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타 이슬라
하비에르 마리아스 지음, 남진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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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그녀는 남편이 진짜 자기 남편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소설의 첫문장이다.


언어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영국인이자 스페인인 토마스 네빈슨은 영국 유학을 떠났다가 그 곳에서 살인 사건에 연류된다.
범인으로 몰린 위기에 처한 토마스는 비밀정보국과의 거래로 외교부 직원으로 위장해 비밀정보요원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사랑하던 베르타 이슬라와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비밀정보요원으로 활동하게 되고 베르타는 남편이 단순히 출장으로 여러 날 집을 비운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남편이 없는 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베르타와 아들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베르타는 남편의 진짜 정체를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토마스는 직업 특성상 가족에게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말할 수 없게 되면서 부부는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던 중 1982년 4월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하자 토마스는 작전을 위해 집을 떠나게 되고 12년 동안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

7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은 굳이 세계사를 다시 되짚어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스페인의 역사를 포함한 냉전시대의 세계사를 자세히 안다면 휠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소설은 여주인공 베르타 이슬라가 토마스의 실종 후 겪는 혼돈이 주가 되어 실종된 토마스 행적을 따라 가며 진행된다.
소설을 읽으며 과연 토마스와 베르타는 진짜 사랑하는 부부가 맞았을까 여러번 반문하게 된다.
베르타는 남편의 죽음을 확신하지 않으면서도 무작정 기다리는 모습이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기도 하고 아주 오래전 단 한번 만났던 남자를 만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토마스 역시 숨어지내던 곳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 딸까지 낳는다.

어쩜 그들의 결혼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운명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지면서도 결혼을 하고 자신을 다 드러내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처음부터 억지로 꽤맞춘 관계가 아닌가 싶다.
결혼한 부부는 알게 모르게 비밀을 갖고 살아가지만 자신의 존재자체를 말할 수 없는 이와는 절대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쫄깃한 스파이 소설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진정한 부부의 의미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품게 하는 이야기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어떤 일을 하는 지도 말할 수 없는 배우자라면 제대로 결혼 생활은 유지할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와 함께 처음엔 이유도 모른체 혼자 남겨진 베르타가 불쌍하더니 토마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국가에 의해 이용만 당하다 용도폐기된 토마스가 젊은 날이 한없이 불쌍해진다.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말 중 두고두고 읽고 반성해야 될 문장을 옮겨적어본다.

정치인들은 가끔은 사악하고 비집하고 분별력도 없는 민중을 절대로 비판하지 않는다. 민중을 나무라는 법이 없으며 절대로 그들의 행동을 힐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칭찬할 것이 전혀 없는데도 언제나 변함없는 칭찬 일색이다. 민중은 절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며,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전황했던 과거의 군주를 대신하고 있다. 한마디로 왕들과 마찬가지로 민중 역시 아무리 경솔한 것을 해도 벌을 받지 않는 특권을 가졌다. 누구에게 투표하든, 누구를 뽑든, 누구를 지지하든 하등의 책임을 지지않는다. 입을 다물었던 것에 대해서, 동의한 것에 대해서, 강요했거나 요구했던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스페인의 프랑코주의,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나치즘은 과연 누구 잘못인가? 소련의 스탈린주의. 중국의 모택동주의 또한 누구의 잘못이라고 해야 할까? 민중은 단 한 번도 책임지지 않았고, 언제나 피해자 행세를 하며 벌도 받지 않았다.


🎁소미미디어 소미랑2기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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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평생 전학생으로 사는 운명이니까
케이시 지음 / 플랜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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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글로 남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 인문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자신에 대해 글 써보기라는 과제가 있었고 본인의 글을 사람들 앞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읽으며 눈가가 촉촉해졌고 듣는 사람들도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매운 맛의 그의 소설 ‘네 번의 노크’와 ‘대지와의 키스’를 후덜덜하게 읽었던터라 에세이 또한 강한 맛을 생각했는데 작가는 생각보다 휠씬 가까이에 있었다.
스스로 망했다고 말하는 경험과 아버지의 죽음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남은 작가는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며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결국 “우리는 평생 전학생으로 사는 운명이니까!”가 당첨 됐다. 자의, 타의에 의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자는 뜻으로 정한 거라 제목 후보들의 의미를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니까. 내가 전학을 가기도, 다른 친구가 전학 가는 모습도 지켜 보며 사는 게 인생이니까. (p23)

📚지나 보면 가장 힘들었던, 겨울이라 생각했던 어리고 서툴렀던 때가 봄이었다.시간이 더 지나서 지금을 돌이키면 지금도 봄이지 않을까? 길게 보면 난 언제나 봄에 사는 것이었다. (p183)

300페에지가 넘는 작가의 글을 단 몇 줄로 요약할 수 없지만 글을 읽는 내내 나를 좀 더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않았다.
우선 물건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핸드폰을 두고 산책을 나가는 일부터 실천해봐야지 싶다가도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어 멈칫해지지만 나를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은 다시 한 번 다잡게 된다.

🎁작가가 아닌 나와 다름없는 케이시 작가님을 만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건승하셔서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도서는 작가님이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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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시간표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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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훌륭하다. 현실과 환영이 뒤섞이는 환상 괴담.. 정보라는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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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고양이 식당, 추억을 요리합니다 + 고양이 식당, 행복을 요리합니다 - 전2권 고양이 식당
다카하시 유타 지음, 윤은혜 옮김 / 빈페이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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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바닷가의 ‘고양이 식당‘은 세상을 떠난 이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자리가 여덟 개 밖에 없는 작은 식당은 세상을 떠난 이와의 추억이 깃든 <추억 밥상>을 주문하면 음식이 식기 전까지 그리운 이를 재회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 식당 추억/행복‘에는 모두 8편의 연작단편이 실려있습니다.
각자의 사연과 각자의 추억 음식을 주문하는 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부모님의 자랑이었던 오빠가 자신을 대신해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고토코는 오빠와의 추억이 가득한 쥐노래미 조림을 예약합니다.
그리고 오빠를 만나 오빠가 전하는 말을 듣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첫사랑 소녀에게 모진 말로 성처를 줬던 소년은 달걀말이 샌드위치와 호박 수프를 먹으며 소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병이 깊은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추억이 있는 땅콩밥을 주문합니다.

오랜 시간 남편을 기다린 고양이 식당의 여주인과 아버지를 그리워한 아들의 음식 ’스키야키 덮밥‘은 음식에 얽힌 사연과 남편을 그리워하는 염원이 사무쳐 고양이 식당의 기적을 만든게 아닌가 싶습니다.
’행복‘편에서는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영업을 재개한 식당에 불치병으로 5년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나기의 추억의 음식인 ’두부 된장 절임‘이 소개됩니다.
나기의 이야기는 진정한 사랑에 대해 꼽씹어보게 합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교통 사고로 아들을 잃고 이혼한 부부가 주문한 ‘어제 먹은 카레’의 사연입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마음을 다 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부모라면 짐작할 수 있는 감정이라 마음이 아파옵니다.
지바현에 위치한 고양이 식당이라 이야기 시작 전에는 식재료로 사용된 지바현의 특산물이 소개되고 뒷편에는 주문한 음식의 레서피가 실려있습니다.
표지에서 느낄 수 있듯 마음이 따듯해지는 이야기들입니다.
일본 요리는 잘 모르지만 소개된 음식이 어렵지 않아 한 번 시도해 봐도 될 듯합니다

뭔가 다 알고 있는 듯한 귀여운 고양이 ‘꼬마’와 꽃미남 요리사 ‘가이’씨, 친절한 아르바이트생 ‘고토고’가 있는 고양이 식당에 간다면 저는 할머니가 해 주신 고구마줄기를 듬뿍 넣은 짭쪼롬한 붕어찜을 주문하고 싶네요.
아무말도 할 필요없이 할머니를 한 번만 만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저는 주부가 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칭찬에 인색한 남편과 식욕이 별로 없는 아들들 덕분에 별로 요리에 신경쓰지 않고 살았습니다.
문득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 아들들이 엄마를 그리워할 음식이 없다는 생각에 듭니다.
지금이라도 엄마만의 레서피로 만든 요리를 만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양이 식당 시리즈는 일본에서는 이미 6권까지 출판됐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나머지 이야기도 얼른 번역되길 바라봅니다.
가이와 고토고의 사이는 어떤 변화를 맞게 될 지 그리고 ‘꼬마’는 어떤 이유로 손님이 세상을 떠난 이와 재회할때 함께 할 수 있는 지 궁금증이 풀리길 기대합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사연이 있는 요리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에서 진행한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빈페이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마음이 따듯해지는 책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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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
앨리스 피니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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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과 어밀리아의 결혼 생활은 부부 상담사를 찾아갈 정도로 평탄하지 않다.

시나리오 작가인 애덤과 유기견 보호소의 직원인 어밀리아 부부는 크리스마스에 직원 대상 주말여행추첨 행사에 당첨된 여행권으로 스코틀랜드의 오래된 예배당으로 주말여행을 떠난다.

주거지로 리모델링된 예배당은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그들 주위에 알 수 없는 존재가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설상가상으로 물과 전기도 쓸 수 없게 되고 밤새 내린 눈으로 부부는 외딴 예배당에 고립되고 만다.

 

자신의 창작물은 아니지만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한 애덤은 안면실인증으로 사람의 얼굴을 구별할 수 없다.

부인인 어밀리아마저도 얼굴이 아니라 향수, 목소리, 손의 감촉만으로 알아본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애덤은 안면실인증으로 자신이 어머니의 교통사고의 목격자지만 범인을 식별할 수 없었다는 죄의식을 오랫동안 갖고 살아간다.

 

소설은 애덤과 어밀리아, 그리고 애덤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로빈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현시점은 애덤, 어밀리아, 로빈을 통해 풀어가고 과거의 부부의 결혼 생활은 애덤에게 결혼기념일마다 쓴 부치지 못한 편지로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결혼 생활에 권태기를 맞아 여행을 떠난 두 부부 앞에 살인마가 등장할 것 같던 이야기는 휠씬 더 큰 반전으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한다.

 

작가인 앨리스 피니2017년 데뷔한 후 여섯 권의 소설을 집필했고 가위바위보는 넷플렛스TV시리즈로 영상화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엔 처음 번역된 그의 소설은 트위스트의 여왕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여러 번의 숨은 반전으로 독자를 놀라게 한다.

반전이 밝혀지면서 어디서부터 잘못 읽었나 싶어 앞부분을 다시 읽으며 작가가 충분한 힌트를 제공했음을 알게 된다.

너무 익숙해져서 편안한 부부가 겪는 권태기와 남편을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비밀을 숨기고 살 수 밖에 없었던 부인의 이야기는 부부 관계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보게 한다.

 

겨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한여름 더위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했고 나의 오랜 책태기를 몰아내는 데도 한몫했다.

부디 작가의 다른 책들도 번역되어 변화무쌍한 전개와 반전 넘치는 스릴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밝은세상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도서입니다.

별 다섯 개로는 부족한 스릴 넘치는 이야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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