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 -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고지훈 지음, 고경일 그림 / 앨피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유머는 삶의 질을 변화 시킨다. 직접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작은 질병에서부터 정신적인 질병까지 치료 가능한 만병통치약으로 재발견되고 있다. 암을 치료하고 아토피를 치료하는 것 외에도 정신의 공황상태나 깊은 우울증에도 웃음요법은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즐거움이 우리의 우울한 역사와 만난다면 어떨까? 역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기획부터가 특별하다. 암울하고 우울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장면들을 어둡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다루고 있다. 때로는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우리의 현대사를 누구라도 알기 쉽고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이리라. 글을 쓴 고지훈씨의 날렵하고 유쾌한 필력에 호감이 간다. 그는 우리의 역사를 추악하게 만든 이들에게 호통을 치기도 하고 비꼬기도 하며, 살살 구스르고 약을 올린다. 우울했던 과거를 유머라는 자신만의 특별 양념을 가지고 이리 치고 저리 뿌리어 알맞게 간을 맞춘다. 게다가 각각의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낸 고경일씨의 그림은 그 맛에 향을 더한다. 그 캐릭터의 유사성은 물론이고, 보여주고자 하는 상황과 인물의 성격까지 고스란히 우리에게 보여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무 곳에서나 한군데만 뽑아 보자면 이러하다. “총선 때만 되면 탤런트건 아나운서건 득표력만 갖추면 죄다 ‘영입대상’이 된다. 강령이고 정책이고 다 필요 없는 게 사실 투표행위다. 효리도 미끈한 바디라인 하나로 국회의원이 될 뻔하지 않았던가? 뭐 장점이라곤 없이 모자라기만 한 인간들도 국회의원 하는 걸 보면 차라리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역시 재미있다.


우리가 지나온 역사란 어떤 것일까? 그 격변의 세월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져간 많은 인물들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떤 성격에 어떤 행동들을 하였을까? 작가는 현대사를 지나온 수많은 인물들을 여섯 부류로 나누어 말해준다. 절대권력의 맞수들과, 절대권력의 조력자들, 북으로 간 사람들, 변혁의 이름을 가진 이들 등 피비린내 나는 현대사를 웃음과 감동으로 버무려 우리 밥상에 놓아준다. 남우주연상 받은 황정민의 말대로 그저 우리는 출판사와 작가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앉아 숟가락만 들면 된다. 이승만의 오른팔 이기붕이 아닌 정치이외의 알지 못했던 자연인 이기붕의 삶, 평생 이승만에 밀려 2인자 밖에 될 수 없었던 어딘지 쓸쓸한 김구, 김일성의 애정공세를 받은 우유부단한 성격의 홍명희, 무시무시한 주석을 덥석 안아버린 대담한 문익환 목사와 북한을 흔들어 놓았던 ‘철없는 계집아이’ 임수경.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돼는 우리의 김주열과 전태일과 박종철....


EH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다. 또한 근래 가장 재기발랄하고 특출한 필력을 보여주는 작가 알랭드보통은 과거와 현재는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한다. 두 작가의 말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역사의 시작이 되는 과거, 그리고 역사를 확인해가는 현재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라 하겠다. 과거를 지나왔기에 역사가 존재하고 현재가 있으므로 과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의 암울한 과거를 어둡게 묻어버리지 않은,

웃음과 감동으로 과거와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 볼 수 있게 만들어 준

두 작가와 훌륭한 기획을 한 앨피출판사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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