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페트루솁스카야의 <복수>

재작년 모스크바 통신에 러시아 단편들을 두어 편 번역해서 올려놓은 바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페트루셉스카야의 <복수>를 이미지 버전으로 옮겨놓는다. 국내에도 일부 단편과 드라마가 번역돼 있는 작가 류드밀라 스테파노브나 페트루솁스카야(뻬뜨루셰프스까야)는 물론 이름에서 알 수 있지만, 여성작가이다. 1938년생이고, 모스크바대학의 언론학부를 졸업했다. 1972년부터 잡지에 단편들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극작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주된 관심은 인간관계에서의 소외 현상과 비정함, 그리고 잔혹성에 있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데, 1960-90년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10명 안에 꼽힌다(아동문학작가이기도 하다).

출간된 그녀의 작품집들을 여러 권 구경할 수 있었는데, 아직 잘 정돈된 전집은 나오지 않은 듯하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지만, 3쪽짜리 단편 하나 읽을 거 가지고 크게 떠들 일도 아니어서(나는 이 작가의 이름은 들어봤었지만, 직접 작품을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가소개는 이 정도에 그치도록 한다. 참고로, 문단은 원작과 일치하지 않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번역에는 작품에 대한 나의 ‘읽기’가 얼마간 반영돼 있다(모든 번역은 원작을 얼마간 ‘구부리기’ 마련인데, ‘왜곡’과는 구별되는 이 ‘구부리기’는 번역의 불가피한 조건이기도 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엔 괄호 안에 *표시를 하고 역주를 달았다.



한 여자가 혼자서 애를 키우는 이웃여자를 증오했다. 아이가 자라서 점점 온 집안을 뛰어다닐 때쯤 되자, 이 여자는 전혀 고의가 아닌 듯이, 복도 바닥에 끓는 물이 담긴 양동이나 가성소다(*양잿물)가 든 물통을 놓기도 하고, 복도 바로 앞에 바늘곽을 떨어뜨려놓기도 했다. 불쌍한 아이 엄마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딸아이가 아직 잘 걷지 못하는 데다가, 겨울이었기 때문에 복도로는 나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방에서 널찍한 복도로 저 혼자 나갈 수 있는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엄마는 이웃여자에게 아이가 다닐 만한 길목에 물통이 놓여있다고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혹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라에치카, 당신은 또 바늘곽을 흘렸더군요.” 그러면 이웃여자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정신머리가 없어서 그랬노라고 푸념했다.

한때 그들은 절친한 친구였다. 그럴 만한 것이 그들은 방 두 개짜리 집에 같이 사는 독신여성들이었다(*방 두 개는 각자가 쓰고, 복도나 화장실 등을 같이 쓰는 러시아식 가옥 형태이다. ‘집’이라고 옮겼는데, 대개는 아파트나 공동주택이다). 그들에겐 많은 것들이 공동의 것이었으며, 심지어 손님들도 공동의 손님이었다(*한쪽에 손님이 오더라도 같이 먹고 놀았다는 얘기다). 생일날이면 그들은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지냈는데, 그러던 어느날 지나가 어느새 잔뜩 부른 배를 하고 다니게 되자, 라야는 그녀를 거의 미칠 지경으로 증오하기 시작했다(*‘지나’와 ‘라야’가 두 여자의 이름이다. ‘지나이다’ ‘지노치카’ 등이 ‘지나’의 별칭이며, ‘라이사’ ‘라샤’, ‘라에치카’ 등이 ‘라야’의 별칭이다).

그녀는 순전히 증오 때문에 병이 나기 시작했으며, 집에 늦게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에겐 벽 너머 지나의 방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내내 들려오는 듯했고, 지나가 진짜로 혼자 있는 시간에도 말소리와 노크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나는 반대로, 라야에게 전보다 더 애착을 느꼈다. 심지어 하루는 그녀에게 말하길, 자신에게 큰언니 같은 좋은 이웃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했다. 아무리 힘들 때에라도 결코 자신을 내버리지 않을 큰언니.

라야는 실제로 지나가 출산준비물을 바느질하는 걸 도와주었고, 때가 되자 그녀를 조산원에 데려다 주었지만, 단 한번도 산모와 아이를 보러 가지 않았다(*직역하면 “갈 수가 없었다”이다). 때문에, 지나는 하루 더 조산원에서 아무런 출산준비물 없이 앉아 있다가 결국, 반환 약속을 하고 누더기 같은 관용 모포에다가 아이를 감싸서 데리고 왔다(*라야가 출산준비물을 갖다 주지 않은 것이다. ‘관용 모포’란 표현에서 지나가 사설 조산원이 아닌 국영/관영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은 걸 알 수 있다. 영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에서 주인공 카테리나가 딸을 낳은 조산원 같은 걸 떠올리면 되겠다).

라야는 아파서 못 가봤다고 변명을 했고, 내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단 한번도 지나를 위해서 상점에 가지 않았고, 그녀가 물건을 사는 걸 도와주지 않았다. 그저, 어깨에 찜질 같은 걸 하면서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지나가 아이를 손으로 안고 목욕탕에 갔다가, 부엌에 갔다가,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와서 한번 보란 듯이 내내 방문을 열어놓고 있었어도 아이를 단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지나는 미리,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일거리를 바꾸었고, 재봉틀에 익숙해졌다. 그녀에겐 친척이 없었기 때문이고, 이웃 사촌이란 말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했다. 사실상 그녀는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으며, 혼자서 모든 걸 해나가고, 혼자서 짐을 날라야 했다. 딸아이가 어렸을 때, 지나는 아이를 재운 다음에 일거리를 날라왔고, 혼자서 노임을 받으러 갔다. 하지만, 딸아이가 잠자는 시간이 줄어들고 좀더 크게 되자 일이 번거로워지기 시작했다. 지나가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게 된 것이다. 한편, 라야는 자신의 어깨 관절에만 고집스레 매달렸고, 심지어는 그 때문에 병원에 입원도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잠깐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하는 게 지나로선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라야는 아이를 죽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점점 자주, 버둥대는 아이를 양손에 안고서 복도를 다니면서(*복도에 위험한 것들이 있어서), 지나는 부엌 바닥에 물컵인 듯한 게 놓여 있는 걸 보거나(*가성소다가 담겨있을 듯), 탁자에 뜨거운 찻주전자가 손잡이를 늘어뜨린 채 놓여 있는 걸 보게 되었다. 하지만, 지나에겐 아무런 의심도 들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는 “엄마라고 말해봐!”라고 말하면서 딸아이에게 항상 즐겁게 종알댔다. 하지만, 상점이나 직장에 나갈 때는 아이가 못나오게 가둬두고 다녔고, 이건 좋게 넘어가지지 않았다. 라야는 극도로 화가 났다.

지나가 무슨 일인가로 밖에 나갔을 때, 방안에 있던 아이가 잠이 깨서는, 아마도 침대에서 떨어진 듯했다. 문쪽까지 기어와서는 울어댔다. 라야는 아이가 잘 걷지 못하고, 침대에서 떨어졌으며, 빽빽 울어대는 걸로 봐서 아마도 크게 다쳤고, 바로 문 앞에 누워있는 걸로 짐작했다. 라야는 더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목욕탕에서 거기 보관하고 있던 가성소다 병을 가져와서 양동이에다 따르고는 복도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용액을 문 밑쪽으로 끼얹었다. 아이가 누워있는 쪽으로. 울음소리는 자지러지는 소리로 바뀌었다. 라야는 복도바닥을 닦아냈다. 양동이와 수세미와 장갑까지 모두 깨끗하게 닦았다. 그리고는 옷을 입고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왔다간 후에 그녀는 영화관에 갔다가 상점을 들러서 저녁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지나의 방은 불이 꺼져 있었고, 조용했다. 라야는 텔레비전을 한동안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나는 밤새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라야는 도끼를 들고와서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는 먼지투성이인 방안에서 침대 옆 바닥에 말라붙어 있는 핏자국과 문쪽에 있는 더 큰 핏자국을 보았다. 가성소다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라야는 이웃여자의 방바닥을 닦아내고, 정돈한 다음에 흥분 어린 기대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침내 일주일쯤이 지나자 지나가 돌아왔다. 그녀는 딸의 장례를 치렀고, 주야로 일하는 직장을 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의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움푹 들어간 눈과 누렇게 뜨고 늘어진 피부가 그녀를 대신해서 모든 걸 말해주었다. 라야는 지나를 위로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집안에서의 삶은 이제 숨이 멎은 듯 고요했다. 라야는 혼자서 텔레비전을 보았고, 지나는 주야로 하루를 일하면 온종일 잠을 잤다. 그녀는 마치 정신이 나간 듯이, 사방에다가 딸의 사진을 걸어놓았다.

라야의 병은 더 심해져서, 그녀는 팔을 들어올릴 수도, 걸어다닐 수도 없었고, 심지어 관절주사도 도움이 되질 않았다. 의사들은 관절염이라고 진단했다. 사태는 더 나빠져서, 라야는 자신의 끼니를 챙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심지어 차를 끓일 수도 없었다(*러시아에서 차를 끓이기 위해서는 가스렌지를 켜고 성냥 등으로 불을 붙여야 한다. 우리의 갈비집에서처럼. 라야에게 그런 불을 붙일 힘도 없어졌다는 얘기다). 지나가 집에 있을 때는 그녀가 손수 라야에게 음식을 먹여주었다. 하지만, 지나가 집에 들르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고, 일이 힘들다는 핑계를 댔다. 어깨의 통증 때문에 라야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나가 무슨 병원 같은 곳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한다는 걸 알고서, 라야는 그녀에게 모르핀 같은 강한 진통제를 얻어달라고 부탁했다. 지나는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맡고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럼 이걸 더 많이 먹어야겠어. 나한테 30알만 세줘.>
<아니, 안돼.> 지나가 말했다. <내 손으로 죽게 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손을 움직일 수가 없잖아.> 라야가 따지듯이 말했다.
<넌 그렇게 값싸게 벗어날 수 없을 거야.> 지나가 말했다.
그때 환자가 초인간적인 힘으로 병을 입에 갔다 대더니, 이빨로 마개를 빼내고, 약을 몽땅 입에다 털어넣었다. 라야는 아주 오랫동안 죽어갔다. 아침이 밝아오자, 지나가 말했다.

<이제 잘 들어둬. 난 너를 속였어. 우리 레노치카(*딸의 이름)는 죽지 않았어. 아주 잘 뛰놀고 있지. 그 아인 탁아소에 있어. 나는 거기서 간호보조사로 일하고. 그리고 네가 문밑으로 끼얹었던 건 가성소다가 아니라 일반 식용소다야. 내가 바꿔놓았었지. 바닥에 있던 피, 그건 레노치카가 침대에서 떨어졌을 때 난 코피야. 그러니까, 넌 아무런 잘못도 없어. 누구도 그것 때문에 너를 문책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나도 잘못이 없어. 우린 서로에게 빚이 없는 거야.>

그리고 그때 그녀는 죽은 이의 얼굴에서 천천히 행복한 미소가 번져 나오는 걸 보았다.

 

 

 

 

04. 06. 03/ 06. 0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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