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계 1 - 한양의 사람들
최성현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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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말기. 신분제는 흔들리고 일부 양반은 그저 허울 뿐인 이름이 된다. 한양의 뒷골목을 중심으로 상권을 장악한 이들이 진정한 실세가 된 세상. 이 소설은 격변의 18세기 말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등장인물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다보니 초반부터 이들을 설명하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몰락한 양반 이륜은 아내가 갓난 아들 강하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자 싸전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인왕산패'의 실세 하우도의 밑으로 들어간다. 비록 몰락했지만 양반으로서의 선비정신이나 절개, 정도를 지키는 이륜. 그의 아들 강하는 무관으로 입신하려 하지만 아비의 행적 때문에 좌절된다.

그 와중에 하우도의 아들인 상익은 규장각 벼슬아치의 몸종을 죽이는 사고를 치고. 이륜은 이를 수습하기 위해 아들 강하를 상익으로 위장시켜 송도로 보낸다.

캐릭터들이 많은 만큼 줄거리의 요약이 쉽지 않지만 크게 보면 '인왕산패'라는 상권 조직을 둘러싼 이야기다. 헐리우드 영화에서의 마피아 조직처럼 갈등, 배신, 복수, 여자 등이 등장한다. 장르적인 재미가 있다.

조직의 보스 하우도, 보스의 쓰레기 아들 하상익, 충직한 부하 이륜과 그의 아들 이강하. 이 정도의 캐릭터만 봤을 때 영화 <로드 투 퍼디션>과 같은 스토리(보스가 자신의 혈육을 위해 충직한 부하를 버리는)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흘러가는 스토리였다면 김 샜을 것이다.

뜻밖의 대결 구도가 있어 흥미로웠는데 하우도 그의 부인 하명혜가 그랬다. 특히 하명혜의 서사가 특이하고 행동은 패기있더라. 앞으로의 스토리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된다.

영화 감독이 쓴 소설이라 그런지 문장들이 이미지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현대 구어체 대사들은 좀 튀긴했으나 잘 맞았다. 조선 시대의 상업 용어들이나 시스템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었다.

책 표지의 제목 폰트 '묵계'가 무척 시원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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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 - 내 발목을 잡는 가족에게서 벗어나 죄책감과 수치심에 맞서는 심리학
셰리 캠벨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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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운 가족과 단절할 용기를 주고 상처받은 나를 위로하는 책.

이 책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없을 내용이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를 끊어내고 싶다고 느낀다면 무척 도움이 될 책이다.

불행히도 나는 후자에 속하는 부류다. 지금 이 시점에도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된 가족 구성원이 있다. 부끄러운 사실인데 이 책에 따르면 우리 중 40프로는 가족과 한 번은 멀어진다고 한다. 그만큼 보편적인 고민거리라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말부터 강렬하다.

"그래도 된다."

'가족이니까 참아야지,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니까, 괜찮아질거니까' 따위로 기대할 수 없는 해로운 가족 관계라면 과감히 끊어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어떤 방식으로 끊어내고 어떤 경계선까지 범위를 허용할지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명료하고 구체적이다. 뜬구름 잡거나 모호한 도덕적 교훈을 주려는 의도도 전혀 없다.

이렇게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이유는 저자인 셰리 캠벨의 경험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공인 심리학자이자 가족 문제 전문가인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으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평생을 고통받다 45세가 되어서야 가족과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족과 관계를 끊는 방법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자신을 돌보고 치유하는 방법도 구체적이다. 관계 단절 후 명절을 맞이하거나, 자녀에게 선물을 보내는 시도를 당할 때, 가족의 부고를 들을 때 등 사례들이 제시되어 있어 도움이 될 듯 하다.

내용 중간 중간 '깨달음의 순간'과 '잠시 생각해볼 것'이라는 파트가 인상적이었다. 핵심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문장을 한 번 더 의미있게 기억하게 해준다.

읽기에 전혀 어렵지 않고 공감되는 문장이 많아서 단숨에 읽었다. 결국 핵심은 '나 자신의 행복'이라는 것에 크게 공감한다.

- 해로운 가족과는 관계를 끊어도 된다.
여러분의 행복에 계속해서 해가 되는 사람은 그게 누구든 관계를 정리해도 된다.
화가 나면 화내도 된다. 자신을 챙기고 필요한 것들을 얻어라. 상대가 용서해달라고 해도 순진하게 다 받아주지 않아도 된다.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돌봐도 된다.나를 지키려면 그런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고 일일이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1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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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커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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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을 통해 기억 속의 상처를 회복하는 이야기.

서른 두살 '나우'는 여자친구 '하제'에게 곧 프로포즈할 예정이다. 하지만 원래 하제는 나우의 가장 친했던 '이내'의 여자친구였다. 열 다섯에 만나 5년 간 사귀던 이내와 하제. 하지만 고3때 이내가 세상을 떠나고 몇 년 후 나우는 하제와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우는 마음의 부담과 짐을 안고 있는데 우연히 들어간 바에서 칵테일은 마신 뒤 열 다섯의 그 때로 돌아가게 된다. 이내의 죽음을 막고 자신과 하제의 관계를 지키려는 나우의 노력이 펼쳐진다.

설정이 매력적이다. 그리고 세 인물의 결정적인 시간, 열 다섯, 열아홉, 스무 살, 그리고 현재인 서른 둘을 오고 가며 펼쳐지는 구성도 독특하다. 결론의 반전과 따스함도 좋았다.

하지만 타임슬립 장르에서 흔히 기대하게 되는 재미는 약했다. 이를테면 과거 회귀 후 현재의 지식으로 무언가를 바꾸거나 해결하는 재미는 덜 했다. 워낙 자극적인 회귀물에 길들여져서 이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 독자도 읽어도 좋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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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 양장본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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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감히 몇 줄의 문장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나의 얕은 능력이 저주스럽다. 강렬했고 감동적이었다.

저자인 이브 엔슬러는 <버자이너 모놀로그>로 알려진 극작가이자 사회운동가다. 다섯 살 때부터 친부에게 성폭력을 당한 뒤 그 트라우마로 각종 정신 장애, 알콜 중독 등으로 시달렸다.

평생의 상처로 고통받아온 저자는 아버지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었지만 이미 죽어버려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과 편지>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아버지 입장이 되어 자신에게 사과하는 내용인데 한 번 읽어볼까 싶어 책 소개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내용만으로도 너무 마음 아파서 차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책도 역시 읽는 동안 느낄 찝찝함과 두려움 때문에 망설였지만 <슬픔의 방문>을 쓴 장일호 작가의 추천사를 보고 용기를 냈다. 예상했던 감정을 느꼈지만 읽기를 잘했다. 두려움을 피하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의 원제를 찾아보니 'Reckoning', '계산, 계산서'라는 뜻으로 나온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제목을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저자의 45년 간 겪은 여성과 폭력에 대한 사유를 기록한 책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부터 코로나 19, 트럼프 정권 등 각종 이슈부터 개인적 삶에 대한 기록까지 담겨있다. 가장 충격적인 챕터는 '살아 있는 것이 유감이지 않은 몸'이었다. 보스니아 내전, 콩고 내전, ISIS 등에서 잔인한 성폭력으로 희생되거나 생존한 여성들의 기록을 담았다.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너무도 끔찍했다. 그럼에도 살아남아 피해를 증언하고 연대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아버지의 사과 편지>와 관련된 내용도 있다. 또 가해자가 해야할 진정한 사과'의 네 단계도 기억에 남는다.

상처를 돌아보고 그것을 꺼내어 글로 써서 발표한다는 것. 이게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료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했다. 특히 그 상처가 친족 성폭력이나 집단 강간, 전쟁으로 인한 성폭력(우리나라의 위안부도 언급된다.)이라니.

연대하고 행동하자는 내용도 좋다. 2년 전 <가디언>에 썼다는 글이 주옥같다.

- 지금이 바로 우리가 기다려 온 그 순간인가요? 이것을 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사랑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여기, 당신께 제 손을 건넵니다.(380 페이지)

저자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승리와 자유를 상징하는 'V'로 새롭게 명명하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 나는 V라는 이름을 내 이름으로 택했다. 본래 내게 주어진 이름이 나를 망치고 존재를 지우려던 사람에게서 왔기 때문이다. V는 내 자유의 이름이다. (39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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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방차 마르틴 베크 시리즈 5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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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다섯번째 작품.

이번에는 방화 사건을 밝히는 내용이다. 헌데 화재가 발생한 장소를 두 명의 경찰이 잠복하며 감시 중이었다. 그 건물은 절도범이 살고 있었기 때문인데, 덕분에 화재 현장의 많은 사람들이 구출될 수 있었다.

하지만 화재 현장을 감식 후 수상한 점이 발견된다. 사망자 중 한 명은 화재 발생 전 이미 사망했고 그가 누워있던 침대의 매트리스에는 폭탄이 설치되어 있던 것. 누군가가 방화한 것이 밝혀지면서 수사는 변곡점을 맞이한다.

다섯번째 책쯤 되니 이제는 몇몇 캐릭터들의 특징이 더 명확히 각인되어 읽는 재미가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군발드 라르손'이 꽤 비중있게 등장했다. 마르틴 베크의 동료 경찰이긴 하지만 독자로서 마냥 응원하게 되는 부류의 선한 인물은 아니다. 거칠고 편협한 면도 보이는, 한 마디로 진상같은 경찰인데 이번 책에서 그가 경찰이 되기 전까지의 삶이 나와있어서 흥미로웠다.

앞서 읽은 <웃는 경관>에서 희생된 경찰의 약혼녀인 '오사 토렐'도 등장한다. 상처를 딛고 경찰 지망생이 된 모습이 좋았다. 전체 시리즈를 읽는 독자들에게 주는 보너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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