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042 5 - 완결
코테가와 유아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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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9월에 '우리나라 최초 사형수의 자연사' 보도가 있었다. 이것은 사형제 폐지를 검토하고 있는 지금의 과도기적 상황이 낳은 결과라고 한다. 그러니까 97년 말에 23명의 형을 집행한 이후로 지금껏 형의 집행이 없었던 것이다. 아직 예순 명 이상의 사형수들이 남아 있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사형제 폐지에 관한 법률을 조속히 마련할 모양이다. 혹 사형제가 폐지되면 사형을 언도받을 죄수들은 그 대신에 감형도, 가석방도 없는 종신형을 살게 되는 모양이다.

사형수 타지마 료헤이는 사형제 폐지를 위한 사전조사 차원에서 뇌에 칩을 넣고 사회에 복귀하는 실험의 실험체가 된다. 그는 "난 죽이고 싶어서 죽였어. 사람 죽이는 거, 재미있었으니까."라고 말하는, 7명을 죽인 살인범이다. 이런 그가 실험 장소인 고등학교에서 잡역부로 일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갈등을 겪고 사귀고 이해하게 되어간다는 어찌보면 좀 뻔한 이야기다.

실험이 진행되며 변해가는 그의 모습은 작위적으로 보이는 반면, 지극히 상식적인 변화라는 생각 또한 든다.
그것은 환경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 삶을 어떻게 결정 짓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연히 타지마 료헤이에게도 즐기며 7명을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 즉 그를 그렇게 만든 환경이 있었다. 모든 것을 환경의 탓으로 돌리는 얍삽한 소리를 하고 싶진 않지만, 그들과 우리가 '처음부터 사는 세상이 다른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사형제의 폐지나 존속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범죄자를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두려움과 그들의 어눌함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 우리와 그들이 서로 조금씩 달라진다면 범죄와 범죄자가 싸그리 사라지진 않더라도 좀 더 나은 세상은 되지 않을까.

"그러니 부디 여러분의 주변을 더 넓게 돌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외로워 보이는 사람, 뭔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 조금은 다정하게 대해 주십시오.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쫓겨 가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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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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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이란 낱말은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학창 시절 음악 시간을 떠올리면 마왕은 비교적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워낙에 그런 이야기를 좋아해서 그런 건지 혹은 안도처럼 나역시 어디로도 손 뻗을 수 없는 절망과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작품 안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파시즘. 그 파시즘의 중심에 서려는 일본의 무솔리니 이누카이. 그러나 이누카이도 파시즘도 악이 아니다. 악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대중인 것이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생각없이 남 하는 대로 남 가는 데로 우르르, 자기 것은 하나도 없이 남의 깃털로 거죽만 꾸민 못난 까마귀같은 대중들이 바로 악이다. 그들이 파시즘을 만들고 전쟁을 조장하고 결국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이다.

안도는 주문처럼 자신에게 말한다. "생각해, 생각해." 엉터리라도 좋으니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간다면 세상은 바뀐다고 믿는 사람이다. 세상이 바뀌고 안 바뀌고 보다는, 엉터리인지 아닌지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날 대중은 자신의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믿을 수도 없고, 더구나 세상과 대결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

대중이 모두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세상과 대결하는 상황도 생각해 보면 좀 고통스럽긴 하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모르고 너무나 속아 살고 있는 것이다. 보여주는 대로 볼 수밖에 없는, 던져주는 대로 받아 먹고 믿을 수밖에 없는 대중이란 말이다. '인터넷'이란 것이 세상을 정복한 지금, 대중은 더 어리석고 속여먹기 쉬운 존재가 되었다. 대중을 호도하고 봉기시키는 것은 너무나 간단하고 손쉬운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월드컵 거리 응원 등의 혼란과 광기가 가까운 예다. 나는 아직도 줄기세포 관련 문제의 진실을 알지 못하겠으며 광기로 가득했던 월드컵 거리 응원의 흥분이 두렵다.

활자를 통해 지켜 보고 있는 우리는 무솔리니와 클라라의 시체를 즐기는, 한치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대중의 어리석음에 혀를 차겠지만, 실상 내가 그 대중 안에 섰을 때 과연 어리석은 대중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치마를 올려주고 싶지만 두려움 때문에 떨기라도 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어쩐지 나는 아무런 위화감없이 눈 앞에 벌어진 축제를 즐기는 어리석은 대중이 되어있을 것 같아 두렵다.

어리석은 대중이 되고 싶지 않다면, 오늘 아침까지 떠받들던 무솔리니가 처형되어 거리의 전시물이 되었을 때 그 시체에 돌을 던지며 웃고 야유하는 내가 되고 싶지 않다면, 알몸이 된 시체에 천 쪼가리를 둘러줄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면, 생각하고 생각하라. 보여주는 대로 보지 말고 떠들어대는 대로 믿지 말라.

마왕이 되는 것보다는 홀로 깨어있어 그 공포에 몸서리치는 쪽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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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나 - 세계 최악의 말썽꾸러기 개와 함께한 삶 그리고 사랑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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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너무 맞는 말이다."그렇다. 작가의 이 말처럼 너무 맞는 말이다. [말리와 나]는 이 너무 맞는 말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확인하는 책이다.

말리- 하루 종일 들판을 뛰어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데다가 나사가 빠져 있고 훈련이나 안정제 개 심리치료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녀석, 전문가도 차라리 안락사 시키는 것이 낫다고 충고하는 개, 13년을 한 가족과 함께하며 개를 사랑하는 경이적인 삶을 주인 가족에게 맛보여준 개의 이름이다.

책은 저널리스트인 신혼 부부가 아메리칸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함께한 13년이 빚어낸 모든 것들-즐거운 한 때, 함께 나누는 슬픔, 악의 없는 그러나 우리를 독하게 만드는 말썽들-이 유쾌하게 춤을 추는 책이다.

그래서 책은 재미있고, 그래서 조금 지루하다. 400쪽 가량의 책이 중간쯤 가면서 진도가 안 나가고 힘겨워졌던 것은 개를 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들이 재미를 주면서도 다 아는, 이미 경험한 이야기들이기에 어쩔 수 없는 지루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서 그리고 말리를 통해서, 순수하고 진정 행복한 삶의 태도를 배운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큰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개와 함께하는 삶이 한 번쯤 꿈꿔 볼 만한, 욕심내 볼 만한, 대가를 치를 만한 삶이라는 것 정도는 얻기를 바란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개가 없는 삶은 훨씬 쉽고 단순했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우리는 뭔가 허전했다.
-개를 키우다 보면 벽이 상하기도 하고, 쿠션이 찢어지기도 하며, 카펫이 망가지기도 한다. 다른 모든 관계와 마찬가지로 개와의 관계에서도 대가가 따른다. 이러한 대가를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였고, 사실 이것은 말리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 만족, 보호, 동반자 역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말리에게 들어간 비용과 말리가 망가뜨린 것을 복구하는 비용을 다 합치면 작은 요트라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간에서 하루 종일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요트가 과연 몇 척이나 되겠는가? ... 말리는 가족으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작가의 칼럼을 읽고 나쁜 개 클럽이라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쇄도했던 메일의 내용들에 무척 공감했다.
우리 개 케이티는 이제 겨우 두 살인데 저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모니카, 어떻게 이 놀라운 강아지가 네 마음을 훔쳐가도록 내버려두었니?'  /  개들이 보여주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떠난 다음에 주인이 겪는 엄청난 슬픔은 개 키우는 사람만이 알 수 있죠.  /  개들이 우리와 함께 보내는 기간은 너무나 짧은데, 그나마 그 기간 중 대부분을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보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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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8
아시하라 히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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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완결 예정인 작품이지만, 본 편의 이야기는 8권으로 끝이라고...책 안에서 작가가 말했던 것 같다. 얼마 전 출시된 9권은 주인공 '안'의 엄마 이야기와 '안'과 약혼했던 상사맨의 이야기인 외전이었으므로 8권을 이야기의 마무리로 보는 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안이 12살이던 어느 겨울, 엄마는 산책을 다녀오마고 나서고 안은 '잘 다녀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엄마는 산 정상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안이 받은 상처야 말해서 무얼할까, 이 때의 안을 구렁에서 건져준 손은 이웃의 다이고. '괜찮다, 네 잘못이 아니다'고 말해주는 다이고에 의지해 그녀는 살아간다. [모래시계]는 이 두 사람의 사랑의 이야기다.

이런 상처를 지닌 불안정한 아이(?)가 주인공인지라 이야기는 불안하고 가끔 긴장되고 대체로 어둡거나 혹은 진지하며 때때로 유쾌하다. 다른 순정만화들처럼 우리의 주인공들도 만남과 헤어짐, 밀고 당김을 주고 받지만 그것들이 상당히 수긍할 만한 상황들로 다가오는 '썩 괜찮은 이야기'다. 눈이 이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봐도 후회 없을 것이라는 추천을...  

이 책을 읽으면 '사랑과 강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안은 자신의 나약함이 어머니를, 자신을, 남자 친구를, 나아가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특히 연애 감정으로 얽힌 상대들에게 상처를 준다고 생각한다. 다이고는 다이고대로 자신이 더 강하지 못하여 안을 죄책감과 불안 속에서 꺼내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다이고는 아무 것도 없는 모래밭에 서서,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막막함을 맛보고 안의 고통을 이해한다. 그래서 손을 뻗어 그 고통의 짐을 덜어주고 싶지만 그건 결국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안에게 강해지라고 말한다.
이야기는 12살의 두 사람이 26살(부정확하지만 어쨌든)이 될 때까지 이어지는데,  과연 이들은 그들이 바라는,  사랑하는 사람을 제 손으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그 강함을 손에 넣었을지.^^

이 책을 보며 사랑이 인간을 강하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련이 인간을 성장시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순한 시간의 흘려버림으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나이가 칠십 팔십이 되어도 '어른이 아닌' 인간은 많다. (사실 많이 보진 못했다. 그만큼 굴곡 없이 산다는 것이 힘든,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겠지.) 사랑이든, 일이든, 공부든, 숨쉬기든 뭐가 됐든 살아가면서 겪는 그 시련이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우리가 성장할수록, 더 강한 마음을 가질수록, 남에게 쉽게 상처 받지 않고 또 상처도 주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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