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덕에 유년시절의 북한에 대한 적대감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하며 죽어간 이승복 어린이 못지않았다. 보훈의 달 6월이 오면 학교 행사 중 하나였던 반공 포스터 그리기에는 빨간 뿔을 단 북한군들이 등장했고 잊을 만하면 들리던 땅굴과 간첩 이야기는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제는 세월이 변해 내 아이들은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타도해야 할 존재가 아닌 언젠가는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야 할 한 민족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에 대한 소식은 핵 문제, 탈북자, 식량난, 그리고 보수단체가 보내는 삐라 이야기 등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그들을 상상하게 한다. 북한 어린이 생활동화라는 타이틀을 단 이 동화는 북한 어린이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사는 모습은 조금 달라도 그곳의 어린이 역시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알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꾸밈없이 담고 있다. 아버지가 당간부인 영광이는 집안이 넉넉하고 공부도 잘해 학교 시험에서는 매번 최우등을 받는 평양 사동초등학교 4학년이다. 그에 비해 부모가 협동농장에 다니고 시험 때마다 낙제를 받고 위생검열에도 매번 걸리는데다 곽밥을 싸올 형편이 안 돼 점심때면 찬물로 배를 채우는 철승이는 축구만큼은 최고라 학교 대표 선수로 뛰고 있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이지만 영광이는 철승이의 공부를 돕고 점심을 굶는 철승이를 위해 밥을 덜어주기도 하며 꼬마과제(북한 어린이들의 노동의 의무)인 토기 기르기를 함께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영광이는 담배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선전선동 활동(위문 공연)에서 춤을 추는 은혜를 보게 된다. 유난히 키가 크고 춤이 아니라 마치 줄을 맨 나무 인형 같은 은혜지만 영광이 눈에는 예뻐만 보인다. 하지만 은혜는 영광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축구 경기에 나선 철승이를 좋아하는 눈치다. 괜히 심술이 난 영광이는 철승이를 모서리(따돌림) 먹이기까지 한다. 흔히 우리는 사람 사는 게 다 똑 같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북한은 지구상 그 어떤 나라보다 가깝지만 북한인민들의 실생활을 접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영광이와 철승이 이야기를 읽으며 사는 모습은 우리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과 그 또래들이 가지는 마음을 북한의 어린이들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선전선동 활동이나 항상 준비, 호상비판이 있지만 사춘기 소년은 마음에 드는 여자친구 때문에 가슴 떨려 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공부 때문에 고민하고 진로 문제와 미래를 걱정한다.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 것 같은 북한의 아이들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언젠가는 함께 살아가야 할 동포임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더운 여름 방학 동안 메깡치기(비석치기)를 하다가도 생활반 동무끼리 모여 공부를 해야 하고 토끼풀을 뜯어야 했던 영광이와 철승이가 이 추운 겨울 방학 동안에는 어떤 생활을 할지 궁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