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 빨간콩 그림책 31
진서 지음 / 빨간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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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글자 없는 그림책을 꽤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배 깔고 누워서 함께 글자 없는 그림책을 볼때면 글이 없어서 짧게 끝날 것 같지만 그림에 빠져 글자 있는 그림책보다 휠씬 시간이 더 걸리곤 했습니다.
어떤 그림책들은 숨어있는 인물들을 찾느라 소란스러워지기도 했고 글이 없는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해서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게 우스워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담벼락 은 지금까지 보아오던 글자 없는 그림책들과는 다른 느낌의 그림책입니다.
제목만큼이나 답답하고 고립으로 가득 찬 그림책은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실재로 존재하는 문제지만 내 아이에게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외면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학교 폭력입니다.
<담벼락>은 왕따를 당한 아이가 느낄 출구없는 높은 담벼락 앞에 선 아득한 마음과 그 마음을 풀어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담벼락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진 제목입니다.

가방을 메고 웃는 얼굴로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를 가던 아이가 엄마가 보이지않자 고개를 떨구고 계단을 내려갑니다.
슬픈 얼굴로 내내 고개를 숙이고 걷는 아이의 축 처진 어깨가 너무나 안타까워 보입니다.
등굣길 조잘거리는 아이들 속에서도 아이는 고개를 들지않아요.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에게 가방을 맡기기도 하고 밀치고 때리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가버리고 혼자 남은 아이는 우연히 주운 크레파스로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림책을 다 보고 작고 통통한 손으로 야무지게 크레파스를 쥐고 담벼락에 선을 긋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의 그림을 다시 봅니다,
끝까지 이름 붙여지지 않은 아이는 그 자리에 누구나 설 수 있다는 뜻 같습니다.
여러 번 볼수록 이름없는 아이의 절망을 같이 느끼게 됩니다.
다행히 그림책 속 아이는 담벼락에 함께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생기고 폭력을 주동했던 아이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기에 마음이 더 아픕니다.

제가 어렸을때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말하면 어른들은 “고자질쟁이”라고 혼을 내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에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어른에게 말해야 한다고 합니다.
꿈 같은 그림책들만 보다 현실을 보여주는 글자없는 그림책을 보며 고개 숙인 아이의 절망이 느껴져 가슴이 아픕니다.
이 세상 아이들 모두 고개를 들고 친구와 눈 맞춰 웃고 이야기하는 세상은 진짜 꿈일 뿐일까요?

그 꿈을 현실로 만든 수 있는 방법은 어른의 관심과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세심한 눈길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이름 없는 아이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말아야 합니다.
먹빛으로 보이던 세상에 색이 조금씩 나타날때 느끼는 벅찬 감동을 아이들과 보며 긴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 빛은 조금 빨리 세상을 물들일 수 있을 겁니다.

<빨간콩출판사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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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 모든 생명의 시작 - 2018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아름다운 지식 3
브리타 테큰트럽 지음, 이명아 옮김 / 여유당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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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어린이 의 #삶이머무는자리그네 로 알게 된 작가다.
글도 그림도 너무 맘에 들어 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이다.

모든 생명의 시작, 알의 모든 것을 담은 그림책은 가장 쉽게 떠오르는 새의 알은 물론 곤충, 양서류, 파충류, 어류 등의 다양한 알에 대한 이야기다.
알의 형태적인 고찰뿐만 아니라 알의 구조와 내부는 물론 여러 종류의 새의 알을 소개하고 있다.
또 어미 새가 알을 품는 둥지의 모습과 역사와 문화 속에서 등장하는 알들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최고의 장점은 자연과학적 정보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 표현된 그림이다.
알에 대한 지식이야 다른 책에서는 물론 인터넷 검색으로 더 자세하고 많이 찾을 수 있겠지만 아름다운 알 그림은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을 것같다.
알의 아름다움에 대해 새롭게 알게 해 주는 그림책,
반납하기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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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주는 자정 이후에 죽는다
캉탱 쥐티옹 지음, 박재연 옮김 / 바람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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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랄만한 제목의 그래픽노블은 인형을 갖고 물놀이를 하는 소년으로부터 시작한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날, 방학을 맞아 느긋한 하루를 시작하는 아홉살 루루는 수영장에서 놀고 곧 고등학생이 되는 누나는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겨 행복하다.
아빠는 보이지 않지만 엄마 역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같이 놀면 키가 크는 것 같은 요요 형이 오고 누나는 썬탠을 시작하고 아빠가 집에 돌아오자 알수 없는 불안이 잠식해 온다.
루루는 자꾸만 요요 형에게 다가가 요요를 불편하게 하고 누나는 썬탠 중 심한 화상을 입는다.
그리고 아빠는 가족을 떠날 준비를 하고 엄마는 그런 남편에게 아빠의 도리만은 지키라고 말한다.
보통날 같은 여름 날은 작은 균열들이 생기고 끝내 모든 것을 어긋나기 시작한다.

가볍게 시작했던 이야기는 자신의 타고난 정체성을 알아채고 본질대로 살아가기에 대한 것과 아이들에게 숨기고 있는 부부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이라는 개인과는 상관없을 것 같은 사고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게 될 루루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모두에게 중요한 사건이 된다.

너무나 커버린 것 같은 누나의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돈다.

“잘 들어. 우리 루루…앞으로 우리 사는 게 좀 변할지도 몰라,그러니까 이렇게 꼭 서로 껴안고 있어야 해.”

읽는 내내 알마출판사의 <클로드와 포피>가 생각났다.
만약 루루가 우리나라 아홉 살 남자 아이에 이야기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로 탄생했을 것이다.
그냥 태어난 대로 자유롭게 살겠다는 데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루루를 인정해주고 용기를 주는 누나와 엄마의 모습이 진짜 어른의 모습이라 부럽고 아름답지만 그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삶이 녹록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본 도서는 바람북스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도서로 읽고 자유롭게 느낌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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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봄
한연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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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어떤 겨울을 보내고 있나요?
유난히도 길었던 겨울, “봄이 우리를 잊었나 싶을 정도로 차갑고 시린 날” 봄을 찾아 긴 여행을 하던 작은 새는 무리에서 떨어지고 말았어요.
새는 다행히 작은 집 아이의 작은 숨으로 추위를 녹입니다.

작은 새는 아이와 함께 높고 높은 곳에 오르면 만날 수 있다는 봄을 찾아나서게 됩니다.
구불구불 언덕 사이에서 만난 고양이는 포근한 숨을 호오 불어주고 동그라미 숲에 사는 순록에게는 싱그러운 숨을 건네 받습니다.
뽀족 숲 올빼미는 반짝이는 숨을 나누어주고 거친 바위 협곡의 눈표범은 고요한 숨을 담아줍니다.

그림책은 추운 겨울, 아이와 작은 새가 숨어있는 봄을 찾아가는 여정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마 기대와 다르게 둘 앞에 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여러 동물들만 만나게 됩니다.
동물들은 아이와 새에게 자신들이 가시고 있는 여러가지 숨을 나누어주고 지나칩니다.
그림책은 단순히 숨은 봄을 찾는데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아이와 새에게 친구들은 자신이 가진 것 중 어쩌면 가장 작은 숨을 나누어주지만 그 숨은 나중에 눈덩이처럼 크게 커져 봄을 부릅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숨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둡고 차가운 무채색의 겨울을 지나 밝고 따듯한 봄을 만나는 그림책을 보며 추운 겨울을 견뎌보겠습니다.

<문학동네그림책 서포터즈 뭉끄1기 활동 중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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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30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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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미국 대학에서 초급 한국어를 가르치는 청년 문지혁의 이야기다.
200페이지가 안되는 소설은 앉은 자리에서 뚝딱 읽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작가 본인의 이야기와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야기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더 재미있다.

작가의 이름도 문지혁이고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도 문지혁이다.
읽는 내내 백프로 허구인 소설인가 아니면 작가의 이야기인가 궁금했는 데 작가의 말을 읽으며 그 의문이 풀렸다.

나는 소설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소설은 삶을 반영한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소설은 삶보다 작지 않고, (글자 수도 두 배나 많다.) 소설이 삶에 속한 게 아니라 삶이야말로 우리가 부지불식 간에 “쓰고 있는“ 소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우주와 영원히 써 내려가는 거대한 소설의 일부임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소설을 쓴다는 건 일종의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버튼을 누르는 행위이며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과 소설은 둘로 갈라지고 다른 이름으로 저장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사건과 상황은 허구이지만, 동시에 이 평행 우주에 저장된 모든 것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진짜가 아닐 리 없다. ㅡ184p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뱉었던 인사말들의 의미와 나의 곁에 머물거나 스쳤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먼 나라에서 문지혁만 겪었던 일이 아니라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이야기라 더 사무쳤다.
각자의 사는 모습은 다른지만 우리는 살아가고 죽어가는 것, ”중급 한국어“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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