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베스트셀러 미니북 20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맥베스 부인에서 데스데모나를 떠올렸다가, 곧바로 그는 『오셀로』의 주인공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맥베스, 맥베스라 4대 비극 중 하나인데, 틀림없이 읽었는데 말이지, 대체 어떤 내용이었더라? 심각하게 고민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책을 읽는 며칠 동안 생각해내지 못해서 결국 인터넷 검색 서비스를 이용해야만 했다. 찾고 보니 기억 난다. 이런, 아주 잠깐이라지만 어떻게 욕심 많은 레이디 맥베스와 순정에 목숨 바친 데스데모나를 혼동할 수 있지. 하긴, 비록 방향은 다르다 하더라도 대단히 용기 있다는 면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에 맥베스 부인을 넣음으로써 작가는 이미 자신의 얘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물론 나처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면 별로 도움이 안 되긴 한다.) 남편이 왕이 될 거란 예언에 왕을 암살하기로 마음먹고 남편을 부추기는 맥베스 부인이 영국의 악녀라면, 러시아의 작은 마을 므첸스크군의 맥베스 부인이라 작가가 명명한 카테리나 리보브나는 어떤 여자일까.

 

안타깝게도 카테리나는 사랑에 눈 먼 여자다. 이게 왜 안타까운 일인가 하면, 사랑에 눈 먼 여자가 자신을 제대로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멋진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 가능성은 19세기의 러시아 뿐 아니라 현대의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그리 낭만적이지 못한 소리를 하느냐고? 글쎄. 사랑에 눈 먼 여자란 상대방이나 서로간의 관계보다는 자기 자신, 혹은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더 빠져 있기 마련이고, 눈 멀어서 상대의 속내를 어찌 알 것이며 사랑이 부스스 흩어져 사라지는 것을 어찌 막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눈 크게 뜨고 자신과 상대를 바라보며 허약해지는 곳을 메워나가는 사랑이 진짜가 아닐까. 아무튼.

 

사랑 없는 결혼 생활과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보상이라도 된다는 듯 사랑과 재물을 양손에 움켜쥐려고 작정한 카테리나에게는 오로지 방해물을 치워버리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해서는 안될 일이 무에 있을 것이며 주저할 이유가 무엇이랴. 하여 그는 불구덩이 속으로, 아니 얼음이 덮인 차가운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끝까지 함께할 줄 알았던 그의 사랑은 그 차가움에 진저리를 치더니 손을 뿌리치고 혼자 뭍으로 내빼버린다. 그런데도 카테리나는 포기할 줄을 모른다.

 

지루하고 답답한 세월의 무게 혹은 빙하같이 엄혹한 가난의 무게에 짓눌리면 사람의 심성이 일그러지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성 속에 악마가 될 불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 역시 눈이 멀어 제 갈 길을 찾지 못한 게 문제가 아닐까. 바로 옆에 멀쩡한 길이 있는데도 무작정 강 속으로 허우적허우적 걸어 들어가는 이유는 그것밖에 없는 듯 하다. 『쌈닭』의 돔나 플라토노브나를 봐도 마찬가지다. 확실히, 사랑이든 재물이든 권력이든 사람을 현혹하여 눈 멀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는 주의가 필요한 법이다. 사랑이 찾아와도, 로또 1등이 되더라도, 기쁨에 눈을 꽉 감는 척만 하고 실눈을 뜨고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 책, 받아보니 길이가 보통 책의 2/3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Minibook 시리즈라고. 알지 못한 채 구입해서 투덜댔으나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훨씬 편하다. 표지를 비롯한 삽화는 러시아 원서에서 가져온 것처럼 보이는데, 꽤 재미나다. 사실 레스코프는 러시아 문학사 시간에도 들어보지 못한(혹은 기억하지 못하는) 작가이다. 새로이 알게 된 작가라는 점에서, 귀엽고 유쾌한 삽화가 곁들여졌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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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6-2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네요.^^