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나면 작은 틈만 나면 태어나는 풀들의 이야기입니다.매일 지나는 길에 언제 싹이 나고 언제 잎이 난지도 모르게 어느 날 불쑥 나타난 듯한 풀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회색빛의 콘크리트 도시의 한 구석에 끈질긴 생명력으로 꽃을 피우는 풀들을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소중한 존재로 보게 됩니다.한 줌의 흑과 하늘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남는 풀들에게서큰 위로를 받게 됩니다.글이 짧아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림책,앞으로 보도 블록사이에 자란 풀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용과 호랑이 태몽을 꾸고 곽용호란 이름을 얻은 용호는 삼수 끝에 4년제 인서울에 간신히 들어갔지만 졸업 후 직업도 없고 스무 아홉이 되고도 여전히 유명 드라마 작가인 엄마 곽문정에게 얹혀산다.어려서부터 엄마의 명성에 늘 가려사는 용호는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무위도식하고 있다.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신작 드라마 집필을 앞두고 연기처럼 사라지고 엄마의 수족이자 드라마 피디인 오혜진이 은밀한 제안을 한다.엄마없이 살길이 막막한 용호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고등학교 문학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한 옛 연인 함장현과 함께 엄마의 대본을 대필하게 된다.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엄마가 사라지고 오혜진과 곽용호, 함장현이 엄마가 조사한 자료로 드라마 대본을 쓰는 이야기와 엄마를 찾아나선 광혜암에서 용호가 모르고 있던 엄마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곽용호는 어른 된 후에도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던 엄마의 고단이나 수고로움을 이해하려하지 않는다.그저 엄마는 자신의 욕심때문에 일에만 열중했고 어린 용호를 돌보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엄마의 모든 것을 폄훼한다.그리고 자신의 현재의 모습은 모두 엄마탓이라고 생각한다.곽용호는 모든 잘못은 미혼모인 엄마탓이라고 생각하지만 한 번도 생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이 세상에서 미혼모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나이가 되고도 여전히 엄마를 원망하고 엄마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용호가 광혜암에서 만난 여자들의 모습은 가족을 위해 모든 힘을 쏟다 늙고 기력이 쇠해진 엄마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그 곳 여자들의 병이 가장이 되어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고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다가 자식이 장성한 후 쓰임이 다한 순간 걸리는 병증같아 마음이 아프다.<그렇다.이 병증의 가장 특이한 점 중 하나는 타인을 보살피는 신체 능력을 잃지 않지만 자신을 위하는 방법은 까맣게 있는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에게 입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처럼 사람들은 제 손에 든 수저를 자기 입으로 넣지 못하게 되었다.> p159~160가족이라고 누구나 같은 모습은 아니다.아직도 엄마가 필요한 나이에 머물러있는 듯하던 용호가 드디어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엄마를 이해해 가는 모습을 보며 조금만 더 일찍 엄마를 이해했더라면 곽용호도 엄마도 더 행복해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그래도 용호가 광혜암 사람들과 어울려 이름값을 하는 결말은 얹힌 것 같은 속을 조금은 풀어준다.<도서는 밝은세상 출판사에서 선물 받았습니다.>
성산을 중심에 둔 도시에서 벌어지는 기괴하고 기이한 미스터리 소설집이다.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격인 ‘시작의 끝’과 ‘끝의 시작’을 포함해 10편의 단편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된다.각 단편은 개별적인 이야기가 되기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긴 장편을 한 편 읽은 기분이 드는 소설이다.각각의 단편은 ‘나’라는 각기 다른 화자가 등장하고 각 단편에 등장인물들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인 ‘땅거미 지는 초저녁.비사문의 언덕’에 등장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나(교코)는 ‘취부용’과 ’밤의 트로이‘와 ’끝의 시작‘에도 직간접적으로 등장한다.소설에 등장하는 ‘나’는 물론 등장인물들 역시 대부분 사회적 약자이거나 여성들이다.선생님을 사랑하는 ‘나’, 남편의 범죄에 연류된 ‘나’, 젊은 시절 자식에서 충실하지 못하고 살다 병에 걸린 ‘나’, 남편의 외도에도 참고 사는 ‘나’……남자 친구에게 폭력을 당하는 여자, 부모를 잃고 친척에서 학대 받는 아이, 유부남에게 속아 아이를 낳은 여자,손주를 잃은 할머니 등등가여운 아이가 만들어낸 상상의 동물의 등장이 뜬금없긴 하지만 그 것이 없다면 그들의 죄를 누가 단죄할 수 있겠는가?한정된 공간인 성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 세상의 슬프고 가슴 아픈 사연들을 다 모은 듯하다.“끼릭끼릭끼릭끼릭” 트로이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세상은 영영 볼 수 없는 건지.‼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매 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적어보는 게 좋을 듯 하다.그래야 어떤 이야기 속 인물과 상관 관계가 있는 지 알 수 있어 휠씬 재미있게 읽을 듯하다.️
결혼을 해서 남매를 두고 인생의 절반을 경찰로 산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남자인 마르틴 베크가 주인공인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가 <로재나>이다.<마르틴 베크>시리즈는 1960년 대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 범죄소설로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가 공동 작업하여 10권으로 완성한 시리즈다.스웨덴의 유명한 관광지인 예타운하의 준설 작업 중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다.부검 결과 사인은 “변태적인 성폭행이 동반된 교살에 의한 타살”로 밝혀지지만 여성의 신원은 물론 어떤 단서도 확보되지 않는다.최고의 수사관인 마르틴 베크가 투입되고 동료들과 함께 수집된 모든 증거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가고 그녀가 미국인인 “로재나 맥그로”임이 밝혀진다.소설의 배경이 된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CCTV도 없고 DNA가 수사에 활용되지도 않는다.외국과의 공조 수사를 위해 오가는 우편물은 며칠씩 걸리고 국제전화도 자유롭지 않아 몇 십분을 기다려야 하는 시대다.컴퓨터가 없는 세상이니 증거품이 나와도 사람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비교하고 분류해야 하는 세상이다.마르틴 베크는 몸을 곧추세웠다. ’경찰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중요한 덕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그는 속다짐을 했다. '나는 끈질기고, 논리적이고, 완벽하게 냉정하다. 평정을 잃지 않으며, 어떤 사건에서든 전문가답게 행동한다. 역겹다, 끔찍하다, 야만적이다, 이런 단어들은 신문기사에나 쓰일 뿐 내 머릿속에는 없다. 살인범도 인간이다. 남들보다 좀더 불운하고 좀더 부적응적인 인간일 뿐이다.' (p88)분명 그 시대의 경찰들의 수사 기법은 현재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그러나 꼭 범인을 잡겠다는 사명감과 끈기는 어느 시대의 경찰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고하다.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만나온 경찰은 범인을 잡는 데 사력을 다하는 정의로운 경찰이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과 손잡는 부패한 경찰이 대부분이었다.<로재나> 속 경찰은 특출한 능력이 있거나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들이 아니다.마르틴 베크는 가정적으로는 부인과의 사이가 데면데면하고 과중한 업무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못한다.다만 동료들에게는 인정 받는 직장인일 뿐이다.아닐로그적인 수사를 따라가다보면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수사과정과 신문과정이 사실적이라 그 시대의 수사과정에 참여한 듯한 기분이 든다.6개월하고도 십 구일 동안의 수사과정을 보며 만약 <로재나>사건이 현재 일어났다면 대중들은 어떻게 피해자를 정의했을까 궁금해진다.지극히 독립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로재나가 아닌 범인의 자백한 대로 추악한 여자, 죽어 마땅한 여자로 손가락질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이 세상에 어떤 누구도 다른이를 목숨을 앗아갈 수는 없다.그것도 어리석은 자신의 신념을 이유로.1권을 읽고 났더니 왜 ”경찰소설의 모범이자 북유럽 미스터리의 원점“이라고 하는 지 이해가 된다.특별한 수사 기법이랄 것도 없이 ‘막고 품다’ 정신으로 진행되는 수사가 답답하기도 하지만 수사관들의 열정과 활약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얼른 2권도 읽고 싶다.<마르틴 베크 시리즈 정주행 이벤트에 당첨되어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