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웰빙을 향한 치열한 저항의 시골살이.오래 전에 잠시 몸 담았던 광고영상 제작 회사에서 들은 얘기다. 회사 프로덕션 팀이 굴가공 공장을 촬영하러 해안지역 시골에 갔다. 그 공장은 대개 그 지역의 할머니들이 일을 했단다. 굴을 까는 양만큼 일당이 주어지는데 소위 경력이 높은 할머니들은 엄청난 금액의 보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액수를 들어보니 당시 중소기업에서 내가 받은 돈보다 많았다. 그때의 충격으로 이런 생각까지 했다. '이도 저도 안되면 다 접고 시골로 가야겠다.'이 생각이 얼마나 철없고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이 책이 말해준다. 저자는 도시의 착취 구조에 한계를 느끼고 '누구도 착취하지 않는 노동, 나를 직접 부양하는 노동'으로 살기 위해 시골살이를 택한다. 저자가 직접 부딪혀 경험한 시골은 또다른 연대와 투쟁의 장이었다.여성 비혼 1인 가구로 시골살이를 하는 저자는 다양한 곳에서 불평등을 겪는다. 이동권, 주거권, 경제권, 행정, 정치의 파트로 나누어 서술했다.시골에서 살려면 자차 운전을 해야하는 문제부터 나온다. 적지않은 목돈과 유지비가 들고 환경적인 문제도 생긴다. 버스체계는 엉망이고 개선의 여지가 안보인다. 결국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은 약자들은 고립되기 십상이다. 이 문제 하나만 봐도 시골이 도시보다 나을 수 없다. (저자는 시골에서 여전히 차를 소유하지 않고 산다고 한다.)읽으면서 지방소멸 문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실제로 행해지는 정책들이 얼마나 허술한지도 구체적 예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개인적인 에세이라기 보다는 실질적인 사례와 대안을 제시하려는 질문들을 던지는 책이다. 결국 시골살이도 정치적인 문제와 뗄 수 없다. 시골의 '이장'이라는 직이 선출직이 아니라 행정이 임명하는 임명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시골에서 문제가 생기면 바꾸려는 노력보다 현상을 유지하고자 한다. 저자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이들이 실제 행정에 참여하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굴까는 할머니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도시의 사무직보다 더 높은 일당을 받기까지 얼마나 고된 노동이 있었을까. 공장까지는 어떻게 이동을 했고, 노동에 대한 복지 등도 제공되고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 녹록치 않을 것이다. 시골살이는 낭만이 아니다.
찬란하면서 암울했던 여름, 사랑과 죽음을 겪은 소년의 이야기.영국의 해안 마을 사우스엔드에서 한 무덤이 훼손된 사건이 발생한다. 용의자는 16세 소년 '핼'. 그는 얼마 전에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두 살 많은 '배리'의 무덤을 밤새 파헤쳤다. 핼은 대체 왜 그랬을까?프랑스와 오종 감독이 <썸머 85>라는 영화로도 만든 작품이다. 작가 에이든 체임버스는 영미권에서는 꽤 알려진 작가라고 한다. 난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소설은 용의자 핼이 진술을 거부하자, 법원은 사회복지사를 담당자로 정해 진상 파악을 하게 한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던 핼은 재판에 제출할 진술을 글로 쓰게 된다.도입부의 '무덤 훼손 사건' 기소장과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사회복지사의 보고서 외에는 대부분 핼의 시점으로 쓰여졌다. 가족과 사이도 좋지 않고 무엇에도 흥미나 친구도 없는 핼의 삶에 배리가 등장한다. 십대 소년이 써내려가는 문체라 장난기 있으면서 경쾌하다. 오래 전에 읽은 영국 소설 <비밀 일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몇몇 군데는 읽으면서 크게 웃었다.배리를 만나며 핼이 느끼는 사랑과 상처의 감정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분명 퀴어물이긴 한데 그에 대한 심오한 고뇌는 별로 없이 그저 순수하고 슬픈 사랑 이야기로 읽혔다. 핼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핼이 왜 무덤을 훼손했는지 조금씩 밝혀지는데. 거기까지 가는 감정이 섬세하고 공감되어서 몰입하며 읽었다. 구성적으로도 좋은 작품이다.십대 소년이 겪는 방황과 설렘. 비정한 세상으로부터의 상처가 잘 나타난 소설이다. 해안 마을과 여름이라는 계절이 주는 느낌도 강렬하다.소설 속에서 커트 보니것의 작품이 자주 등장한다. 보니것을 잘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우리가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걸 어떻게 몇 분 만에 알게 되는 걸까? 이 사람과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그런 일이 해마다 마주치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과는 왜 일어나지 않는 걸까? - P75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곱 주가 걸렸다.내가 해초 틈에 빠진 날부터 그가 죽은 날까지 49일이었다. 그가 ‘그것‘이 되기까지.천백칠십육 시간.칠만 오백육십 분.사백이십삼만 삼천육백 초. - P213
생각 외로 명상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그리고 이들은 한결같이 명상을 예찬하고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추천받은 유튜브 영상을 보고 바닥에 앉아 눈을 감아 봤지만 잡생각만 더 늘었다.이 책은 명상을 실천해 보고 싶지만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매우 적당한 안내서다. 흔히들 눈을 감고 일정 시간 동안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명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니 명상은 생활 안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습관이어야 하는 것이었다.명상을 생활 안에 들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된다. 마음 가짐과 자세부터 알려주는데, 그 팁들이 매우 구체적이다. 책에 제시된 '명상을 돕기 위한 일상적 행동들'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40 페이지)- 잡담을 줄여라.- 정기적으로 '디지털 단식'을 하라.'- 우울증을 피하라.- 의심을 극복하라.매우 구체적이지 않은가. 특히 '디지털 단식'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현대인들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지침이다. 명상 자세를 알려주는 부분도 매우 구체적이다. '책상다리' 자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음을 제시하고 도구를 활용하거나 의자에 앉는 자세도 알려준다. 사진자료가 있어 이해가 쉬웠다. '무드라'라고 하는 손 모양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대개 엄지와 검지 혹은 중지를 연결시켜 원을 만드는 손 동작인데, 이는 '미세 에너지를 통제하고 봉인해서 몸의 특정한 긍정적 경로로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고.또 효과적인 명상을 위해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도 기억에 남는다. 다양한 스트레칭과 요가 자세가 꽤 자세히 소개 되어 있다. 오래 전 요가원에 다녔을 때 배운 동작들이 기억 났다. 꼭 명상이 아니더라도 실내에서 쉽게 해볼 수 있는 요가 동작들이 소개되어 있다. 음식에 대한 내용도 있다. 신선하고 소화가 쉬운 채식을 권하는데 책에 소개된 대로 먹는다면 그대로 요새 유행하는 '저속 노화 식단'이 된다. 결국 건강에 관련된 것은 다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명상을 꾸준히 실천해야 효과가 있다는데 이를 혼자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있다. 수련 일지를 쓰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그룹을 만들어 하는 방법들이다. 내용은 어렵지 않으면서 구체적이라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저자인 스와미 사라다난다는 40년 이상 요가와 명상을 지도하는 전문가다. 이 책에 앞서 같은 저자의 책 <호흡의 힘>과 <차크라의 힘>도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데 궁금하다. 챙겨보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최근 '명상 뉴스'라는 꼭지를 런칭했다. 들으면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뉴스를 명상을 하며 들을 수 있게 하는 방송이다. 처음에는 웃겼는데 진짜 눈을 감고 차분하게 뉴스를 들으니 분노가 조금은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정치와 일상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명상의 힘으로 다스려보자.
2002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출간된 시간만큼 유명한 작품이지만 난 이번 개정판을 처음 읽게 되었다. 몰입도가 높은 소설이다.1977년도 인왕산 아랫마을에 살고 있는 일곱살 동구에게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동구의 시선으로 가족과 이웃, 학교 생활과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대가 그려진다.동구는 한없이 순수하고 성숙하며 모든 것을 감내하는 아이다. 고약한 할머니, 비겁하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 상황을 견뎌내는 어머니를 다 이해하려 애쓴다. 분노해도 참는다. 너무 판타지 같은 캐릭터가 아닌가 싶었다. 세상에 이런 아이가 존재할까? 그래서 동구에게 더 이입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할머니는 진짜 최고의 빌런이다. 못된 시어머니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소설 후반부에 이런 할머니를 이해해 보려는 동구의 마음이 드러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받아들일 수 없는 캐릭터다.박영은 선생님이 동구의 난독증을 치료해 주는 과정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동구가 이런 선생님을 만나서 다행이었다.하지만 이런 박선생님이 80년 광주에서 사라지고, 똘똘하던 동생 영주가 죽을 때는 독자로서 힘들었다. 이렇게까지 동구에게 가혹한 시련을 줘야만 했을까? 시대가 아무리 가혹했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아팠다.문장과 감성이 좋아서 즐겁게 읽었다.
제4회 박지리 문학상 수상작.그 동안 읽은 한국 소설에서 손꼽는 작품 중 하나가 박지리 작가의 <다윈 영과 악의 기원>이다. 안타깝게 요절한 이 작가를 기리는 문학상이 벌써 네번째다. 매회 발표 때마다 수상작들을 읽고 있는데 늘 예상 밖의 새로움을 느끼게 해준다.이번 수상작 <점거당한 집>도 그랬다. 얕은 독자로서는 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새롭다는 면에서 색다른 독서 체험을 시켜준 작품이다.총 세편의 단편이 묶여있다. 연작의 형태로 각각 다른 공간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첫번째 '길 위의 희망'은 광주의 국립 아시아 문화 전당이 배경이다. 두번째 '점거당한 집'은 용인의 백남준 아트센터를, 마지막 작품인 '금일의 경주'는 경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치 예술 퍼포먼스와도 같은 형식이 상당히 낯설다. 서사가 있긴 한데 익숙한 구조로 짜여져 있지 않다. 또 세 군데의 공간은 실재하는 장소라 읽으면서 그 장소를 체험한 기억을 소환시키기도 한다.(경주가 그랬다.) 한편 소설들의 시간적 배경은 2033년 이후의 근미래다. 공통적으로 월성원전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는 설정이 있는데, 이는 실재하지 않은 사건이지만 가능성이 있는 얘기라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복잡 미묘한 세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장소가 가장 도드라진다. 하지만 소설은 오히려 그 안의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들이 마음에 들었다.말랑말랑해서 삼키기 쉬운 소설에 익숙하다면 어렵게 느껴질 작품이다. 하지만 소설의 새로운 시도를 접하고자 한다면 기대에 부응할 작품이다. 최수진 작가님의 이후 작품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