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 - 우아하고 유쾌하게 나이 든다는 것
노라 에프런 지음, 김용언 옮김 / 반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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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등을 만든 헐리웃 대표 여성 감독이자 작가 노라 에프런의 에세이.

이 책 아니었으면 이 언니가 이렇게 멋진 사람인지 몰랐을 것이다. 부제인 '우아하고 유쾌하게 나이 든다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노라 에프런이 60대 후반인 말년에 쓴 에세이다. (그는 2012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71세.)

무척 유쾌하면서도 찡한 내용이 많았다. 1941년 생인 노라 에프런은 부모 모두 헐리웃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로맨틱 코미디 시나리오 작가였다. 어릴 때부터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집 파티에 손님으로 왔다고.

젊은 시절 백악관 인턴을 거쳐 <뉴욕 포스트>기자가 되어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기도 한다. 1960년대에 여성으로서 언론사에서 일하는 고충을 담은 글도 있다.

기억력 감퇴 등과 같은 노년의 일상을 담은 글도 좋다. 유머가 넘치고 다정하다. '노라 에프런의 영화들도 대부분 이런 톤이었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상속녀였다'라는 글에서 제일 터졌다. 부자인 외삼촌이 자식없이 돌아가시게 되자 노라는 유산을 상속 받을 생각에 들뜬다. 당시 그는 어쩔 수 없이 돈 때문에 쓰는 시나리오가 있었다. 너무 쓰기 싫어서 상속 받으면 다 때려치울 생각에 큰 기대를 하는데. 막상 까보니 유산이 얼마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나리오를 마저 썼고 그게 그의 인생을 바꾼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고.

책의 제목인 문장이 등장하는 '실패작'은 여운이 남는다. 이 정도로 성공한 커리어의 사람이 자신의 실패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쿨하고 멋있었다. 영화라는 산업에서 망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는 입장에 대한 묘사가 기가막히다.

- 시나리오만 쓸 때와 달리, 영화 연출을 맡게 되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비난의 대상이 누군지 헷갈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게 나 때문이다.(166 페이지)

- 실패작에 대한 가장 슬픈 사실 중 하나는, 영화 자체가 나중에 제대로 재평가되거나 부분적인 명예 회복을 하더라도, 영화를 만든 나 자신은 처음의 경험 때문에 멍들고 깨진 채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 개봉 당시 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그 관객층에게 동조하게 된다.(169 페이지)

<미스테리아> 편집장이자 전 영화지 기자였던 김용언 님이 옮겼다. 영화를 잘 아는 분이라 그런지 번역문을 읽는데 걸림이 없었다. 또 직접 쓴 노라 에프런에 대한 글도 좋았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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