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카모토 카노코(岡本かの子)의 『초밥』(박영선 역, 뜨인돌, 2006)을 출퇴근 지하철 길에 읽었다. 책을 건네받고 우선 빨간 바탕에 노란 기모노를 입은 여인의 뒷모습을 새겨 놓은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난하기도 하지.
食小說이라는 카피에도 혹했다. 초밥을 좋아하기도 하는데다, 뭐 『초밥왕』 같은 내용일거라고 생각한건 아니지만, 어쩌면 바르뜨의 일본 요리에 대한 묘사 정도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일식 요리에 대한 하이쿠 같은, 혹은 좀 더 화사한 문장들 말이다. 책을 펼쳐들고 겅중겅중 읽어 나갔다.
어, 그런데 좀 이상하다. 이게 언제 쓰여진 소설인가. 머리말이며 역자의 소개를 되짚어 챙겨본다. 알라딘의 저자 소개에는
「오카모토 카노코. 1889년 명치시대 말 도쿄에서 대 지주의 딸로 태어났다. 대단한 문학가족이었던 집안 분위기 탓에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문학을 접하게 된 그녀는 예리한 감수성과 과잉된 열정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일본 근대 문학 부활의 첫울음'이라는 격찬을 받으며 문단에 들어선 후 나쓰메 소세키, 다니자키 준이치로, 아쿠다카와 류노스케 등 당대의 저명한 작가들과 교류하며, 동시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던함과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예술지상주의적 작품 세계를 펼쳐 나갔다. 평론가 주조 쇼헤이로부터 '형이상학적인 깊이를 집합적 무의식으로 드러낸 여류 천재 소설가'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학은 병들어 있었다>, <파리축제>, <게이샤의 어느 날> 등이 있다.」라고 나와 있다.
저자는 이를테면 우리나라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현진건이니 채만식 시대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일본문학에 문외한인지라 동시대 다른 저자의 소설이 어땠는지는 잘 모른다. 『초밥』(은 오카모토 카노코의 작품 가운데 음식을 소재로 다룬 세 편의 소설-초밥, 집 유령, 식마-과 다른 단편인 뺨 때리기 등 네 편이 실린 단편집이다)이 정말 대단한 소설이라거나 너무 재미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실은 조금 심심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도리어 지나치게 야단스러운 느낌이다.
그렇지만 『초밥』은 꽤나 흥미롭다. 가령 역자가 몇몇 세부 묘사나 장치를 바꾸어 놓는 번안을 해 두었다면, 나는 좀처럼 이 소설의 시대를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두고 일종의 현대성이 나타나 있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아마도 당시 일본사회의 서구화 혹은 현대화 분위기에 대한 단순한 반영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80~9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 넘는 고전 급의 에너지는 별로 느껴지지 않지만, 동시대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묘한 분위기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