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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를 잡아라
플락 비스바스 그림, 아누쉬카 라비쉥카르 글, 신은영 옮김 / 파란하늘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대부분에 출판사가 일부 편중된 나라의 책들만을 출판하는 게 독자들이 그 나라의 책을 찾기 때문인지, 아니면 출판사가 먼저 일부 나라의 책만을 번역출판해서 인지 우리가 그동안 읽었던 대부분의 그림책은 미국과 유럽의 일부 국가의 책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한번도 소개된 적이 없었던 인도의 그림책이다.
<인도>는 많은 인구와 빈부의 격차가 심한 나라라는 생각을 먼저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인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요가의 어려운 동작을 척척해 낼 것 같고, 깊은 정글에는 아직도 벵골호랑이의 포효가 들릴 것도 같다.
인도에서 가장 크다는 갠지스 강에서 목욕하고, 그 물을 마시고, 죽어서는 재가 되어 뿌려지는 걸 보며 우리 눈에는 더럽게만 보이는 강을 성스럽게 섬기는 그들의 믿음이 신기하기까지 한 나라다.
지금까지 한번도 접할 수 없었던 현대의 인도 어린이들에게 사랑 받는 작가의 그림책이라 많은 기대를 했었다.
그림책으로는 결코 짧지 않은 페이지의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느끼며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과일 가게 아줌마, 경찰 아저씨, 의사 선생님이 등장해서인지 먼 나라의 이야기지만 아이들에게는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느끼는 것 같다.
그림에 전혀 다른 배경이 없이 붉은 색 한 가지만을 사용한 특색 있는 그림도 눈길을 끈다.
판화로 찍어 낸 듯한 그림에서는 단순하지만 등장인물의 풍부한 표정을 읽을 수도 있다.
좋은 맛을 내기 위해 여러 가지 재료를 첨가해서 나중에는 원재료의 맛을 찾을 수 없는 요리가 있고, 원재료만으로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요리가 있듯이 이 그림책은 다른 장치가 전혀 들어 있지 않아도 허전하지 않는 그런 개운한 맛의 책이다.
평화로운 어느 날 ‘팔아요’ 과일장수 아주머니는 생각지도 못한 마을의 도랑에서 악어를 만나게 된다.
아주머니에 고함 소리에 기다란 막대기를 가지고 ‘잡아라’ 경찰 아저씨가 악어를 붙잡으러 온다.
교통위반 딱지에 벌금을 물리고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고 협박하던 아저씨는 막대기로 악어에 등을 때리지만 악어는 막대기를 부러뜨리고 만다.
다음으로 나선 ‘바로나아‘의사 선생님은 악어에게 수면제 주사를 놓으려다 그만 자신에게 주사를 잘못 놔 깊은 잠에 빠져 버린다.
그 다음으로는 먼 도시에서 온 힘 센 레슬링 선수 ‘다이겨’아저씨는 악어의 큰 입을 보고는 줄행랑을 쳐 버린다.
악어를 꽁꽁 묵어버리겠다는 ‘깨끗해“ 세탁소 아저씨가 등장하고, 삼륜차로 끌어내기 위해 ‘재빨라’아저씨도 오지만 모두 악어를 마을 밖으로 쫓아내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거듭되는 실패에 온 마을 사람들이 낙담하고 있는 그때 엄마와 생선을 팔고 돌아오던 어린 소녀 미나가 그 광경을 보게 되고 미나는 간단한 방법으로 악어를 강으로 돌려보낸다.
그런데 정작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악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악어에게 공포를 느꼈던 인간이야말로 악어에게는 가장 무서운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한번도 와 본 적 없는 인간의 마을에 혼자 떨어지게 된 악어는 자신을 몰아내기 위해 등장한 무서운 경찰 아저씨, 큰 주사기를 가진 의사 선생님, 힘센 레슬링 선수가 이 세상 어떤 공포보다도 더 무서운 공포였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주하는 말 중 하나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라는 말이다.
사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사실이지만 항상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리에게 남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만을 보는 어른의 눈에는 일곱 마디 정도 밖에 안돼는 조그마한 파충류가 무시무시하게 보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악어의 입장에서 생각한 작은 소녀 미나에게는 무시무시한 파충류는 어디에도 없었고, 다만 길을 잃은 불쌍한 악어만 보였던 것이다.
나그네의 옷을 벗겼던 건 차갑고 힘센 북풍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었던 것처럼 가끔은 무서운 힘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야말로 최고의 능력이 된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