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글자 없는 그림책을 꽤 좋아합니다.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배 깔고 누워서 함께 글자 없는 그림책을 볼때면 글이 없어서 짧게 끝날 것 같지만 그림에 빠져 글자 있는 그림책보다 휠씬 시간이 더 걸리곤 했습니다.어떤 그림책들은 숨어있는 인물들을 찾느라 소란스러워지기도 했고 글이 없는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해서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게 우스워 함께 즐거워했습니다.#담벼락 은 지금까지 보아오던 글자 없는 그림책들과는 다른 느낌의 그림책입니다.제목만큼이나 답답하고 고립으로 가득 찬 그림책은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실재로 존재하는 문제지만 내 아이에게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외면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학교 폭력입니다.<담벼락>은 왕따를 당한 아이가 느낄 출구없는 높은 담벼락 앞에 선 아득한 마음과 그 마음을 풀어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담벼락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진 제목입니다.가방을 메고 웃는 얼굴로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를 가던 아이가 엄마가 보이지않자 고개를 떨구고 계단을 내려갑니다.슬픈 얼굴로 내내 고개를 숙이고 걷는 아이의 축 처진 어깨가 너무나 안타까워 보입니다.등굣길 조잘거리는 아이들 속에서도 아이는 고개를 들지않아요.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에게 가방을 맡기기도 하고 밀치고 때리기까지 합니다.아이들은 모두 가버리고 혼자 남은 아이는 우연히 주운 크레파스로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그림책을 다 보고 작고 통통한 손으로 야무지게 크레파스를 쥐고 담벼락에 선을 긋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의 그림을 다시 봅니다,끝까지 이름 붙여지지 않은 아이는 그 자리에 누구나 설 수 있다는 뜻 같습니다.여러 번 볼수록 이름없는 아이의 절망을 같이 느끼게 됩니다.다행히 그림책 속 아이는 담벼락에 함께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생기고 폭력을 주동했던 아이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기에 마음이 더 아픕니다.제가 어렸을때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말하면 어른들은 “고자질쟁이”라고 혼을 내셨습니다.하지만 지금은 아이에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어른에게 말해야 한다고 합니다.꿈 같은 그림책들만 보다 현실을 보여주는 글자없는 그림책을 보며 고개 숙인 아이의 절망이 느껴져 가슴이 아픕니다.이 세상 아이들 모두 고개를 들고 친구와 눈 맞춰 웃고 이야기하는 세상은 진짜 꿈일 뿐일까요?그 꿈을 현실로 만든 수 있는 방법은 어른의 관심과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세심한 눈길입니다.그리고 누구나 이름 없는 아이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말아야 합니다.먹빛으로 보이던 세상에 색이 조금씩 나타날때 느끼는 벅찬 감동을 아이들과 보며 긴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 빛은 조금 빨리 세상을 물들일 수 있을 겁니다.<빨간콩출판사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