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오늘의 젊은 작가 26
김병운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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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소설을 읽고 나니 더욱 절묘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상표라는 예명을 사용하며 배우 활동을 하는 강은성, 배우로서의 공상표와 생활인으로서의 강은성, 그의 대외적인 이미지와 퀴어라는 숨겨진 정체성, 강은성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인 1장과 강은성이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2장으로 꾸며진 글의 구조.



재미있다.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읽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로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엄마와 엄마의 옛 애인, 누나 등 타인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강은성이 2장에 이르러 전면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는 ‘나의 이야기는 내가 하겠다‘ 혹은, ‘앞으로는 진짜 나 자신으로 살아가겠다‘는 강은성의 다짐으로도 읽혔다.



특히 2장에서 강은성의 목소리가 이태원 게이 클럽 방화 사건에 대한 텀블벅 인터뷰로서 등장하는 것은 상징적이다. 단순히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뿐만 아니라 어떤 절규 혹은 외침으로도 읽힌다. 이는 강은성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준 유일한 인물인 김영우를 방화 사건으로 잃게 된 것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또한 2장에서는 강은성이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날까 두려워 없애버린 김영우의 미완성 영화 시나리오를 재구성한 글들이 실려있다. 이는 배우 공상표가 아닌 생활인 강은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실마리이자 그가 김영우에게 바치는 속죄와 다름아니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 강은성에게는 배우 공상표라는 이름 뒤에 숨겨왔던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하게 된 순간이 비로소 그 첫걸음일테다. 강은성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고 싶을 뿐인데 그 과정은 왜 이다지도 지난한가. 소설 말미에 실린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가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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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김진송 지음 / 난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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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인적 드문 산 속을 헤매이는 것 같았던 소설집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몇몇 작품을 읽으면서는 에셔의 판화도 자주 생각났다. 출구 없는 미로. 내가 만든 나의 감옥. 초현실적인 세계. 그런데 그 세계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고목들. 맨발로 딛고 선 땅에서 풍겨오는 흙내음.



이 책에는 미술평론가이자 목수인 저자가 써낸 10편의 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평소 자주 접하는 소설들과는 사뭇 다른 결을 가지고 있어 생각보다 더디게 읽혔지만, 이내 웅장한 배경이 그려지면서도 그 안의 세밀한 감각들이 느껴지는 표현만큼은 대단했다. 특히 축축하고 부드러운 토양과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가득 자란 숲 속 정경에 대한 묘사가 기억에 남는다.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작품은 표제작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와 ‘안섬 한 바퀴‘,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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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하루키 - 그만큼 네가 좋아 아무튼 시리즈 26
이지수 지음 / 제철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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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아무튼, 하루키>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거쳐갔을 바로 그 무라카미 하루키. 번역가인 저자는 학창 시절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역사를 하루키의 작품과 함께 풀어낸다. 진정한 하루키스트..! 게다가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하루키의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고 실망한 뒤 다시 펼쳐볼 생각도 나지 않았었는데.



출판사 서평에서 읽은 ‘하루키 읽기가 아닌 하루키라는 프리즘으로 ‘나‘를 읽어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빛나는 지점‘이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튼, 하루키>를 읽으며 하루키라는 작가 혹은 그의 작품을 분석해내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거쳐온 생의 사건들 속에 자연스럽게 하루키 이야기가 스며들어있어 좋았다. 하루키의 작품을 원문으로 읽고 싶어 일문과에 진학했던, 지금은 하루키의 작품을 번역할 날을 기다리는 번역가가 된 저자. 그가 적은 하루키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글들을 읽으면서 나도 내게 영향을 미쳤던 하루키의 작품들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누군가 내게 하루키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그의 작품은 모조리 다 읽었지만 글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 혹은 ‘신간이 나오면 도서 정보도 보지 않고 예약구매하는 편이지만 글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뭐..좋아한다는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루키의 작품은 <1Q84>이고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작품은 <노르웨이의 숲>이다. 또 나는 하루키의 작품은 청춘과 동의어가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내가 10대 중후반에 하루키를 열심히 읽었기 때문인지도.



안되겠다. 저자가 주저없이 최고의 도입부라 꼽은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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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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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는 현대사의 격변기를 통과하며 예사롭지 않은 삶을 살았던 심시선 여사와 세상을 떠난 그를 기리기 위해 하와이로 떠난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다. 또한 가부장제가 아닌 가모장제를, 한 세대의 여성에서 다음 세대의 여성으로 이어지는 용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세상을 떠났지만 소설 속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선보이는 심시선과 그녀를 기억하며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그의 자식과 손주들. 다채롭게 펼쳐지는 이들의 이야기를 홀린듯 읽었다.



소설의 각 장은 심시선의 글들로 시작되는데, 그 독특하고 솔직한 문장들을 읽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시대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의 역사가 보일락 말락 했다. 한국, 하와이, 독일을 넘나들며 살았고 세 번의 결혼을 했으며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두고 수필을 썼던 심시선. 남은 가족들이 그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또 어떻게 그를 기억하고 있는지를 힌트삼아 심시선을 상상하며 읽었다. 예민하고 섬세하며 강인하고 솔직하며 빈틈도 많았던 20세기의 한 여성이 그려진다.



환경 문제와 폭력의 역사에 대한 섬세한 시각,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 그리고 인물들 간 대화의 리듬감 또한 기억에 남는다. 쉴 새 없이 재미있게 읽히지만 독자로하여금 인간으로 살아가며 지고 있는 어떤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 그러니까 내게 <시선으로부터,>는 더 나은 세계로의 가능성을 꿈꾸게 만드는 소설이고, 밑줄을 그으려고 연필을 들었는데 이대로 긋다가는 책 전체에 밑줄을 그어버릴 것 같아 조용히 연필을 내려놓게 만드는 소설이자 책을 즐겨읽지 않는 지인들에게도 망설임없이 건네줄 수 있는 소설이다.



작가의 말에서 ‘죽는 날까지 쓰겠다‘는 문장을 읽고 그렇다면 나는 죽는 날까지 정세랑의 독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겼을 때 (곧!) 다시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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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안 수업 - 어떻게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보는가
윤광준 지음 / 지와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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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안이란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안목을 뜻한다. 어떻게 하면 심미안을 기를 수 있을까? <심미안 수업>에서는 저자가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네 가지 분야를 아우르며 일상 속에서 심미안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예술을 감상하는 이의 입장에서 직접 적용해볼 수 있는 실용적인 조언들이 적혀있다는 점과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있다는 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예술을 어렵게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이 책이 꽤 큰 도움이 될 것 같고, 예술 애호가들에게도 감상 방법을 정리해보는데 유용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미술 작품을 구입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경험이 미술 혹은 미술관에 대한 장벽을 낮춰줄 것이라는 조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요즘들어 전시회를 둘러볼 때 ‘아 이 작품은 집에 두고 오래오래 보고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곧 실현될 수 있기를 꿈꿔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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