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들이 노래한다 - 숀 탠과 함께 보는 낯설고 잔혹한 <그림 동화> 에프 그래픽 컬렉션
숀 탠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화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들이 진짜일까요? 하고요.

잠시,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참 모르던 이야기들이 이렇게나 많이도 있구나, 했습니다. 생경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분명 들었던 이야기인데 그때는 몰랐던 느낌이 이 이야기들 안에 있었습니다.

백설 공주나 라푼젤 같은 아주 잘 알고 있는 동화들도 있는가 하면, <노래하는 뼈>는 분명 들어봤는데도 어째서 기억에 남지 않았을까 싶으니 남기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제의 싸움, 거짓으로 포장된 것들, 그리고 진실이 묻힐 무렵 그래도 밝혀지는 것들의 이야기보단 좀 더 쉽게 들을 수 이야기들을 선택해 기억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노간주나무>와 같이 많이 알려진 것은 다시 읽어도 콕콕거리는 그 무언가가 있었고 <새하얀 새>의 경우는 제가 읽다가 황당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분명, 마녀긴 했으나 약속을 어긴 것은 분명했습니다. 마치, <파란 수염의 아내>와 같은 형식인데 어째서 이렇게도 다른 결론에 이르면서 또 어째서 이들은 이렇게 염치가 없을까, 싶을 정도로요.

이 책, <뼈들은 노래한다>는 어쩌면, 그 형의 뼈의 노래처럼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동화들도 있었다고요. 이들의 행위에 대해서 제게 또 묻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동화의 작은 토막글과 함께, 이 작품들이 함께 실려 있는데 따뜻함보단, 사실 차가운 느낌이 더하기는 했습니다.




이 책은 조각품들과 함께 <개구리 왕자>에서 <엄지둥이>까지 실려 있습니다. 옆에 실린 토막의 글귀들로는 잘 알려진 동화 외엔 엔딩이 과연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뒤를 찾아보게 합니다. 그래서 웃음 짓게도 하지만, 깜짝 놀랄 만큼 잔혹한 이야기들이 거기엔 또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들은 내 안의 불편한 그 무언가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동화를 다시 읽는 것만으로도 좋았지만, 
숀 탠의 작품이 어우러지면서, 이 동화들의 따뜻함 혹은 <트루데 부인>처럼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더 화려한 이면의 뒤를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  원색, 그중에서도 붉은 계열이 따뜻하게 보일 때도 있었지만 어딘가 핏빛 같은 느낌이 강하게도 느껴지는가 하면 어딘가 묘하게 화이트라도 어두운 느낌의 이중성도 있었습니다. 




동화, 그렇게 잘 알려진 이야기 안에서 낯섦일까요? 아뇨, 낯익음이었습니다. 다만, 고개를 돌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동화, 그처럼 많이 들은 이야기 중에서의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날선 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곳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 그처럼 많이 들어왔던 동화 속, 낯섦과 낯익음의 어딘가쯤에서 숀 탠의 작품은 날선 것들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잔혹동화는 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언젠가는 <노래하는 뼈>처럼 그렇게 또 외면하거나 몰랐던 진실을 노래할 지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날 우리들은 다양한 채널로 언론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린 가끔씩 의심을 해 봅니다. 그것이 진실일까, 하고요. 그리고, 우리들은 결론을 내립니다. 언론들이 결코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음을요. 하지만 어쩌면 거기까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사실은, 우리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가만히 그 안에 아주 작게 혹은 감추어 진짜를 끼워놓았다는 사실은 잊고 말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거짓말 속에서 살고 있어, 그리고 만약 누가 너에게 거짓말하고 있음을 네가 안다면 너는 의심 속에서 살아야 해. - 62p

우리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그저 <거짓말>에 속는척 하기도 하고,그것이 더 그럴싸해서 믿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의심 가운데 살아가는 삶은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행복을 위해 얼만든지 눈감고 이기적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의 말을 빌려<실현할 수 없는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가는 신세인 패배자>인 내게 마지막 행운일 수도 있는 제안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행운의 뒷맛은 또 씁쓸할 것도 알게 됩니다. 왜냐면, 나를 숨기는 것이야 이제껏처럼의 일이었지만, 결코 발행되지 않을 신문사의 데스크란 그렇게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까이는 동료들을 기만하는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죠. 

하지만 
언론이란 이름으로 거짓말보단 차라리 낫지 않을까, 그리고 시메이가 말하는 그 방식들은 차라리 속이는 것보다 더 교묘하기 때문에 어쩌면 발행되지 않을 이 신문인 <제0호>에 대한 애착도 없었습니다. 그저, 시간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편집부의 사람들 특히, 브라가도초의 열성은 대단했습니다. 
과연, 그가 말한 그것들이 지면으로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의 신념인 기삿거리를 말합니다.믿을 수 없는 이면은 바로 또 믿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입니다. 결코 <제0호>의 지면으로 출간되지 못할 것임이 안타까워집니다.


소설은 브라가도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나, 실상은 <교묘한 언론의 얼굴>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설령 거짓말이 아니라면 얼마나 그들이 진실을 저 뒤쪽으로 숨겨놓을 방법을 찾는 것인지도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움베르토 에코는 숨기면서 말하지 않습니다. 적나라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황색언론만이 그러는 것이 아니란 것을요.

언론의 책임은 없습니다. 그저, "책을 읽지 않고 깊이는 없으며 어리석기 짝이 없는" 대중들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고 합니다. 대중들이 얼마나 속아넘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언론의 곳곳에 얼마만 한 장치를 하는지를 폭로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현혹당하지 말고 속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속으면서 또 속지 않습니다. 그저 단지 내게 그 "진실"이란 것이 지금 당장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적어도 저는 어느새 그렇게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의혹을 널리 퍼트리기만 하면 됩니다. -196p, 시메이.
<속임수란 지략의 한 형태이기도 하고 국가의 지략이기도 하다>라는 말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305p
진리란 그런 거야. 사람들이 무언가를 폭로하면 다 거짓말처럼 보이게 하지 311p, 마이어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 제0호는 그렇게 언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무솔리니와 이탈리아 역사를 많이 알고 있었더라면, 이 이야기는 훨씬 더 풍부하고 흥미롭게 그리고 액자 형식으로도 읽힐 수 있었을 겁니다. 브라가도초의 이야기가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어 한 것은 언론의 민낯이었던 것입니다.

책은 솔직히 지루하기도 하다가, 가끔씩 그의 재치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내가 브라가도초의 이야기를 듣다가 "타고난 이야기꾼" 운운하는 장면이라든가(결국 움베르토 에코 그 자신이 우리에게?!) 주석을 읽다가 몇 번씩 웃음을 짓게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전개가 상당히 가독성이 있다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어쩌면 늘 불편한 진실이란 그런 것인지도 또, 모르겠습니다. 책 속을 빠져나와, 여전히 또 언론에 속는 척하면서 살아갈 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서광들
옥타브 위잔 지음, 알베르 로비다 그림, 강주헌 옮김 / 북스토리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이 없습니다. 읽지 않아서 라든가 특별한 이유 외에는 말입니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많이 읽는 것과는 별개로, 또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 책을 좋아함을 넘어, "사랑하는" 그래서 "애서가"들을 넘어, 그 도가 조금은 지나쳐 "광"까지 붙은 사람들 "애서광"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책은, 가끔은 소장용으로서의 가치가, 그리고 다른 먼 나라의 이야기로, 그리고 또 다른 세기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들이 책을 찾는 이유, 바로 인간의 욕망의 적나라함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사랑과 소유욕이 미묘하게 다르기도 하듯요.





애서가 아니, 애서광들은 총 11가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안에서 책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넘칩니다. 첫 파트를 읽으면서 액자 형식의 이야기들이 연작처럼 나오려나 싶었으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책에는 무수한 비밀이 있고, 그 비밀로의 통로에는 말 그대로, 알지 못했던 세계도 있었고 설마 아무리 책을 사랑한다지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라면서도 폭소를 터트리는가 하면, 별별 상상력의 세계로 절 인도했습니다. 

열한 가지의 이야기 속 다양한 시점들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허구의 인물인가 했으나, 실재했던 인물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일기도 이 책 안에는 있었습니다. 일기란 것은 사실 나만 보는 나만의 책이지만, 그것이 공개됐을 땐, 결국 책이니까요. 그렇게, 책은 두꺼운 듯하면서도 작가의 글 속, 삽화가 꽤 차지하고 있어선 그렇게 두께를 느끼지 못합니다. 



책은, 인간의 소유욕에서부터 저 밑바닥의 욕망 - 설령 그것이 변태적이라 할지라도-까지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짧아서인지 가끔은 아쉽지만 또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중세의 이야기로 가 있는가 하면, 어느새 그들이 말하는 21세기에 나는 살고 있고, 그들은 그때의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을 기록하는 새로운 장치들이 어떻게 기능하고, 녹음된 소리를 어떻게 많이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기술적으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상의 모든 거주자로부터 책이 버림받고, 상거래와 개인적인 인간관계에 사용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인쇄물이 더는 유통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또 100년 후에는 타자기가 눈부시게 발전해서 책에 관련된 어떤 요구라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p255~256 中




하지만, 
어디 그렇게 됐던가요? 물론, 여러 형태로 그의 말처럼 책은 다른 형태로는 나오지만, 사라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종이책"으로 읽고 있습니다. 저도, 애서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은 그 묘하게 사락사락 넘어가는 종이책을 선호해 조금의 무게를 참으면서 읽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쭉, 그렇지 않을까요..?

애서광들은, 말 그대로 표지를 벗기면 빨간색입니다. 책에 대한 사랑, 그 광기를 가장 잘 나타내는 그 표현이 참 잘 돼 있습니다.
왜, 우리들은 이렇게 좋아할까는, 아마도 비밀의 문, 그리고 다른 세계의 저편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이 소설은, "프랑스 소설"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프랑스 영화"는 어떨까 하면, 조금은 대중적이진 않듯, 그런 면 역시 있습니다.
그러나, 책 속의 다양한 시점과, 이야기들은 흥미를 끌기엔 적합했고 결국, 인간의 욕망을 "책" 속으로 인도하게끔 합니다. 간접적으로나마 책의 세상 속에서 얻을 수 있고 그 세상을 마치 비밀의 문을 엿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호기심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해 우리에게 애서광들을 존재케 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메시스의 사자 와타세 경부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와 대치하는 상대가 유쾌범 한 명이 아닌 사회와 법률로부터 튕겨 나온 자들의 원한이라면, 과연 우리에게 승산이 있을까. 

본문 243p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단지 우연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존재치 않는다는 것을 종종 잊습니다. 첫 사건에 남겨진 "네메시스"
네메시스. 정의로운 복수의 여신_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 중, 정의롭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요 하지만, 하필이면 당한 사람의 아들은 10년 전 묻지마 살인 사건의 주인공. 그것도, 잔인한 방법으로 약한 여자 2명을 죽였던 살인마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모로서 미안함조차 보이지 않고 숨어버렸던 사람들, 가족. 

그리고, 두 번째 사건 역시 그 잔혹함에 있어서 사형의 선고가 족함에도, 무기징역으로 끝난 사람의 아버지로 이번에도 역시,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시그니처 "네메시스" 와 함께. 그리고, 사람들은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사형제도에 대해서. 어째서냐고, 유족들은, 그들이 살아있는 것 그 자체로 형벌이라는 것을. 말이 아닌, 표정으로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거져 나온 문제 "사형제도". 
있으나 마나 한 제도의 존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언젠가부터 사형은 시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인권을 운운하며 정작 상처받고 가족을 잃은 유족보다 살인범에 대한 인권의 보호, 가 먼저가 돼 버려 있단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뿐이 아니라, 유족들은 익명이 보장된 인터넷에서 뭇매를 맞는 경우까지 생겨버려 상처는 치유할 수없이 되기도 하고요.

아니, 그런 것 정도는 괜찮습니다. 가족이 살아 있다면요. 그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 우리의 가족은 그렇게 무참히도 죽어갔고 잃었는데 어째서, 그들은 살아 숨 쉬고 있는가? -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와타세 경부는 늘 보면서도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는 이들의 모습을 눈에 담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주는 정말 무서운 것을 깨닫습니다. 모든 사건은 실마리를 단서로  그 전말이 밝혀집니다. 


우리의 진짜 적은 "네메시스" 가 아니다.

바로 우리와 사법 체계를 향한 일반 시민의 불신인다. 그 불신이 "네메시스"를 낳았고, 행동하게 하고, 감싸고 있다.

바꿔 말해 "네메시스"는 모두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정의의 사도인 것이다. 국가가 내세우는 법치주의의 정당성을 비웃고 판례가 나타내는 거짓말 같은 법의 정의를 베어 넘어뜨리는 신의 대행자다.








와타세 경부 시리즈 2편인 "네메시스의 사자"는 "사법 체계"에 대한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만, 초반의 시작이 흥미로웠다면 갈수록 똑같은 노래가 리플레이 되는 느낌입니다. 그 정도가, 많이 과했습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의 시리즈인 경우, 재미와 함께였다면 와타세 경부 시리즈 2번째인 이번은 너무나도 엔터테이먼트로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강요와 협박으로 그렇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라는 것으로 묻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만, 그것을 타인들에게 활자로 그렇게 계속 이야기해야 할까? 싶었습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란 것이, 자연스럽게 와닿아야 하는데 강제로 아, 네, 하고 맞장구를 치고 있는 느낌이었달까요..? 게다가 위에도 적었다시피, 유족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통을 적고 분하고, 왜 그들에게...로 해서 하나의 맺음인가 싶으면 다시 그것이 시작되는 현상은.. 뭘까요? 저는,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님께, "세 번째 실수"는 정말 안 범하셨으면 합니다. 






스포입니다.



마지막의 반전이오?
아니오, 저는 반전 아니었습니다. 그 생각에 반기를 들고 싶습니다. 사형이 아닌 징벌형이 더한 것이라고 하셨나요? 아니오, 전혀요
네, 프로메테우스의 경우는 어쩌면 그랬는지도 모릅니다만, 지금 어디 그렇던가요?

사형이기에, 오늘 내일을  그 교수형의 악몽 때문에 매일이 칼날 위에 서 있는 그 고통은, 프로메테우스 같을 겁니다.
오늘 간을 쪼이고 또다시 내일 쪼일 생각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무기징역 때문에 그런 일은 없습니다. 평생 썩어가야 할 곳,이라고는 하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초조감 없는 생, 둘 중 어느 것이 더 잔인한 지를요. 그래서 마지막의 궤변에 이리도 길게 끌어야만 했을까, 하는 느낌으로 책을 덮었습니다. 






요약.
가독성이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가의 책 치곤 많이 떨어집니다. 의외로, 주제 자체가 무거워 이제껏 "사회파 미스터리"를 잘 풀어낸 편이라면, 이번은 너무나도 교과서적이면서도 훈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꼭 필요한 주제라 가벼이 풀어낼 수 없음은 알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과했단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사형제도에 대해선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는 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른이 될 날까지를 카운트다운 하고 있는, 남들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아오야마의 평범한 일상과 마을에 어느 날 나타난 펭귄 떼들이 나타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펭귄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게 되는 아오야마의 일상은 더 이상 평범치 않으며 그로 인해 이쪽과 저쪽으로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이 하나 둘 쌓이게 됩니다. 비밀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그 수수께끼를 풀어간다는 것, 그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소년, 그가 좋아하는 치과 누나가 부르는 아오야마의 명칭입니다. 어른이 아닌, 소년이요
그래서, 그 모든 비밀들과 수수께끼들과 그리고 그 답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른이라면, 선뜻 믿기 힘든 그 일들을 말입니다
그리고, 소년은 한층 자라날 겁니다. 꿈과 같았던 일들, 믿을 수 없지만 목격했기에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들은 아오야마의 상상 속에서나 있었던 일이라고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너의 판타지라고. 그래서, sf인 것일지도요.




궤도를 이탈한 펭귄은 어떻게 됐을까요? 
- 아오야마는 그런 것 같았습니다. 하이웨이에서 잠시 이탈했을까요? 아니면, 정작 그 펭귄 하이웨이를 벗어난 것을 "어른들" 인 것은 아닐까요? 어른은 아오야마처럼 수수께끼에 대한 정열을 접습니다. 안전한 길을 택합니다. 그리고 어느새 꿈도 벽과 맞닥뜨려서, 혹은 다른 이유로 점점 잊어가고 잃어버리면서 말입니다. 

이 소설에서 유독 "유방" 이란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은, "소년"에게 있어서 가장 여성의 보이는 性 적인 부분이기도 하지만, "어머니"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바로 펭귄의 고향을 나타냅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즉 세계에 갇혀 있는 소년의 바다를요. 그 바다에서 나온 펭귄은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제대로 된 어른"이라는 길을 갈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요.  반년 가까이 흐른 시간의 경과는 소년이 성숙했지만 가설을 신념으로 만들어져 가는 성장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밤은 짧아 걸아, 아가씨야>를 애니메이션화했고, <야행><거룩한 게으름뱅이의 위대한 모험>의 각기 다른 색깔로 재미있게 읽은 모리미 도미히코의 이번 소설은 재미의 유무를 떠나서, 무척이나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네, 재미의 유무를 떠나서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나왔을지 모르겠지만, 활자화된 텍스트는 어딘가의 지루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동심을 잃어서가 아닙니다. 전작들이 각기 기묘한 매력들이 있었다면 정작 일본에서 sf 대상, 서점 대상을 기록한 이 책에선 그 기대치들을 고려해도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반적으로 재미있을 법한 곳에서 툭툭, 묘하게 지루해지는 전개가 펼쳐져 의외로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떨까요 지루하긴 했으나, 한 번쯤 나는 아오야마의 때엔 어땠더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 아오야마는 있을 테죠. 우리 마음에도요. 





"그렇고말고. 세계의 끝은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아버지는 생각한단다.(...) 그건 정말로 한순간의 일이라서 우리한테 안 보이는 것뿐일 수도 있어"  

.....

세계의 끝은 접혀서 접혀서 세계의 안쪽에 숨어들어가 있어. 


본문 252-253p 아버지가 아오야마에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