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 코펜하겐 삼부작 제2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토베 디틀레우센의 코펜하겐 삼부작 중 두번째 <청춘>. <어린시절>에 이어 시인이 되기를 갈망하며 보낸 저자의 청년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대개 청춘은 인생의 봄, 즉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시절로 포장되지만 저자의 청춘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생계유지형 일자리를 얻고, ‘여자는 빨리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시대적 가치관 아래 갈등한다. 그런가 하면 이 시기는 히틀러의 집권기와도 맞물려 정치적 불안에 휩싸인 시기인지라, 저자 또한 시대적 흐름의 영향 아래 무관하지는 않다. 건조하게 묘사되는 ‘당장이라도 없애버리고 싶은 하나의 결함이자 방해물‘인 저자의 청춘에도 유일하게 붙잡을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시다.



저자의 모든 초점은 시에 맞춰져 있다. 시를 쓸 시간을 확보하는 것, 시를 읽어줄 사람을 찾는 것, 자기만의 방에서 시를 쓰는 것, 시인이 되는 것. 저자가 법정 성인이 되어 집에서 독립할 날만을 기다리는 이유도 홀로 시를 쓰고 싶기 때문이며, 저자가 끌리는 남자들은 그에게 시인이 되는 법을 인도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이들이다. 저자에게 시는 유일한 숨구멍이자 구원이며 그 앞에서는 생계형 일자리도, 연애도, 가족도 전부 부차적인 것들로 보인다. 저자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꿈에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꼭 닿을 수 있으리라 믿으며 청춘을 견뎌나간다.



‘왜 그토록 간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둡고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다가가고 있는 목표‘. 책의 말미에 이르러 시집을 출간하며 끝끝내 그 목표에 성큼 다다른 저자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 중에 그것을 구체적으로 꿈꾸는 사람은 적고, 행동하는 사람은 더 적다. 구체적으로 꿈꾸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던 저자가 결국 큰 기적을 마주하게 된 건 당연한 일이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꿈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몰랐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을 믿었기에.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차가운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색다른 탐정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면. 와카타케 나나미의 일상 시리즈 두번째 <나의 차가운 일상>. 큰 사랑을 받은 전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에 이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이다. 전작이 사보에 단편 소설이 하나씩 게재되는 형식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와카타케 나나미가 탐정으로 전면에 나서 사건을 해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초기 걸작들 중 하나다.

<나의 차가운 일상>은 주인공 와카타케 나나미가 친구 다에코의 자살 미수 사건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예리하고 차가운 분위기의 사건과 진상을 알아내고자 우당탕탕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면모가 뒤얽히는데, 무척 흡입력있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건 인간의 복잡미묘한 감정들이다. 소설 속에서는 회사 내에서의 따돌림, 연애, 불륜, 질투 등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야말로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마음. ‘당신이 뭘 알죠? 알 수 있다고 생각은 하겠죠.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작중 인물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건의 퍼즐을 맞춰나가는 주인공 역시 감정적인 고뇌를 반복하는 인물니다. 왜 이들은 이런 일을 벌였을까? 생각하며 진실을 밝혀나가는.

즉, 이 작품의 매력포인트는 단연 주인공이자 탐정 역할을 하는 와카타케 나나미 캐릭터다. 어딘가 허술해서 더 인간적인 탐정.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에 이어 작가의 이름을 딴 인물이 전면에 등장!) 그는 사건을 해결하고자 무턱대고 회사에 잠입하지만 이내 초조해하고 불안해한다. 피곤해하고, 출근하기 싫어하는 등의 현실적인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탐정이다. 기존의 탐정 소설에서 찾을 수 있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류의 탐정들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다. 소설을 읽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더 정이 가는 캐릭터. 그래서 주인공이 손을 뗄까 말까 고민하면서도 끝끝내 사건을 해결해가는 여정을 따뜻하게 지켜볼수밖에 없게 된다.

단편들을 야금야금 읽다가 큰 그림으로 맞춰보는 재미가 있었던 전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서늘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장편소설 <나의 차가운 일상>. 부담없이 쭉쭉 읽기 좋은 탐정 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곁에 두고 싶어지는 류의 소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지 미스테리의 여왕, 와카타케 나나미. 그의 데뷔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이 새 옷을 입고 다시 한 번 세상에 나왔다. 사보 편집장 와카타케 나나미(저자가 자신을 소설 속에 등장시키는 방식이 재미있다)가 익명의 작가로부터 한 달에 한 편 단편소설을 받아 사보에 싣는다는 컨셉의 소설집이다. 열 두편의 일상 미스테리 소설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매달 사보에 작품이 실린다는 설정이라, 계절감 있는 소재들이 연이어 등장한다는 것이다. 벚꽃을 싫어하는 사람의 비밀, 수상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발렌타인 초콜릿을 깨문 여자 등등. 계절 묘사나 음식 묘사가 훌륭해 읽는 재미가 있었다.

또, 주목할만한 점은 결국 열 두편의 미스테리가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 화자인 사보 편집자 와카타케 나나미는 책의 말미에 실린 편집 후기에서 자신이 생각한 작품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진정한 미스터리는 마지막에 밝혀지는 셈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 편씩 읽어나간 나로서는 마지막에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이토록 치밀하게 짜여진 작품이었다니.

일상 미스터리는 비교적 산뜻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포인트다. 그중에서도 와카타케 나나미의 작품들은 유독 여운이 길다. 아무래도 저자가 인간이 가진 선한 면과 약한 면 - 이 이중적인 면모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그려내기 때문인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이 가진 선과 악은 어떤 작품에서는 섬뜩하게, 또 다른 작품에서는 애틋하게 그려진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건 (살인곰 서점 시리즈에서도 느꼈지만) 저자의 작품들을 읽고 나면 따뜻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마틴 에덴 1~2 - 전2권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 전 본 영화 <마틴 에덴>(2019)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허름한 하숙집에서 한 거구의 남자가 원고 더미를 쌓아두고 집필에 매진하고 있는 장면. 열정인지 광기인지 모를 번뜩이는 그의 눈빛은 그야말로 내면에서 부글거리는 것들을 다 쏟아내려는 맹렬한 투지 그 자체였다. 나는 그 장면에서 마틴 에덴이 내뿜는 아우라에 거의 경도되었었다. 마치 극 중 마틴 에덴이 사랑과 글쓰기에 경도되었듯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기도 한 잭 런던의 <마틴 에덴>. 이 소설은 노동자 청년 마틴 에덴이 상류층 여대생 루스와의 만남을 계기로 그녀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지식을 쌓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골자로 한다. 이 책은 만듦새도 아름답지만, 문장 묘사 또한 일품이다. 주인공 마틴 에덴이 앎을 체득해가는 과정의 묘사가 특히 그러한데, 저자는 마틴 에덴의 머릿속에서 소위 폭죽이 터지는 순간을 놀랍도록 정교한 표현으로 그려낸다. 정확한 언어로 내적인 환희를 세밀하게 풀어내는 것 - 이것은 오로지 문장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독자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듯 읽어낼 수밖에 없고, 덕분에 마틴 에덴이 무서운 속도로 달성해내는 지적인 경이는 곧바로 독자의 것이 된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밤새 미친듯이 책을 탐독하며 좌절과 희열을 넘나드는 마틴 에덴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은 그런 순수한 몰입의 순간을 그리워하게 되거나.

이 소설의 주목할만한 점은 마틴 에덴을 추동하는 힘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에 있다. 그가 세련된 상류층의 언어를 배우려고 결심한 것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저당 잡혀가며 작가가 되기 위해 글쓰기에 매달렸던 것도 전부 다 루스를 향한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을 전부 소진할만큼 순진한 인물이다. 사랑 앞에서 그는 마치 태어나 처음 눈을 뜬 아기처럼 천진하고도 맹목적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냥 어리석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지만 동시에 가장 강인한 것이기도 하니까. 사랑 때문이라면 천국에서 지옥까지, 추앙에서 붕괴까지 순식간에 넘나든다고 해도 납득할 수 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랑 때문이라면.

마틴 에덴이 압도적으로 강렬한 인물이어서인지 루스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오히려 나 자신은 마틴 에덴보다 루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녀에게 별로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마틴 에덴이 브리슨덴과 만나는 장면. 아무리 자기 확신으로 가득찬 이라도 굶주림과 고독 속에 있다 보면 말라가기 마련이다. 브리슨덴은 누구보다 먼저 마틴 에덴의 영혼과 문학성을 알아보고 격려해준 인물이다. 작품을 잡지에 기고하지 말고 그 아름다움을 그저 간직하라는 브리슨덴의 외침, 그리고 그의 말로는 마틴 에덴의 붕괴를 예고한다. 브리슨덴 외의 다른 사람들은 마틴 에덴의 영혼을, 아름다움에 경도된 그 순수한 영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니까.

결말 부분은 아주 빠르게 회오리치는데, 읽어 내려갈수록 그 급살에 함께 휩쓸리는 듯했다. ‘이미 진작에 완성해둔 작품들인데 왜 사람들은 이제와서 열광하는가.‘ 마틴 에덴의 절규가 쌓일수록 어쩐지 서글퍼졌다. 내게 마틴 에덴은 너무나 순진하고 순수한 사람이다. 자신이 작가로 성공하리라 확고하게 믿었던 만큼 세상이 제게 자신이 원한 사랑을 안겨주리라 믿었던 사람. 그리하여 완전히 소진된 사람. 스무 살에 절필한 랭보 생각이 났다.

+ 녹색광선의 책들은 전부 아름답지만 이번 패브릭과 박 컬러 조합은 정말 최고.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레사 2022-09-07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극찬한 책에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네요 ㅎ
 
어린 시절 - 코펜하겐 삼부작 제1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덴마크의 여성작가 토베 디틀레우센의 회고록 ‘코펜하겐 삼부작‘ 중 첫번째 <어린 시절>. 덴마크 바깥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이고, 코펜하겐 3부작 또한 출간 이후 50여년이 지난 시점에 해외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을유문화사 암실문고의 첫 책이기도한 이 책, 책 소개 중 유년 시절의 묘사가 엘레나 페란테를 연상시킨다는 구절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어린 시절>은 1917년 공장 노동자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건조한 편이다.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을 다시 되새기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그때로 되돌아가니 나의 시원을 되짚지 않을 수가 없다‘는 정도의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행간에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탐독하고 홀로 시를 적었던 시간에 대한 기쁨이 드문드문 반짝인다. 어둡고 깜깜한 밤하늘에 빛나는 몇 안되는 별처럼, 저자의 고된 어린시절을 밝혀준 순간들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아무도 내 시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시를 써야만 한다. 시가 내 마음 속의 슬픔과 갈망을 무디게 만들어 주니까.‘(157p)

저자는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여기고, 막연한 미래를 불안해하면서도 시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시 쓰기란, 내면 속으로 침잠하여 몽상의 나래를 펼치는 순간까지도 전부 포함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분명 어둡고 무겁지만 괴롭거나 고통스럽기 느껴지지는 않는다. 건조함, 냉정함, 거리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당부분은 시적인 순간에 대한 묘사 때문인듯하다. 어쩌면 이 책에는 ‘지독하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끝끝내 견뎌낸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니까.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