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자 뱀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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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표지와 제목만 보고서 고른 소설이다.
책을 읽기 전 찬찬히 작가에 대해 살펴보니 예전에 작가의 소설을 딱 한 권 읽은 적이 있다.
열두 살 소년이 우연한 사고로 동네 꼬마를 살해한 이야기인 <#사흘그리고한인생>인데 그때 재미있게 읽고 선물하기도 했지만, 작가의 다른 소설들은 책 두께를 보고 포기한 기억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60대 여성인 마틸드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던 젊은 시절부터 잔인하지만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오랜 시간 마음을 나눴던 앙리의 소개로 청부 살인 업자로 활동하다 의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딸을 낳지만,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다시 청부 살인 업자가 돼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소설은 오랜 기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임무를 수행해 오던 청부 업자가 점점 기억에 착오가 생기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주어진 임무 수행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경찰의 탐문은 마틸드에게 다다르고 마틸드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눈치챈 조직에서는 제거 작업에 들어간다.

특별히 눈에 띄지 않은 탓에 경찰의 조사를 받지만, 무사히 빠져나간 마틸드에게 남은 건 본능과도 같은 끝없는 살인 충동뿐이다.
예전 같지 않은 육제적 제한과 점점 잃어가는 기억에도 마틸드는 멈추지 않고 앙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둘의 관계 때문인지 처연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정리됐다고 생각한 순간 찾아오는 반전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오는 슬픔이 얼마나 크면 치매마저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싶어 가슴이 뜨거워진다.
유능했던 킬러의 쓸모가 다 해지자 조직에서 무참히 버려지는 모습은 현실 속 현대인들의 모습과 닮아 그녀를 마냥 미워할 수도 없다.

작가가 1985년에 집필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내놓은 덕분에 소설 속 세상은 핸드폰도 없고 DNA 감식도 없고 CCTV도 없다.
소설은 마틸드를 추적하는 경찰을 중심에 두는 대신 마틸드의 살해 현장을 직관하게 하고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늙은 킬러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까지 마틸드의 평안을 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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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날 늑대가 돌아다니던 시절에 웅진 세계그림책 281
앤서니 브라운 지음, 이원경 옮김 / 웅진주니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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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책송이네 책장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돼 웅진주니어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은 어릴 적 아들이 영어학원에서 지은 이름이 ‘앤서니’일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이름을 가려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특징 있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신간 그림책은 역시는 역시다 싶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옛날옛날 늑대가 돌아다니던 시절, 토마스, 핀, 잭은 깊은 숲으로 놀러 갔다가 자그마한 오두막을 발견합니다.
오두막 안에는 할머니가 계셨고, 소년들은 오두막 문을 두드리고 재빨리 달아났습니다.
다음 날엔 오두막에 도착해 무서운 늑대 울음소리를 내고 달아나고 그다음 날에는 오두막 문에 낙서를 하고 잽싸게 달아납니다.

그다음 날도 잭은 할머니를 보러 가자고 말하지만, 핀은 엄마와의 약속 때문에 토마스는 유령 흉내를 내자는 잭의 장난이 너무 심한 것 같아 숲을 떠나버립니다.
할 수 없이 잭 혼자 침대보 한 장을 챙겨 숲속으로 향하는데 나무 사이에서는 으스스한 소리가 들려오고 무서운 늑대까지 잭 앞에 나타납니다.

‘옛날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단번에 그림책에 몰입하게 합니다.
깊은 숲속에 혼자 살고 있는 할머니가 주는 선입견과 편견은 누군가를 떠오르게 합니다.
세 소년 역시 할머니를 만나기 전부터 할머니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쳐 짓궂은 장난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앞면지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작가 특유의 화풍과 페이지 곳곳에 숨어있는 그림을 찾아가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누군가를 대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편견을 심어주는 주체가 대부분 어른이라는 생각에 나 역시 그런 일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나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그 할머니는 마녀가 분명하대!
아이들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댔어!”

편견은 오해를 낳고 그 오해는 두려움을 만듭니다.
옛날옛날 늑대가 돌아다니던 시절의 모르는 상대에 대한 편견이 만들어 낸 이야기의 결말이 행복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편견을 갖고 있지 않나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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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빵 보리 어린이 그림책 20
박해경 지음, 김용철 그림 / 보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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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에 선정돼 보리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어느 깊은 산속 토굴 속에서 실컷 자고 일어난 호랑이가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와 먹을 것을 찾는데 어디선가 빠아앙 소리가 나는 거예요.
다가가 보니 웬 산골 아이가 웃통을 훌렁 벗고 나팔을 불고 있어요.

호랑이는 옷을 찢을 필요도 없이 통통하게 살찐 아이를 잡아먹을 생각에 실컷 웃고 싶어 졌어요.
아이가 도망갈까 슬쩍 산등성이를 넘어가 실컷 웃고 돌아왔더니 글쎄 아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 뭐예요.

옛이야기 속 호랑이는 용맹하기보다는 토끼의 꾀에 넘어가 곤욕을 치르거나 사람에게 속아 평생 효자 노릇을 하기도 하지요.
‘빵빵빵’에 등장한 호랑이도 무섭기보다는 익살스럽고 어리숙하기까지 합니다.

배도 고프겠다 웃통을 벗은 아이를 홀랑 잡아먹으면 될 것을 힘들이지 않고 아이를 잡아먹을 생각에 웃음부터 나오고 그 웃음이 들킬까 산등성이를 넘어가서까지 웃고 옵니다.
다시 아이를 찾고도 슬그머니 장난을 치고 싶어 합니다.

실록이 우거진 초록빛 산과 어울리는 무섭기보다는 장난꾸러기 같은 호랑이는 ‘흘리기와 콜라주’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해 표정을 풍부하게 살리고 있습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이야기에 어울리는 그림에 빠져 여러 번 읽을수록 즐거워집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읽을 그림책을 고를 때 어떤 교훈을 주는 가를 염두에 두곤 합니다.
그러나 ‘빵빵빵‘은 특별한 교훈을 주기보다는 해학적인 이야기와 다채로운 호랑이 표정을 보며 함께 실컷 웃고 즐기면 되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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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 씨는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김성은 지음, 양양 그림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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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뭉끄 6기 활동 중 문학동네어린이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소방관이 불 속으로 뛰어드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기도 하지만
‘미래에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까지 다 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복되는 미래 시제의 문장에 담은 것은 그런 마음입니다.
큰 용기를 품고 자기 몫의 삶을 힘껏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책을 드립니다.
-김성은

김성은 작가의 시집 <못된 말 장례식>에 수록된 ’지금은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를 재구성해양양 작가가 그림을 그린 시 그림책입니다.
오늘 낮에 찾은 결혼반지를 낀 스물아홉 대현 씨는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를, 사이렌을 울리며 화재 현장으로 출동합니다.

소설의 프롤로그 격인 페이지를 지나면 미래 시제의 문장으로 대현 씨가 계획하고 꿈꾼 미래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열흘 뒤 지영 씨와 결혼식을 올릴 것이고 일 년 뒤엔 대현 씨를 꼭 빼닮은 딸이 태어날 것이고 어떤 날은 함께 화재를 진압하던 후배가 크게 다쳐 몇 달을 괴로워하기도 할 것입니다.

좋은 시는 그림이 없이도 충분한 감동을 주지만 좋은 시에 어울리는 그림이 함께 한 순간 그 감동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뒷면지에 소개된 시의 전문만 읽었을 때도 감동적이지만 그림과 함께 감상하는 시는 더 입체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림책을 펼쳤을 때 사투가 벌어지는 화재 현장과 대현 씨의 미래가 함께 그려진 페이지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맑은 수채화로 그려진 대현 씨의 미래가 그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의 안전이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림책을 받고 얼마 안 돼 완도 냉동창고 화재 현장에 출동해 화재를 진압하던 두 소방관의 사망 뉴스를 접했습니다.
세 남매의 아버지, 그리고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라는 두 소방관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그림책을 펼쳐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림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며 대현 씨가 안전하게 돌아오길 바랍니다.
누구든 안전한 사회를 꿈꾸듯 안전한 사회를 위해 힘쓰는 이들의 안전도 반드시 보장되어야 합니다.
대현 씨의 꿈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세상을 위해 힘을 보태는 이들의 안전과 무사 귀환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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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쿼터스
스즈키 고지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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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현대문학 서평 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

이혼 후 주간지 기자를 그만둔 ‘마에자와 게이코’는 탐정 사무소를 차렸지만, 변변한 의뢰가 들어오지 않아 폐업 위기에 처해 있던 어느 날 사람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15년 전 죽은 아들 도시히로의 태어났을지도 모를 아이를 찾아달라는 의뢰로 단서라고는 그 당시 사귀던 여자가 건넨 명함에 적힌 ‘나카자와 유카리‘라는 이름과 ’꿈꾸는 허브 모임’이라는 소속 단체의 이름뿐이다.

고액의 보수를 약속받은 게이코는 명함에 적힌 꿈꾸는 허브 모임을 조사하다 15년 전 작은 신흥 종교 단체 신도들의 집단 사망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 단체의 소속이었던 유카리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한편 전 직장인 출판사 후배 유리의 의뢰로 사인이 불분명한 사망 사건을 조사하다 남극에서 재취한 얼음이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더군다나 남극 얼음을 섭취하고 죽은 사체에서 발생한 시아노박테리아가 마을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도시의 수원인 마을의 댐을 장악해 간다는 사실까지 밝혀진다.
15년을 주기로 일어난 집단 사망 사건은 도시히로의 선배 물리학자 츠유키의 도움으로 진실에 다가가게 되고 생각지 못한 공포에 맞닥뜨린다.
도시히로가 죽기 직전까지 중세의 해독 불가 문서인 ‘보이니치 필사본’을 연구했고, 그것이 그의 죽음은 물론 집단 사망 사건과의 관련성도 찾게 된다.

’스즈키 고지‘라는 이름은 익숙지 않더라도 텔레비전에서 기어 나오는 귀신으로 유명한 영화의 <<링>>을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 영화 <<링>>의 원작을 쓴 작가의 신작 <<유비쿼터스>>는 원귀나 유령이 아닌 지구 생명체 총중량의 99.7퍼센트를 차지하는 식물의 역습에 관한 이야기다.
동물과 구별되는 생물군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고 의지나 감각이 없다고 알고 있는 식물이 본성을 드러내는 세계는 인간의 무력감을 증대시킨다.

소설은 자연보호를 강조하지도 않고 교훈으로 삼지도 않지만 읽다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 칭하는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 느끼게 한다.
도처에 존재하는 식물의 능력을 보여주는 작가의 이야기는 귀신이나 요괴가 등장하지 않아도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는다.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모인 이들의 활약으로 위험을 잠깐 잠재운 이야기는 한없이 뿌리와 잎을 뻗어가는 식물의 생명력처럼 언제든지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재등장할 수 있기에 두렵고 무섭다.
방대한 참고 문헌만으로도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느껴지는 이야기는 여름이면 들려오는 녹조 관련 뉴스를 올해부터는 쉽게 넘기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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