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탑의 라푼젤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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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번역된 우사미 마코토의 책 4권 중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의 실상을 읽으며 소설보다는 르포르타주를 읽는 느낌이었다.
아동 학대, 방치, 가정 내 폭력, 성폭행, 차별, 빈곤, 불임 등을 다룬 소설은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아동 학대 문제의 최전선에 있는 아동 상담소 직원 유이치와 아동 지원 센터의 직원인 시호가 아동 학대 사례를 관리하고 처리해 나가는 이야기와 필리핀 엄마와 얼굴도 모르는 일본인 아빠를 둔 카이와 친오빠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는 나기사와 그들의 곁을 맴도는 하레의 이야기, 그리고 불임으로 괴로워하는 아내 이쿠미와 남편 게이고의 불임 치료 과정을 따라 가는 이야기다.

읽는 내내 너무 마음이 아파 차라리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인물들이기를 바라며 읽었지만 등장인물들은 현실에서도 엄염히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누군가는 간절히 아이를 원하지만 또 어떤 부모는 태어난 아이를 돌보지 않고 방임하고 학대하는 모습을 보며 부모 자격 시험이라도 본 뒤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스포일러때문에 소설의 결말을 이야기할 수 없지만 시간의 흐름을 활용한 트릭을 잘 사용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마지막 반전도 허를 치르는 충격이다.
별 관계 없을 것 같은 세 갈래의 이야기는 끝을 향해 갈수록 하나로 모아지고 서로 구원받고 구원하는 모습에서 누군가의 작은 관심이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작가의 신작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어 좋다.
그러니 블루홀식스는 얼른 작가의 다른 이야기를 냉큼 번역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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꿰맨 눈의 마을 트리플 22
조예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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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방의 빙하 80퍼센트가 녹아버리자 몇몇 대도시는 물에 잠겨버리고 통째로 사라진 나라도 생기고 수시로 들이닥친 쓰나미로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된다.
더군다나 빙하 깊숙한 곳에서 얼어 있던 고대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저주병’이 창궐한다.
저주병은 얼굴에 두 개의 눈 말고도 온 몸에 눈이 생기기도 하고 입을 비롯 팔, 다리가 신체의 다른 곳에서 자라기도 한다.

저주병의 감염된 자들은 외형의 변화뿐 아니라 인간을 사냥하는 괴물로 변하게 된다.
이교가 사는 ‘타운’은 감염자들이 없는 안전한 마을로 병이 발병하면 그 대상이 누구든지 타운 밖 황야로 추방된다.
세 편의 짧은 연작 소설과 에세이가 실린 소설집은 연작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타운 안에 사람들과 황야로 추방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한 편의 이야기로 읽어도 무방하다.

표제작 #꿰맨눈의마을 은 입이 하나 더 생겨 타운에서 추장된 램과 태어날 때부터 등에 생긴 눈을 의사인 아버지가 꿰맨 덕분에 타운에 살고 있는 이교의 이야기다.
#히노의파이 는 어린 시절 타운 밖에서 발견돼 타운에서 자란 히노와 저주병 환자들을 황야에 두고 오는 문지기인 이교의 삼촌 백우의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 #램 은 황야에 추방된 램의 모험 이야기다.

소설 속 타운은 저주병이 발병하지 않으면 황폐해진 지구에서 살만한 곳이다.
그러나 저주병이 발병된 순간 그 누구라도 타운 밖으로 추방시킨다.
독이 든 히노의 미트 파이와 콜라 한 캔이 쥐어질 뿐 제대로 된 환송 인사도 없이 죽음의 땅에 버려진다.
소설은 2066년 6월 6일 저주병의 첫 감염자가 나온 뒤 육십여 년이 지난 시점이다.

아이들은 감염자에 대한 공포를 교육받고 감염자가 발생하는 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
아들이 부모를 버리고 삼촌이 조카를 버리고 어제까지 함께 웃던 이웃을 황야에 두고 돌아온 뒤 한 번도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처럼 그들을 기억에서 지운다.
암울한 시대의 암울하기만 한 이야기는 그래도 아이들의 의해 바깥 세상의 진실이 밝혀지고 단단한 벽을 깨고 나서는 아이가 등장한다.

소설은 지금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천편일률적인 생각을 강요하고 교육하는 어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은게 아닌가 싶다.
눈은 두 개여야 하고 입은 하나여야 하고 팔다리는 각각 두 개일때만 온전하게 대접받는 세상이 아닌 나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인정하는 세상은 우리의 우물 밖 황야에만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울해 진다.
그래도 무한한 가능성의 넓은 황야를 향해 힘차게 내달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역시 조예은이다’ 싶어 만족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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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 레이디가가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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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미미 여사의 시대물이 아닌 현대물 신간 소식이 들려온다.
소설은 하이쿠를 제목으로 한 12편의 단편이라니 이런 신선한 시도는 뭔가 싶어 냉큼 읽었다.
솔직히 첫 번째 ‘산산이 지는 것은 여물고저 함이니 복사꽃’ 이야기를 읽고 뭐지 싶었다.

결혼 생활 4년만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홀로 딸을 키운 엄마가 딸에게 기생하는 사위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다.
그 사실을 딸에게 말하지만 딸은 참고 그냥 살겠단다.
아무리 하이쿠를 제목으로 한 소설이라도 딸의 대처가 너무 옛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이야기 역시 뭔가 싶어 “작가의 말”을 찾아 읽었다.
소설집의 탄생 배경을 소개하는 글이다.
내처 ‘편집자 후기’까지 읽었다.

“두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가급적이면 ‘작가의 말’을 먼저 읽고, 그다음으로 본문, 그리고 마지막에 ‘편집자 후기’를 거들떠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본문은 한꺼번에 후다닥 달리지 마시고 한겨울 서리를 견디며 긴 꼬치에 매달려 있는 곶감 빼 먹듯 한 편씩 야금야금 음미하신다면 그야말로 농축에센스와 같은 하이쿠 소설의 묘미를 제대로 즐기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편집자 후기 중

아! 한 호흡으로 읽는 내 독서법으로는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소설집이구나 싶어 천천히 읽자 마음 먹었다.
소설은 데이트 폭력으로 고통 받는 여대생 이야기, 폭력을 휘드르는 남자 친구에게 납치당해 폐병원에 갇힌 여자가 만나게 되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이야기, 겨울이 돼도 절대 시들지 않는 여주 이야기, 결혼 후에도 죽은 아들의 소꼽친구를 추모하는 기묘한 가족이야기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이 실려 있다.

불륜, 데이트 폭력이나 불임, 스토킹 등 많은 이야기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이 많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포함 호러, 판타지 소설 등 여러 장르로 풀어가는 이야기는 알 수 없는 존재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가족이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도 한다.

소설은 미미 여사의 지인들이 쓴 하이쿠를 제목으로 해서 쓴 소설이다.
작가가 소설을 염두에 두고 쓴 하이쿠가 아닌 지인들이 하이쿠 모임에서 자유롭게 쓴 하이쿠로 소설을 쓴 경우다.
소설을 읽어갈 수록 보통의 내공으로는 감히 생각도 못할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쿠를 잘 알면 좋겠지만 하이쿠를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소설은 편집자의 말씀처럼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즐긴다면 나중에 나올 2, 3권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실험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이야기로 미스터리 소설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레이디 가가 시리즈>라니 이 소설과 찰떡인 시리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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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와 빈센트 (반양장)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스페셜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지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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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인의 시와 화가의 그림이 만났습니다.
일제강점기 항일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29년이란 짧은 생을 살다간 윤동주 시인의 시 124편과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인 고흐의 그림 129점이 수록된 시화집입니다.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시화집은 산문시 몇 편을 제외하고는 시와 그림이 1장씩 배치되어 있습니다.
고흐의 그림이 해바라기와 밤 하늘의 별로 대표된다면 윤동주 시인 역시 별을 노래한 시인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화집에 첫 번째로 소개된 시는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인 ‘서시’입니다.
그리고 고흐의 그림은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Starry Night Over the Rhone)’가 실렸습니다.
어쩜 시인은 낯선 이국의 땅 강가에서 별을 보며 나라 잃은 서러움에 눈물 지으며 힘 없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시화집을 염두해 둔 시와 그림이 아닌 기존에 있던 시와 그림으로 엮은 시화집은 자칫 어색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것도 아니고 같은 고민을 했던 것도 아닐 뿐더러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두 예술가의 작품은 처음부터 이 시화집을 염두해 둔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병아리, 빗자루,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 등 동시도 몇 편 남겼습니다.
고흐가 남긴 습작 중 ”Sketches of Hen and a Cock” 는 병아리와 짝을 지었고 빗자루는 “Woman with a Broom”가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하루를 마친 저녁이면 오늘의 날씨, 기분에 따라 시를 한편 고릅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따라 적어봅니다.
또 어떤 날은 맘에 드는 그림을 한참 본 후 시를 읽어봅니다.
그리고 별이 하늘을 가득 채우는 밤에 잠 못 들었을 두 예술가를 떠올립니다.
한 달 가까이 윤동주 시인의 시를 그 어느 때보다 찬찬히 읽고 고흐의 그림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본 도서는 저녁달출판사의 필사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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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열두 세계 포션 6
이산화 지음 / 읻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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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소설집에 실린 12편의 단편은 “원래 월간지 <고교 독서평설>에 2022년 1월부터 12월까지 연재했던 작품”으로 단편집으로 엮으면서 약간의 수정을 거쳤다고 한다.
“열두 편의 소설은 전부 ‘열두 개로 이루어진 것 가운데 하나’를 소재”로 삼아 진행한 이야기들이다.

책을 읽기 전 이미 위의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열두 개로 이루어진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봤다.
열두 띠, 올림포스의 열두 신, 연필 1다스, 1년 열두 달이 고작 생각날 뿐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열두 개로 이루어진 것들을 12가지를 생각해 냈고 그 것을 소재로 삼아 소설을 썼다니 어떤 이야기들일 까 궁금해졌다.

1월에 쓴 소설은 “토끼 굴”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와 토끼굴하면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일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과 “12”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작가는 소설이 모두 열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사실에 착안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자신의 단편에 차용하였고 토끼굴로 내려가는 엘리스와 심해로 내려가는 탐사정을 대비시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초단편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솔직히 쉽고 편하게 읽히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단편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소설의 소재가 된 “12”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첫 단편부터 막혀 답안지를 커닝하는 기분으로 ’고교 독서평설‘에는 실리지 않은 보너스 트랙같은 열세 번 작가의 말을 읽었다.
그리고 두번 째 이야기부터는 작가의 단편을 읽고 관련된 ’12‘를 유추하고 열세 번째 해설부분을 읽었다.
어떤 이야기는 내가 생각한 ’12‘와 맞아 떨어졌고 또 어떤 이야기는 내가 전혀 모르고 생각지도 못한 분야의 ’12‘를 만날 수도 있었다.

작가는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비롯해 황도 12궁,올림포스 12신,12간지, 컴퓨터 키보드의 12개의 기능키, 달 표면에 발을 디딘 우주 비행사 총 인원 열두 명, UFO 음모론을 소재로 삼은 ‘마제스틱 12’,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시조인 야곱의 열두 아들,비틀즈의 열두 개의 스튜디오 앨범, 예수의 열두 제자, 이슬람교 시아파의 분파인 12이맘파를 소재로 삼고 있다.

보통의 sf소설처럼 작가의 이야기는 암울하기도 하고 코로나팬더믹 시대에 쓴 소설답게 답답한 현실을 떠오르게도 한다.
그래도 군데 군데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 남았던 희망처럼 따스함이 이야기가 있어 숨통을 열어준다.
머리를 싸매며 12편의 소설과 두 편의 작가의 말까지 다 읽고 작가가 들려주는 ”행복론“을 다시 한 번 읽고 책을 덮는다.


차례로 녹아드는 초콜릿을 타고 비로소 뚜렷한 행복이 몸 전체에 퍼졌다. 그래, 이게 행복이지. 좋아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어, 좋아하는 것을 함께 먹고, 그 행복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행복을 다시 메아리처럼 느끼는 일. 옛날사람들의 거추장스러운 몸은 꿈에도 몰랐을 감각. 이래야지. 사람은 역시 이렇게 살아야지. 마지막 초콜릿을 몸 안으로 막 놓여 넣은 유리양파가 물었다.
”마음에 들어?“
그 초콜릿의 맛이 채 전달되기도 전이 검은지빠귀는 단호히, 고민 없이 대답했다.
”응, 엄청 마음에 들어.“ (p113 행복이란 따스한 반죽 중에서)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 넘나리 2기 활동 중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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