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이 동물원>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켄 리우의 소설집. 매혹적인 표지와 제목이 돋보이는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미출간 단편 열 두편을 한 권의 단행본에 묶어낸 한국판 오리지널 소설집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일단 맨 처음에 실려있는 다정하고 긴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과학 소설은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 현미경을 가져다 대는 것’이라는 말, 그리고 자신은 결국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라는 말. 그가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결국 누구도 아닌 자기 자기만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라고.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호(弧)’와 ‘내 어머니의 기억’이다. ‘호(弧)’에서는 미혼모였던 주인공이 시신을 재료로 인체상을 제작하는 일을 하다가 영생을 얻는다. 늙지 않는 것과 죽지 않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꿈이지만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 ‘내 어머니의 기억’은 살 날이 2년밖에 남지 않은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7년 주기로 방문하며 딸의 평생을 지켜보는 이야기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 극중극으로 소개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SF작가 켄 리우. 그의 한국판 단편집 두 권이 내년 출간을 목표로 준비중이라고 하니 앞으로를 더욱 기대해볼 만 하다.



(*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아이 없이 살기로 한 딩크 여성 18명의 고민과 관계, 그리고 행복
최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기다려왔던 바로 그 책. 18명의 기혼 무자녀 여성의 이야기가 담긴 책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 가감없이 적혀있는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와 함께 필독서로 권장되어야할 책이다. 특히 미혼/무자녀 여성들에게 강력추천하고 싶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한 생명체를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임신과 출산 경험의 위험성 때문에 등등. 하지만 이들이 겪는 오지랖은 왜 하나같이 똑같은지! 아이를 낳으면 책임져줄 것도 아닌 타인들이 더 유난이다. 숨이 막힌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이들에게 만약 남성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면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는지 물었을 때다. 아직까지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여성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결정해야한다. 그게 당연하다.



유자녀 여성에게 “왜 아이를 낳았느냐”고 쉽게 묻지 않듯이 무자녀 여성에게도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라고 캐묻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임신과 육아는 여성 혼자 하는 것이 아니지만 위의 질문들은 주로 여성에게 가해진다. 놀랍지도 않다.) 기혼이든 비혼이든 자녀가 있든 없든 개인의 선택이니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리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믿고 읽는 옥타비아 버틀러! 그녀의 마지막 소설 <쇼리>가 드디어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무려 뱀파이어물이다. 주인공은 쇼리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흑인 여자아이로, 그녀가 기억을 잃은 채 동굴에서 깨어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론 쇼리는 뱀파이어다. (소설 속에서는 ‘이나’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소설 속 뱀파이어들이 젠더와 인종의 평등을 추구한다는데에 있다. 일단 주인공 쇼리만 해도 흑인이며 인간의 피가 절반 섞여있다. 기존 뱀파이어 설화의 통념과는 달리 소설 속 뱀파이어들은 인간들과 공생관계를 맺고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인간들은 그들도 원할 경우 뱀파이어의 공생인이 되어 피를 빨리는 대신 쾌락과 수명 연장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까 뱀파이어와 인간은 일대 다수의 폴리아모리 관계를 가지는 셈이다! 이들의 유대는 강하고 절대적이며 에로틱하다.



물론 이 소설에도 장애물은 있다. 슬프게도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존재가 등장하는 것. 생각해보면 이 소설은 결국 주인공 쇼리가 차별과 혐오를 딛고(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성장소설인 셈이다. 걸친 것도 없이 자기자신밖에 없었던 쇼리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감탄스럽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매력적인 세계관을 가진 <쇼리>의 뒷이야기를 영영 읽을 수 없다는 것. 몇몇 오탈자 및 매끄럽지 못한 번역도 아쉽긴 했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판본 디자인으로 다시 출간된 덕에 몇 년만에 다시 읽는 <스토너>. 처음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이 생생하다. 더없이 평범한 보통 사람 스토너의 인생을 시간순으로 그려낸 이 소설은 ‘평범하기에 숭고하다’는 말을 증명하고 있다.​



책 속에는 삶과 문학, 언어에 대한 사랑이 깊이 스며들어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스토너가 처음으로 문학에 매료되는 바로 그 순간을 묘사한 장면이다. 결코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는,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황홀함과 성취감! 특히 그 이후 스토너가 전 생을 다해 문학을 비호하는 이로 그려져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보통 사람의 (어쩌면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는) 인생을 다룬, 출간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는 소설 <스토너>. 재조명된 이후에는 수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인생 책으로 꼽는다. 누군가 나에게 “혹시 당신에게도 이 책이 인생 책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깨비 2020-07-22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책입니다. ㅠㅠ
 
다시 쓸 수 있을까 - 77세에 글을 잃어버린 작가 테오도르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지음, 신견식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은 평생 40여권의 책을 출간한 77세의 전업 작가다. 그런데 어느 날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글이 글을 불러왔던 예전의 감각을 느낄 수 없다. 글을 쓸 수 없는 작가를 작가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닐테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하기만 하다. 바로 스웨덴 작가 테오도르의 이야기다. 그의 에세이 <다시 쓸 수 있을까>는 작가로서 최대의 위기를 맞은 그가 자근자근 그 위기를 헤쳐나가기까지의 여정이 담겨있다.



다시 쓸 수 있을까,라는 저자의 고민은 ‘다시 할 수 있을까‘ 혹은 ‘다시 살 수 있을까‘ 등의 비슷한 말로도 바꾸어 생각해볼 수 있다. 어쩌면 무언가를 다시 하는 것은 처음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용기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 같다. 무엇이든간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해왔던 일이 순식간에 막혀버린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미련 없이 뒤돌아갈 수도 있고 끝까지 정면돌파를 해볼 수도 있겠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자가 ‘그냥 내 인생을 바꿔야만 한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야 한다.(33P)‘고 결심하고 바로 행동하는 장면이었다. 저자는 수십년을 머물렀던 작업실을 정리해버리고 만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다.)



저자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는 그리스인이나 스웨덴에 정착해 스웨덴어로 글을 쓰는 작가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이 독특한 정체성이 그에게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다. 결국 저자는 다시 글을 쓰는데 성공하고야 만다. 그 과정이 참 놀라운데 어떤 것인지는 직접 확인하시길.



www.instagram.com/vivian_book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