. 그 유명한 '신은 죽었다'와 '위버멘쉬(초인)'가 비교적 초반부터 나온 것은 다행이었다.

서구사회의 근간을 이루던 기독교적 가치와 사상을 뒤집고 인간 중심의 가치를 말하는 책이다. 인간이 스스로 질문하게 하고 창조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가득하다. 그래서 자기계발서 파트에서 빠지지 않는 듯하다.

동시에 묘한 책이다. 단순한 아포리즘으로 치부하기에는 이면에 담긴 내용의 깊이가 끝도 없이 내려간다. 한 번의 독서만으로는 다가갈 수 없다. 조만간 다시 읽을 생각이다.

을유사상고전 시리즈인 이 책은 판형이 가장 마음에 든다. 한 손에 편안하게 잡히고 비닐 코팅하지 않은 표지의 느낌이 좋다. 원전의 문체와 운율감을 살린 완역본이라는데 다른 번역본과 차이가 나는지 궁금하다.

읽는 동안 같은 제목의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교향곡도 떠올랐다. 날 것의 느낌을 지녔으면서 전복적이고 웅장한 오프닝이 이 책을 나타내기에 딱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재미있는 발견이다.


#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 #니체 #홍사현옮김 #을유문화사 #을유사상고전 #위버멘쉬 #고전 #철학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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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오션 브엉 지음, 김목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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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브엉. 요즘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라고 들었다. 베트남계 미국인이자, 게이인 그가 쓴 작품에서는 남다른 감성과 문학적 표현이 돋보였다.

작가가 궁금해서 유튜브를 찾아봤다. 작년에 미국의 장수 토크쇼인 '오프라 윈프리 쇼 - 오프라의 북클럽'에 출연한 영상을 봤다. 브엉은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일하던 네일숍에서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듣던 목소리의 주인공과 직접 만나게 된 것에 감격했다. 또 오프라가 매달 책을 소개하는 방송이 자신과 여성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말하며 울먹였다. 작가가 매우 감성적이고 섬세한 사람 같았다. 이 소설도 그랬다.

소설의 화자는 '리틀독'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베트남계 미국인이자 게이다. 그는 영어를 읽을 줄 모르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어릴 적 기억, 베트남으로부터 이어진 할머니와 엄마의 삶, 미국에서의 차별, 성적 정체성과 연애 등 화자가 살아 온 삶의 궤적을 적은 편지글이다.

사건이 중심이 되는 내러티브가 강한 소설은 아니다. 그런데 문장이 너무도 감성적인 시와 같아서 눈이 자꾸만 활자에 머물고 싶게 한다. (그래서 완독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다.) 작품은 베트남 전쟁, 이민자, 퀴어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결국 3대에 걸친 한 가족의 은근하지만 아름다운 생존기로 읽었다.

작가의 후기글도 기억에 남는다.
'내 앞에 있었던 모든 아시아계 미국 작가에게, 감사합니다.'(328 페이지)
언급한 작가들 중 차학경과 김혜순이 있던 것도 괜히 반가웠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김목인 님이 번역한 책이라 더 반가웠고. 오션 브엉의 시집과 최신작인 <기쁨의 황제>도 살펴봐야겠다.



#지상에서우리는잠시매혹적이다 #오션브엉 #인플루엔셜 #김목인옮김 #미국소설 #퀴어 #문학 #이민자

엄마가 작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물으셨는데, 제가 어수선한 것만 늘어놓고 있다는 것 알아요. 하지만 어수선한 것 맞아요, 엄마. 저는 이걸 지어내고 있는 게 아니에요. 저는 내려놓았어요. 그게 바로 글쓰기예요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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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 2026 - 소음 속에서 정보를 걸러 내는 해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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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잠시 고양시에서 살다가 다시 서울로 온지 20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삶을 서울에서만 이어갈 필요는 없다고 느낀다. 교통과 문화시설이 잘 되어있고 기왕이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이 지은 이 책은 내년 우리 나라의 도시 지형을 분석했다. 올해의 정권 교체와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 국제정세 등을 토대로 분석한 내용이 담겨있다.

지방소멸 현상이 조금이라도 해소될 수 있을지, 3대 메가시티와 6대 소권은 어떻게 발전할지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다.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구체적인 자료를 토대로 분석하고 전망하는 책이었다.

정치권에서 선거를 위해 남발하는 공약의 허상과 수도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지방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는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부동산과 관련 정보에 관심이 많다면 흥미롭게 읽을 책이다. 앞으로 매년 같은 주제로 다음해의 도시를 전망하는 시리즈로 출간될 듯 하다.

#한국도시2026 #김시덕 #열린책들 #도시개발 #부동산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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