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의 뱀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이미지 출처: 이웃님이신 가비님 블로그(http://blog.naver.com/garbeekr)>

 

 

겨울, 이란 이미지가 여러분에겐 어떻게 느껴지고, 그리고 또 어떤 색으로 그려지고, 또 어떻게 다가오는지 궁금합니다.

겨울, 이란 이미지가 저에겐 적어도 따뜻하고 그리고, 저를 감싸안는 느낌으로 그렇게 그려지고, 다가오고 있답니다.

겨울, 이란 이미지는 누군가에게 순백의 따뜻함으로, 누군가에겐, 침묵으로 그리고 누군가에게 한없이 춥기만 할지도요..

 

 

 

 

 

오늘 그 겨울의 끝에서 한 소년을 만났습니다. 분명 곁에 소년에게는 "가족" 이라 불릴만한 이들이 있는데 소년의 마음의 왠지, 차가워보였습니다. 바람 한점 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마음은 휘잉, 하고 소리를 내면서 다가옵니다. 한걸음, 그에게로 다가가면, 그는 이미 소년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직 17살의 소년이 그의 마음 속에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저쪽 어느 구석쯤, 웅크리고 울고 있습니다. 다가가고 싶은데, 그 소년은 왠지 손사래를 치고 있더군요.

 

 

오늘, 그 겨울의 끝에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평범한듯, 단정한 아내라는 이가 웃으면서 있었는데 그의 눈은, 공허하게도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에게서 아까의 그 소년이 보입니다. 웅크리고 내내 울던 그 소년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요. 똑같은 소년인데.. 참으로 미묘하게 다릅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소년, 그러나 죄책감의 소년, 그러다가 한편으로는.. 참 무서운 소년, 그리고 한쪽 눈을 감은 소년이 보입니다. 같은 듯, 아주 다른 그 소년은 ... 이미 한 사람의 성인이네요..




 

 

 

 

그런데도,

한 사람의 성인으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물방울들이 보인다면, 이상할까요..? 마치, 그건 스스로를 원으로 또아리 틀고 그 안의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혹은 그 자신이 진실, 그 이면의 것을 숨기려는 뱀과 같이 보였답니다. 가끔은 덮어야할 때도 있다고, 침묵하면서, 침묵의 색이 뭔지 아냐고 묻는 그에게서 들리던 것은 빗방울, 그리고 바람소리, 아직 웅크리고 있는 17살, 그때의 기억이였답니다..

 

 

 

 

 

 

 

 

 

 

 

 

 

 

 

 

 

 

는 낯간질럽지만.....요



 

 


 

 

미치오 슈스케는 작년 나오키 상 수상작인 "달과 게" 이전에도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등으로 꽤나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기도 하답니다. 그의 끈적거림이 싫어서, 라면서도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었다고.."해바라기가..." 에 대해서 이웃님이신 감자님께서 말씀하셨고, 저는 처음, "달과 게" 로 만나,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 에서 더 큰 점수를 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설에는 항상 "성장, 소년 그리고 가족" 이란 키워드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난 건, 겨울 "구체의 뱀" 을 통해서였다. 이 표지처럼, 을씨년스러운 가을을 지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그때, 17살의 소년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소년이 가지고 있던 비밀이 무엇인지는 차근차근 읽어나가면서 알 수가 있었다. 소년은 분명, 혼자인듯 했지만, 결국 소년은 또 혼자였다. 그 눅눅한 신발을 어디다가 벗을 지 알 수 없는 사춘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17살의 소년, 이였을 뿐이다.

> 일명 스피사(스포를 피하는 사람들)분들은 피하셔도 됩니다! 결말이 있거나 그렇진 않지만요. 글도 긴데 스킵해도 됩니다 ^^;;

 

 

 

 

모든 것은 사요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소설은 "사요" 로 끝을 맺는다. 그 사요가 가지고 있던 비밀, 그 사요 때문에 내내 소년의 가슴이 죄책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요가 남기고 간 것은 "나" 뿐 아니라 나를 거둬준 오츠타로씨에게도 그렇다. 그러나, 하필이면 나 때문인 것이다. 그날, 화재로 사요는 죽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세월은 무덤덤하게 지내오는 것 같았지만,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 그녀와 너무나 흡사한 토모코를 만났다. - 그것도, 화재로

 

 

 

 

 

 

사요는 화재 때문에 죽었고, 토모코는 화재 때문에 살았다- 이 기이한 인연에 어쩌면 소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하필 그 자리에 토모는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부정도 그리고 긍정도. 그러나 이 "화재" 는 그래서 되려, 토모의 마음에는 비가 내리듯 그렇게 신발이 눅눅해 질 때까지 젖어들 때까지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젖은 신을 또 놓지 못하고 있던, 토모였다. 이미 젖었다고, 불에 말려봤자라고, 말하는 토모가 보였다. 깨끗이 빨면 된다고 말해도, 그래도 내놓지 않던 그 신발..

구체의 뱀...이 주는 것은 마치, 마루밑으로 숨어들어가는 모습이 연상이 됐다. 토모코는, 실은 토모의 다른 모습 아닐까요? 그리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리 평범해 보이던 나요는 사요의 모습인지도요- 가끔은, 사요의 이름에서 "사요나라" 의 일본어를 생각하면서, "안녕" 과 함께 무엇과의 안녕일까를 잠시 생각해 보게도 된답니다.

 

 

 

 

 

열일곱, 은 이제 성인으로 탈바꿈 하기 전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이다. 그리고 그는, 아직 그 7년전 열살의 나이로 주저 앉아 있었다. 그 나이에 울지도 못하고 꺽꺽거리고 있었던 토모다. 내내, 토모는 속으로 삼키고, 또 삼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거짓인지, 혹은 위선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때는 눈 앞의 것이 보였을 뿐인 소년이다. 열일곱이 돼서도, 토모는 여전히 열살의 소년으로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은 참으로 잔인하기도 하다..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만 품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 아픔이, 쿡쿡 찔러오던 그런 것들은 실은 나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은 아프다. 그것은 이제껏의 미치오 슈스케가 그랬듯, 그런 비슷한 색채이면서 작년의 나오키상을 수상함으로 그 색체가 살짝, 미스터리보다는 "순수문학" 쪽으로 더 몸이 비틀어져서, 조금은 서운한 감이 없잖아 있는 소설이기도 했다. 만약 "달과 게"를 상당히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다. 어쩌면, 달과 게의 소년들을 보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소설에서 "미스터리" 를 기대한다면 어쩌면 실망을 할 것이다. 분명, 소년이 가지고 있는 비밀, 그리고 토모가 가지고 있는 비밀이 있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소년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간의 이야기는 또 미스터리 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흔히 명명하는 "미스터리" 는 아닌 것이다.


 

 

 

이야기는, 어쩌면 이 표지의 것이 다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고 난 뒤, 우리는 어쩌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보면서도 그저 침묵하고 있게 될 지도 모른다. 보아뱀의 이야기는 그렇다. 그냥, 보면 그것은 우리에게 무섭지도 않지만, 어린 아이들이 보면, 그 모자는 코끼리를 잡아먹는 보아뱀으로 보이면서 소름끼치는 공포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내내 남아버린다.

 

 

"구체의 뱀" 도 마찬가지다. 또아리를 틀고, 진실을 저 안쪽으로, 저쪽으로 숨겨버린다. 그 진실의 이면을 .. 가끔은 숨겨도 괜찮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일지도 모른다. 침묵의 색을, 흰색으로 칠하고 있다. - 가장 순수한 그때, 어쩌면 순수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차가운 벌판에서 불이 일어난 것에 꼼짝하지 못하고 여전히 오늘도 그 자리에서, 두 손에 신발을 꼭 쥐고 있는 소년의 느낌이였다.

 

 

 

- 더 이상 미치오 슈스케에겐 어쩌면 그의 고유의 색인 미스터리를 기대치 말라, 고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그 전작들처럼, 아프다. 쿡쿡, 명치의 언저리가 아파왔습니다. 그 진실이 .. 그러나, 매번 책을 말함에 있어서 "큰 기대치" 는 갖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만,저는, 이 책의 기대치를 내려놓고 봐선지, 괜찮았습니다. 다만, 가독성은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 를 생각한다면, 조금 느린 템포로 나갔고 나오키상 이후, 조금 미스터리를 써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린왕자의 질문에 무어라고 답하셨나요..? 알면서 혹시, 침묵하진 않으셨는지요? 왜냐면, 우린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으니까요...다만, 알고 싶지 않았을 뿐이랍니다. 그 묘한 침묵을 그려냈다, 라는 건 이 표지와 제 이웃님의 블로그를 들렀다가 알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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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독살사건 - 조선 여 검객 이진의 숨 막히는 진실 게임
이수광 지음 / 산호와진주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에 있어서, 만약이라는 것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리하여 지금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또 그 역사속의 어딘가에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서 "만약" 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소현세자입니다. 만약, 그가 살아서 왕위를 이었다면, 이라는 가정입니다. 어쩌면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참으로 많이 변하지 않았을까요..?

 

 

 

 

 

 

병자호란, 그 전쟁통에 치욕스럽게 패한 것도 모자라, 청의 볼모로 끌려갔던 세자는 그러나, 그 곳에서 왕자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고 청의 문물에 관심을 보입니다. 언젠가 왕이 될 그는, 그것이 백성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지를 생각했을 겁니다. 무엇을 취해야 더 이득인 것일지를요. 혹은 그가 아무리 살아서 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싶어도 신하들의 반대에 계속 부딪히면서 결국 그도 나약한 왕으로 전락했을까요? 그래도 아무도 모를 만약에, 를 생각해 봅니다.

 

소현세자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은 "독살설" 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버지 인조와의 불화가 그 처음이기도 하고요. 가만히 역사를 보면서 저 권력이라는 것이 뭐길래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사건들이 참으로 많기도 합니다. 그 중, 아버지와 아들임에도 그 자리가 권좌이기 때문인지 첨예한 대립의 길을 걷고 있는 사건들을요. 그래서 그 대립의 끝은, 결코 좋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믿었던 만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역사의 기록은 그저 승자들이 남긴 산물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그 기록의 산물을 읽어봐도, 그들 스스로가 또 남겨놓은 증거들이 있기도 하지요. 어쩌면 일부러 조금씩 남기는 것인지 아니면 약자들에게 경고로 남기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남겨버린 증좌에서 우리는 또다른 것들을 읽어내고 있습니다.

 

 

 

 

 

 

 

 

 

 

 

 

 

 

 

- 는 와-_-; 이고요.

 

 

 

 

이수광 작가를 만난 것은 작년입니다. 작년 팩션소설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그리워하다 죽으리" 라는 아주 애절한 사랑이야기인줄 알았으나, 훼이크~ 였고 도대체 그대는 무엇을 그리워했는지..라고 저는 반문을 할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소설을 그 기억에도 제가 잡은 것은 역사의 한 토막, 만약 소현세자가 살아더라면..? 이라는 가정 때문이였고 무엇보다 그 독살설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있게 다룬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처음부터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슬슬, 그 배후를 둘러싸고 진실공방이 오가며 ... 를 기대했으나, 그런것 없습니다. 저는, 세자의 뜻하지 않은 죽음을 하나하나 밟아나가는 이들의 머리싸움과, 숨겨진 진실 그것들을 숨기는 이와 쫓는 이들의 치밀하고 치열한 공방전과 더불어 과연 진실이 밟혀졌으나 기록되지 못한 채 덮여지는 것,을 기대했는으나, 그런것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초반 아주 잠시 뭔간 흥미를 유발할 듯한 이형익의 발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것은 곧 묻혀버립니다.

 

두 여 자객인 이진과 이요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둘이 남과 북이듯, 또한 섞일래야 섞일 수 없는 그럼에도, 진실을 알고파 하는 그녀들의 이야기였다면 또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그렇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북촌항아, 남촌항아라며 무척 지성과 미모를 감추고 있고 거기에 무예까지..도 좋습니다만 그걸 자신들의 입으로 말하는 거, 안 창피한가? 싶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만남까지는 좋았으나 만나자마자 이요환은 이진의 무엇을 믿고 자신의 아버지의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지.. 전 거기서부터 읭?했습니다.

 

내 아버지의 의미심장한 말, 그것도 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말, 오랜지기에게도 털어놓지 못할터인데 처음보자마자, 이 요환은 이진에게 말하고, 그 다음은 부마도위로 나오는 오강우입니다. 이 둘과 함께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는 자로 나오는데 참으로 준수하게 생겼다, 라는 것으로 두 여자는 첫눈에 그리고 동시에 오강우에게 반합니다...네 그럴수 있습니다만, 갑자기 역사소설은 미스터리가 아니라 무협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무협물이 어떻다는 것이 아닙니다. 무협물은 재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무협물은 난데없고, 게다가 싼티까지 나니 저는 어찌해야할 지를 모르겠더군요. 대체, 이게 뭐지..? 라는 것이지요. 게다가 이진은 어느 세월에 무술이 그리 늘었는지, 그런것 없습니다. 뭐 개연성은 싸그리 말아 잡수셨더군요.

 

 

 


 

 

네, 제가 왜 "자객" 이라는 것을 보지 못했을까요? 소현세자, 라는 것 때문이지요. 무협물로 변한 후, 상상 그 이상의 것들을 보여주십니다. 아주, 불유쾌한 연어같은 여자의 피부라던가.. 제가 작가님의 "연어" 즉, 역사는 다시, 돌아온다 이런 코드를 읽어내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네, 역사란 그런 것이지요 마치, 무협물들의 강호들의 싸움과 같은 것, 아닐까요? 그들이 진정한 고수가 되기 위해서...... 라고 해봐도, 모르겠습니다

 

"소현세자" 라는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의문의 "독살설" 이것만으로 우리나라 팩션소설, 그것도 장르문학에서 괜찮지 않을까 싶었으나, 소현세자는 그저 이미 죽었을 뿐이고, 그냥 뚱딴지 같은 무협물만 거기에 앉아있으니, 기가 막힐 밖에요. 강호들이 나오는 게 재미라도 있어야지요. 재미는 어디다가 쌈을 싸셨는지요? 개연성, 없습니다. 재미, 없습니다. 팩션, 그딴건 원래 존재치 않았습니다. 물론, 인조를 비롯한 세자빈 강씨, 소형조씨(그나저나, 이때쯤은.. 귀인 조씨가 돼 있지 않았을까요?)등 인물들은 나옵니다. 분명! 그런데, 팩션이라기엔...

 

분명, 조소형이긴 하나, 제가 알기론 그렇게 옹주와 군을 생산했으면, 정4품인 "소형"이 아니라 적어도 귀인은 돼 있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재미를 위해서..라고 읽었으나 없는 "현숙공주" 가 나올 땐 살짝..응? 했던 것은 정비소생이 아닌데 옹주가 아니라 어째서 공주로 표기를 하셨는지.. 그냥 "왕자""공주" 할 때의 그 공주로 생각을 했습니다만,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거였던가요?

 

 

 

 

 

 

그렇습니다. 이 문구대로 이 소설이 너무 기막히고 코가 막혀서 숨까지 막힐 뻔 했지만 진실게임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는 힘들었습니다. 어째서, 그리 이해를 못하는가? 무림을 빗댄, 정치가들의 이야기를 왜 읽어내지 못하는가? 라고 제게 물으시면 정말 죄송합니다만, 그런것을 읽어낼만큼 똑똑하지 못해서, 가 아니라 그리 쓰지 못하신 작가님이신걸요.작가들이 숨겨놓은 것을 읽어내는 것도 한도가 있는데, 그런 것 없었습니다.

 

개연성이 없으면, 재미라도 있던가, 재미가 없으면 개연성이라도 있던가 아니면 너무 역사에 충실해서라든가, 뭐 아무것도 없습니다. 갑자기 소설은 저 바닥의 바닥인 무협지로 변하더니, 마무리는 해야할테니 인조의 찌질함을 보여주기는 하는데 이건 뭐 그냥 훌렁훌렁 넘겨도 될 정도니까요. 게다가, 그 후의 이야기를 보니, 정명수 암살 사건으로 넘어간다.. 는 뺐으면 싶었습니다. 편집의 실수인지, 인조의 정신적 문제만 언급한 채로 끝냈어야하는데, 싶었습니다.

 

네,

참으로 소현세자 독살사건에, 정작 소현세자의 이야기, 그를 둘러싼 이야긴 없습니다. 다만, 무림의 고수..도 아니고 스스로가 지성과 미모와 무예까지 겸비했다고 하는 두 여성 자객이 나오고 그 두 여성자객이 한눈에 반해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게 만들 오강우가 나오고, 그냥 그게 답니다. 딱히 또 무술을 익히고 이런 것, 없습니다. 그래도, 뭐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이 많으다니 그 분들의 취향도 존중하지만 저는, 제가 할 말이 참 많았던 소설을 이렇게 한마디로 할 말도 없게 만들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분께서 역사소설의 대가시다, 라는데 언제부터 우리의 역사가 무협으로 변했던가요?

 

네,

무협의 강호들의 싸움, 그것이 얼마나 치열한가 모르냐고, 그리고 그 치열함을 정치판으로 옮겨놨는데 그걸 읽어내지 못한 저에게 뭐라고 하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다만- 그러시다면 다음부턴 누군가의 이름으로 낚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그 정치판의 치열함을 강호로 표현해내신 것 같지도 않으시지만 - 사람들이 역사의 어느 단면, 그 "가정" 을 하고 싶어하는 것으로는 쓰지 마셨으면 합니다. 만약에, 살아있었더라면..과 동시에 그의 죽음을 팩션으로나마 알고 싶었던 저에겐 참으로 쓰고 쓴 소설이였습니다. 파닥파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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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거짓말 - 명화로 읽는 매혹의 그리스 신화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오르페디우스의 전설은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찾아서 지옥까지 갔고, 그의 하프에 그리고 사랑에 감동한 하데스가 에우리디케를 돌려주면서 한가지 조건을 걸지요 그것은 바로, 저승을 떠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차 하는 순간, 항상 "금기"를 잊어버린건지 혹은 깨고 싶었던 인간의 욕망 때문인지 아니면 금기에 대한 호기심이였는지 뒤를 돌아본 순간, 그는 아내를 두번 잃어버렸다는 잘 알려진 그, 아픈 사랑의 이야기를요. 오르페디우스는 시인이며 노래하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부른 금기의 사랑 노래 그처럼 하지 말아야할 사랑이 바로, 이 책의 표지인 "피그말리온과 갈리테아" 의 이야기랍니다.

 

 

 

 


 

 

장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는 책에는 갈리테아의 뒷모습이 보이는 이 명화가, 바로 표지를 장식했답니다.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많이들 아시겠지만 피그말리온왕이 자신이 만든 조각상의 여인에게 사랑을 느껴버린답니다. 그리하여 아프로디테의 여신의 축제의 날, 피그말리온은 소원을 말하고 여신은 그 소원을 들어준다, 라는 그 찰나를 너무나 멋지게 포착한 명화랍니다. 아직 하반신은 석고상임도 보이는 이 완벽해만 보이는 명화가 살짝, 거짓을 말한다고 합니다.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먼저 키스를 하는 것이 피그말리온이 아니라, 조각상이라는 것이랍니다- 피그말리온의 소원을 포착한 그 순간이라면 저리 적극적일 수는 없다, 라는 것이라네요. 그저 보는 사람들은 아, 그렇구나, 라고 보지만 잠시만 생각해보면 어쩌면 알 수도 있는 것. 그래서 혼자만 아는 듯 그렇게 슬쩍 명화가 주는 또다른 이야기를 볼 수도요.

 

 

 

 

 

명화의 거짓말은, 글쎄요 명화가 우리에게 주는 거짓말보다는 그리스 신화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명화로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꽤나 많답니다. 우리가 신화를 읽기만 한다면 아마도 그 족보에 화들짝 놀라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레 겁을 먹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명화의 거짓말이 말해주는 명화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인간과 같았던 희.노.애.락을 고스란히 표현해 내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의 이야기의 무대 어디쯤, 그리고 바람둥이 제우스의 뒤를 어느샌가 따라가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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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침과 기도
시자키 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출처: 이웃이신, 고양이 꿈님( http://blog.naver.com/gorgeouscat )>

 

어딘가 떠나려는 곳, 그곳이 공항이든 혹은 배를 타기 위한 항구든 그곳의 사람들에겐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떠나는 자마다, 그 이유는 각기 다를테지만 말이지요. 왜일까요..? 사람들은 어딘가 떠나는 그 여정을 왜 두려워하면서도 설레여하고 기다리는 걸까요..? 가끔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것은 여행이란 것이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서이지는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는 우리의 삶에서의 일탈이기에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오늘, 사이키란 한 남자를 만납니다. 그가 여러 나라의 언어를 할 줄 알아서 여행할 기회가 주어진 것인지 혹은, 반대로 여행을 하기 위해서 언어를 배우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가 우리를 사막 한 가운데로, 그리고 풍차의 도시인 네덜란드가 아닌 정열의 나라에서 사랑을 노래를 들려주기도 한답니다 어쩌면 미노코스의 풍차에서 들려줬을 수도 있겠지요. 사진처럼요.

 

 

 

 

 

 

그리고 이야기는 쉽사리 끝나지 않는답니다. 어느날은, 수도원의 안개에 가려진 그 뭔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뜨거운 사막, 에서 시작한 여행은 또다시 뜨거운 아마존의 한 부락의 외침을 목도하게 하더군요. 그리고, 랍니다. 네, 세계는 그렇게 사막에서 아마존까지인 것처럼 또 남극처럼 차가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안개낀 곳에서 밝은 곳으로 다시 남극에서 또다른 사막으로 이어지는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 여정" 이라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길 가운데 서 있었던가요? 우리는, 길 가운데 서있기도 하지만 실은 인생의 어디쯤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설렘으로 시작하여 두려움으로 끝나더라도 어쩌면 온통 이야기로 가득찬 이 세계에서, 과연 우리의 통로는 어디쯤일까요? 아마, 아직도 사이키는 할 이야기가 많을테지요 그리고 실은 우리도 사이키에게 해 줄 이야기가요..

 

 



 

 

그리고, 그 이야기의 연속선상에 서서 우리는 봅니다. 들어갈 때 화려하게만 보였던 그 문이 어떠한가를요. 설레임으로 갔다온 곳의 실체도요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요. 두려움으로 들어갔다 나온 문은, 다를지도요. 가끔은, 누군가의 혹은 누군가들의 혹은 나의 외침과 기도를 듣거나, 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살아있는 한, 또 우리가 알지못하는 이야기 혹은 알고 있던 이야기들은 계속 되고, 되풀이 될 수도 있지만 잠시만 안으로 들어오겠냐고 문 손잡이를 잡게 하는 외침과 기도, 입니다.

 

 

 

 

 

 

 

 

 

 

 

 

 

 

 

 

 

 

는-_-;;닭살이고요..1년만에^^;; 서평을 쓰려니..감도 떨어지고....힘들고..한살 더 먹었음을 실감하고요.-.-;

 

 

 

 

 

시자키 유는 이제 첫발을 디딘 신인이다. 08년의 단편, "사막을 달리는 뱃길" 로 데뷔한 이래, 재작년 아야츠치 유키토,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격찬을 받았고, 나오기 힘든 대단한 주목해야할 신인, 으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설명에는. 그러나 신본격의 선두주자인 아야츠치 유키토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격찬을 했다니(특히 아리스가와 아리스..;) 사실 갸우뚱, 이들을 믿어야해? 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야기는, 다섯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다. 앞에서 오글거리게 이야기 한, 네 이야기 외엔 한 이야기 바로 "기도" 편은 그래서 "그리고, 입니다" 로 끝낸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이 이야기들은 신본격의 선두주자들이 뽑았다고 믿기엔 여전히 물음표가 남았다. 이야기나, 그 형식 자체로선 "본격"의 형식과 전혀 어긋나 있는 느낌이였다. 되려 사이키의 여행 에세이 같다, 라는 느낌이 강했다. 올 해, 신인들에게 주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인 "완전한 수장룡의 날"의 경우에도, 미스터리보단 순수 문학쪽에 가깝지 않나 싶어서, 요새의 추세가 이런가 싶기도 했다. 완전한 미스터리로서가 아닌.

 

 

 

 

그렇다고 이 소설에 미스터리가 없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쩌면 독자들 중 상당수가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내 경운, 처음 시작은 지겹겠다, 라고 시작했으나 의외로 "사막을 달리는 뱃길"의 끝무렵쯤, 여운이 잔잔히 남았다. 그러나 그렇게 다 좋다가 아닌, <얼어붙은 루시><기도>의 경우는 처음 흥미진진하게 읽다가 마지막에 가서 아, 이래서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은 정말이구나, 라는 걸 느끼게 해 준 경우다. 내게는.

 

 

 

 

 

 

 

아직은, 시자키 유에게 이런 찬사는 과하지 않나 싶다. 에세이 형식의 미스터리, 그러나 그것이 안락의자탐정과 비슷한 느낌도 준다. 결국, 그 스스로가 문제를 진실이라고 하는 것을 마지막에 다 푸는 형식으로 어쩌면 그래서 신본격 주자들이 그 점에 상당한 점수를 주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 점이, 상당히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막을- " 은 내게 여운이 길게 남았다. 왜 이 파트가 그들에게 그리 찬사를 받았는지도 알 것도 같았다. 그래서 아직 그냥 지켜볼 시자키 유이긴 하다.

 

"얼어붙은 루시"는 그렇다 치더라도, "기도" 는 많이 맥빠졌다. 흥미진지하게 가장 읽다가 어느 순간 읭스러운 파트였기에. 그 결말조차, 마음에 안 들었고. 미스터리 답지 않다, 가 아니라 그 자체로 제겐 별로였다. 너무 수를 억지로 둔 느낌도. 그래서 중반 이후 잘 읽혀내려가지가 않았다.그러나, 아직 그는 신인이다. 그를 너무 높이 치켜세워서 자만심이 없다면. 이런 형식의 미스터리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이키가 본 것이, 전부 사실의 이면이며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 또한 독자들의 몫으로 남기면서 한번쯤 여운을 깊게 남게 해주기는 했다. 여전히, 불만은 많지만 다음에 평을 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가독성면에서 좋다, 라고 절대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하나하나 음미하게 해 준 것은 있지만, 본격이나 사회파 미스터리를 원한다면 권하고 싶지는 않기도 하지만 항상 의외란 존재하기에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본 서평은 카페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본인의 주관에 의해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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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고양이는 없다 - 어쩌다 고양이를 만나 여기까지 왔다 안녕 고양이 시리즈 3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가끔 길을 가다가 날카로운 발톱과 눈을 반짝거리면서 제 앞을 지나가는 것이 있습니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요. 그럴 땐, 참으로 무서워져서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볼 생각조차 안했답니다. 그런데, 분명 그건, 고양이들이였습니다. 주인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소위 말하는 길고양이들이요. 강아지는 키워봐서 덜 무섭지만, 역시 익숙하다는 건 그런건가 봅니다. 고양이

는 좀 더 무섭답니다. -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어쩌면 두려워해야하는 쪽은 제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쁜 고양이는 없다, 는 그런 길고양이들의 사계를 담은 책이기도 하답니다.봄부터의 사계가 아니라, 바로 가을부터의 사계로 시작을 한답니다. 하긴, 봄부터든 혹은 가을부터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요? 우리들의 사계는 변하고 있지 않을걸요. 소냥시대의 출생부터 시작하여, 참으로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양이의 세계도 어쩌면 인간의 세계와 그다지 별다르지 않다, 라는 느낌으로 책을 읽혀졌답니다. 그러저, 가장 앞부분의 고양이 영역지도가 왜 필요했는지, 등장 고양이들에 대한 설명이 왜 있었는지를 알 것 같더라고요.

 

 

 

 이 그림은 고양이들의 영역지도인데요, 다 읽고 보셔도 되고, 읽기전에 보셔도 된답니다. 마치, 사람들의 마을 같지 않나요? 사람들이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살듯, 그렇게 고양이들도 자신들의 영역내에서 그리고 남의 영역을 침범치 않는 내에서 살아가고 있더군요. 그런 부분들이 처음엔, 이거 뭐지? 하다가 나중에는 마치, 내 마을의 어느쯤에서 일어나는 일들처럼 읽히기도 했답니다 물론, 다 재미있는 이야기들만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걔중에는, 저 영역싸움이 마치 인간들과 흡사하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특히나, 새끼를 낳은 어미 고양이들이 더더욱 그랬답니다.

 

 

 

 

 길고양이들에게, 겨울은 가장 추운 계절 아닐까요? 집고양이완 달리, 그 겨울에 새끼를 낳는 길고양이도 분명 있을테고요, 그리고 걔중에는 너무 추워서 동사를 하는 고양이들도 있을겁니다. 그래서 작가는 말합니다. 죽지말라고요, 그리고 또 얼어있지도 말라고요 긴 겨울 같지만, 곧 봄은 올테니까, 제발 그때까지 참으라는 작가의 말이 그래서 더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이때 어린 길고양이들은 그냥 죽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잊혀질 어느날이지만, 그날만큼은, 참 겨울이 시리고 또 시리기도 하고요.

 

 그러나,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있노라고, 달타냥에 대한 웃음도 나고, 깜찍이는 말 그대로 깜찍하고 소냥시대라곤 하지만 암놈은 한마리 뿐인 고양이들, 그리고 전원주택과 개울집의 삼총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재미나기도 하고, 끝무리쯤 가면, 아픈 이야기들도 있지요. 인간에게만 희노애락이 존재치는 않으니까요.

 

 

 

 

 등장고양이들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있습니다.그러나, 이 등장고양이들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읽어보세요. 가끔 밑에 써놓은 일들은, 깜짝 놀라게도 하니까요. 영화를 보기전, 스포일러처럼요 -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였대, 라는 식스센스의 반전처럼, 정말 본의 아니게 맥빠진 게 있었답니다. 그 부분은 좀 빼주지시, 했던 거였답니다. 너무 좋았지만, 그래서 더 아쉬웠던 부분은 너무나 상세한 설명이였답니다. 그러니 혹여, 읽으실 분은 그 부분은 살짝 가려주세요 그러면, 참 재미있는 고양이들의 등장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답니다.

 

 

 



 게다가 작가의 센스가 돋보이는 페이지는 하나의 계절이 지날 때마다, 시도 멋있지만 이렇게 정말 길냥이들이 대화를 하듯, 그런 페이지들이 웃게도 만들었답니다. 표정이란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가까이의 냥이들이게도 있더라고요. 그러나, 항상 그렇게 웃게 만드는 페이지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사람들은, 의외로 잔인하여, 길냥이들을 방치만 하면 좋겠는데, 쥐약을 놓기도 하지요. 작가는 그런 것을 몹씨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아파하면서 사람들의 무지를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특히나 시골이라서, 더 그렇다고요

 

 그러나, 저는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답니다. 사람들에게 미리 공감과 소통을 구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는 좋았지만, 시골이라서 무지하고- 등이 나올 땐, 작가들이 사는 곳 역시 촌이며, 제겐 그저 촌사람인 것을요.. 그리고 쥐약은 길고양이들이 쥐를 잡아오더라, 라고 했을 때 거두신 분들이 계신 걸 보면, 그 쥐약이 고양이를 향함이 아닌 것을요. 그리고 텃밭의 농사가 또 더 우선순위에 있다면 길냥이들이 싫을 밖에요. 작가님이 보신 것도 맞지만, 또다른 제 3자의 입장에서 그리 읽혔답니다.

 

 

 

 

 

 그리고,의외로 사람들의 잔인성을 많이 봐와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작가님이 좋아하시게 된 이 길고양이들, 다른 사람들도 사랑스럽다고, 여겨지게 만들게 공감과 소통의 노력을 해봤자, 라고 하지 마시고 꾸준히 하셨으면 합니다. 그들도 압니다. 작가님께서, 그들에게 고양이 소재로 영화도 책도, 나와요! 하면서 조금은 무시하는 거, 알기 때문인지도요 그럴때 그 마음보다는, 한마리의 길고양이를 더 먼저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럼, 한마리가 더 잘 살아가고, 또 그럼으로 두마리가, 이렇게 잘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책을 읽는 내내, 실제로 웃으면서 읽다가 이웃집의 이야기 같다가, 그랬답니다. 책을 읽는 내내, 고양이 이야기가 참 재미있구나, 싶었습니다. 게다가 정이 든 고양이들도 있어서 헤어지기도 참 아쉬웠고, 그 하나의 사연사연들이 참으로 재미도 났답니다.인간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길냥이들에게도 어쩌면 그리 사연 하나 없는 것이 있을까 싶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그걸 풀어내는 것도요. 하나의 캐릭터가 구축되면서 어느새 등장인물처럼 등장고양이가 되는 것이고요. 그리고 재미있는 사연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우리처럼 아픈 사연들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고양이와 만남이 있다면 사람도 그렇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별이 있고 고양이와도 이별을 하게 되지요 좋은 이별이란게 있기는 할까요? 결국, 헤어짐이란 슬픈 거니까요 다만, 다만 그래도 다시 만날 기약도 있고 이쁜 모습들을 본다면, 또 좋은 것이지요. 그렇게 이별을 하고 나면, 다시 만남도 옵니다. 세대교체도 그런 것이니까요. 이제 어리기만 하고, 말성을 부리기 위해서 태어난 소냥시대가 기성세대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나쁜 고양이는 없다" 를 덮었습니다. 길위의 낭만자들, 우리에게 유랑시인이 있다면 또 길위의 방랑자들인 길고양이의 이야기를요. 그래서, 아마 그들은 춤을 추나 봅니다. 인간의 유랑시인,인 집시들이 있다면 또 고양이들 가운데,의 유랑시인인 길고양이들은 오늘도 그렇게 춤을 춥니다. 그리고 작가의 말처럼, 길고양이는, 그 춤으로 우리에게 인사합니다. 좋아해줘서, 고맙다고 오늘도 그렇게 말입니다. 우리도, 이제 화답을 할 차례겠지요...아니면, 좋아해주는 그것 자체로 화답이 될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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