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 마종기 산문집
마종기 지음 / &(앤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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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문학의 효용이 위로라면 바로 이런 글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60년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독자들 곁에 자리해온 마종기 시인의 에세이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시인이 사랑한 예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 그가 고국을 떠나 시인이자 의사로서 살아온 지난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시인의 문장은 다정하고 따뜻하다. 책을 읽는 내내 봄볕에 슬며시 녹는 눈이 된 것만 같았다. 잔뜩 긴장해있다가도 시인의 문장을 읽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편안을 누릴 수 있었다. 고집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내세움 없이 겸손한 글 앞에서 어떻게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시인을 좇아 부지런히 마음을 닦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지 다짐할밖에.



외국에 사는 게 힘이 들어 시를 쓰고, 외로움에 부칠 때 미술과 음악을 찾았다던 시인. 책 속에서 그는 ‘생활 속 즐거움‘이자 ‘오랜 세월 자신을 살려준 은인‘인 예술 이야기를 두런두런 풀어놓는다. 그가 이야기하는 예술은 지식이 아닌 ‘가슴과 가슴의 인사고 감동과 참을 수 없는 매혹의 집산‘(91p)이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는 이야기다. ‘서정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시인의 시 세계를 지탱해 준 예술 작품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있었고, 예술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확신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의학과 예술, 현대 시의 미래 등을 다룬 글에서는 시인의 넓은 식견과 깊이있는 통찰을 엿볼 수 있었는데, 역시 결론은 이해와 포용과 사랑으로 나아가는 예술로 이어졌다. 투명하고 순수하고 강력한 예술의 힘, 아름다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뽐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시대에 이토록 겸손하면서도 선한 문장을 만날 수 있음이 감격스럽다. 본문에 수록된 시인의 시와 이재용 작가의 사진이 무척 아름답게 어울려서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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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시대 - 문보영 에세이 매일과 영원 1
문보영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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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찬론자로서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었던 책, 이름하여 <일기시대>. 문보영 시인의 새 에세이다. 일기에 도저히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는 지리멸렬한 감정의 파편들을 휘갈기는 나로서는 일기라는 제목을 붙인 글을 세상에 내보이는 시인이 굉장히 용감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물론 시인의 일기는 보여질 것을 조금은 각오하고 쓰여진, 형식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글 정도가 아닐까 싶지만. 아무렴 어떤가. ‘무언가가 되기 위한 일기가 아니라 일기일 뿐인 일기,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를 사랑한다.‘(12p)는 서문의 문장에 이미 넘어가버린 것을.



시인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법한 일상조차 독특한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책을 읽는 내내 꿈과 상상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불면의 새벽시간을 버티는 순간은 ‘방 안에서 살아남기‘가 되고, 매일 가는 도서관을 새롭게 느끼는 방법은 ‘도서관 가는 길‘로 그려진다. 역시 비슷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제대로 붙잡는 방법은 ‘다르게 보기‘에 있는게 아닐까. 시선을 비틀고, 생각을 비틀고, 어제와는 다른 각도로 새롭게 살아가기. 지나치게 현실에 몰입하지 말고 가끔은 꿈과 상상을 섞어서 현실을 살기. 시인의 일기를 읽다보면 왠지 나도 이전과는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다. 일기 속에 감정의 파편들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무지갯빛 조각들도 적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손그림과 전시된 꿈 이야기, 구독 서비스를 하면서 받게된 독자들의 답장, 전화로 시를 읽어주는 ‘콜링 포엠‘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시인이 시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무렵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책이 등장할 때는 편애하는 마음을 담아 잔뜩 표시를 해두었다. (이틈을 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전집 발간 제발!) 그렇지만 내가 시인의 글을 읽을 때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그가 슬픔과 불안에 솔직해질 때, 더 나은 무엇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에 집중해낼 때다. 그리고 이런 문장들을 발견했을 때! ‘나는 나를 인간이라고 말하기보다 ‘준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삶을 산다는 말보다 ‘준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뭐든 조금 낮춰서 부르면 살만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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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가장 작은 빛 - 코스모스, 인생 그리고 떠돌이별
사라 시거 지음, 김희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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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에세이. 무척 솔직하고 아름답다.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을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여성 학자가 연구에 관련해서는 물론, 개인적인 상처와 극복의 여정을 가감없이 풀어놓는다. MIT의 천체물리학자이자 ‘쌍둥이 지구별’ 탐사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사라 시거의 에세이 <우주에서 가장 작은 빛>이다.



광활하고 드넓은 우주의 시간은 영겁같다. 그에 비하면 인간은 아주 짧은 순간을 산다. 우주를 매일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학자에게도 예외는 없다. 저자는 평생을 걸려 매진한들 끝이 없는 주제를 붙들고 연구하는 학자이자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실과 슬픔을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그에게 연구와 삶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므로, 책 속에 그가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을 찾아가는 두가지 길이 모두 담겨있는 것이 올바르게 느껴진다. 그는 세상의 전부였던 아버지와 남편을 잃고 느꼈던 감정들, 지인들의 도움으로 두 아이와 함께 다시 일상 궤도에 진입하는 과정까지도 겉치레없이 솔직하게 내보인다. 무너지고 또 무너져도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어린시절의 꿈을 기어코 현실로 만들어가는 모습과 겹쳐진다.



이 책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오롯하게 느껴지는 저자의 우주에 대한 사랑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끝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매일 매 순간 조금씩 더 나아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천재라 불리는 천체물리학자도 프로젝트 리더가 된 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고, 상실과 고통을 겪을 수 있고, 싱글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 삶 속에서 가장 작은 빛을 찾을 때까지, 그리하여 ‘우주에서 가장 작은 빛’을 찾게될 때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언어로 쓰여진 이 책은 마법같은 힘을 가지고 있어서, 펼치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읽게 될테니 반드시 여유로운 시간에 시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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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 - 죽음에 이르는 가정폭력을 어떻게 예견하고 막을 것인가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지음, 황성원 옮김, 정희진 해제 / 시공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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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 마음이 철렁하는 제목이다. 그럼에도 올해 가장 읽기 잘 한 책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은 살인사건으로 이어지는 가정폭력의 실태를 그 내부에서 치열하게 조망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작품이다. 가정폭력은 소수에게만 벌어지는 일 아니냐고? 착각이다. 전세계에서 가정폭력으로 목숨을 잃는 여성이 하루 평균 137명이다. ‘가정폭력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가장 긴급한 공중보건의 문제다.’(32p) 이 책은 모두가 읽어야만 한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여자들이 가정폭력으로 죽어간다. 그런데 왜 가정폭력은 공론화되지 않을까? 정말로 가해자와 피해자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걸까? 저자는 사건의 심장부로 들어간다. 그는 피해자가 왜 마지막에 이르러 가해자를 보호하는지, 잠재적인 살인을 예고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가해자와 피해자의 매커니즘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이야기한다.취재는 폭력적인 남성이 비폭력을 배울 수 있는지, 어떻게하면 가정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지까지 이어진다. 그가 집요하게 밝혀낸 현실은 충격적이다. 너무도 많은 여자들이 고통받으며 죽어간다. 너무도 많은 남자들이 ‘폭력적인 남성성’의 지배에 굴복하여 가해자가 된다.



책 전체를 끝없이 관통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가정폭력으로 살해된 여자들을 살릴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다르게도 말할 수 있다. 어떻게하면 집에서 가정폭력을 몰아내고 다시 안전을 되찾을 수 있을까? 먼저 문제의 핵심을 알아야한다. 가정폭력은 결코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그러니 부디 모두가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관심을 기울이기를. 이 엄청난 책이 그 시작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가성비’ 높은 공부는 이런 책을 읽는 것이다.’(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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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유서 움직씨 퀴어 문학선 2
구묘진 지음, 방철환 옮김 / 움직씨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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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묘진이 살아있었으면 어땠을까. 끈질기게 삶을 계속했더라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그린 소설을 읽을 수도 있었을까. 구묘진은 스물 여섯의 나이에 자살했고 소설 속 화자 또한 죽음을 선택했다. 아무리 자전적인 소설이라지만 작가와 화자를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타이완 퀴어 문학계의 전설적인 존재, 구묘진의 유작 <몽마르트르 유서>.



강렬하고 매혹적인 작품이다. 끈덕지게 배어나는 사랑, 우울, 죽음의 향기. 물론 그중에서도 제일은 사랑이다. 소설은 여러 실험적인 형식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파리에 남은 주인공 조에가 타이베이로 떠난 연인 솜에게 쓴 편지들이 주를 이룬다. 그의 문장은 관능적이고 애절하며 동시에 철학적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식은 모두 네게 지도록 허락하는 것이다”(117p) 이 사랑의 밀도높은 순수함과 비극성 앞에서는 무릎꿇을 수밖에 없다.



“결국 내가 죽는다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마지막 화해이며, 혐오와 뒤엉킨 내 깊은 사랑과의 마지막 화해인 것이다. 또한 솜의 삶과 화해하는 마지막 방식이다.”(107p)



가능하다면 소설 속으로 뛰어들어가 비극의 장막을 걷어주고 싶다. 예정된 끝을 찢어버리고 다시 쓰고 싶다. 어떤 이의 사랑은 뼛속 깊이 솔직해진들 이루어질 수 없어서 결국 죽음으로 완결되어야(재시작되어야) 함을 안다. 그러나 세상이 동성 간의 사랑을 배척하지 않았더라도 그러했을까.



<악어노트>를 읽고서도 그랬듯 이번 책에서도 한동안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 구묘진이 남긴 모든 글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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