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andcat > 새가 난다, 저어새가 난다 + 자료

-sandcat, 7월호 게재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바람은 쉬지 않고 새들을 가두고 내리눌렀다. 바람에 얽힌 그들의 날개는 뭐랄까, 인어공주의 다리처럼 딴 세상 같고, 그녀가 잃은 지느러미처럼 아련하다. 새는 깃털만큼 무수한 몽상의 방식이며, 비상(非常)한 상투성이다. 삶이 주는 인간의 비애는 날아다니는 저들로 인해 그 무게를 덜어낸다. 하늘과 새를 머리에 이고 사는 사람들아 봐라, 새가 난다. 저어새가 난다.

석도의 저어새
젓갈시장을 돌아나온 샛바람이 달긋 분다. 가끔씩 멀기만 밀려올 뿐 배를 띄우기에도, 어린 새가 첫 비행 연습을 하기에도 적당한 날씨다.

‘저어새번식지 국제공동조사’ 삼 일째, 오늘의 목적지는 어로한계선 북방에 위치한 석도, 비도이다. 북한을 지척에 둔, 육지로 말하자면 비무장지대에 속하는 곳으로 인적이 드문 덕에 남한의 저어새들이 번식기를 보내는 데는 나무랄 데 없는 곳이다.

강화도 선착장에서 떠난 지 한 시간이 흘렀을까. 17.5노트로 나아가던 배가 갑자기 멈춰섰다. 오늘은 해미(바다 위에 낀 짙은 안개)의 날, 워낙 정치적으로 예민한 지역이라 함부로 나아가기 어렵다.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의 운명도 해미 속 한 척의 배처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불과 10년 전인 1996년, 동아시아 7개 국가가 모여 저어새 보전을 위한 ‘저어새 보호 국제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의 저어새 개체수는 500여 마리, 2006년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1600여 마리 이상으로 늘었다.

지금 저어새를 바라보고 있는 동아시아 각국의 사람들, 한결같이 손등이 검고 눈이 맑은 이 사람들이 저어새라는 희귀종과 한 배를 탄 숨은 공로자임에 틀림없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배는 마침내 석도에 닿을 수 있었다.

석도에서는 총 10~12쌍 정도가 번식기를 보내고 있었다. 작은 바위섬을 뒤덮은 가마우지와 괭이갈매기 사이로 보석처럼 박혀 있는 저어새는 번식기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살구빛 머리장식깃과 가슴깃, 20센티미터에 이르는 주걱 모양의 검은 부리로 확인된다. 멀리서 저어새들 또한 완전한 고요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분단의 상징, 비무장지대. 주인도 없고 사람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아이러니의 땅에 저어새가 산다. ‘분단’과 ‘단절’을 상징하는 곳이 특별한 생명의 땅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저어새는 새는 부리가 뾰족하다는 편견을 깨뜨리는 새다. 성조가 된 녀석은 부리에 투박한 주름을 얹는데, 너울대는 파도 같은 줄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늘어난다. 독특한 모양의 부리는 다른 새보다 비효율적인 사냥법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 205호, 강 하구나 갯벌 생태계의 깃대종인 저어새는 얕은 갯벌에서 먹이를 취한다. 그들의 부리는 애초에 그들의 생태적 특성에 맞게 진화해왔을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속도에 비해 인간이 환경에 가한 변화의 속도는 너무나 빠른 것일 테고 말이다. 먹잇감이 풍부했던 예전에는 효율적이지 못한 사냥법으로도 충분히 생존이 가능했지만 급격한 서식지의 환경변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저어새가 사는 강 하구나 얕은 갯벌은 사실 건강한 바다의 상징이기도 하다. 강 하구나 얕은 갯벌은 바다를 살찌우고, 건강한 바다는 인간을 살찌운다. 저어새를 안다는 것은 바로 서식지를 안다는 것, 저어새를 보전한다는 것은 바로 서식지를 지켜낸다는 의미이다.

비도의 저어새
비도는 저어새 천지의 무인도다. 이곳에만 자그만치 40~50쌍 정도가 번식기를 보내고 있었다. 다 큰 녀석들은 약 50마리, 새끼들은 12마리 정도로 2002년 6월, 작고한 김수일 교수 일행이 밴딩한 저어새가 고향으로 날아와서 둥지를 틀기 시작한 것도 보인다. 털이 부숭부숭한 어린 새끼와 서 있는 저어새 무리는 평화로워 보였지만 힘에 겨운 번식기를 견뎌내고 있을 터였다.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노랑부리백로 서식지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그날 비도에서 2마리의 노랑부리백로를 발견하는 기쁨도 거저 얻었다.

새들의 눈으로 보자면 이 지상은 중력이 지배하는 추락의 땅일 것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새들의 시야는 인간의 그것과 다르다. 보통 인간의 세 배에 이르며 고개를 돌리지 않고 150~340도에 이르는 풍경을 한눈에 꿴다. 그렇다면 지금 저어새들이 내다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와 21세기를 사는 인간들의 현재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새끼에게 비행 연습이라도 시키려는가보다. 영화 『위대한 비행』에서 본 철새들의 비행은 강도 높은 노동, 여러 날의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나오는 고달픈 생존이었다. 철새들의 이동보다는 한가한 날갯짓을 하고 있는 저어새 무리를 보니 고향이 주는 편안함에 몸을 내맡기는 살가운 여유가 느껴진다.



저어새의 고향은 한국
환경연합 습지팀의 석도, 비도 내 저어새 모니터링은 벌써 5년이 넘었다. 일 년에 3회 이상, 출입이 까다로운 이곳을 모니터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멸종위기에 처한 조류 연구는 바로 서식지에 대한 연구이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보전을 위한 전략 세우기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축적된 자료는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의 형태에 대한 재고와 각성을 동반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저어새들이 석도와 비도, 역도와 유도에서 둥지를 틀고 첫 비행을 한다. 그 저어새들의 고향은 한국이다. 이곳에서 제대로 크지 못하면 영영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세상이 무엇이냐?
두루미의 부리에서 떨어져
달빛에 반짝이는 물방울
                    -도겐 선사, 13세기 일본

#


* 사진은 퍼가시면 안 됩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