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시대 - 문보영 에세이 매일과 영원 1
문보영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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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찬론자로서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었던 책, 이름하여 <일기시대>. 문보영 시인의 새 에세이다. 일기에 도저히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는 지리멸렬한 감정의 파편들을 휘갈기는 나로서는 일기라는 제목을 붙인 글을 세상에 내보이는 시인이 굉장히 용감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물론 시인의 일기는 보여질 것을 조금은 각오하고 쓰여진, 형식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글 정도가 아닐까 싶지만. 아무렴 어떤가. ‘무언가가 되기 위한 일기가 아니라 일기일 뿐인 일기,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를 사랑한다.‘(12p)는 서문의 문장에 이미 넘어가버린 것을.



시인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법한 일상조차 독특한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책을 읽는 내내 꿈과 상상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불면의 새벽시간을 버티는 순간은 ‘방 안에서 살아남기‘가 되고, 매일 가는 도서관을 새롭게 느끼는 방법은 ‘도서관 가는 길‘로 그려진다. 역시 비슷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제대로 붙잡는 방법은 ‘다르게 보기‘에 있는게 아닐까. 시선을 비틀고, 생각을 비틀고, 어제와는 다른 각도로 새롭게 살아가기. 지나치게 현실에 몰입하지 말고 가끔은 꿈과 상상을 섞어서 현실을 살기. 시인의 일기를 읽다보면 왠지 나도 이전과는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다. 일기 속에 감정의 파편들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무지갯빛 조각들도 적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손그림과 전시된 꿈 이야기, 구독 서비스를 하면서 받게된 독자들의 답장, 전화로 시를 읽어주는 ‘콜링 포엠‘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시인이 시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무렵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책이 등장할 때는 편애하는 마음을 담아 잔뜩 표시를 해두었다. (이틈을 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전집 발간 제발!) 그렇지만 내가 시인의 글을 읽을 때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그가 슬픔과 불안에 솔직해질 때, 더 나은 무엇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에 집중해낼 때다. 그리고 이런 문장들을 발견했을 때! ‘나는 나를 인간이라고 말하기보다 ‘준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삶을 산다는 말보다 ‘준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뭐든 조금 낮춰서 부르면 살만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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