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감귤 토끼 ㅣ 웅진 우리그림책 148
백유연 지음 / 웅진주니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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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맛볼 수 있는 그림책을 그려온 백유연 작가의 지역 특산물과 설화, 유래담을 담은 ‘지역 특산물 그림책’ <제주 감귤 토끼>를 읽어봅니다.
예전에 귤은 추운 겨울 한철에나 맛볼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지만 지금은 여름에도 하우스에서 재배한 귤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특별한 날에나 먹던 귀한 과일 귤은 어떻게 제주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봅니다.
아이는 정한수를 떠놓고 아픈 할머니를 위해 매일 밤 달님에게 소원을 빕니다.
평화로운 달나라에 사는 제주 옥토끼 두 마리는 황새가 물어온 아이의 소원을 듣고 그만 눈물을 흘립니다.

그때 멀리서 토끼 신령님이 황새를 타고 나타나고 옥토끼들의 어두운 표정을 본 신령님은 무슨 일인지 묻습니다.
아이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다는 말에 토끼 신령님은 품에 간직하고 있던 노란빛의 영롱한 감귤을 건넵니다.

옥토끼들은 신령님이 주신 감귤 속에 답이 있다는 말에 귤 껍질을 까지만, 너무 맛있어서 그만 홀랑 먹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아이를 향한 옥토끼들의 다정한 마음은 뜻밖의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달나라에는 옥토끼가 산다는 옛이야기와 제주 감귤을 연결한 이야기는 작은 소원도 지나치지 않는 옥토끼들의 따뜻한 마음과 어우러져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백유연 작가 특유의 귀엽고 포근한 그림체에 민화적인 기법을 더해 그림은 한층 화려하고 풍성해져서 보는 재미가 큽니다.

우리 옛이야기와 제주 감귤의 유래담을 잘 버무린 이 그림책은 할머니를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과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애쓰는 옥토끼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를 향한 진심이 만들어내는 작은 기적을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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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네 - 2025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
아베 아키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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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도서관에 들렀다가 신간 코너에 있어서 자세한 내용도 모르고 들고 왔다.
소설의 제목인 <카프네>는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겨주는 행동을 뜻하는 포르투갈어라고 한다.

노미야 가오루코는 임신에 실패하고 남편에게 영문도 모르고 이혼을 당했으며, 언제나 다정했던 열두 살 터울의 남동생 하루히코마저 돌연사로 잃게 된다.
어쩐 일인지 동생은 죽기 전날 유언장을 남겼고, 전 여자 친구인 세쓰나에게 유산을 상속한다.

술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가오루코는 동생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세쓰나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 쓰러지고, 얼떨결에 세쓰나의 도움을 받게 된다.
냉정하게만 보이던 세쓰나는 가오루코를 돕고, 둘은 하루히코가 생전에 낸 의견으로 진행된 봉사활동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카프네>는 동생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던 가오루코가 동생의 전 여자 친구인 세쓰나와 함께 가사 대행 회사인 ‘카프네’에서 진행하는 봉사 활동에 참여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그 과정에서 변화해 가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죽은 동생의 전 여자 친구는 냉정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음식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가오루코 역시 자신이 잘하는 청소를 맡아 하면서 타인의 환경은 물론 자신의 삶까지 조금씩 변화시켜 간다.

소설은 현대인들이 겪는 고립과 불안을 다루면서도, 결국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것은 누군가와의 연결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저마다 상처와 사정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건네고, 그렇게 이어진 관계가 어느새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가오루코와 세쓰나 역시 처음에는 하루히코라는 한 사람을 사이에 두고 억지로 이어진 관계였지만, 함께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조금씩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간다.
상실에서 시작된 만남이 연대로 이어지고, 그 연대가 또 다른 가족의 모습으로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 세쓰나의 요리만큼이나 따뜻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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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절벽의 신자들
조예은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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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에서 맛보기로 읽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어떤 이야기인지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이후 ‘오연’은 단 한 사람, 친구 ‘제언’을 빼고는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물론 얼굴이 왜곡되어 보인다.
그러던 중 교생으로 ‘주연’이 오고 그의 얼굴 역시 알아볼 수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제언은 주연에게 적대적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2015년 8월 8일’에 나타날 존재들이 궁금했고, 어디서부터 어디가 현재이고 어느 부분이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인지, 또 어떤 부분이 환상이나 꿈인지 생각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사이비가 분명해 보이는 ‘녹색 절벽’이 기다리는 세상은 과연 올지, 신실한 그들은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믿는 자로 보이는 오연의 변화와 믿음 따위는 없어 보이던 제언의 절실함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에서 내쫓기고 돌봄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하는 청소년의 종착지를 보는 것 같아 괜히 뜨끔했다.
가장 절박한 순간, 누구인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손을 잡는 아이의 모습은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 범죄 집단이나 그보다 더 무서운 존재를 대입해도 그대로일 것 같아 두려워진다.

소설은 가정은 물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두 친구의 우정으로 읽을 수도 있고, 사이비 종교의 실체와 최후를 보여주는 이야기로도, 불우한 두 청소년의 성장기로도, 방향을 잃은 복수극으로도 읽을 수 있었다.
읽는 내내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갈팡질팡했고, 확실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불안이 오히려 공포스럽다.

딱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라 더 매력적이고, 읽고 난 뒤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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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소기 - 듣지 말았어야 했다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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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쌓이는 이야기 끝에서 과연 어떤 공포와 마주하게 될지, 미쓰다 신조가 선사할 서늘한 마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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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세트 - 전2권 (한정판 케이스 + 조정래 작가노트)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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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한 대작가의 신작은 사랑이야기다.
대학생 때의 짧은 인연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온 남녀는 5년 만의 재회에서 다시 가까워지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수천억대 자산가의 둘째 아들인 남자는 아버지를 억울하게 잃고 집안의 가장이 된 여자를 위해 자신의 상속분으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일상을 선물한다.
하지만 여자는 큰 병을 앓게 되고 남자는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아주 오래된 영화를 한 편 보는 듯한 기분으로 소설을 읽었다.
누군가 나타나 나를 구원해 주길 꿈꿨던 젊은 시절의 소망을 담은 이야기는 노작가의 손끝에서 철학과 미술을 더해 새롭게 태어난다.

철학도인 남자와 생계 때문에 순수미술을 이어갈 수 없었던 여자는 장흥 보림사와 반 고흐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삶과 반 고흐의 이야기를 나눈다.
소설은 사랑 이야기를 넘어 인생과 예술에 대한 커다란 담론을 던지며 끝맺는다.

작가의 말에서 오랫동안 숙명처럼 함께해온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아직도 이런 사랑 이야기를 쓸 수 있음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30년도 전에 《태백산맥》으로 처음 만난 작가의 소설을 꽤 오랜 시간 따라 읽었는데 이 소설이 작가의 마지막 장편이라는 말에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고루한 옛사랑 이야기처럼 읽힐 수도 있겠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사랑이 아닌 긴 시간 마음에 품어온 사랑 이야기는 지나버린 젊은 날의 아련함을 선사한다.
부디 작가님이 오랫동안 건강하셔서 장편은 아니더라도 짧은 소설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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