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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평점 :

오늘날 우리들은 다양한 채널로 언론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린 가끔씩 의심을 해 봅니다. 그것이 진실일까, 하고요. 그리고, 우리들은 결론을 내립니다. 언론들이 결코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음을요. 하지만 어쩌면 거기까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사실은, 우리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가만히 그 안에 아주 작게 혹은 감추어 진짜를 끼워놓았다는 사실은 잊고 말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거짓말 속에서 살고 있어, 그리고 만약 누가 너에게 거짓말하고 있음을 네가 안다면 너는 의심 속에서 살아야 해. - 62p
우리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그저 <거짓말>에 속는척 하기도 하고,그것이 더 그럴싸해서 믿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의심 가운데 살아가는 삶은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행복을 위해 얼만든지 눈감고 이기적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의 말을 빌려<실현할 수 없는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가는 신세인 패배자>인 내게 마지막 행운일 수도 있는 제안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행운의 뒷맛은 또 씁쓸할 것도 알게 됩니다. 왜냐면, 나를 숨기는 것이야 이제껏처럼의 일이었지만, 결코 발행되지 않을 신문사의 데스크란 그렇게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까이는 동료들을 기만하는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죠.
하지만
언론이란 이름으로 거짓말보단 차라리 낫지 않을까, 그리고 시메이가 말하는 그 방식들은 차라리 속이는 것보다 더 교묘하기 때문에 어쩌면 발행되지 않을 이 신문인 <제0호>에 대한 애착도 없었습니다. 그저, 시간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편집부의 사람들 특히, 브라가도초의 열성은 대단했습니다.
과연, 그가 말한 그것들이 지면으로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의 신념인 기삿거리를 말합니다.믿을 수 없는 이면은 바로 또 믿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입니다. 결코 <제0호>의 지면으로 출간되지 못할 것임이 안타까워집니다.

소설은 브라가도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나, 실상은 <교묘한 언론의 얼굴>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설령 거짓말이 아니라면 얼마나 그들이 진실을 저 뒤쪽으로 숨겨놓을 방법을 찾는 것인지도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움베르토 에코는 숨기면서 말하지 않습니다. 적나라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황색언론만이 그러는 것이 아니란 것을요.
언론의 책임은 없습니다. 그저, "책을 읽지 않고 깊이는 없으며 어리석기 짝이 없는" 대중들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고 합니다. 대중들이 얼마나 속아넘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언론의 곳곳에 얼마만 한 장치를 하는지를 폭로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현혹당하지 말고 속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속으면서 또 속지 않습니다. 그저 단지 내게 그 "진실"이란 것이 지금 당장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적어도 저는 어느새 그렇게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의혹을 널리 퍼트리기만 하면 됩니다. -196p, 시메이.
<속임수란 지략의 한 형태이기도 하고 국가의 지략이기도 하다>라는 말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305p
진리란 그런 거야. 사람들이 무언가를 폭로하면 다 거짓말처럼 보이게 하지 311p, 마이어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 제0호는 그렇게 언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무솔리니와 이탈리아 역사를 많이 알고 있었더라면, 이 이야기는 훨씬 더 풍부하고 흥미롭게 그리고 액자 형식으로도 읽힐 수 있었을 겁니다. 브라가도초의 이야기가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어 한 것은 언론의 민낯이었던 것입니다.
책은 솔직히 지루하기도 하다가, 가끔씩 그의 재치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내가 브라가도초의 이야기를 듣다가 "타고난 이야기꾼" 운운하는 장면이라든가(결국 움베르토 에코 그 자신이 우리에게?!) 주석을 읽다가 몇 번씩 웃음을 짓게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전개가 상당히 가독성이 있다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어쩌면 늘 불편한 진실이란 그런 것인지도 또, 모르겠습니다. 책 속을 빠져나와, 여전히 또 언론에 속는 척하면서 살아갈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