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부터 얼얼하다.눈앞에서 갑가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의 모든 것이 터져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정신과 의사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기사야마는 “배우로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한 아내,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큰딸, 그리고 지병에도 아랑곳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작은딸” 까지 무엇하나 빠질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어린 시절 마술사였던 아버지의 죽음과 뒤따른 어머니의 죽음으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누구나 존경하는 의사가 됐고 환자가 상담 중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은 덕에 범죄자를 잡는 공을 세우기도 한다.그런 기사야마의 삶에 작은 균열이 생기고 완벽한 가정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해야만 한다.특수 설정의 소설인 줄 알고 읽어도 읽는내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피가 낭자하고 속 불편한 설정이 연속되고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심성을 갖지 못한 인물들이 등장한다.그리고 이유없이 사람들이 죽어나간다.작가의 특수 설정 미스터리는 #명탐정의창자 로 이미 한번 만났지만 그보다 몇 십배는 더 매운 듯하다.잔인한 고어 영화를 화면이 아닌 활자로 보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는 비위가 상하고 읽는 내내 불쾌하기까지한 설정의 연속이지만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이야기가 계속될 수록 악의 무한 증식을 보여주지만 중간에 책을 덮을 수가 없다.어쩜 나의 내면에도 등장인물들과 닮은 잔인함이 똬리를 틀고 있는지 모르겠다.혀가 얼얼해지도록 매운 음식을 먹고 난 후 느끼는 통각에서 오는 비슷한 짜릿함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본 도서는 내친구의서재 출판사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암살테러를 저지르는 테러조직 울라그를 상대하는 경찰의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고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 국민이 겪는 개인적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물론 전편들과 같이 개인의 사건 역시 사회문제에서 기인한 것들이다. 미혼모인 레베카는 은행 강도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돼 재판을 받게 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한다.단지 은행에 찾아가 돈을 빌리려 했고 그녀가 항시 소지하고 있던 정원용 칼이 문제가 돼 은행 강도로 몰린 것이다. 한편 영화감독으로 알려진 남자가 내연녀의 집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마르틴 베크가 투입된다.조사 결과 그 남자는 영화 제작을 미끼로 미성년자들을 꾀어 마약을 공급해 중독자로 만든 후 포르노를 제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미국 상원의원이 스웨덴을 방문하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은 국제적인 암살테러 조직 소탕 작전에 투입된다.경찰을 피해 일찌감치 스웨덴에 잠입한 테러리스트들은 차근차근 암살 계획을 세우고 경찰은 그들의 뒤를 쫓는다. 미국인 여행객이 살해당하는 ’로재나‘로 시작해 테러조직을 상대하는 ’테러리스트‘를 끝으로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복지국가로 불리는 스웨덴의 60~70년대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건 속에서 전지적인 경찰도 등장하지 않고 작위적인 교훈을 주지도 않는다. 수사에 열심인 만큼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마르틴 베크는 이혼을 하게 되고 범인의 총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범인을 잘못 특정하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무능한 상사를 욕하고 다른 동료들과 힘을 모아 범인을 찾는다.마지막 이야기는 스웨덴만의 문제가 아닌 현재 진행형인 테러와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그 의미가 크다.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10년에 걸쳐 10편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썼고 우리나라에는 7년에 걸쳐 번역되었다.나는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진행한 “마르틴베크정주행‘이벤트에 당첨되어 9개월에 걸쳐 시리즈를 완독했다.심혈을 기울려 쓰고 번역한 이야기를 너무 쉽고 편하게 읽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든다.엘릭시르 출판사 덕분에 대작을 완독할 수 있어 감사하다.<본 도서는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어린이의 상상력은 감히 따라가기가 어렵습니다.거실을 순식간에 드넓은 바다로 만들어버리는 재주를 가진 아이가 어질러진 거실을 청소하려는 어른에게 폭풍우 치는 바다를 선물합니다. 단번에 호응하지 않는 어른에게 단호하게 해야 할 일을 명령하고 놀이에 몰입하게 합니다.어느 순간 카펫은 출렁이는 바다가 되고 아이는 선장이 되어 출항을 준비합니다.어른도 선장의 명령에 따라 배를 정비하고 항해 지도를 그리고 돛을 펼치고 깃발도 준비해 닻을 올립니다. 아이들이 상상하는 놀이에 어른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놀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그것도 해야 할 일이 있고 바쁜 시간에는 더더욱 어렵습니다.한정된 공감이던 거실은 아이의 상상력에 힘입어 어느 순간 그 끝을 알 수 없는 바다가 되어 모험의 세계로 데리고 갑니다. 거실이라는 현실과 넓은 바다라는 상상이 괴리감 없이 펼쳐지면서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이와의 놀이에 몰입하게 합니다.특히나 긴박하게 펼쳐지는 위험과 맞서는 모습은 독자를 어느새 놀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합니다.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이 떠오르는 겉표지를 벗기면 드러나는 거실 모습은 현실과 상상을 제대로 설명한 그림이라 더욱 인상 깊게 느껴집니다.그림만으로도 선장이 된 아이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고 그 모험에 함께 한 기분입니다. <본 도서는 웅진주니어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출간되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구입 후 구간을 만들지않고 읽는 시리즈가 미시마야 변조 괴담이다.아흔아홉 편의 괴담이 완성되면 끝난다는 시리즈가 “모두 사십(부록 <면영귀>포함)편”이 진행됐으니 좋아하는 시리즈가 아직 절반도 지나지않았다는 사실이 기쁘기만 하다.시리즈의 아홉번 째인 <<청과 부동명왕>>에는 네편의 괴담이 실려있다.표제작인 ‘청과 부동명왕‘은 “아이를 갖지 못해 시댁에서 쫓겨난 여자. 자식을 잃은 죄를 뒤집어쓰고 이혼당한 여자. 심한 시집살이에 상처를 입고 몸이 망가져도 소처럼 부려먹히는 고통에서 도망쳐 온 여자. 남자에게 속아 아기를 갖고 혼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자. 갈 곳 없고 의지할 곳 없고 내일 당장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떠받쳐 주는 발판이라곤 없는 여자들”(p124)이 서로 의지하며 사는 연대에 관한 이야기다.’단단 인형‘은 악질 위정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로 옛날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마음에 오래 남는다.거기다 만든이의 마음이 깃들어 가족을 위험에서 지키는 인형이 펼치는 활극은 영화의 한 장면같다.’자재의 붓‘은 흑백의 방에서 들은 이야기가 아닌 골동품 가게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로 화공의 마지막 선택이 끔찍하지만 그의 의지가 강력하게 느껴진다.마지막 ’바늘비가 내리는 마을‘은 부모없는 아이들을 긍휼이 여겨 돌봐주는 마을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로 한순간 평화가 깨지는 마을을 보면 마음이 아파온다.“부정을 쫓는 힘을 가진 하녀 오카쓰”가 주인공인 부록 ‘면양귀’는 질투와 투기와 불신을 스스로 만들어내 자신을 괴롭히는 여자의 이야기로 짧지만 강렬하다.“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리고.”마음 속에 담고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미시마야의 괴담 자리에서 풀어놓는 순간 화자도 청자도 마음이 후련해진다.괴담 자리의 최초 청자였던 오치카가 예쁜 딸을 무사히 낳았고 그림 그리기 좋아하고 맛있는 걸 좋아하는 두 번째 청자인 차남 도미지로는 형인 이이치로가 집에 돌아오면서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지만 이야기를 통해 성장해 나간다.전통있는 오래된 가게가 즐비한 에도 시대의 풍경이 눈에 그려지고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질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