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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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좋아했던 외화 시리즈 중에 앨리맥빌 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괴상, 요상, 희한, 망칙한 인간들은 죄다 모아놓은 이야기로 주인공 앨리의 일과 사랑을 중심축에 놓은 아주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드라마였다. 때로,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내던 내가 앨리가 아닐까 할 정도로 극에 몰입하여 아주 정신조차 차리지 못 했더랬다. 어쨌거나, 그 중에 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일명 괴짜 변호사로 앨리의 든든한 친구이자 오너이자 동료이다. 내 어렴풋한 기억에는 그가 약간의 투렛증후군을 갖고 있었다. 에피소드 내내 보이는 존의 행동과 한쪽 눈을 늘 깜빡이는 또 다른 투렛증후군의 여인을 보며 처음에 나는 저게 드라마의 요소를 위한 장치인가. 하다가, 다시 정말 저런 증후군이 있나. 궁금했고, 사실을 알고 난 후엔 정말 괴상망측한 병증도 다 있군. 히뜩 놀래다가, 한동안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더랬다. 그리고 다시금 나와 내 주위와 앨리와 그 주위를 유심히 관찰한 끝에 생각을 마무리했다. 기실, 세상이란 넓고도 넓은지라 나와 같지 않다고 이상하게 볼 수는 없는 거 아니겠는가! 라고 어쩌면 나와 같은 행동을 하는 이들만이 맞는 것이라는 내 생각 자체가 어이없는 것 아니겠는가! 라고(, 어떤 에피소드에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아닌, 아내의 머리를 축구공으로 착각해 해변에서 모래찜질하던 아내의 머리통을 있는 힘껏 걷어차 살인죄로 기소된 남자가 법정에 서게 된다. anyway)

 

대체로 우리는 유독, 장애인, 그것도 정신과 신경 쪽의 장애인들에게 어떤 미묘한 거부감을 갖는다. 사실, 거부감이라 표하면 뭐하고 뭔지 모를 불안함과 그에 따른 거리두기 라고나 할까? 나 또한 마찬가지로 그런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무의식 중에도 주춤 한걸음 물러서게 된다. 좁은 골목길 저 쪽 끝에서 무언가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며 나에게 오고 있다면 나는 기꺼이 다른 길로 돌아갈 것이고, 지하철 의자에 누군가가 앉아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당신들은 분명 그 옆자리에 앉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그와 내가 틀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약간의 불안과 공포 내지는 거부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여지껏 살아오면서 우리와 너무도 틀린 행동을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저건 아니라는 신호가 입력되고 그에 따라 우리 몸은 주춤주춤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다. 그들은 우리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걸, 그저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진 우리의 인식과 무의식적인 행동과 반응이 그렇게 나오는 것뿐이라는 걸

 

모든 생활과 사고는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만 사람을 사물로 착각하는 사람이나, 전체는 보지 못하고 특징적인 무언가를 통해 인지하는 남자, 순식간에 자신의 몸뚱아리가 사라져 버린 여자,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자페증 환자, 그리고 일주일은 정상으로 주말은 투렛증후군으로 살아가길 택한 사람 등. 신경학 전문의인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 치료하며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따뜻하게 풀어 놓는다. 너무 감상적이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은 어조로 우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던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놀랍게도 그것이 의사와 환자가 아닌, 정상인과 장애우가 아닌, 그저 자신과 조금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하듯 동정하지 않고 다 자란 손톱을 깎아 내듯,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히 툭툭 뱉어내고 있다. 분명 그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과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걸 진즉에 알았으리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두뇌와 인간 의식에 대한 현대의학의 이해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이 먼 곳에서 온갖 오만과 편견으로 뭉뚱그려진 나와 당신의 이해마저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인간이 어떤 부분을 상실하거나 손상 당한 상태에서 그것을 이겨내고 새롭게 적응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는 어느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어떤 부분의 상실과 손상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와 조금 다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톡 까놓고 말해서 나나 당신이나 얼마간은 이 책에 열거한 환자들의 증상을 갖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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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 -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고지훈 지음, 고경일 그림 / 앨피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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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는 삶의 질을 변화 시킨다. 직접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작은 질병에서부터 정신적인 질병까지 치료 가능한 만병통치약으로 재발견되고 있다. 암을 치료하고 아토피를 치료하는 것 외에도 정신의 공황상태나 깊은 우울증에도 웃음요법은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즐거움이 우리의 우울한 역사와 만난다면 어떨까? 역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기획부터가 특별하다. 암울하고 우울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장면들을 어둡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다루고 있다. 때로는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우리의 현대사를 누구라도 알기 쉽고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이리라. 글을 쓴 고지훈씨의 날렵하고 유쾌한 필력에 호감이 간다. 그는 우리의 역사를 추악하게 만든 이들에게 호통을 치기도 하고 비꼬기도 하며, 살살 구스르고 약을 올린다. 우울했던 과거를 유머라는 자신만의 특별 양념을 가지고 이리 치고 저리 뿌리어 알맞게 간을 맞춘다. 게다가 각각의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낸 고경일씨의 그림은 그 맛에 향을 더한다. 그 캐릭터의 유사성은 물론이고, 보여주고자 하는 상황과 인물의 성격까지 고스란히 우리에게 보여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무 곳에서나 한군데만 뽑아 보자면 이러하다. “총선 때만 되면 탤런트건 아나운서건 득표력만 갖추면 죄다 ‘영입대상’이 된다. 강령이고 정책이고 다 필요 없는 게 사실 투표행위다. 효리도 미끈한 바디라인 하나로 국회의원이 될 뻔하지 않았던가? 뭐 장점이라곤 없이 모자라기만 한 인간들도 국회의원 하는 걸 보면 차라리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역시 재미있다.


우리가 지나온 역사란 어떤 것일까? 그 격변의 세월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져간 많은 인물들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떤 성격에 어떤 행동들을 하였을까? 작가는 현대사를 지나온 수많은 인물들을 여섯 부류로 나누어 말해준다. 절대권력의 맞수들과, 절대권력의 조력자들, 북으로 간 사람들, 변혁의 이름을 가진 이들 등 피비린내 나는 현대사를 웃음과 감동으로 버무려 우리 밥상에 놓아준다. 남우주연상 받은 황정민의 말대로 그저 우리는 출판사와 작가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앉아 숟가락만 들면 된다. 이승만의 오른팔 이기붕이 아닌 정치이외의 알지 못했던 자연인 이기붕의 삶, 평생 이승만에 밀려 2인자 밖에 될 수 없었던 어딘지 쓸쓸한 김구, 김일성의 애정공세를 받은 우유부단한 성격의 홍명희, 무시무시한 주석을 덥석 안아버린 대담한 문익환 목사와 북한을 흔들어 놓았던 ‘철없는 계집아이’ 임수경.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돼는 우리의 김주열과 전태일과 박종철....


EH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다. 또한 근래 가장 재기발랄하고 특출한 필력을 보여주는 작가 알랭드보통은 과거와 현재는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한다. 두 작가의 말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역사의 시작이 되는 과거, 그리고 역사를 확인해가는 현재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라 하겠다. 과거를 지나왔기에 역사가 존재하고 현재가 있으므로 과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의 암울한 과거를 어둡게 묻어버리지 않은,

웃음과 감동으로 과거와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 볼 수 있게 만들어 준

두 작가와 훌륭한 기획을 한 앨피출판사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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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식모들 -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박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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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단군신화의 시작은 이러하다.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길 바라며 까마득한 동굴 속에서 마늘과 쑥만을 먹으며 견딘다. 곰은 약속한 날짜를 인내하여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모,  고조선의 시조 단군을 낳는다. 반면 호랑이는 다 알고 있는 바, 쑥과 마늘을 견디다 못해 동굴 밖으로 도망가고 만다. 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초등학생들도 당연히 받아 들이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인간의 이야기는 시작되어 왔다. 헌데 동굴 밖으로 달아난 호랑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단군신화의 뒷이야기를 더 들을 순 없을까? 인간이 된 곰은 잘 먹고 잘 살았다네~ 하는 이야기만이 끝일까?

   <수상한 식모들>의 발칙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일단 인간이 되길 포기하고 달아난 호랑이의 뒤를 쫓는다. 그리고 굴속을 탈출한 호랑이가 새로운 방법으로! 그만의 비법을 통해 또 다른 류의 강인한 여인으로 변모하게 되는 모습을 본다. 그 여인이 바로 호랑아낙. 이야기의 주인공인 수상한 식모이다. 그녀들은 연산군 폐위 때도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동학혁명의 언저리에도 있었고 10.26 때에도 시퍼런 부엌칼을 손에 들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그 중심에 있었다. 그녀들은 부폐한 지배계급 속으로 바람처럼 스며들어 남성중심의 신분사회를 붕괴시키고, 자본주의와 부르주아들의 삶을 농락한다. 어떠한 체계도, 어떤 확실한 집단도  형성하지 않고 바람처럼 전달되어 스며들고 바위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 선 작은 물줄기처럼, 소리도 없이 거대한 모순들을 조금씩조금씩 해체시켜 놓았다는  어딘지 섬뜩하고 무서운 이야기!  

   신인의 장점이란 신선함과 패기일 것이다. 박진규가 택한 소설의 구도와 소재,  소설을 끄는 재미와 힘 등이 그러한 장점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시 해 온 신화 속 호랑이를 호랑아낙으로 변모시킨 것도 그러하며.  호랑아낙들의 비장의 무기로 생각해 낸 '꿈을 갉는 쥐' 또한 재미있다. 쥐오줌똥풀 수용액에 담겨있는 쥐를 꺼내어 사람의 귀속으로 집어 넣으면 용수철 같은 꼬리를 귀에 박아 그의 꿈과 환상을 빼앗아 결국 그 사람은 흑과 백의 논리 밖에 남지 않는다는 생각이 신선하다. 놓칠 수 없는 무거운 주제가 있다.  사실 그러한 인간들이 당신과 내 주위에 널리고 널렸으니 꿈을 갉는 쥐의 발상이 황당하기는 하나 딱히 없다고 확신할 순 없지 않은가 말이다.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처럼, 신이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우리는 어디선가 수상하게 불쑥 나타난 박진규라는 작가가 넌지시 일러준 소름끼치는 그것에 대해서도 불신할 순 없다. 그렇지 않은가,  누가 자신할 수 있는가! 우리 주위의 어디쯤엔가 정말로 수상한 식모들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인 것을... 

   어릴적 나는 수 많은 사람들 속에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알아 볼 순 없으나 사람의 모습을 하고 분명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어딘가에 호랑아낙의 피를 이어받은  수상한 식모들이 있을 것 같다는 불안하고 섬뜩한 생각에 내 주위의 사람들을 힐끔 거린다. 또한 내 머릿속에서 오랜 시간 굳어버린 수많은 생각과  사상들이 어릴 적 언젠가 만난 수상한 식모들의 소행이 아닌가 괜히 찝찝하여 슬몃 과거를 이리저리 더듬고 있는 것이다. 아마 당신도 자신하진 못 할 것이다.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작은 벌레들이 온 몸을 기어 다니고 있는 듯 스믈거릴 것이며, 오래전 빛 바란 당신의 과거를 괜시리 들추어 보고 싶어질 것이고, 이미 돌처럼 단단히 굳어져 내 것이라고 믿던 자신의 생각과 이념, 사상 따위들이 정말 오랜시간 스스로 구축한 내 것이 맞는가 한번쯤 의심 해보게 될 것이다.

 

아, 수상하다... 박진규의 글을 읽고 나니 모든 것이 수상하고 찝찝하다. 뭐, 그래도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인생이란 수상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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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전략 - Reading & Writing
정희모.이재성 지음 / 들녘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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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어느 작가는 ‘꿈은 그 사람의 정신을 일깨워주고 삶의 모든 비밀을 말해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꿈’을 ‘글’로 바꾸면 어떠한가. ‘글은 그 사람의 정신을 일깨워주고 삶의 모든 비밀을 말해준다.’ 어쩐지 나는 이 말이 더 어울리는 듯 하다. 이렇듯 글은 일련의 정신과 그만의 생각을 기술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이디어와 소재를 가지고 알맞게 구성하여 원하는 주제의 글을 뽑아내는 것이 바로 글쓰기의 전략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하고 도식적인 형태의 글쓰기라 하는 것이 사실은 만만하지 않으니 글쓰기를 일상으로 하는 이들도 때로는 머리를 벽에 들이 박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아이디어와 소재를 가지고 원하는 대로 글을 완성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글쓰기의 또 다른 어려움이라 하겠다.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다시 고치고 하여도 본인이 원하는 글을 얻기란 쉽지 않다. 조선시대를 비롯하여 많은 시대의 학자들이 글을 읽고 써왔다. 그러한 박학다식한 학자들도 글을 한번에 쓰고 끝이라 하는 자는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나라에서 유명한 학자의 집으로 한 선비하나가 놀러를 왔다. 그의 방에 들어가 보니 자신이 쓴 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 글을 읽어보니 가히 명문이라 하겠다. 선비가 무릎을 치며 어찌 이리 아름다운 글을 쓰시었소. 나 같은 자는 고치고 또 고쳐도 이리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 터인데, 감탄하다 혹시 얼마 만에 쓰시었는가 물었더니 그 학자 왈, 일필휘지, 단 한번에 썼다 한다. 선비는 감탄하고 감탄하였다. 그러나 뒷간이 급했던 학자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그가 앉았던 방석 밑으로 삐죽 보인 것이 있으니. 그가 하나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쓰고 버린 종이가 족히 백장은 넘었다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렇듯 글을 잘 쓰기로 소문난 자들도 고치고 또 고쳐서 글을 써왔다. 그만큼 글이란 쉽지가 않다는 얘기일 터이며, 고치면 고칠수록 빛을 발하는 글이 완성된다는 이야기이다.


시중에는 <유혹하는 글쓰기>,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등의 훌륭한 글쓰기 책들이 무궁무진하다. 어떻게 글을 써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들이다. 그러나 <글쓰기의 전략>은 기존의 글쓰기 책들과 그 맥을 달리하고 있다. 전자의 책들이 글쓰기를 위한 이론서의 형태를 하고 있다면 <글쓰기의 전략>은 제목 그대로 책을 보며 지금당장이라도 써볼 수 있는 실용서라 하겠다. 바로 내일까지 글을 써야 하는 이들이 책을 넘겨보며 좋은 한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는 전문 실용서에 맞게 이 책은 챕터챕터마다 유익한 이론과 실용 정보들로 가득하다. 장영희나 진중권 등 명문장가들의 인용 글들도 풍부한 읽을거리이며, 챕터 마지막마다 달려있는 ‘띄어쓰기’나 ‘헷갈리는 우리글’ 등은 마치 작고 유용한 사전을 옆에 끼고 있는 듯하다. 또한 독서의 과정이나, 소재와 아이디어 찾기, 글의 구성방법이나 바른 문장을 쓰는 방법 등의 글쓰기 전략을 소개하는 본문의 내용은 실용서로서 충실하다 하겠다. 게다가 필요한 곳에는 ‘점검’이라는 섹터를 따로 마련하여 지금 방금 읽은 부분을 직접 자신이 써 볼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글쓰기 책이 나온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진실하게 잘 표현 했는가이다. 아무리 책을 읽고 그대로 써나간다 한들 진실성이 결여됐다면 그 글은 이미 살아있는 글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한다? 책에서 말하듯, 모쪼록 많이 읽고 많이 쓰는 방법 외엔 달리 좋은 방법이 없을 듯. 오랜만에 만난 글쓰기 전문 실용서를 접하니 새록새록 읽는 맛이 난다. 쓰는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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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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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도 없고 딱히 특이할 것도 없는 ‘아파트’라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 그러니까 오래전의 낡고 허름했던 내 집에는 벽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벽속에 마련된, 그러나 벽과 일체가 되어 손잡이만 아니라면 결코 벽 속에 무엇이 존재하리라고 믿어지지 않는 그런 공간. 손잡이를 잡고 양손으로 밀어내면 그 어둠속에서 풍겨오던 습하고 매캐한 책의 곰팡내.


부모님이 늦어지시던 날에는 나는 늘 그곳으로 기어들곤 했다. 그 안에 쌓여 있던 수 많은 책들. 보이는 문과는 달리 그 안은 넓고도 깊었다. 때때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저 어둠의 끝에는 무엇이 존재 할까 궁금했다. 내게 그 벽장 안은 책들의 도시였다. 친척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시고도 연약한 품성에 돈을 받아 오지 못한 아버지는 대신 몇 십 권의 책을 들고 돌아오셨다. 집 앞에서 흙을 만지면 놀고 있던 나는, 얼굴엔 그늘이 가득한 채 양손에 붉은 노끈으로 동여 맺던 주황빛 하드커버의 책들을 잊지 못한다. 아버지는 그날 책 더미들을 안방 벽장 속에 던져 넣으시곤 마루에 앉아 소주를 드셨다. 어렸던 나는 아버지가 벽장 속에 던져 넣은 것이 궁금해 그날부터 몰래 벽장 속을 드나들었다. 그 벽장 속에서 나는 점점 책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며 난생처음 이야기라는 것을 만났고 나의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것을 믿게 되었으며 벽장은 이제 내가 만든 책들의 도시가 되었다. <톰소여의 모험>, <왕자와 거지>, <소공녀>, <십오소년표류기><안데르센 동화집>등등을 여행하며 다녔다. 어린 계집아이의 호기심을 지독히도 자극했던 주황색 바탕에 검은 점박이 하드커버의 낡은 계몽사 책들. 그때 그 도시 속을 파고들며 만났던 내 보물들. 그래, 발터 뫼르스의 말대로 호기심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에게나 자신만의 도시는 존재한다. 그것이 스스로 만들어낸 환타지이든 존재하고 있는 현재의 순간이든 생각해보면 자신만의 도시는 있다. 누군가는 음악의 도시를 만들고, 누군가는 음식의 도시를 만들며, 춤의 도시, 금전의 도시도 존재한다. 그리고 당신과 나의 경우는 책들의 도시이다. 발터 뫼르스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의 도시를 가장 완벽하고 기발하며 독창적으로 발굴해 냈다는 것이 우리와 다를 뿐이다. 만약 당신이 그가 만들어낸 도시가 궁금하다면, 저자의 상상력에 몸을 맡기면 그뿐이다. 필요한 것은 ‘호기심’이라는 추진력이면 족하다.


뫼르스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 온갖 은유와 상징을 바탕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얼핏 보면 신나고 흥미진진한 판타지소설에 불과하나 한 번 더 생각하면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에 때때로 정신이 번쩍 들거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퍼지곤 한다. 그 상징과 은유들은 단지 소구가 된 책뿐이 아니라 온갖 문화들, 책과 음악. 영화와 모든 매체를 아우르고 있다. 가령, 책에 독을 묻혀 살해하는 모습은 <장미의 이름>을 연상시키며, 음악으로 영혼을 뺏는 장면은 17세기의 그 치명적인 ‘카스트라토’를, 그리고 부흐하임에서 일어나는 작가와 편집자 출판업자들의 관계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고, 주인공을 공격하고 물어뜯던 살아있는 책들은 끝도 없이 출판되는 악서(惡書)를, 스마이크가 어둠의 제왕을 만드는 장면은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결정적으로 주인공을 인간이 아닌 공룡으로 삼은 것은 왜일까? 그리고 인간은 그저 라이덴 병속의 ‘소인간’으로 전락시켜버린 의미는? 이 꿈꾸는 책들의 도시 속에는 환상적인 이야기뿐 아니라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면 나름대로 찾아 낼 수 있는 해석의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생각해보라. 인간이 아닌 공룡이라니! 병속에서 죽음을 맞는 하찮은 인간이라니!  맞다. 당신들의 짐작대로 우리는 발터 뫼르스의 호기심의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것 하나! 그 악랄한 권력자 ‘피스토메펠 스마이크’ 이름의 문자를 재 정렬하면? 바로 파우스트의 무시무시한 악마 ‘메피스토’가 된다! 재미있지 않은가! 물론 독일어의 순차로는 아니다 이러쿵저러쿵 하더라도 그냥 웃어넘기기에 어째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왜 일까? 이것은 단지 우연이었을까? 언어의 오류를 문체로 간주한다던 ‘가가이즘’, <기사 헴펠>이라는 위대한 책, 골고, 알리 아리아 에크미르너, 블로른, 아구 프로스트라는 책 속의 작가들과 그 외의 내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수많은 작가들과 여러가지의 상징들, 이것들도 우연일까? 과연? 정말?

 

 

숨막히는 폭염의  여름, 그저 롤러코스터와 같은 신나고 시원한 책을 읽고

가볍게 돌아서려는 내 소매끝을 이 모든 것들이 자꾸만 끌어대니 이 어인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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