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계획 중 하나가 책장 파 읽기였는데 오래전 사두고 읽지 않은 고전 한 권을 고른다.고전이라면 겁부터 나는 지라 일단 얇은 책을 골라본다.멕시코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초면인 작가의 소설 <아우라>는 이인칭 시점으로 풀어가고 있다.그래서인지 ‘너‘라고 칭하는 펠리페와 함께 저택에 있는 듯해 더 오싹하다.가난한 역사학자인 펠리페가 신문에 난 구직 광고를 보고 퇴락한 저택을 찾아간다.그곳에는 족히 백 살은 넘음 직한 노파 콘수엘로가 60년 전 사망한 남편 요렌테 장군의 비망록을 정리해 주길 원한다.저택에서 함께 지내며 원고를 정리해 달라고 요구하자 펠리페는 망설이게 된다.하지만 콘수엘라 부인의 조카이자 벗이기도 한 아우라를 본 순간 그곳에 머물기로 한다.소설의 본문은 60페이지도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이다.이야기는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환상인지 경계가 모호할 뿐 아니라 저택에서 일어난 괴이한 현상을 직접 경험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요렌테 장군이 남긴 원고와 사진을 보고 현실을 자각하는 장면은 흡사 상영 당시 스포일러 금지였던 영화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할 만큼 강력하다.아우라를 연달아 두 번 읽었다.두 번 연달아 읽어도 그 공포는 덜하지 않았지만 아쉽게도 소설을 한 줄로 요약하기는 여전히 어렵다.펠리페와 콘수엘로, 아우라 중 실제로 살아서 저택에 머무는 자는 과연 누구며 펠리페는 어디를 떠돌다 지금의 모습으로, 저택으로 돌아왔는지 궁금하다.<작품해설>을 읽으면 아우라에게 더 다가가게 되지만 나는 그냥 영원한 젊음을 갈구했던 콘수엘로와 그 욕망의 집합체인 아우라, 그리고 아우라를 사랑했던 펠리페를 가끔 다시 만날 생각이다.
<본 도서는 한겨레출판의 서포턴즈 3기 활동 중 제공받았습니다.>콘텐츠 플랫폼 리디와 한겨레출판이 공동 기획한 ‘턴 시리즈‘는 sf, 스릴러, 미스터리 등의 장르 소설을 담은 시리즈이다.시리즈의 여덟 번째로 출간된 ‘마지막 방화‘는 2025년 황금펜상 우수상 수상 작가인 ‘조영주’의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이다.경찰인 함민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방화 충동에 휩싸인다.그 시작은 30년 전 학교에서 단체로 간 대전 엑스포 숙소에서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드럼통에 불을 질러 불길이 거세지자 잠자는 친구들을 구조하고 자신은 1년 동안 학교를 쉴 만큼 큰 상처를 입으면 서다.함민은 자신이 방화 사건의 진범이라는 죄책감과 끊임없는 방화 충동에 시달리며 괴로워하지만, 주위에서는 화마에서 친구들을 구한 영웅으로 칭송한다.경찰이 된 후에도 충동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아 여러 경찰서를 전전하다가 평택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된다.소설은 팀장인 함민을 필두로 한 평택 경찰서 강력 1팀의 동료들이 여섯 건의 살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이다.여섯 건의 사건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소재”로 “추리소설의 여섯 가지 법칙 ‘5W1H‘에 입각해 구성”되었다.(작가의 말 중에서)촉법 소년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층간 소음으로 인한 단순해 보이던 자살 사건을 파헤치다 숨겨진 진실에 접근하게 된다.거기다 동료 형사의 미성년자 아들이 저지른 성추행 사건은 실제로 사회문제로 대두됐던 청소년을 상대로 한 마약 사건의 실체를 보여준다.여섯 가지 에피소드는 실제 뉴스에서 접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어 현실감 있게 느껴졌고 등장인물 개개인의 매력이 돋보인다.특히 어린 시절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괴로워하는 함민을 껴안으며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동료들의 모습은 잔인함이 넘쳐나는 사건 현장에서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을 한다.소설을 다 읽고 에필로그와 인터미션, 프롤로그를 다시 읽으며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방화 충동을 누르고 발군의 수사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가 개인의 능력뿐만이 아니라 드러내지 않고 함민을 믿고 지켜준 이들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진실을 알게 된 함민이 훨씬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속편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본 도서는 서포터즈 모집 이벤트에 당첨돼 길벗어린이에서 제공받았습니다.>어린 시절 어떤 집에서 살았나요?저는 낮은 슬레이트 지붕에 큰 마루가 있고 부엌을 가운데 두고 큰방과 작은방 그리고 광이 있는 위채와 소를 키우던 외양간과 곳간과 작은방이 있던 아래채가 있는 집에서 자랐습니다.아침이면 아버지가 싸리 빗자루로 넓은 마당을 쓰는 소리에 잠을 깼고, 대문이 없는 집은 누구나 편안하게 드나들었습니다.경칩이 지나면 아버지가 수돗가 옆에 있는 꽃밭을 삽으로 뒤집으면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튀어나오기도 했지요.병을 꽂아 경계를 지은 꽃밭에 할머니는 모아두었던 꽃씨를 뿌렸는데 언제쯤 싹이 틀지 매일 들여다봤습니다.이제는 기억 속에만 있는 고향집과 그리운 얼굴들을 떠오르게 하는 <만희네 집>이 30주년 기념판이 새롭게 출간되었습니다.좁은 연립 주택에서 살던 만희네는 동네에서 나무와 꽃이 가장 많은 할머니 댁으로 이사를 갑니다.오래된 물건이 많은 안방과 맛있는 냄새와 이야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 부엌, 그리고 어둡고 서늘한 광이 있습니다.광 위의 장독대를 만들고 뒤꼍에는 가마솥이 있고 앞뜰 화단에는 온갖 꽃들이 가득합니다.어린 시절 만희가 살고 있는 집과 꼭 같은 집에서 살지 않았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고 언제던 친구들을 불러 놀던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아빠 방에서 나던 책 냄새와 엄마 냄새만큼 고소한 이불에서 나는 햇빛 냄새가 어떤 냄새인지 알기에 더욱 그리워집니다.만희네 집 전경이 그려졌던 표지가 30년이 지난 지금의 만희네 집을 그린 2026년 출간 예정인 <만희네 꽃밭>의 한 장면이라 더 의미가 있습니다.좌우 페이지가 180도로 완전히 펼쳐지는 노출 제본의 고급스러움도 좋고 <만희네 집>을 그릴 당시의 작가님 사정과 이야기는 오랜 친구의 안부를 듣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저도 모르게 울렁거립니다.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기에 더 그립고 그리워집니다.흐르는 시간 속에 변하고 잊혔던 시절의 한 자락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그림책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하길 바라봅니다.
<본 도서는 서포터즈 모집 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솔이의 추석 이야기>를 처음 읽을 당시에도 그림책에서 그리고 있는 추석의 모습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낸 추석 이야기였습니다.더 시간이 흘러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 그림책은 이제는 오래된 사진 속 참고 자료로만 만날 수 있는 명절의 모습입니다.추석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고향에서는 가족을 기다리며 음식 준비를 하고 도시에서는 귀향 준비로 정신이 없습니다.부모님과 가족에게 드릴 선물을 고르고 묵을 때도 벗겨내고 이발도 하며 고향 내려갈 날만 손꼽아 기다립니다.이른 새벽부터 버스 터미널은 사람들로 꽉 차 있고 고향을 향해 출발한 버스는 도로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목이 빠지도록 솔이네를 기다린 가족들은 솔이네가 보이자 버선발로 달려 나와 반깁니다.온 가족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맛있는 음식 냄새는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1995년에 초판 발행된 그림책이 30주년을 기념해서 새롭게 탄생했습니다.먼저 눈에 띄는 책 표지는 솔이네가 할머니 댁에 도착하는 그림에서 온 가족이 차례를 준비하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으로 바뀌었고 그림을 활짝 펼쳐 감상할 수 있는 사철 제본으로 바뀌어 편리하고 고급스럽습니다.거기다 30년 기념판을 기념하는 작가의 말이 자필로 수록돼 감회가 새롭습니다.며느리가 음식은 준비하지만, 차례상에 절을 올리지 않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예전엔 당연한 모습이었습니다.그림책이 출간되고 흐른 시간만큼 세상은 변했고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지금과 달라진 모습을 찾아 이야기 나누어본다면 단순한 그림책을 넘어 훌륭한 현대 풍속화로 자리매김했음을 알게 됩니다.글이 중심인 그림책이 아닌 그림을 보는 그림책은 핸드폰도 없고 자가용도 없던 시절 하루 종일 서울에서 내려올 오빠를 기다리던 때로 데려갑니다.고소한 전 냄새가 골목을 채우고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담을 넘던 그 시절, 가진 옷 중 가장 고운 옷을 입고 나와 너나없이 즐기던 시절이 그리워집니다.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명절 풍경을 보며 그리운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봅니다.아무리 그리워해도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에 30주년을 맞이한 <솔이네 추석 이야기>가 더 소중합니다.앞으로도 오래오래 기억되고 사랑받는 그림책으로 남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