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무서워, 안 무서워, 안 무서워
마사 알렉산더 지음, 서남희 옮김 / 보림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실제의 자신의 모습보다 좀 더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고 어른스러워하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다.

어른들 눈에는 뻔히 보이는 데도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는 아이의 속내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말하고 있는 내용과 속마음은 정 반대라는 걸 알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아이는 여러 번 “안 무서워”를 반복하고 있지만 사실은 작아지는 글자 크기만큼 무서움은 커지고  자신감은 점점 작아짐을 느낄 수 있다.

잠옷차림의 한 아이가 곰돌이와 함께 숲을 지나고 있다.

애써 태연한 척, 용감한 척, 아이는 곰돌이를 지켜주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이는 혼잣말로 곰돌이를 위로하고 스스로에게 용감해지는 주문을 외우듯 무서운 상대가 나타날 때의 대처법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리고 무사히 자신의 침대에 들어가고 편안한 아침을 맞게 된다.


누구나 무서운 존재는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어린이의 경우는 어른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스스로 그 공포를 이기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이겨내기도 한다.

아이는 작은 곰 인형을 위로하며 어둡고 무서운 숲을 헤치고 나오지만 실은 작은 곰 인형에게 큰 위안과 용기를 얻으며 두려움을 이겨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언제 어디서나 예고 없이 공포와 두려움이 찾아오곤 한다.

아이가 곰돌이를 의지해 어둠을 뚫고 자신의 아득한 침대에 누웠듯이 우리 아이들에게 찾아오는 두려움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야기 도둑 초승달문고 11
임어진 지음, 신가영 그림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 잠자는 것도 잊고 이야기 한자리 더 해달라고 조르면 할머니는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해 진다는 말을 끝으로 이야기를 끝내곤 하셨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이야기 좋아하다 가난하게 될 걱정은 까맣게 잊고 다른 이야기를 조르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힘든 농사일에 피곤하기도 했고, 이야기가 화수분처럼 솟는 것도 아니니 매일 밤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는 게 할머니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게다.


그런데 여기 매일매일 새롭고도 신기한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설아기가 살았으니 무슨 재주가 있는 지 누구라도 동무 삼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잘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설아기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까치, 쇠똥구리는 물론 담 넘어 텃밭 가에 울콩들, 업구렁이, 우물가 바가지랑 부엌 부지깽이까지 이야기를 들으려 들썩거렸다.

하지만 부모만은 설아기가 이야기 잘 하는 게 못마땅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나라는 임금님 이야기 딱 하나만을 좋아하는 임금님 때문에 이야기꾼 설아기에게 해가 갈까봐서다.


부모는 도대체 어디에서 딸아이가 이야기를 듣고 오는지 궁금하지만 도통 알 수가 없자 자고 있는 설아기를 지키게 된다.

그런데 설아기에게서 이야기를 물어오는 흰쥐 한 마리가 나오고 부모는 흰쥐를 죽여 버린다.

이젠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아 평안할 거라 기대했던 딸은 기운 없이 시름시름 앓기만 하고, 잘 먹지도 자지도 않아 몸은 야위어만 가고 정신까지 놓아 버리고 만다.

거기다 이야기가 사라져버린 마을은 흉흉해져만 간다.

다행히 죽은 흰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듣게 된 설아기는 임금님의 이야기 궁이 있다는 서쪽 땅 끝으로 향한다.


어떤 이야기는 소리 내어 읽을 때 그 재미가 배가되는 경우가 있다.

이야기 도둑 역시 그런 축에 드는 이야기로 중간에 읽는 걸 멈출 생각으로 읽기 시작한 이야기는 아이들의 성화에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어줘 버린 책이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처럼 입에 착 붙는 입말은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이야기와 잘 어울려 읽어주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절로 이야기 속에 빠져 들게 한다.

사실 이야기는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들이다.

사람 몸속에 살다 잠이 들면 나온다는 혼쥐 이야기나 이야기궁을 찾아가며 겪는 고초들과 그때마다 누군가 등장하여 설아기를 돕는 이야기는 낯익은 장면들이다.

거기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이야기 궁에서도 시련이 기다리고 있고 뛰어난 지혜로 무사히 넘기는 것도 특별한 것 없는 이야기다.


이렇게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집중해서 듣고 좋아하는 이유는 친숙함에서 오는 편안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전래동화 속에 등장하는 영웅담과도 닮아있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저승세계를 다녀왔던 바리데기 이야기와도 비슷하기에 아이들은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얼마나 비슷한지 궁금하기도 한 모양이다.

힘이 세고 키가 큰 건장한 어른이 아닌 작고 여리고 재주라고는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인 설아기를 따라가다 보면 없던 용기까지 불쑥 생기니 아이들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부모에 눈엔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보이던 이야기 재주가 온 세상을 구하는 걸 보며 혹시 나는 내 아이만이 가진 재능을 그렇게 하찮게 보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문득해보게 된다.  

세 번째 혼쥐를 몹쓸 것으로 치부해 버려 죽이는 설아기의 부모나 그저 이 세상에 인재가 되는 것과는 먼 재주를 지녔다는 이유로 아이만이 가진 능력을 밟아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설아기에게는 이야기 도둑 쥐가 살듯이 과연 우리 아들들에게는 무슨 도둑 쥐가 살고 있을까나 하고 뒷이야기가 한참 길어진 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땅 시스란 파우더 팩트 - 20g
예미지화장품
평점 :
단종


 

나는 화장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별로 부지런하지 않기도 하지만 화장을 잘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이다.

특히 색조화장이라는 걸 잘 못해 눈썹 그리고 입술 칠하는 걸로 화장을 마무리하는 게 화장 끝이니 피부라도 자연스럽게 정리하려고 노력한다.


요즘은 나이인지라 세수하고 바로 스킨, 로션을 바르지 않으면 얼굴이 땅기고 까칠하다.

거기다 겨울이니 푸석하고 까칠한 얼굴에 신경을 쓰다 보니 좀 바르는 게 많아 졌다.

스킨->로션->아이크림->에센스->영양 그림까지 발라주신다.

이렇게 바르면 피부는 촉촉하고 좋은 데 얼굴이 심히 번들거리게 되는데 그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얼굴이다.

그래서 고른 게 파우더 팩트다.

 

SISRAN(시스란)이  SKIN(피부)+INSURANCE(보험)의 합성어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피부를 간직하고픈 여성에게 주는 웰빙 화장품이라니 한 번 믿고 두드려 보았다.

먼저 용기를 살펴보자면 내 얼굴을 다 비춰볼 수 있을 정도의 큰 거울과 용기에 부착되어 잇는 안쪽의 뚜껑이 맘에 든다.

저번에 섰던 팩트의 따로 떨어져 있어 나중에는 어디로 간지 모르게 없어진 경험이 있어 붙어 있는 게 참 맘에 든다.


칙칙한 피부를 숨기기 위해 파운데이션 살짝 바르고 톡톡 몇 번 두드리면 피부의 번들거림은 사라지고 뽀얗고 잘 정돈된 피부가 등장한다.

두껍지 않고 피부에 착 밀착되는 게 자연스러운 화장으로는 그만이다.

거기다 화장이 오래가는 편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내 놓은 얼굴은 따뜻한 실내로 들어가면 그 번들거림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데 살짝 두드려만 줘도 뭉치지 않고 다시 뽀송뽀송해진다.

향기도 진하지 않아 아마도 오랫동안 사랑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싸기대장의 형님 네버랜드 꾸러기 문고 1
조성자 글, 김병하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큰 애가 어느 날 묻는다.

“엄마는 왜 애기만 좋아해?”

항상 둘에게 공평한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뭔가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큰 아이가 말하는 애기는 제 동생, 둘째 아들을 칭하는 말이다.

이름보다는 ‘우리 애기’로 불리는 둘짼 정확히 큰 애와 25개월 차이가 난다.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 아이에서 곧바로 형이 되어야 했던 큰 아이는 엄마가 저보다는 동생을 더 많이 사랑하고 아낀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1학년인 기훈이는 이제 3개월 된 동생 기영이가 밉기만 하다.

모든 관심은 기영이에게 쏠려있고 누구도 자기에겐  관심도 없다.

어느 날 엄마가 잠깐 집을 비운 사이 기훈은 우는 동생에게 우유를 먹이게 되지만 탈이 나고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병원을 가게 된다.

모든 게 서럽고 무서운 기훈은 할머니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지만 그만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된다.

이야기의 끝은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의 진심과 형의 의젓함까지 보이는 기훈을 만날 수 있다.


동생이 태어난 뒤 변화된 환경 속에서 자신이 더 이상 사랑 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아이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동화는 큰 애가 먼저 읽고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 준책이다.

기훈 엄마의 말처럼 나도 아이에게 아직 애기니깐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큰 애는 억울해 했고, 자신은 어린 시절을 기억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고 했다.

그 뒤 의식적으로 큰 아이에게 눈길이라도 한 번 더 주고, 더 안아 주고 있다.

큰 애 입장에서는 둘째는 굴러 온 돌일 것이다.

항상 큰 아이가 느낄 억움함(?)을 헤아려 준다면 강요하지 않아도 자신이 사랑 받고 있는 걸 알게 됨과 동시에 멋진 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다운 옛 서울 - 진경산수화 3 보림한국미술관 10
박정애 지음 / 보림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한 번도 서울을 찬찬히 둘러 볼 기회를 갖지 못한 나에게 서울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한강, 남산, 궁궐, 63빌딩, 청계천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대답을 할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이지만 한편으론 복잡하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사람 살기 녹녹치 않은 곳인 서울도 예전엔 유유히 한강물이 흐르고 남산에는 소나무가 푸르렀던 시절이 있었고, 언제나 정신없이 바쁘고 복잡했을 것 같은 서울도 몇 십 년 전엔 지금과는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나라의 중심이었던 서울은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옛 서울의 대한 기록뿐만이 아니라 옛 조상들의 추억까지도 만나게 해준다.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미술 작품 앞에서 주눅이 드는 건 그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모르기 때문이다.

보림 한국 미술관 시리즈는 이렇게 그림 앞에서 주눅 들고 쩔쩔매는 독자에게 그 것도 모르냐는 핀잔 대신 작은 것 하나까지 세세하게 설명하는 친절을 보이고 있다.

작년에 여러 번 갔던 담양의 소쇄원을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다시 갔던 적이 있다.

뭐 새로울 게 있으랴 싶어 시큰둥했던 기행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고 새삼스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무심히 박물관에 걸린 그림들을 아무 설명 없이 눈으로 보고 지나치는 것과 설명을 곁들이며 보는 것은 천지 차이일 것이다.

쉽게 설명되어진 글은 그림에 숨은 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해 어렵고 고리타분하기만 하던 옛 그림이 아닌 조상의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그림으로 다가오게 해 준다.


가장 먼저 소개된 경도는 회화식 서울지도로 지금의 기호를 이용한 지도가 아닌 그림지도와 많이 닮은 모습이다.

각각의 특성을 잘 살린 산봉우리들과 한강, 산성들까지 자세히 표시해 두어 기록과 함께 진경산수화의 멋까지 볼 수 있다.

또한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보고 있노라면 70대 중반의 노화가의 힘찬 붓질과 속도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드라마에서나 봤던 구중궁궐을 그린 동궐도는 그 세밀하고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그림에 감탄하게 된다.

그 시대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가교보월’과 담담정 아래 빨래하는 아낙들이 등장하는 ‘담담장락도’는 친근하기까지 하다.

거기다 정조임금님의 배다리를 그림 ‘한강주교환어도’를 보고 있노라면 쉽게 볼 수 없었던 임금의 행차와 그 진귀한 모습에 한껏 들뜬 백성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 오는 듯하다.


나는 현재의 서울 곳곳을 모르니 과거의 그림 속에서 지금의 서울을 비교해 볼 수도 없고 기억해 낼 수도 없다.

단지 너무 크게 변화한 서울의 모습과 그림 속의 서울의 모습이 같은 곳을 그렸다는 사실이 연결되지 않을 뿐이다.

한강의 배를 띄우고 시를 짓던 조상들과 그 한강을 삶에 터전으로 살았던 조상들이 공존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너무 빨리 변하는 도시의 모습에서 우리는 너무 크고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느리고 찬찬히 가는 것 같아 불안하다면 마음 한 구석에 옛 서울의 그림 한 장 걸어두어 여유를 찾는다면 인생 그리 어지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