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묘진이 살아있었으면 어땠을까. 끈질기게 삶을 계속했더라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그린 소설을 읽을 수도 있었을까. 구묘진은 스물 여섯의 나이에 자살했고 소설 속 화자 또한 죽음을 선택했다. 아무리 자전적인 소설이라지만 작가와 화자를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타이완 퀴어 문학계의 전설적인 존재, 구묘진의 유작 <몽마르트르 유서>. 강렬하고 매혹적인 작품이다. 끈덕지게 배어나는 사랑, 우울, 죽음의 향기. 물론 그중에서도 제일은 사랑이다. 소설은 여러 실험적인 형식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파리에 남은 주인공 조에가 타이베이로 떠난 연인 솜에게 쓴 편지들이 주를 이룬다. 그의 문장은 관능적이고 애절하며 동시에 철학적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식은 모두 네게 지도록 허락하는 것이다”(117p) 이 사랑의 밀도높은 순수함과 비극성 앞에서는 무릎꿇을 수밖에 없다. “결국 내가 죽는다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마지막 화해이며, 혐오와 뒤엉킨 내 깊은 사랑과의 마지막 화해인 것이다. 또한 솜의 삶과 화해하는 마지막 방식이다.”(107p)가능하다면 소설 속으로 뛰어들어가 비극의 장막을 걷어주고 싶다. 예정된 끝을 찢어버리고 다시 쓰고 싶다. 어떤 이의 사랑은 뼛속 깊이 솔직해진들 이루어질 수 없어서 결국 죽음으로 완결되어야(재시작되어야) 함을 안다. 그러나 세상이 동성 간의 사랑을 배척하지 않았더라도 그러했을까. <악어노트>를 읽고서도 그랬듯 이번 책에서도 한동안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 구묘진이 남긴 모든 글을 읽고 싶다.www.instagram.com/vivian_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