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역사 : 소크라테스부터 피터 싱어까지 -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다
나이절 워버턴 지음, 정미화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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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소크라테스"이긴 합니다. 저는 그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이 책의 처음에서 등장한 그도 그랬습니다." 남을 속이는 행위는 나쁜가?"라고 묻자 당연히 "나쁘다"라고 했지만 아주 극단적인 예를 들면서 말합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한 행위, 그것을 위해서 당신의 행위는 "결과론적으론 그를 속이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것 역시 나쁜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말합니다. 오, 마이갓!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에게 아무런 "전제"를 주지 않은 채 "질문"을 하고 스스로가 만든 결과로 나쁘지 않냐는 것이죠 이것이 소피스트들과 무엇이 다를까요? 그럼에도 분명, 그가 철학의 가장 앞자리에 앉은 것은 이유가 있을 테고 그것은 플라톤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아테네 학당이 있는가 하면, 본격적으로 신에 대한 질문_에서 인간으로 넘어오기 시작합니다. 마키아벨리의 그 유명한 "군주론"은 어쩌면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악하고 이기적인 것은 당연하며 "나쁜 군주"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약한고 악한 인간을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서 잘 아는 홉스의 국가론은 "권위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민주주의 따위,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생각에 저도 동의하면서도 살짝 다른 점은 있습니다 그 철학자들의 계산속에 잘 들어가지 않는 것, 인간의 욕망이 말입니다.



그렇게 인간으로 향하는가 싶더니 결국 "신의 존재"의 문제로 또다시 돌아옵니다. 아니, "자유의지"라고 해야 할까요? 스피노자에 따르자면 그것은 환상일 뿐, 실상 "자발적"인 행동이 인간에겐 없다,라는데 신의 존재를 그렇게 믿지 않았던 그라면 이 결정론적인 자유의지에 대해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지만 "자발적"이라면 누군가는 만약, 또 나쁜 일을 당한다면 당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인가?라고요.

그렇게,

자유의지에 대해 빠져들 무렵, "관념론자"들과 "경험론자"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들의 "관념"은 "경험"을 해야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할 때, "선험적 지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칸트) 우리가 경험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 (본문 125p)이라는데 그렇다면, 경험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선험적" 과 대치되는 것이지 않을까? 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칸트는 조금 뒤로 와 있었지만요.


신은 전능하신가? 다시 그 문제로 돌아온다면,예정설의 포브, 라이프니츠에게 볼테르는, 정의의 실종을 말하면서 "기적 논증"과 "설계 논증"에 대해서 공격을 합니다. 그렇게 신으로? 하는 사이, 루소의 사회계약론으로 넘어가는가 하면, 이성의 찬양의 대표격인 칸트와 감정, 그리고 비이성적으로 인간을 바라본 관점에서 프로이트까지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샤르트르. 보부아르와의 계약 결혼으로도 유명한 그는 "자유"가 최고다!라고 했는데 말이죠, 웨이터가 웨이터의 틀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그는 안타깝게 생각했지만, 저는 그 역시도 틀로 들어가는 것 역시 그의 자유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닌가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의 본질"로 또 싱어의 "종차별주의"를 읽으면서 왜 그렇다면, 식물은? 채식은 된다는 이유는 뭐죠?라고 묻고 있었습니다. 동물과 인간의 "종"을 다르게 해선 안된다.. 좋죠, 하지만 그의 철학 역시 어딘가 좀 모순이 느껴졌습니. 물론, 제겐요.


드라마를 계속 보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엔딩"입니다. 이 책은, 그렇게 책의 마지막에 자연스럽게 다음 철학자는 그렇다면..?이라고 궁금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은 앞의 철학자들과도 당연히 자연스럽게 연관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에서 싱어까지의 이야기가 저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더 듣고 싶었습니다. 아니, 이 아저씨, 그러니까 이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래서 신이 어떻다는 거죠? 이런 엔딩은 다음 회차를 꼭 읽어야 해!로 끝날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생각은 너무나 극단적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마르크스의 생각은 옳았다.. 지만 그가 계산에 넣지 않은 하나, 바로 "인간의 욕망"이죠. 물론 "모두 잘 사는 사회" 역시 인간의 욕망이지만 남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 살게 되길,이라는 것을 배제해 생긴 것이랄까요. 아마도, 철학자들이 생각한 인간은 욕망보다는 그냥 인간 자체로만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마흔 개의 챕터는, 각기 짧지만 꽉 차 있었습니다. 저는 칸트에서 좀 애를 먹었지만(...) 그 외엔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책은 철학가들의 사생활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보다는 그들이 말하는 사상과 이론으로 꽉 차 있음에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사상 혹은 이론에 모순이 있는데? 싶은 순간 그들의 뒤에 그것에 대해서 반박하거나 혹은 보충하거나 그렇게 철학의 역사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세계를 만나다는 것, 그것은 늘 새롭게 떨리기만 하는 일인가 하면 또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마흔 명의 철학자들의 생각은 새롭지만 또 만났던 "관념"이었고 "경험"이었습니다. 자유가 있는가 하면 그에 따르는 선택에 대한 의무도 있다는 아주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그 사실들이 또 묘하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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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 사막의 망자들 잭 매커보이 시리즈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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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일들은 갑자기 시작됐습니다. 행복하게 살던 도로시에게 온 회오리바람 때문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들은 예고 따윈 하지 않고 오는 것 같습니다. 잭 메커보이에게 2주 뒤의 해고통지도 그렇게 회오리바람처럼 날아들었는가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순순히 물러나려는 그에게 회사에 대한 아주 소심한 복수,라는 말이 그렇게 회오리바람처럼 날아든 것입니다. 그래서 여행이 시작됐습니다만, 그건 끔찍한 여행이었습니다. 이미, 연쇄살인마 "시인"으로 유명해진 기자인 잭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연쇄살인마"였습니다. 처음엔 그저 소심한 복수에서 진실의 찾기로 변하는 과정 속, 그 사건의 유사성을 찾아낸 자신의 후임인 안젤라 쿡은 어쩌면 판도라의 뚜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잭 메커보이가 열린 뚜껑으로 본 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는 사건 두 개였고 그 일로 말려들기 시작합니다.



*스포가 될 수도 있습니다.



IT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네, 우리에게 오즈의 마법사는 어쩌면 그 IT 세계가 이제는 "허구"를 뛰어넘어, 우리의 모든 것을 점령했는지도 모릅니다. 언제부턴가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이 편리하다,라는 아주 달콤한 마법과 같은 주문으로 우리는 도로시가 돼, 그곳의 세계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열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정작 열어야 할 것들을 열면서 그 안의 판도라 상자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우리가 알다시피 아주 나쁜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뚜껑을 어쩌면 가장 처음 먼저 열어본 잭의 후임으로 올 안젤라 쿡은 그렇게 당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녀의 욕망이 거기에 자리 잡았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그녀를 그렇게까지 비참한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도, 그로 인해서 살인범으로 잭이 오해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 그 세계의 중심에 있는 것을 찾아야만 그는 오해도, 그리고 안젤라의 죽음에 아주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었을 지도 몰랐고 앞으로 또 일어날지도 모를 "그녀들"과 누명을 "그들"을 구해내야만 하는 것이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건, 그리고 범인을 "추리"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드러나 있는 범인과 나, 잭 맥커보이의 치열한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독자인 나는, 잭과 카버가 서로 어떻게 속이고 어떻게 밝혀낼 것인가? 포인트는 그것이었습니다. 카버가 누구일까? 가 아닌, 다 아는 상황 속에서 그들의 두뇌싸움을 말입니다. 그래서 소설은 미스터리 속에서 "숨겨져 있는 범인 찾기"를 즐기는 독자가 아니라, 그들의 스릴을 즐기는 독자라야 꽤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경우는 전자라서 초반에는 조금 몰입이 쉽지 않았습니다만, 중반에 오면서 본격적인 그들의 싸움이 시작되자 페이지는 빨리 넘어갔습니다.

레이철이 그를 도우면서 잭에겐 행운이었고 진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레이철이 심리적인 면을 관철하는 프로파일링까진 아니라도, 뭔가 그녀의 활동을 기대했으나, 초반 나왔던 활동은 마지막 잭 매커보이의 활약을 거두는 초석이 됐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녀가 조금만 더 모든 것을 의심했더라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믿어버린 것, 그것에 대한 대가는 꼭 따르며, 잭 역시 만약, 그가 조금만 더 냉철해서 그 순간의 쾌감보다, 다른 것을 택했더라면 어쩌면 좀 더 빨리 풀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인과성이 아니라도, 잭과 레이철의 행동이 너무나 아쉬워선지 중반부까지 쫀쫀하다가 후반부 맥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끔찍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도끼날이 이마에 박힌 것 같았다. 무자비한 고통이었다. 그는 누군가가 그 통증을 멈춰주길 바랐다. 고통에서 구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어둠 속에서 기다렸다.

본문 446p 카버



외면했던 진실,이라고 잭은 그의 아주 작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가 그렇게 끔찍하게 되어야 했던 이유를. 그저 그런 쾌락범이 아니란 것을 말입니다. 아동학대. 그것은 그저 학대가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고 지쳐 있을 때 그 끝에 있었던 그 성적인 것을 포함해 아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을 거라고. 물론, 그의 죄는 가볍지도 않지만 그것 또한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요. 그가 왜 그렇게 다리 보조 장치를 이용했는지, 왜 댄서들이었는지 _ 그 모든 것이 바로 "어머니"로 향하고 있었고, 어찌 보면 "아버지 없는" 소년이 가지고 싶었던 욕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진 것 또한 많았습니다. 명석한 두뇌로, 천재적인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을요

그러나, 그는 허수아비가 갈구했던 두뇌는 가졌지만

사자와 양철 나무꾼이 갈구했던 용기와 마음을 잃었습니다. 진실을 대면할 용기를,

그리고 그것들을 용서할 마음은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습니다.




그는 끔찍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도끼날이 이마에 박힌 것 같았다. 무자비한 고통이었다. 그는 누군가가 그 통증을 멈춰주길 바랐다. 고통에서 구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어둠 속에서 기다렸다 -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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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미술관 -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문하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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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은, 좀 묘한 곳이긴 합니다. 나만의 공간이면서도 내 상상이 펼쳐지는 그 순간에 그 작은 나만의 공간이 아닌 별별 곳이 다 됩니다. 그래서, 앤이 사랑한 공간이 또 다락방이었고 우리도 그런 곳을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 다락방은 미술관으로 변신을 꾀합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말입니다. 그 그림들은 우리에게 참으로 익숙하기도 하지만, 그림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은 또 어디선가 들어본 것과 같으면서도 또 다르게도 해석이 되기도 합니다. 늘, 그림이 주는 것은 그런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들이 늘 궁금한 건 아마도 다락방과 같아서 아닐까요? 작지만 무한한 이야기들을 내가 생각해 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잘 몰랐던 화가, 레핀은 그 시대를 그려내 어찌 보면 '예술에 시대를 담아냈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예술이란 이름으로 숨는 대신, 그렇게 시대를 그린 화가들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큐비즘, 그리고 이 책을 제가 선택한 이유 "피카소의 그림, 나도 그리겠다"라는 것에 숨은 비밀에 뭘까 궁금해했는데 그가 그린 게르니카를 잊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참 아픈 그림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세상에서 가장 유일의 분단국가가 된 그 순간의 그림들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의외의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을 보고 있었습니다. 모르는 순간이, 슬펐습니다. 그림은, 그저 예술이 아니라 시대를 그려 남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사조라는 것도 어쩌면 "시대란 흐름"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또한 그림은, 그저 예술이 아니라, 또 하나의 예술을 남기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호퍼의 이 작품은 대중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특히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는 그의 호퍼의 출세작이기도 한 <철길 옆의 집>을 모티브로 했으며, 이 그림 <자동판매기 식당>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스티브 킹을 비롯한 작가들이 <빛과 그림자>란 이름의 책을 냈으며 그중 로렌스 블록이 바로 2년 전 2017년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로 에드거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그의 작품은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에서 그의 그림을 13점이나 볼 수 있다고 하니, 우리에겐 조금 쓸쓸하게만 보여지는 그의 작품들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렇게 우린, 또 미술관으로 향하지 않을까요?

예술이, 또 다른 예술로 향하게 하는 순간들은 이렇게도 만들어지나 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보고, 그리고 영화를 보며 그림을 보면서 그렇게 미술을, 또 그 미술은 책으로 또 다른 엔터테이먼트로 말입니다



앙리 루소는 또한 참 특이한 화가입니다. 그의 삶은 "화가"가 아니라 시인이기도 했으며, 또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음악가이기도 했으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렇게 진정한 엔터테이먼트였지만 그의 그림은 혹평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생애 사랑하는 부인을 두 명이나 잃고서 또 8명의 자녀를 보내고서도 그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런 예술의 힘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혹평에 굴하지 않아, 이런 그림을 그려낸 것도 말입니다.

화가는 하나의 인격이다.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루소는 이상한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모르는 그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꼭 조롱할 필요는 없다.(....) 규격에서 벗어나는 건 현대인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 자신이 이해할 수 없으면 몽땅 미친 짓, 바보짓이라고 밀어두면 속 편하기 때문이다. 로소는 어리석은 편견의 재물이 되었다.
본문 158p, 알프레드 자리, <메르퀴르 드 프랑스> 기고글




르네 마그리트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림은 "보여지는 것에 대해 은폐된 것" 들이라는 말이요. 하지만 그렇다면 그림이란 것 자체가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인데 그것의 아름다움 또한 영원할 수 있고, 그 가치가 영원할까?라는 물음표도 들지만 그렇기에 그의 그림이 지금도 물음표를 찍으면서도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의 그림을 무척 좋아합니다.

존 싱어 사전트의 그림인 <마담X>은 바로 어쩌면 그 소리들 때문에 수정된 그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게 어떤 그림이 더 아름답냐고 묻는다면, 저는 "수정된 나중의 그림"이라고 답을 할 것 같습니다. 고작, 저 끈 하나가 내려왔다고 난리 났다지만 사람들은 왜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까요? 그녀의 흘릴 것만 같은 저 끈이 더 은밀한 것을 간직하고 있고 느껴지지 않는지, 저는 그게 궁금했습니다만.. 그럼에도 줄곧, 이 책에서 느껴지는 것은 뭔가의 여성이든 남성이든 "압박"이었던 것이었죠.


그렇게, 이 그림들을 나만의 공간이 다락방으로 이해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꽤 많았습니다. 특히 제겐 그림 크기가 너무 작은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그림에 대해서 세밀하게 이야길 하는데, 이 책은 그림의 크기가 너무 작아선 어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작가님은 차분히 설명을 해 주시는데 그것을 완전히 내 공간 안으로 소화하지 못하게 해 그림을 직접 찾아보란 것일까?라는 그림조차 있었으니까요. 그게 가장 아쉬웠습니다. 겉핥기만 하지 않고 조금 더 들어간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이 책은 "그림"을 이야기하는 책인데 그 "그림"이 너무 크기가 작아선, 그 점은 참 아쉬웠습니다. 설명이 먼저고 그림이 뒤에 있는 것도 개인적으론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만, 의외의 화가들의 뜻밖의 그대, 와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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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틴
이스안 지음 / 토이필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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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틴". 네, 바로 "단두대"입니다. 우리가 그 앞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죽음"보다는 그에 앞서는 "공포"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하는 것, 그것이 가져다주는 것은 나만 피해 갈 수 없는, 언젠가는 닥칠 그 죽음의 사신과의 만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극대화한 한 것, 그것의 앞에서 환호를 외치는 이들을 보면서 두렵고 죽음 앞 처참함 앞에서 두렵고 그리고 마지막은 그 시신들을 수습하는 손길에선 또 기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기담(奇談)이라고 있습니다. 네, 한자 그대로 기이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무서운 이야기"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공포가 가미된 이야기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저도 이 제목 때문에 골랐습니다. 그 당시 제가 읽고 있던 책 역시 기담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나라 작가의 우리나라 기담은 또 어떨까, 하면서 어쩌면 도시괴담을 좀 극대화한 이야기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는, "환생"으로부터 시작해, "죽음의 크리에이터"로 끝납니다. 이 제목들을 보면서, 생으로 시작해 사로 끝마친 작가의 센스에 미소 지어졌습니다. 어쨌든, 환생 편은 들어봄직한 이야기, 그리고 어쩌면 유추가 가능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살짝 오싹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들은 그렇게 진행되나 싶었는데, 의외로 그런 오싹함보다는 조금 한국적이기도 하고 어쩌면 "기담"의 안에 숨겨놓은 것들은 그렇게 기요틴처럼 차갑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이어선 쭉 읽어나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는 죽은 척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환각을 본 걸까. 더 이상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본문 257p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몽환적인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사실 그 꿈에서 깨어난 순간, 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제게 묻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모식"이던가요. 왜 이야기는 여자라서가 아니라 그 제목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 조금 웃으면서 읽다가 씁쓸해지는 그 쓴맛이 있었습니다. 암흑 속에 익숙해지면, 그 속에서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말입니다. 우리는 어둠의 반대편에 있길 원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깜깜한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그것은 외로움의 정체일 수도 있고 고독함일 수도 있고, 그래서 마지막에 "죽음의 크리에이터" 속에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했습니다.

책은 아주 기묘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어쩌면 괴담처럼 다가왔다가 그저 슥, 하고 스쳐 지나갔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그리고, 책은 "한국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일본의 기담 혹은, 서양식 기담에서 조금 벗어나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꼭, 살아있는 아름답고 예쁘고 평화로운 것을 그런 그림만 그림인가요? 나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대답은 바로 듣지 못해도 좋습니다. 본문 145p


어쩌면, 이 책은 그런 책 아닐까요?

그렇게 암흑 속에 익숙해지는 게 무서운 우리들에게 왜 그 어둠이 그리고 평화롭고 빛 속에 있다면 그 반대편을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고요 그리고, 그것은 또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시선이 그것들에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러니, 괴담을 기담처럼 그 조금은 어두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그렇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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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JLPT연구소 지음 / 해커스어학연구소(Hackers)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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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을 가든, 낯섦은 존재합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과언이 아니지만 외국은 더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 말하기"는 더 그렇습니다.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그곳에 가서 유난히 소외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나라의 언어는 가장 뿌리 깊은 정신적 문화입니다.그렇기에 어떤 나라든 그 언어는 유독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끔 그 나라의 말을 알면 무언가가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말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일본어의 경우, 우리와 같은 어순으로 존재합니다. 또한 조사가 있다는 것들도요.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학문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아주 쉬운 일본어에 대한 흥미를 줄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우리가 모든 언어를 배울 때 시작하는 글자, 즉 히라가나나 가타카나를 몰라도 된다는 것입니다. 아래와 같이,






이렇게,

우리나라의 말이 훨씬 더 크게 써져 있습니다. 일본어는 우리나라의 발음 밑에 써져 있습니다. 물론, 알면 더 좋지만 모르더라도 이런 식으로 쉽게 배울 수 있단 것입니다. 사실, 외국어를 "말"을 먼저 배우고 그 후 글자를 배우는 것이지, 글자를 배우고 문법을 배우고 나서야 말을 배우려니 어려웠던 것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조금의 아쉬운 점은 가장 흔히 쓰이는 말 중, "쓰미마셍"의 경우인데, 이건 네이버만 봐도 "스미마센"으로 표기되기도 하고, 보통은 스이마센,(셍)으로 ㄴ과ㅇ의 사이를 오가는데 계속 쓰미마셍으로만 나왔지만 이 점은 그래도 일관성도 있고 그렇게도 발음을 많이 하니 했는데 끝말에 붙는 조사 "네""요"의 경우는 살짝 아쉬웠습니다. 그 조사를 살짝 설명해줬더라면 싶었지만 어쩌면 또 그렇게 자연스러운 게 말이 아닐까 싶긴 했습니다. 이 책의 대부분이 요, 네보단 주로 정석적인 까?로 끝나는 점은 좋았습니다. 처음은, 원래 정석으로 배우는 것이 맞긴 하니까요


이 책의 표지에도 나오듯, 상황이나 장소별로 그리고 말이란 것이 단어를 많이 알면 되듯이, 그렇게 기본적인 단어를 그곳에 응용하게끔 잘 돼 있었습니다. 역시나, 한국어가 훨씬 크게 그래서 딱히 김이 "노리"란 것을 일본어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김이 노리구나,라고 알 수 있고 밑에 히라가나와 한자로 작게 적혀 있는 점은 입문한다면 "글"부터가 아닌, 말부터 익혀가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글을 소홀히 하진 않았습니다. 가장 뒤쪽에 가서 <풍부하게 일본어를 공부하기>라고 써져 있었습니다. 그때야 나오는 것이 글자인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로 시작해 일본의 영수증이나 그리고 무엇보다 급할 때의 일본어..인데 사실, 영어로 하면 되겠지만 일본 사람들의 영어 발음은 상상을 초월하죠^^;; 스마트폰이 있으니 몰라도 돼, 싶지만 알면 더 좋으니까요.




한 나라의 언어를 차근차근 배워나가기란 어렵습니다. 그래서 중간중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글자가 아닌 말로 시작하는 그 나라의 말 즉 외국어를 배운다면 그건 그렇게 학문적으로나 혹은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꽤 괜찮게 공부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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