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했던가? 이 책을 처음보고는 양장본에 책 갈피끈(?)이 달린 튼튼해 보이는 외형에 먼저 반했다. 한지에 느낌이 나는 푸른빛에 겉 표지부터 마음을 빼앗더니 읽는 내내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 특별하게 큰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배꼽 빠지게 웃긴 것도 아니지만 무심히 툭 던지는 대사에서 피식하고 웃음을 유발하는 영화처럼 어마어마한 음모나 숨막히는 공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읽는 내내 다음 장면이 궁금했고 나름의 모험과 웃음 짓게 만드는 문장들이 주는 즐거움에 책을 쉬 놓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양념처럼 등장하는 초 신타에 단순한 그림도 재미를 더 해 준다. 이야기는 이렇다. 수줍음이 많아 쉽게 얼굴이 붉어져 '핑크'라는 별명을 가진 지로는 중학교에 입학한 첫날 아니야마 선생님으로부터 하급무사 집안에서 태어나 바쿠후 정권을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의 성공에 이바지한 다카스키 신사쿠에 이야기를 듣는다. 여름방학이 되고 지로는 다카스키 신사쿠를 본받아 단련을 하기 위해 어머니에 고향이기도 하고 아버지에 산소가 있는 와시모토를 여행하게 된다. 지로에게는 단련이라는 큰 뜻을 둔 여행이지만 어머니가 보기에는 단순가출로만 보인다. 선생님과 친구들도 지로에 여행을 알게 되고 다음날 그에 뒤를 쫓는다. 사실 아무도 모르게 여행을 할 생각이었지만 묵을 곳을 찾다 초등학교 친구 아키요에 집을 찾아가게 되고 그 곳에 아이들이 도서관 건립을 위해 황소 개구리 잡기, 장어 잡기, 빙수 가게도 하면서 기금을 모으는 것을 알게 된다. 도시에서 온 지로도 그 곳 아이들과 어울려 낚시도 하고, 수영도 하며 즐거운 여름 한때를 보낸다. 하지만 밤에 가게 된 귀신의 집에서 그 마을 불량배들이 도서관을 세울 시멘트를 훔치려는 계획을 듣게 되고 아니야마 선생님과 친구들과 동네 아이들이 힘을 모아 불량배들을 일망타진하게 된다. 어린 시절 시골에 살던 아이나 시골에 친척이 있는 아이들이라면 경험해 봤음직한 이야기들이라 다른 나라의 이야기임에도 낯설지가 않았다. 친척집에 놀러 왔던 유난히 얼굴이 하얗고 벌레만 봐도 움찔하던 도시아이를 보며 입을 삐죽 대기도 했지만 며칠 사이에 친해져서는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놀다가 돌아갈 때가 되면 그 이별이 너무 슬퍼서 눈물을 글썽이곤 했는데 아키요와 지로를 보며 옛 생각에 젖기도 했다. 방학이 끝나고 한층 성숙해진 지로에게는 더 이상 '핑크'라는 별명이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야마 선생님이 읊으신 시처럼 인생을 살다 보면 산처럼 힘든 시절이 분명 버티고 있을 것이다. 산을 오르기 힘들다고 포기한다면 그 산 너머에 푸른 바다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도 힘들다고 포기한다면 바다처럼 넓은 희망은 결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본디 책은 항상 소중하게 다루고 깨끗하게 봐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서 아무리 멋진 문구가 나와도 밀줄 긋기를 망설이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마음껏 밑줄을 그었다. 재미난 영화를 보고 또 보고하듯이 기분이 울적한 날 읽으며 킥하고 웃어보기 위해 밑줄 긋기를 아끼지 않았다. [여자 아이들은 당장에 암탉처럼 재잘거렸다. ............................................................................... 암탉들이 순식간에 달걀처럼 입을 다물고 교실은 달세계처럼 고요해졌다.] 웅성웅성하던 교실이 순식간에 고요해지는 느낌이 여기까지 전해져 오는 듯하다. 하여간 내 입맛에 딱인 재미있는 책.^^*
2008년 연말에 모 방송국에서 장장 300여일 동안 촬영한 생생한 북극의 모습을 담은 [북극의 눈물]을 방영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설원과 그 곳에서 사는 동물들, 그리고 특별한 욕심 없이 사는 이누이트의 삶을 기대했지만 실제 북극의 모습은 녹아 내리는 얼음과 그로 인해 북극에 살고 있는 동물과 그곳에 살고 인간들의 어려워지는 삶의 모습이 등장한다. 지구 온난화란 말을 수없이 들어왔고 실제로 예전과 달라진 계절의 변화를 체감할 수는 있었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다. “지구의 미래를 부탁해”는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할 지구 온난화 이야기를 많은 자료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과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나뉜 책은 먼저 지구 온난화의 정의와 지구 온난화가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류의 모습과 우리가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번역물에서 놓치기 쉬운 우리나라의 실정을 마지막 장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고 아이들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의 소개와 인터넷 주소가 나와 있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지구를 후손에게 잠깐 빌려 살고 있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지구를 빌려 쓰고 있는 우리는 다시 돌려 줄 것을 망각하고 있는 사람들 같다. 당장 편하고 이익이 된다면 하나뿐인 지구는 안중에도 없는 듯 행동하고 지구 온난화를 늦출 수 있는 일은 한 국가나 국제기구가 나서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우리 가정에서 나부터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그 일들을 모든 가정에서 실천한다면 환경 위기 시계를 되돌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 하나쯤이야 하고 무심히 지나쳤던 일들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는 작은 실천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말미에 있는 신형건님의 작품 해설을 읽으며 정말 종합선물세트 같다는 말에 동감하게 된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받아보았을 종합선물세트는 그 안에 담긴 양에 놀라고 하나도 겹치지 않은 내용물에 놀라고 그 맛에 놀라게 된다. 간혹 내 입에 안 맞는 과자가 들어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 종합선물세트는 그야 말로 꿈의 선물이었다. 지난 1년간 푸른아동문학회 회원들이 발표한 동화 중 좋은 작품들만 골라 엮은 동화집 <공주와 열쇠공>은 딱 어린 시절 받았던 바로 그런 종합선물세트 같은 즐거움을 안겨준다. 행복한 선물을 어른이 돼 받아보니 그 기분은 시쳇말로 짱이다. 모두 열 편의 단편 동화는 어떤 것은 달달하게 또 어떤 것은 새콤한 맛을 내며 각자의 멋을 뽐내고 있다. 옛날에는 간혹 볼 수 있었던 나이가 동갑내기인 삼촌과 조카의 이야기인 원나연작 ‘삼촌과 조카’는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와 어우러져 이제 막 이성에 눈뜬 삼촌과 조카가 펼쳐가는 이야기로 그래도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친근한 작가 이금이의 ‘알 수 없는 일’은 우리 아들 또래의 찬우가 등장하는 이야기라 더욱 관심이 간다. 찬우는 그래도 여동생 연우가 연애 코치를 하는 데 여동생 없는 우리 큰 아들은 누가 연애 코치를 해 줘야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조향미의 ‘혼자일 때만 들리는 소리’는 친구 사귀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꼭 읽기를 권하고 싶다. 정민호의 ‘공주와 열쇠공’ 그리고 강숙인의 ‘두꺼비 사랑’, 김정의 ‘피리 부는 소년’은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옛이야기 맛이 나지만 등장인물들에게 그럴 수 밖에 없는 정당성을 제시하고 있어 기존의 전래동화와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잔혹성을 토끼와 그 토끼를 잡고 놔 줄 수도 없는 올무를 통해 말하고 있는 최금진의 ‘토끼에게’는 지금도 어느 눈 쌓인 산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뜨끔해지는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고 싶지만 현실은 꼭 그렇게 행복하고 좋지만은 않다. 할머니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주인공이 아닌 자신의 잘못으로 할머니를 돌아가시게 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승하의 이야기를 담은 최은영의 ‘바느질하는 아이’는 승하의 괴로움이 전해져 마음이 짠해 진다. 박산향의 ‘돌덩이’는 혹시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말을 한 적은 없는 지 반성하게 된다. 마지막은 ‘교환 일기’로 만난 적 있는 오미경 작가의 ‘두 권의 일기장’이다. 한 가지 현상을 서로 다른 눈으로 보는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수개미들을 보며 나 역시 정말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용감해지고 싶어진다. 선물 받은 종합선물세트의 과자를 야금야금 먹으며 입에서 느끼는 행복감과 비례하게 줄어드는 과자가 못내 아쉬웠던 것처럼 한편 한편 읽다 마지막 이야기를 읽으며 어린 시절에 느꼈던 비슷한 섭섭함을 느끼게 된다. 일 년 동안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큰 노력을 하신 작가 분들께 박수를 보내고 내년 이맘때쯤에도 이번처럼 모두 맘에 드는 종합선물세트를 꼭 받고 싶다.
제목에서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조태백 탈출 사건”은 제6회 푸른문학상 수상작과 역대 수상작가의 초대작을 모은 동화집이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짐직한 이야기를 각각의 작가 특유의 풋풋한 방법으로 풀어가고 있어 그 어떤 동화집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조향미의 <구경만 하기 수백 번>은 사회문제이기도 한 초등학교의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다. 비슷한 문제를 다룬 다른 동화들과 다르게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닌 왕따가 일어나는 현장을 지켜보기만 하는 ‘나’의 눈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언제 어디서나 불의를 보면 참지 말라고 교육 받지만 실제로 내 앞에 벌어지는 불의에 정면으로 대응하기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동화를 읽으며 왕타가 당하는 피해자나 해를 입히는 가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상후, 그 녀석>은 공수경의 작품으로 입시에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의 슬픈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사치인 세상에 사는 상후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가던 동화는 마지막에 반전에 진정으로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조태백 탈출 사건>은 황현진의 작품으로 숙제장이 없어 숙제를 못해간 조태백이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꼭 아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짓말의 크기가 커 벌어지는 황당하고도 조마조마한 조태백 이야기는 아이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교장 선생님의 등장으로 행복한 결말을 안겨준다. 김현실의 <누구 없어요?>는 IMF이후로 가장 큰 경제 위기를 맞은 요즘에 어딘가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이야기라 짧지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나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그저 내 가족만 품고 살던 우리에게 먼 친척보다 가깝다는 이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엄마의 정원>은 김화순의 작품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와 그런 엄마를 지켜 봐야만 하는 딸 하나의 모습을 담고 있다.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공간에 식물이 사람으로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하나를 보며 언젠가는 꼭 하나의 엄마도 건강한 모습으로 딸을 보고 웃게 될 거라는 소망을 함께 품어 보게 된다. 초대작인 김일옥의 <낯선 사람>은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없어질 두려움이지만 그렇게 믿는 순간 두려움이 사실이 돼버린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는 이야기다. 진우는 강이의 농담에 강이 아버지는 빈집을 노리는 좀도둑으로 오해하고 그 사실에 괴로워하는 한다. 아이다운 걱정과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예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이혜다의 <마니의 결혼>은 식구가 많은 집에서 사는 마니가 단출한 성준이네로 시집 갈 준비를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초등학생 결혼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소재를 담고 있지만 읽다 보면 그저 나 낳아준 부모 밑에서 사는 게 가장 행복한 것이라는 사실에 절로 웃음짓게 된다. 동화집을 덮으며 내년에 만나게 될 제 7회 수상작들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70년대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덕에 유년시절의 북한에 대한 적대감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하며 죽어간 이승복 어린이 못지않았다. 보훈의 달 6월이 오면 학교 행사 중 하나였던 반공 포스터 그리기에는 빨간 뿔을 단 북한군들이 등장했고 잊을 만하면 들리던 땅굴과 간첩 이야기는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제는 세월이 변해 내 아이들은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타도해야 할 존재가 아닌 언젠가는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야 할 한 민족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에 대한 소식은 핵 문제, 탈북자, 식량난, 그리고 보수단체가 보내는 삐라 이야기 등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그들을 상상하게 한다. 북한 어린이 생활동화라는 타이틀을 단 이 동화는 북한 어린이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사는 모습은 조금 달라도 그곳의 어린이 역시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알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꾸밈없이 담고 있다. 아버지가 당간부인 영광이는 집안이 넉넉하고 공부도 잘해 학교 시험에서는 매번 최우등을 받는 평양 사동초등학교 4학년이다. 그에 비해 부모가 협동농장에 다니고 시험 때마다 낙제를 받고 위생검열에도 매번 걸리는데다 곽밥을 싸올 형편이 안 돼 점심때면 찬물로 배를 채우는 철승이는 축구만큼은 최고라 학교 대표 선수로 뛰고 있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이지만 영광이는 철승이의 공부를 돕고 점심을 굶는 철승이를 위해 밥을 덜어주기도 하며 꼬마과제(북한 어린이들의 노동의 의무)인 토기 기르기를 함께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영광이는 담배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선전선동 활동(위문 공연)에서 춤을 추는 은혜를 보게 된다. 유난히 키가 크고 춤이 아니라 마치 줄을 맨 나무 인형 같은 은혜지만 영광이 눈에는 예뻐만 보인다. 하지만 은혜는 영광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축구 경기에 나선 철승이를 좋아하는 눈치다. 괜히 심술이 난 영광이는 철승이를 모서리(따돌림) 먹이기까지 한다. 흔히 우리는 사람 사는 게 다 똑 같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북한은 지구상 그 어떤 나라보다 가깝지만 북한인민들의 실생활을 접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영광이와 철승이 이야기를 읽으며 사는 모습은 우리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과 그 또래들이 가지는 마음을 북한의 어린이들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선전선동 활동이나 항상 준비, 호상비판이 있지만 사춘기 소년은 마음에 드는 여자친구 때문에 가슴 떨려 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공부 때문에 고민하고 진로 문제와 미래를 걱정한다.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 것 같은 북한의 아이들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언젠가는 함께 살아가야 할 동포임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더운 여름 방학 동안 메깡치기(비석치기)를 하다가도 생활반 동무끼리 모여 공부를 해야 하고 토끼풀을 뜯어야 했던 영광이와 철승이가 이 추운 겨울 방학 동안에는 어떤 생활을 할지 궁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