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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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면서 암울했던 여름, 사랑과 죽음을 겪은 소년의 이야기.

영국의 해안 마을 사우스엔드에서 한 무덤이 훼손된 사건이 발생한다. 용의자는 16세 소년 '핼'. 그는 얼마 전에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두 살 많은 '배리'의 무덤을 밤새 파헤쳤다. 핼은 대체 왜 그랬을까?

프랑스와 오종 감독이 <썸머 85>라는 영화로도 만든 작품이다. 작가 에이든 체임버스는 영미권에서는 꽤 알려진 작가라고 한다. 난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소설은 용의자 핼이 진술을 거부하자, 법원은 사회복지사를 담당자로 정해 진상 파악을 하게 한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던 핼은 재판에 제출할 진술을 글로 쓰게 된다.

도입부의 '무덤 훼손 사건' 기소장과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사회복지사의 보고서 외에는 대부분 핼의 시점으로 쓰여졌다. 가족과 사이도 좋지 않고 무엇에도 흥미나 친구도 없는 핼의 삶에 배리가 등장한다. 십대 소년이 써내려가는 문체라 장난기 있으면서 경쾌하다. 오래 전에 읽은 영국 소설 <비밀 일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몇몇 군데는 읽으면서 크게 웃었다.

배리를 만나며 핼이 느끼는 사랑과 상처의 감정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분명 퀴어물이긴 한데 그에 대한 심오한 고뇌는 별로 없이 그저 순수하고 슬픈 사랑 이야기로 읽혔다. 핼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핼이 왜 무덤을 훼손했는지 조금씩 밝혀지는데. 거기까지 가는 감정이 섬세하고 공감되어서 몰입하며 읽었다. 구성적으로도 좋은 작품이다.

십대 소년이 겪는 방황과 설렘. 비정한 세상으로부터의 상처가 잘 나타난 소설이다. 해안 마을과 여름이라는 계절이 주는 느낌도 강렬하다.

소설 속에서 커트 보니것의 작품이 자주 등장한다. 보니것을 잘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우리가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걸 어떻게 몇 분 만에 알게 되는 걸까? 이 사람과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그런 일이 해마다 마주치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과는 왜 일어나지 않는 걸까? - P75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곱 주가 걸렸다.
내가 해초 틈에 빠진 날부터 그가 죽은 날까지 49일이었다. 그가 ‘그것‘이 되기까지.
천백칠십육 시간.
칠만 오백육십 분.
사백이십삼만 삼천육백 초.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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