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파단자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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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와 같은 오늘의 아침,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은 영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병, "전향성 기억 상실증1"에 걸렸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금의 기억이 내일이면 오늘과 같은 아침을 맞이하면서도 그는 기억을 잊었단 것조차 노트에 의해서야 알 수 있고, 지금의 기억조차 언제까지 기억하게 될지 모르게 된 남자, 타무나 니키치입니다. 어째서, 왜, 언제 자신이 이 병에 걸렸는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 없을 것만 같은 남자, 언제부터 그 능력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의 기억을 아주 손쉽게 조작할 수 있어자신의 나쁜 짓까지 아무 죄 없는 이들에게 덮어 씌우면서 자신은 그 망을 빠져나가 버리면서 그들의 기억조차 조작하는 남자, 키라가 만났습니다. 






너무나도 불리한 승부로만 보이는 대결은, 뜻밖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기억을 유지하기 못하기 때문에란 그 가장 치명적인 니키치의 단점은 되려, 너무나도 뻔해 보이는 것을 원점 혹은 유리한 고지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기억" 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어, 매일을 적어놓은 노트와 아무것도 없을지 모르지만 혹시나, 하고 자물쇠를 걸어둔 그 자신의 기억 그리고 바로 타무라 니키치의 생존본능인지 혹은 그가 원래의 기억을 잊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판단력과 추리력은 키라와 "해볼 만한 승부"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 두 사람의 대결 아닌 대결,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니키치와 분명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마는 키라와의 이야기는 별일 아닌 듯, 아주 또 별일인 듯 그렇게 진행됩니다. 만남도 잦아지면서 기묘하게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스릴러 소설로서는 어쩌면 단순한 패턴일지도 모르겠다, 싶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강스포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을 덮을 쯤

처음 느꼈던 그 기묘한 기시감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아주 주관적인 느낌입니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기억"의 왜곡, 그리고 확장을 읽을 수 있는 건 어쩌면 그렇게 큰 부분이 아니라 마지막 단락에서 많이 갈릴 듯하지만, 각기의 주관을 느껴라, 하고 던져줬습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메멘토"가 분명 생각났습니다만, 그것과 다른 "키라"의 존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키라는 누구였고, 타무라 니키치는 누구였을까요? 그 둘이 정말 다른 사람일까요? 다른 사람이되 또 다른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니키치고 키라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의 든 의문은,


아니, 진짜 타무라 니키치는 언제부터 그 병에 걸렸던 걸까요? 그 마지막의 자물쇠가, 열릴 쯤, 이 책의 표지를 다시 봤습니다. 표지를 어쩌면,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겠구나, 싶었습니다. 니키치의 기억은 언제부터 잊었는지 모릅니다만 키라가 기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순간은 키라가 또다른 타무라 니키치로 덮입혀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니키치의 선함이 존재했을까 싶으면 그에게는 "기억"은 지우고 싶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 스스로가 지워버린 것일까? 의 문제는 마지막쯤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 바탕이 "선함"이 아닌 가장 이기적인 것이었단 것을요. 








고바야시 야스미의 소설은 데뷔작인 <장난감 수리공>부터 읽었습니다. 일본소설 특유의 호러보다 더 기묘한 느낌,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난도질하는 듯하면서도 재미있지? 하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앨리스 죽이기>를 시작으로 <도로시 죽이기>까지 작품들에서 보이는 동화의 해부로 <동화 파단자>를 불려도 될 그가, 이번엔 "기억"을 소재로 독자들에게 이건 어떻냐고 물어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면서 왠지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고 말입니다. 
깨어진 모래시계 같은 그 무엇을 던져놓고선, 말입니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요약:

가독성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스릴러 소설로선, 이거 너무 단순한 거 아니야? 라고 느껴질 패턴이 분명 존재합니다. 또한, 마지막 단락 무렵에는 으..응? 이거 뭐지? 라는 느낌으로 다가와 그게 가장 호, 불호로 나뉠 것 같습니다. 이야미스.. 라고 하기엔 글쎄요..저는 꽤나 좋았습니다. 불친절한 툭 던져지는 그 무엇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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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 삶을 위로하는 시를 읽고, 쓰고, 가슴에 새기다 감성필사
윤동주 61인의 시인 지음, 배정애 캘리그라피 / 북로그컴퍼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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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정확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글귀를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도리질을 치게 됩니다. 
시의 언어란 상징적이고 함축적이라는 생각에 매여서 일 겁니다. 하지만, 또 그 말이 맞았습니다.
사람들의 감정은 그저 희노애락으로만 나뉘는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복잡하고 다양해, 우리의 말은 그것들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그 언젠가의 기억 때문에, 또 앞으로 다가올 그 무엇 때문에, 두려움과 혹은 환희가 교차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럴 때, 이제껏 눈에 들어오지 않던 시구가 혹은 시어 하나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나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 감정일 수도 혹은 그 언젠가의 정지된 시간의 말인가 하면,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이 생성돼,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뱉어내고 있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긴 산문과 같아, 읽어보면 운율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아주 짧은 산문 같아 또 읽어보면 거기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가끔은, 어느 한 구절만 콕, 하고 와닿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 안의 것들을 끄집어 내, 
결국 털썩 울게도 만들고 웃게도 만들면서 기묘한 위로를 해줍니다. 아주 짧은 듯하지만 긴 여운으로요.

그래서, 잠시 끄덕입니다. 시는 정확한 언어들로 이루어졌다고요.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저리 담아내니. 
그래도, 다시 부인할지도요. 시가 어떻게 정확할 수 있냐고 말입니다. 


안식처까진 아닐지라도 시가 주는 위안은 작은 듯 의외로 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詩 중에서또 내게만 보이는 시가 있기도 하고요.시들은, 많이 알려진 시도, 고개를 갸웃하게 하기도 하는 시도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알려졌었단 시들이 조금은 새롭게 그리고, 고갤 흔들었던 시와는 새로운 인사를 하는 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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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기타노 다케시 지음, 이영미 옮김 / 레드스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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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얼굴만 알고,

매주 목요일 비슷한 시간 "피아노" 라는 카페에서 만난다면 만나고 아니라면 잠시 읽던 책을 접고 다음 주를 기다리고, 그렇게
매주 목요일의 반복이 운명으로 다가올 지도 모르지만 아주 짧게 스치는 소나기로 그칠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면서 만나는 
남녀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더 간절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그렇게까지 다음 주를, 그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고
그래서, 더 불안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 한 번, 의 어긋남으로 엉켜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단 한 번이 두 번이 되는 순간은 세번이 또 네번이 될 수도 있음을요.

 "아날로그" 란 이름의 만남에 같이 동참하려는데, 마치 턴테이블의 판이 툭, 하고 튀는 소리가 납니다.
아날로그니까요. 너무나 매끈한 소리가 아니라서, 그 나름의 멋을 풍기고 있구나 하고, 그 서툼에 웃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턴테이블이 고장인지 아니면 LP판이 불량인지 혹은 둘다의 이상인지요.
원인을 알아볼까 하는데 더이상은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이, 그렇게 찌익, 하고 긁히는 소리가 납니다. 

처음부터 조금씩 판이 튀고는 있었습니다만, 투박하니까 그게 아날로그잖아_ 라고 위안을 삼고 있었지만 운명적 만남도 괜찮고 그런 만남도 괜찮아 살짝 엿보려는데 장편소설에서 섬세하지 못한 감정선까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게다가 막판에 튄 건 도대체 어째서지? 싶을 정도였습니다. 네, 다 좋았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을 어찌 받아들이란 건지, 싶었습니다.





네, 저염식의 음식은 자극적인 맛은 없습니다. 하지만 향긋하게 감도는 맛들이 있습니다만,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아주 이쁜 "추억" 이란 이름으로 남기지 싶을 정도로 뒤쪽은 저염식이 아니라 작위적,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니, 저염식이란 MSG를 듬뿍 넣은 것을 가져다 준 셈입니다. 네, 저는 그랬습니다.  다들 잔잔했다 느끼실지는 몰라도 
제겐 이건 맛도 없는 MSG만 가득했습니다. "아쉽다"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동안의 일본소설은, 작위적이긴 해도(...) MSG라 할 지라도 아닌척, 하고는 있었습니다만..



LP판으로,
오랜만에 피아노 연주회에 온 기분을 내려던 저는 LP가 아닌, 그냥 핸드폰에 저장돼 있는 클래식 음악을 듣던가,

아니면 
연주회에 직접 가야겠구나, 싶어서 많이 씁쓸해졌습니다.

드폰만 없다고 아날로그는 아닌 것을요, 기타노 다케시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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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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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다.

함께 싸울 수 있다. 

                345p



거울은 겨울, 과 닮아 있습니다. 아주 많이.

발음도 그러하며 반짝거리는 것이. 그래서 기어이 만지면 그 차가움에 놀랍니다. 하지만,

그 차가움이 실은 뜨거운 불과 같은 느낌의 이면이 있어서 또한 여름, 한낮의 태양과도 같음도.


그렇게 거울, 은 겨울,과 닮아 있습니다.

- 깨어진 유리조각을 잘못집어든 순간, 피가 나기도 합니다. 그리곤 그 파편들이 무서워지기 시작합니다.

- 깨어진 유리조각을 다시 집어들기가 겁이 나기도 합니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들 말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님을요.










일곱명의 또래의 아이들이 만났습니다. 그것도, 참으로 기묘한 "거울"안 고립된 성에서 말입니다. 

일곱명의 또래의 아이들이 만났습니다. 서로가, 참으로 다르지만 묘하게 또 닮아있는 거울 같이 말입니다.

거울 안의 외딴 성에서, 아이들은 겨울을 하나씩 안고 살고 있었습니다. 다들 이유는 다르지만 학교를 가지 않고 있습니다.


유리가 깨지는 이유는,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유리처럼 그렇게 깨지기 쉬운 나이의 아이들입니다. 유리는 뾰족한 가시와도 같지만 결국 방어를 한다는 것은, 나를 지키는 것입니다.

유리처럼, 그런 아이들은 서로의 거울인 줄 잘은 모릅니다.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가 결국은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또다른 나를요.


거울 속의 내가,

나이면서도 또 내가 아닌 내가 그 곳, 이 곳이면서도 또 다른 곳에 있듯 말입니다.  







이 곳이자 저 쪽 거울 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아이들의 이야깁니다. 

아이들은, 그저 "괜찮아, 나는 네 편이야" 라는 말 한마디가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고코로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진행되지만, 그 누구 한 명

아이들은, 주인공입니다. 어쩌면 현실인 이 곳에선 주인공이긴 하지만 슬픈 무대 위거나 혹은 아예, 무대만 바라보기만 하는 그런 역입니다.

그리고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어느새 서로가 의지를 하고 있단 사실을요. "우리" 라는 이름은 그렇게 힘 있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게 흘러갑니다. 분명 안자이 고코로가 주인공임에도 시점을 빌려 말하는 나머지 여섯명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쪽보다 성안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웅크리고 있던 아이들에게 1년이란 시간은 봄바람이 불기전 기지개를 킬 때라고 말입니다.



 




나는, 아픕니다. 그래서 주위의 누군가의 아픔따위, 였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아팠지만 거울 안의 나는 좀 덜 아픕니다. "친구" 가 있으니까요. "우리"가 있으니까요. 그 단어들이 주는 봄을 알아 버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또 예전의 어딘가의 나를 닮았고 서로가 닮았지만 또 다른 그 거울 속에서 기다리는 이야기의   "바깥은, 봄" 이기를 바라는 아이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요약.

 이야기는 따뜻합니다.소위 힐링입니다 미스터리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어쩌면 우리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읽으면서 그려지는 그림이 있었으니까요. 이야기 자체는 주인공들이 중학생인데 잘 택한 선택인 듯 합니다. 고등학교만 가도 이미 너무 훌쩍 커버리니까요. 그런 상처받기 쉬운 아이들, 이미 받아서 유리조각이 박힌 아이들의 유리조각 파편들을 빼내면서 하나의 퍼즐로 맞춰집니다. 다만 알고 있던 퍼즐이여선지 살짝 후반부를 더 세밀히 그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길게 맞춰온 퍼즐이 후반부를 조금 더 길게 그렸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제겐 가독성은 꽤 좋았습니다만 호불호가 조금은 갈릴 것 같기도 합니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행보가 따뜻한 쪽으로 가는 것 같아 묘하게 아쉬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아침이 온다>도 그랬고요. 어떤 면에서 너무 기대를 해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독성은 좋습니다.

미스터리 형식의 힐링소설, 학원물로 봐도 좋지만 또 미스터리는 있습니다.(^^)

저는, 후반부가 아쉬웠습니다만, 또 그 후반부가 좋으신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을 제목으로..(;;;;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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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의 레퀴엠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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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죽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진혼곡, 진혼미사곡


든 것의 시작이었던 곳, 법정입니다. 그러기에 미코시바가 선택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밝혀버린 곳 역시 법정,입니다. 그러나 진실이란 잔인해, 예전보다 더한 칼날들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로 향하는 칼날쯤, 익숙하고 그다지 아프지 않습니다만 그로 인해서 구하지 못하는 한 사람 때문에 법정의 세계가 보입니다.

자신을 모두가 외면했을 때, 
자신을 모두가 손가락질했을 때, 
자신을 믿어줬던 단 한 사람 때문에 지금 이곳에 섰습니다만 그가 밝힌 진실 때문에 사람들이 "진짜"를 보지 못할까 두려워진 것입니다.





그는 시체 배달부였습니다. ​아니, 그렇게 불리었고 세상에 냉소를 한가득 안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미코시바 레이지가 법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사람의 따스한 눈길과 손길 때문이었습니다. 이나미 다케오, 자신의 담당 교관 때문이었습니다. 남들이 말하듯, 처벌받지 못한 그였습니다 대신, 구제 또한 받지 못했던 그에게 이나미 다케오는 그걸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그가 절대 할 리 없는 일을 저질렀단 것을 그저 활자로 보고만 있을 순 없었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그의 변호사가 됐습니다. 



변호사에게 가장 어려운, 최악의 의뢰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자신을 완벽히 속이는 의뢰인일까요? 아니오, 그건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서 말하는 사람이랍니다. 그 속에서 진짜와 거짓을 구별해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란 것입니다. 아니, 누군가가 그 거짓을 진실로 만들면 말입니다. 또 거짓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고요. 그래서, 알면서도 의뢰인에게 질 수밖에요. 절대로인 상태에서 지고 싶지 않은 상태에서 져야만 합니다. 진실을 들추어낼 수가 없습니다. 이제껏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변호사란,

의뢰인의 뜻을 가장 최우선시 해야 합니다만, 미코시바 레이지는 늘 이기는 게임을 했고, 의뢰인보단 진실이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세계를 알아갑니다. 진실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또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의 감정이 꿈틀, 합니다. 이제껏 냉철할 수 있었던 것, 진실만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세계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세계 이면에 더 소중한 것들이 있다고요 아니, 이제껏 실은 진실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그저 "사실"이었을 뿐이었다고 말입니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선, 하나의 방법뿐입니다. 바로, 죽는 것입니다. 제 스스로를 죽이는 세계로 한 발짝, 인 미코시바입니다. 그러니, 그런 그를 위한 레퀴엠일 겁니다. 또 스스로를 죽여가면서, 다른 이를 구한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적당히 거짓과 진짜가 섞여 있는 법정, 그 가운데서 "진짜"를 찾아내기 위한 음악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의가, 진실이 죽었다는 그곳에서 말입니다.

 







요약:

가독성은 여전히 좋은 나카야마 시치리입니다. 이나미 다케오가 참, 너무 답답하단 생각과 함께 그렇기 때문에 또 미코시바 레이지가 존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읽는 동안은 미코시바 변호사가 됐는지 선생님, 쫌--;. 이랄까요..? 그렇게 되더라고요. <은수>란 게 은혜와 원수인데 어째서 이 단어를 고집했을까? 하는 건 있었습니다. 처음 시리즈부터 호~ 로 시작했다면 조금씩  도덕시간인 느낌도 들어선 아, 이건..할 때도 있더라고요 .반전은 거의 없었습니다. 첫 시작에 응? 이건 익숙한 ..? 했는데 2013년도에 발간된 걸로 알고 있었지만 연상이 되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재판에서 지고도 얻은 게 많은 미코시바입니다. (시리즈중, 처음으로 진 거 아닐까 싶습니다..ㅎㅎ) 그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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