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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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졸이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긴다.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에는 5.18의 이야기인 줄 몰랐는데
이 책에 담긴 내용이 광주의 아픈 상처 아니 절대 씻을 수 없는 고통임을 알았을 때 난 주저했다. 

비겁하게도 난 책을 보기 전에 작가의 인터뷰나 이 책을 다룬 팟캐스트를 먼저 접했다.
그래야 내가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한강 작가의 소설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고
인간의 저 밑바닥에 놓인 감정까지 뿌리채 흔들어놓는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이 소설은 힘들었다. 

잔혹한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권하고 싶다.
그리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주학살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잘 모른다. 
그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이 더 다양한 매체로 나와야 한다. 
괴로워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134-135쪽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중략)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라는 것을.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선생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인간입니다.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05.19. 초판 1쇄.



이 페이지를 읽어내려가면서 마치 나에게 물어오는 것 같아서 가슴이 미친듯이 뛰었다.

작가 또한 자신을 향한 물음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은 결국 짐승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그런 상태가 아닐까.

우리의 삶은 까딱 한 발을 벗어나면 짐승의 세계이다.

예전에 한산한 오후의 지하철에서 아주 지독한 악취를 느낀 적이 있다.

그 냄새는 저 옆 칸의 홈리스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탄 칸도 아닌 옆 칸에 있어도 코를 찌르는 악취로 뒤덮힌 그는 과연 얼마를 씻지 못했던 걸까 생각했었다.

몇 년 아니라 단 몇 일을 못 씻어도 냄새가 나고 더러워지는 게 인간이다.

그런 인간들이 이기심과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저지른 수많은 참상들.


가해자들의 괴물같은 모습도 피해자의 참혹한 모습도 이 책을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인간의 한 부분이다.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매순간 부던히도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한발 옆의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다 무너뜨리면서까지 시위대에 참여한 사람들이 하려고 했던 것은 결국 난 인간이라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왜 살아야 할까. 

그런 물음을 작가는 하면서도 처참하게 짓밟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시하면서 그들을 껴안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213쪽

이제 당신의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05.19. 초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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