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열심히 산다 오늘의 젊은 작가 58
김화진 지음 / 민음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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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종교와 신화 속 악마들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만큼 거대한 몸집으로 인간을 꾀어내는 사악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김화진 작가가 그린 악마 Z는 ‘손이 작은 축인 여자의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정도’이며, ‘바퀴벌레와 돈벌레와 거미와 싸워 이겨서 얻은 싱크대 하부장 어둡고 먼지투성이인 곳’에서 살아간다.

악마 Z가 머무는 집은 인디밴드에서 피아노를 치던 가영의 집이다.
바이러스가 돌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현재, 수입이 0에 가까워진 가영은 아예 집에 틀어박혀 지내고 있다.
그러던 중 유독 가영의 스쿠터가 탐났던 악마 Z는 우연을 가장한 채 가영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소원을 물어본다.
한참을 망설이던 가영이 마침내 뱉은 말은 “소원이…… 없는데요. 잘 죽게 해 주세요”뿐이었다.

악마 사회에서조차 패배자에 가까운 악마 Z는 의욕이라곤 없는 인간 가영과 몸을 바꾸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치열한 경쟁과 등급 체계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악마답지 않게, 인간 사회의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지런히 살아간다.
심지어 악마 Z의 몸을 하게 된 가영을 돌보기까지 한다.

누구보다 인정받는 삶을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던 악마 Z는 가영과 몸을 바꾼 후 예상치 못한 일상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가끔 스쿠터를 타고, 어린 시절 악마와의 거래로 사람의 체온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종현과 함께 맛집을 찾아다니며 소소한 온기를 나눈다.

소설은 악마 Z와 가영, 그리고 종현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고독과 고통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저마다의 어려움을 안고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버텨내는 이들의 진솔한 모습은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우리는 종종 거대한 절망 앞에서 '소원 따윈 없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곤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몸과 삶을 바꾸는 엉뚱한 상상을 통해 오랫동안 외면해 온 내 안의 진짜 목소리를 마주하게 만든다.

고립이라는 차가운 방 안에서도 타인과의 스침을 통해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는 이들의 모습은, 결국 상처 입은 우리 모두가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작고도 단단한 희망을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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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원형의 거울 비명과 침묵 1
김내성 지음 / 니케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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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서평단에 선정되어 니케북스에서 제공받았습니다.>

니케북스는 ‘미스터리와 공포 문학의 원형을 이루는 고전들을 새롭게 소개한다’는 취지로 ‘비명과 침묵’ 시리즈를 선보였다.
손에 쏙 들어오는 판형과 부담 없는 분량 덕분에 짧은 시간 틈을 내어 읽기에도 좋은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은 한국 장르 문학의 선구자이자 우리나라 추리·탐정소설의 토대를 마련한 김내성 작가의 <타원형의 거울>이다.

발간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약 1만 부를 발행한 월간 추리소설 잡지 괴인(怪人), 이 잡지의 사장인 백상몽은 창간 1주년을 기념해 거액의 상금을 걸고, 10년 전 평양에서 일어난 잔혹한 살인 사건의 진범을 밝혀내라는 문제를 제시한다.

피해자의 옛 연인이자 용의자였던 유시영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로 풀려났고, 남편 모현철은 비관 끝에 유서를 남긴 채 해금강에 투신자살한다.
그렇게 사건은 미제로 남아 있다.

소설은 다양한 형식을 빌려 ‘김미나 살인 사건’을 설명하고 범인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사건의 단서를 경찰이나 탐정의 입을 통해 풀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사건의 추리를 공모한다는 독특한 설정이 무척 인상적이다.

사건 현장인 주택의 도면을 제시하는가 하면, 수사 기록과 신문조서를 정리해 증인들의 진술을 자세히 보여 주며 용의자들의 허점을 직접 찾아보게 만든다.
특히 김미나와 남편 모현철의 대화를 중심으로 한 희곡 형식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풀어나가는 구성은 지금 읽어도 상당히 실험적이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1930년대에 쓰인 작품이지만 추리의 전개가 억지스럽지 않고, 사건 당시 유력한 용의자였던 유시영이 상금의 주인공이 된다는 설정 역시 흥미롭다.
무엇보다 진범의 정체가 밝혀진 뒤 이어지는 반전과 마지막 선택에서는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 현대의 추리소설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고전 특유의 낭만까지 느낄 수 있었다.

추리소설 마니아라고 자부하며 수많은 작품을 읽어왔지만, 부끄럽게도 한국 장르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내성 작가를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현재 니케북스의 ‘비명과 침묵’ 시리즈는 김내성의 <타원형의 거울>을 시작으로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충>, E. T. A. 호프만의 <마담 스퀴데리>까지 출간되었으며, 앞으로도 시리즈는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한국과 세계의 미스터리 고전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획이라는 점에서 다음 작품들도 기대된다.

그동안 내 책장은 대부분 외국 작가들의 추리소설로 채워져 있었다.
이제는 우리나라 장르 문학 작품들도 하나씩 읽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한국 추리문학의 출발점이 궁금한 독자라면 <타원형의 거울>은 한 번쯤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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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 오늘의 젊은 작가 57
전예진 지음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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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이라는 귀여운 느낌이 떠오르는 제목과 “다시는, 다시는. 먹지 말자, 먹지 말자. 사람을, 사람을.”이라는 다소 상반된 자극적인 문구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궁금해 집어 들었다.

엄마와 살아가는 자매는 어릴 적부터 둘만의 신호를 만들어 세상의 온갖 것을 함께 삼킨다.
장난처럼 시작된 행동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존재까지 삼켜 버리는 일로 이어지고, 그 대가는 몸의 고통과 ‘보글’이라는 기이한 변화로 돌아온다.
엄마의 죽음 이후 낯선 할머니 집에서 살아가게 된 자매는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와 비밀을 마주한다.

자매가 입을 모아 무언가를 먹는 행위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최진영의 <#구의증명>이었다.
두 작품 모두 식육이라는 강렬한 소재를 사용하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구의 증명>이 사랑하는 이를 몸 안에 품어 상실을 견디려는 애도의 방식이라면, <보글>에서의 식육은 감당하기 힘든 현실과 상처를 지워 버리고 싶은 욕망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보글』 속 자매가 겪는 식육의 후과는 더 큰 고통과 두려움으로 되돌아온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할머니에게 찾아온 변화를 어린 자매가 감당해야 하는 장면이었다.
판타지 속 이야기임에도 현실의 돌봄과 상실을 떠올리게 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보글』은 상처와 죄책감을 삼켜 없애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그것을 마주하고 견뎌 내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내게 ‘보글’은 삼켜 없앴다고 믿었던 상처와 죄책감이 끝내 우리 안에서 끝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상처의 흔적처럼 읽혔다.
기괴한 상상력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인간의 상처와 성장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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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친구가 되어 줄게 웅진 세계그림책 272
에런 베커 지음 / 웅진주니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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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웅진주니어 정기 서평단 자격으로 제공받았습니다.>

물에 잠긴 도시에 홀로 남겨진 로봇 ’노아‘의 이야기는 면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커다란 해안 방벽을 건설하던 노아는 어쩐 일인지 홀로 남아 동물원에 남겨진 동물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판다에게는 대나무를, 코끼리에게는 풀을, 호랑이에게는 물고기를 잡아다 줍니다.

노아는 어두운 밤이면 불을 밝히고 가끔은 작은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많은 비가 내리고 수위는 점점 높아져만 갑니다.
이대로 동물원에 머물 수 없었던 노아는 동물들을 위해 커다란 방주를 만들어 폭풍우 치는 바다를 항해합니다.

어떤 때는 글자 없는 그림책을 보는 시간이 글밥이 많은 그림책을 읽는 시간보다 더 길어질 때가 있습니다.
<마지막 친구가 되어줄게>가 그런 그림책입니다.
헌사인 ‘이사벨에게‘와 제인 구달의 서문을 제외하면 글자라고는 단 하나도 없지만 어느 그림책보다 오래 들여다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 글자도 품고 있지 않은 그림책을 여러 날에 걸쳐 보면서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이름이 없던 로봇의 이름은 ‘노아’였고 면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그의 본래 직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책에는 왜 해수면이 높아졌는지, 인간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가면서 그곳에 살던 동물들의 생존이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바닷물의 높이가 매년 상승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기에 노아가 겪고 있는 일이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처럼 느껴져 불안하고 두려워집니다.

인간이 사라진 지구에서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던 로봇의 반전은 이기적이기만 한 인간들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노아의 이야기가 먼 미래의 상상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되지 않도록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지구 위의 생명체가 보내는 소리 없는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수많은 말로 전하는 교훈보다 묵묵히 동물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노아의 실천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로 다가오는 노아의 일상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방법은 누구보다 우리 인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더욱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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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풍주점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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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비채 출판사의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았습니다.>

처음 만난 우밍이의 작품 <복안인>은 거대한 쓰레기 섬을 배경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깊이 있게 그려 낸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생태소설이었다.
다소 가벼운 제목의 <해풍주점>은 <복안인>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이야기가 시작되자 작가 특유의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세계 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된다.

원주민 소년 투누흐는 목에 고무줄이 걸린 개를 구하려고 뒤를 쫓다 동굴에 이르게 되고, 소녀 수쯔는 도시로 팔려갈 위기에 처하자 몰래 집을 나와 산으로 들어갔다가 같은 동굴에 다다른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이 들리는 방향으로 나가기로 약속하고, 투누흐는 수쯔가 안전해질 무렵 해풍촌으로 찾아가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 수쯔는 홀로 딸을 낳아 키우다 해풍촌으로 돌아와 해풍주점을 열게 되고, 투누흐 역시 도시 생활을 정리한 뒤 해풍촌에 정착한다.
특별한 일이 없을 것 같던 마을에 시멘트 공장 건설 계획이 발표되자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고, 투누흐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시위대를 조직해 공장 건설 반대 운동을 시작한다.

소설은 원주민 투누흐와 수쯔의 인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산의 형상을 한 거인 드나미아의 이야기, 그리고 어른이 된 투누흐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시멘트 공장 건설에 맞서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수쯔이다.
어린 시절 잠시 머물렀던 해풍촌을 자신의 고향으로 선택하고, 과거를 숨긴 채 새로운 삶을 일궈 나가는 모습은 어떤 환경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준다.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원주민에게 산은 무엇보다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하지만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시멘트 공장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심정 또한 이해가 가고, 자연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파의 주장 역시 틀리지 않았기에 어느 한쪽을 쉽게 악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작가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인물들의 목소리를 균형 있게 담아내며,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소설 속 드나미아는 단순한 전설 속 거인이 아니라, 늘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자연을 상징하는 듯하다.
드나미아의 최후는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를 뼈저리게 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자연은 인간과 분리된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터전이라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깊이 일깨워 준다.

현실과 환상을 절묘하게 엮어내는 우밍이의 소설은 대만이 겪어야 했던 역사적 아픔과 그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작은 마을 해풍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환경 문제와 그 선택의 결과를 비추며, 개발과 공존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해풍주점>은 단순히 한 마을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삶의 터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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