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등을 만든 헐리웃 대표 여성 감독이자 작가 노라 에프런의 에세이.이 책 아니었으면 이 언니가 이렇게 멋진 사람인지 몰랐을 것이다. 부제인 '우아하고 유쾌하게 나이 든다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노라 에프런이 60대 후반인 말년에 쓴 에세이다. (그는 2012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71세.)무척 유쾌하면서도 찡한 내용이 많았다. 1941년 생인 노라 에프런은 부모 모두 헐리웃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로맨틱 코미디 시나리오 작가였다. 어릴 때부터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집 파티에 손님으로 왔다고. 젊은 시절 백악관 인턴을 거쳐 <뉴욕 포스트>기자가 되어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기도 한다. 1960년대에 여성으로서 언론사에서 일하는 고충을 담은 글도 있다. 기억력 감퇴 등과 같은 노년의 일상을 담은 글도 좋다. 유머가 넘치고 다정하다. '노라 에프런의 영화들도 대부분 이런 톤이었지.'라고 생각했다.'나는 상속녀였다'라는 글에서 제일 터졌다. 부자인 외삼촌이 자식없이 돌아가시게 되자 노라는 유산을 상속 받을 생각에 들뜬다. 당시 그는 어쩔 수 없이 돈 때문에 쓰는 시나리오가 있었다. 너무 쓰기 싫어서 상속 받으면 다 때려치울 생각에 큰 기대를 하는데. 막상 까보니 유산이 얼마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나리오를 마저 썼고 그게 그의 인생을 바꾼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고. 책의 제목인 문장이 등장하는 '실패작'은 여운이 남는다. 이 정도로 성공한 커리어의 사람이 자신의 실패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쿨하고 멋있었다. 영화라는 산업에서 망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는 입장에 대한 묘사가 기가막히다.- 시나리오만 쓸 때와 달리, 영화 연출을 맡게 되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비난의 대상이 누군지 헷갈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게 나 때문이다.(166 페이지)- 실패작에 대한 가장 슬픈 사실 중 하나는, 영화 자체가 나중에 제대로 재평가되거나 부분적인 명예 회복을 하더라도, 영화를 만든 나 자신은 처음의 경험 때문에 멍들고 깨진 채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 개봉 당시 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그 관객층에게 동조하게 된다.(169 페이지)<미스테리아> 편집장이자 전 영화지 기자였던 김용언 님이 옮겼다. 영화를 잘 아는 분이라 그런지 번역문을 읽는데 걸림이 없었다. 또 직접 쓴 노라 에프런에 대한 글도 좋았다.<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다시 봐야겠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베레나 카스트가 72세에 쓴 책이다. 자신이 연구한 경험과 주변의 동년배들, 또 본인 스스로가 맞은 노년에 대해 쓴 것이기도 하다. 노화는 그저 쇠퇴하기만 하는 시기일까? 저자는 책은 서문부터 이를 반박한다. '노화는 우리가 도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한다. 물론 육체적인 노화와 필연적인 소멸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인생의 후반기야말로 자신의 내면에 더 집중하는 중요한 시기'이며 이를 위한 방법을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제시한다.일단은 '받아들이라'는 부분이 와닿았다. 젊은 시절에 비해 남은 시간이 짧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삶이 그 자체로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가장 분량이 긴 챕터인 '삶의 방향성을 새롭게 만드는 감정들'. 이 부분에서는 인생 선배인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자신이 연구한 사례들이 소개된다. 그 중 '유머, 사랑스러운 반전'이 기억에 남는다. 나이들수록 자기 안에 갇혀 배려가 줄고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유머가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에 익숙해지라'는 부분도 의미심장했다. 노인들은 배우자나 친구들의 죽음으로 자신의 죽음도 받아들이게 되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이 과정을 더 침착하게 받아들인다고.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상에 관심과 열정을 갖는 자세 등 마음가짐만으로 확연히 긍정적이고 충만한 노년이 될 수 있다. 단순하고 새로울 것 없지만 심리학자의 관점에서 풀어낸 이 주제가 더없이 위로가 된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판타지와 사랑 이야기.책이라는 고유한 물성과 그 안에 담긴 가치에 열광하는 부류는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었다. <사라진 서점>은 그 중 1920년대와 현재의 더블린을 배경으로 희귀본 책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다.과거의 인물 오펄린, 현재의 마서와 헨리. 이들 세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해 혼자 프랑스 파리로 간 오펄린은 그 유명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일하게 된다. (심지어 '제임스 조이스'도 등장한다!) 그곳에서 희귀 서적 비즈니스에 눈 뜬 오펄린. 하지만 그를 쫓아온 오빠를 피해 더블린으로 도주하고 자신이 직접 서점을 운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에밀리 브론테의 미발표된 원고를 찾게 되지만 혹독한 배신과 끔찍한 억압을 겪는다.현재 시점의 마서는 폭력 남편을 피해 무작정 더블린으로 왔다. 그러던 중 오펄린이 운영했다는 서점의 자취를 찾는 헨리와 만나게 된다.(스포일러 있음)상처를 지닌 세 인물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가는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책과 연관된 사건들이 벌어진다. 사건의 전개가 흥미롭고 나름대로 반전도 있다. 기승전...잘 나가다 결말에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부분은 의외였다. 하지만 이 지점이 이 소설의 재미 포인트가 되는 것도 같다.로맨스 요소도 많고 여성 캐릭터가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이야기라 재미있다. 꽤 두께가 나가지만(약 500 페이지)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희귀 서적을 우연히 발견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2023년 아마존 UK에서 1위를 했고 미국에서도 킨들 차트와 월스트리트저널 베스트셀러 1워를 차지했다고.
우리 나라의 대표적 산업인 조선소에도 여성 노등자들은 있다. 도장과 용접, 밀링과 같은 주요 기술부터 비계 설치, 청소, 세탁, 급식, 미화, 밀폐감시까지 그 분야도 다양하다. 이 책은 '마창거제' 지역에서 조선소 여성 노동자들로 살고 있는 11명의 목소리를 담았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십년 동안 그곳에서 일한 여성들. 위험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자부심을 갖고 성설하게 일하는 내용이 감동적이다. 최근 조선업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임금이나 처우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관련하여 노조 활동 등으로 연대하며 목소리를 내게 된 과정도 나와있다.
대개는 평범한 가정 주부로 살다 생계를 위해 조선소에 취업한 경우가 많았다. 억척스러워야 겨우 버틸 수 있는 남초 집단의 현장에서 이들은 점점 강해졌고 투사가 되어 갔다.
수십 년을 일했는데도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라 경력도 인정 받지 못하고 임금 격차도 겪는다. 해고의 위기, 산업재해 등 위험, 건강 악화가 몰려오기도 한다. 그래서 요새는 신규 인력들이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인터뷰이 중 정수빈 님은 베트남에서 이주한 여성이다.
'노동자'와 '노조'라는 단어에 편견을 갖고 있다면 실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한다. 그 중에 '여성 노동자'들의 삶에 더 집중하면 좋겠다. 퇴근 후에도 가사 노동을 이어가는 책임감 있고 성실한 이들이 존경스럽다. 인터뷰이 중 파업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들도 응원한다.
진주 교방음식의 대가가 전하는 음식 이야기.먹는 것에 관심이 많아 예전부터 특이하고 새로운 외국 음식에 열광했는데 갈수록 한식이 좋아진다. 스스로가 만든 김치와 반찬을 좋아하지만 더 맛있게 제대로 만드는 법을 궁리하곤 한다. 그러던 차 이 책을 접하게 되어 반가웠다.진주에서는 중학생 때 며칠 머물렀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때 진주 음식이라는 것을 먹어 본 기억은 없다. 그래서 진주가 식문화가 발달한 도시인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전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조선시대 진주는 한양과의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관리들이 마음껏 음식 사치를 부릴 수 있었다고 한다. 양반가와 기생들의 잔치에서 유래된 화려한 잔치상이 유명했다고. 책에 묘사된 비빔밥과 잔치상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도록 화려했다.또 일제 강점기 때는 진주에 소 종묘장이 있어 신선하게 도축된 소고기가 많았다. 진주 비빔밥에 육회가 들어가고 육류 요리가 발달하게 된 배경이다. 도축장이 많아 백정도 많아 이후 '형평 운동'과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 것이 이해되었다.저자는 3대째 진주의 과방지기로 있으면서 '한식의 세계화'라는 구호를 처음으로 창시했다. 한식의 연구와 전파에 진심인 저자는 현재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라고 한다.책 속의 글은 경남일보에 연재되었던 칼럼을 모았다. 짧지만 다양한 내용을 접할 수 있어 유익했다. 진주교방 음식 뿐만 아니라 식재료, 요리법, 역사 등이 등장한다. 내용 중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진주 배추 '옥하승'이 궁금하다. 현재 우리가 먹는 배추는 외래종인데 옥하승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땅에 떨어지면 조각조각 물이 될 정도'였다고.수록된 삽화도 매우 아름답다. 실제 요리의 사진이 있더라면 어땠을까도 싶었지만 삽화 역시 다양하고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전통 음식과 진주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