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그린
마리 베네딕트.빅토리아 크리스토퍼 머레이 지음, 김지원 옮김 / 이덴슬리벨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백인으로 사는 거야.”

아프리카계 흑인으로 태어났지만 하얀 피부를 가진 덕분에 평생을 백인으로 살았던 벨 다 코스트 그린의 엄마가 그녀에게 한 말이다.
흑인 최초 하버드대학 졸업생이자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수, 전 하버드 법대 학장, 흑인 평등 주창자 리처드 그리너의 딸로 태어난 벨 그린은 태어나면서 불린 벨 마리온 그리너라는 이름을 버리고 자신의 피부색에 맞춘 새로운 포르투갈인 할머니를 만들어 벨 다 코스타 그린이 된다.

아빠는 자식들이 모두 백인으로 살길 바라는 엄마와의 의견차이로 집을 떠나고 남겨진 가족은 불안에 떨며 백인의 삶을 살아간다.
프린스턴 대학의 사서였던 벨 그린은 J.P 모건에 조카인 주니어스 모건의 소개로 그의 도서관 개인 사서로 일하게 된다.
벨 그린은 교육대학을 나왔지만 누구보다 예술품을 보는 안목이 있어 J.P 모건의 전적인 신임을 얻어 도서관의 모든 일을 처리하게 된다.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본인의 끊임없는 노력과 조력자, 그리고 얼마간의 행운이 결합했을때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치고 그 분야에 일가를 이룬다.
벨 그린 역시 관련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희귀 필사본과 고서적 그리고 예술품을 평가할 수 있는 눈과 그 것들을 구입하는 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그리고 J.P 모건이라는 당대의 재산가의 적극적인 지원과 믿음 덕분에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런 그녀가 성공 가도를 달릴수록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큰 비밀은 그녀를 옥죄어 오고 시시때때로 불안에 떠는 모습은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비슷한 시대를 다룬 넬리 라슨의 ‘패싱”을 읽은터라 그 시대에 밝은 피부색을 갖은 흑인이 종종 백인 행세를 하며 살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벨 그린을 읽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했고 얼마나 큰 불안 속에서 살았는지 자세히 알게돼 마음이 먹먹히 진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위해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원망스럽다가도 그런 선택을 강요한 사회를 생각하면 사랑하는 가족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 역시 안타깝기만하다.
그녀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이용했던 버너드 베런슨에 대한 어리석은 사랑이나 J.P 모건에게 느꼈던 감정이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시대의 어느 여성보다 주체적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한 번의 거짓말도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데 일평생을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벨 그린을 보며 지금의 우리는 과연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있나 생각해 보게 된다.

여전히 인종 차별이 존재하고 성별, 장애,나이, 신분,학력,성적 취향, 국적,종교 등 셀 수도 없는 이유로 다른이와 다름을 인정하지않고 우열을 따져 차별하고 있다.
우리는 100년 전 벨 그린이 살았던 시대보다 더 발전된 사회이지만 여전히 무수한 차별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흐르고 얼마나 많은 교육 받아야 차별없는 세상을 만날 수 있을지 과연 그런 세상이 가능하긴 할까 두려워진다.

🎁좋은 책 선물 덕분에 벨 그린이라는 멋진 여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덴슬리벨 출판사에서 선물 받은 책이지만 자유롭게 읽고 느낌을 적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3년에 쓰여진 소설은 근 미래인 202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극심한 기후 변화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부랑자가 되거나 장벽안에 공동체 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주인공 로런은 목사의 딸로 언젠간 공동체를 벗어나 북쪽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실종되고 가족은 마약 중독자들에 의해 살해 당하고 공동체는 해체되고 만다.

와해된 공동체를 뒤로 하고 북쪽으로 향하는 여정은 함난하기 그지 없다.
강도들을 항상 경계해야 하고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애도보다 먼저 노획물을 챙겨야 하는 그들의 모습이 당연해서 더 처연해 보인다.
이동 중 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과 일행이 되어 막연한 북쪽이 아닌 일행인 반콜레의 농장에 정착하기로 한다.

대부분 백인 남성 작가의 전유물이던 sf소설계의 개척자였던 작가의 이력만큼이나 로런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초공감증후군’과 어린 흑인 여성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는 주인공은 버틀러가 사회에서 느꼈던 부당함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소설의 전반에 등장하는 지구종은 주인공이 창시한 종교이다.
그렇다고 하느님을 배척하거나 어떤 종교적 행위를 하는 건 아니다.
<변화>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고 수없이 말하고 있을 뿐이다.
로런은 어린 소녀이다.
하지만 이동하는 자들의 선두에 서고 리더가 되어 결정하고 일행을 보호한다.
그녀가 가진 어떤 약점도 그녀를 막지 못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초공감증후군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에게 그대로 느껴지는 증상으로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그러나 로런은 자신의 약점을 이겨내며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습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소설의 읽은 내내 #코맥매카시 의 #로드 가 생각났다.
희망이 담보되지 않은 끝없는 여정과 그러함에도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의 사랑이 닮은 모습이었다.
이 고난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사랑과 변화뿐이지 않을 까 생각해 본다.

디스토피아 소설은 언제나 우울하다.
아무리 생각 거리를 많이 남겨줘도 전개가 빠르고 재미있어도 재미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읽어보시기를 권해 본다.
마지막 책 장을 덮으며 부디 그들의 심은 떡갈나무가 숲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더 이상의 떡갈나무를 심지 않기를 더불어 바라본다.

📚그대가 손대는 모든 것을
그대는 변화시킨다.

그대가 변화시킨 모든 것은
그대를 변화시킨다.

변치 않는 진리는 오로지
변화뿐.

변화는 곧
하느님이다.

📚 자유는 위험하지만 소중한 것이기도 해. 그냥 내팽개치거나 저절로 사라지게 놔두면 안 되는 거라고. 빵과 수프를 대가로 자유를 팔아넘겨선 안 돼.(p214)

📚올리버 주민들이 지금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스스로를 팔려고 안달하는 날이 오면,아직 망하지 않고 버티던 도시들은 돈으로 도시를 살 만큼 부유한 집단의 경제 식민지로 전략하고 말걸.(p225)

📚 불이 붙을 만한 것은 모조리 땔감으로 썼으니까.재활용하거나 팔 만한 것도 죄다 주워갔다.코리가 전해 해준 말이 있다.’빈곤 덕분에 길거리가 더 깨끗해졌단다.’(p269)

📚 공감은 곧 약점이자 수치스러운 비밀이다. 내 정체를 아는 사람은 나를 다치게 할 수도,배신할 수도,손가락만 까딱하는 정도로 망가뜨릴 수도 있다.(p3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한 번의 계절을 지나
아오야마 미나미 지음, 최윤영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중학교 3학년때 고양이를 구해준 뒤 자신을 신이라고 말하는 고양이에게 “시간을 되감을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 능력은 사용하게 되면 되감은 시간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수명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다.

‘나’는 첫사랑인 미노리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며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아내가 뜨거운 커피를 쏟는 순간 5초 쯤 사용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결혼 3년 째 미노리가 갑자기 사망하게 되고 그 원인이 11년 전 체육시간에 벌어진 일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미노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시간을 되감아 11년 전인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11년을 되돌리면 ‘나’는 그 시간의 다섯 배인 55년의 수명이 내놓아야 하지만 한치의 망설임없이 중학교 시절로 시간을 돌려 미노리를 만나게 된다.

소설은 프롤로그에 미노리의 결혼 장면과 결혼 상대의 이름이 나오지만 시점을 변화를 주어 마지막에 독자들을 놀라게 한다.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하는 가는 다르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나 평행 세계를 소재로 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이미 많이 있다.

대부분의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돌아간 시간 속에서 대단한 모험과 위기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이 11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모습은 풋풋한 첫사랑처럼 가볍고 행복하고 유쾌하다.

소설 속 중.고등학교 시절이 지루해질때쯤 만나게 되는 반전은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55세의 수명을 덜어낸다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수명을 지키는 선택을 할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 ‘나’는 시간을 되감는 선택을 하고 진정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어준다.

📚 태어나줘서, 고마워.
내게 살아갈 의미를 줘서,고마워.
부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영원히 행복하기를.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나는 널 좋아할 거야.(p231)

사랑을 함께 하며 이루는 것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상대가 진정으로 행복해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게 사랑이라는 진리를 새삼 느끼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받은 책입니다.
덕분에 연말과 잘 어울리는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소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랑과 나의 사막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3
천선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길지 않은 소설을 읽고 “그리움”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

49세기 지구는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바다와 사막만 존재하는 행성이 된다.
그곳 사막에 사는 랑과 로봇 고고는 서로에게 모두고 전부다.

기능이 정지된 고고를 다시 깨운 랑의 죽음 뒤 고고는 존재의 목적마저 사라져 버리지만 랑이 가고 싶어 했던 ‘과거로 가는 땅’을 찾아 길을 떠난다.
마음이 없을 것 같은 로봇 고고는 매 시간 랑을 그리워하며 그에 대한 기억을 재생한다.

고고를 따라 가는 길은 모래에 푹푹 빠지고 폭풍이 몰아치지만 마음만은 따스해진다.
분명 편하고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랑이 존재하는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이야 말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임은 애써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천선란 작가의 소설은 분명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촛불처럼 희망 하나, 따스한 마음 하나를 가질 수 있어 책을 덮고 나서도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인간이면서 인간의 마음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을 꼭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기억 지우개 - 지워지지 않을 오늘의 행복을 당신에게
이정현 지음 / 떠오름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는 오랜만에 남편이랑 작은아들과 함께 밖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시험 기간이라 아들이 카페로 공부하러 간다기에 각자 제 갈길로 갔습니다.
저는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어중간해 도서관에 들러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휴무일이라는 팻말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커피라도 한 잔하고 헤어질 것 했습니다.

아들이 보내준 쿠폰으로 산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혹시나 몰라 가방에 넣어두었던 책을 꺼내읽었습니다.
젊은 작가의 글은 아직 맛이 덜찬 과일처럼 시큼하기도 하고 떫기도 합니다.
그리고 솔직하기도 합니다.
사계절을 지내며 쓴 작가의 이야기는 사랑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작가는 애써서 찾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전단지 스티커를 보면서 자신을 필요로 해 찾는 누군가를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을 허투루 보지않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 눈을 가진 작가는 홀로 세워진 자전거에서도 계절을 잊고 피어난 장미 한 송이에서도 누군가를 떠올리고 인생을 생각합니다.
글을 읽으며 고개를 들어 카페밖 풍경을 봅니다.
도심 속에 있는 카페라 별 볼 것 없는 풍경이지만 겨울의 어디쯤에 와 있는 나무와 사람들의 발걸음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카페를 나오며 눈길을 낮추며 계절을 잊은 꽃 몇 송이를 찾았습니다.
삭막하게 보이던 세상이 조금은 색을 품고 있는 것 같아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문득 내 인생에서 스쳐 지나갔던 인연이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먼저 마음을 쓰는 게 손해라고 생각했던 시절을 지나니 온 마음을 다해 베푸는 좋은 사람이고 싶어집니다.
작가는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인데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따듯한 젊은 작가의 글을 읽을 기회를 주신 떠오름 출판사께 감사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